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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누가 나랑 했을까?: Chapter 51 - Chapter 60

115 Chapters

제51화. 불이 꺼진 뒤에도

번개가 유리창을 하얗게 비췄다. 이서가 방문에서 다시 나와 계단 쪽으로 움직인 순간 집 안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반사적으로 난간을 잡았는데 손바닥이 미끄러졌다.“움직이지 마.”아래에서 태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 불빛이 계단을 비췄다. 이서는 휴대전화 불빛을 따라 발을 옮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밟을 곳이 보이는 일이었다.시현이 관리실에 연락했다. 무선 인터넷은 끊겼지만 휴대전화는 신호가 잡혔다. 도하는 주방에서 휴대용 조명을 찾아 켰다. 밝기가 약해 얼굴보다 탁자 끝이 먼저 보였다.관리인은 일부 전원 장치를 점검 중이며 복구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진입로에는 쓰러진 가지가 있어 치우는 중이었다. 긴급한 이동은 관리실로 연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서는 안내를 듣고 계단에서 내려왔다.“위에 혼자 있어야 할 이유도 없겠네요.”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멋쩍었다. 무서워서 내려왔다고 해도 됐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태헌이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담요를 내밀었다. 이서는 어깨에 걸치고 소파 끝에 앉았다.네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창틀을 건드릴 때마다 시현이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인터넷이 끊기면 세상 전체가 없어지는 사람 같았다. 이서가 그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그거 들고 있다고 더 빨리 복구돼요?”시현이 잠깐 멎었다.“아니요. 그냥 버릇이에요.”“저도 아까 계속 확인했어요. 답장도 안 오는데.”시현은 오늘 이서가 오래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하의 방문 쪽을 잠깐 보았다가, 휴대전화를 화면이 아래로 가도록 놓았다.태헌은 손등에 붙은 낡은 밴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에 젖은 모서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이서가 새 밴드를 그 앞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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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취소한 산책

이서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창밖이 희어지기 전에 문 앞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태헌이 물병을 바닥에 놓다 말고 일어섰다.“깼어?”“문 두드려도 돼요. 몰래 놓고 가는 게 더 이상해요.”태헌이 손잡이 쪽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먼저 들어왔을 문이었다. 이서는 문을 더 열지 않고 복도로 나왔다. 계단참의 좁은 의자에 앉자 태헌이 옆 벽에 기댔다. 둘이 나란히 앉기에는 의자가 작았다.“나한테 화가 나. 내가 그날 한번만 더 물었으면 네가 이렇게 오래 묻지는 않았을 텐데.”말을 고르느라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이서는 물을 마시고 뚜껑을 닫았다.“제가 그때 무슨 대답을 했을지는 선배도 모르잖아요.”“알아. 그래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선배가 안 물어봤으니까요.”태헌이 얼굴을 돌렸다. 이서는 바다 쪽 창을 봤다. 밤에는 무서웠던 파도가 아침에는 흰 줄로만 보였다. 눈으로 보는 것과 가까이 겪는 것이 이렇게 달랐다.“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동아리 행사 끝나고 제가 식당 알바 가야 한다니까, 그만두라고 했잖아요.”“등록금 내가 줄 수 있다고 했지.”“저는 근무시간이 늦어서 택시가 잡히는지 물어본 거였어요.”태헌이 그제야 말뜻을 더듬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후배에게 좋은 제안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서는 그 제안을 거절한 뒤 식당까지 뛰어갔던 길을 기억했다. 같은 만남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왜 그때 말 안 했어.”“말했어요. 선배가 웃었지.”태헌은 아무 말도 못 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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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몰래 모아둔 시간

거실 탁자에는 시현의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이서가 내려오자 그가 화면을 자기 쪽으로 더 당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업무 자료가 아니라 대학 시절의 일정과 사진을 모아둔 폴더였다. 이서는 목록에서 자기 아르바이트 가게 이름을 보았다.“저 혼자 보려고 했어요.”첫마디부터 그랬다. 이서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그래서 제 허락이 없어도 되는 거예요?”시현이 눈을 내리깔았다. 대답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 그가 정말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도 자기 욕심이 먼저였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제가 따로 저장해둔 일정과 행사 사진입니다. 원치 않는 건 정리하겠습니다.”“다른 데도 있어요? 자동으로 올라가는 곳이나, 복사한 곳.”시현의 손이 마우스에서 떨어졌다. 짧은 침묵이 왔다. 이서는 그 침묵이 싫었다. 예전에는 그가 잠깐 말을 멈추면 무언가 치밀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불리한 대답을 고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개인 저장 장치에 사본이 있습니다.”“그걸 먼저 말했어야죠.”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는 그가 사진을 잘라 보여주던 버릇을 떠올렸다. 그가 고른 부분만 봐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지금 제가 직접 확인할게요. 보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별도로 상담해서 처리할 거예요. 수석님 혼자 증거라면서 갖고 있지 마세요.”그녀는 화면을 자신의 방향으로 돌렸다. 시현은 손을 떼었다. 이서는 내용을 길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무엇이 촬영됐는지와 저장된 범위만 확인한 뒤 화면을 껐다. 자기 일상이 남의 목록으로 모여 있는 것이 불편했다.“공개된 일정을 봤다고 제가 언제 어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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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지워지지 않는 한 줄

도하는 늦게 식탁에 앉았다. 이서는 가지고 내려온 파우치에서 냅킨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손을 뻗었다가 잠깐 멈췄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접힌 종이를 펼쳤다.“이걸 왜 썼는지 묻고 싶었어요.”이서가 먼저 말했다. 태헌과 시현은 그날의 기록을 정리하러 각자 방으로 갔다. 도하가 다른 두 남자에게 들키지 않아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이서는 다시 불러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빈 의자 두 개를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네가 아침에 연구실로 오면, 내가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상황을요? 저한테 괜찮냐고 묻는 게 아니라?”도하의 손가락이 냅킨의 접힌 선을 따라갔다. 글씨는 여전히 선명했다. 어젯밤 일에 대한 변명은 듣지 않겠다는 문장. 이서는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어보라고 했다.도하는 한 번 읽다가 멈췄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논문 한 문장을 여러 번 읽히던 모습을 기억했다. 말로 내뱉으면 모순이 들린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자신의 문장이 그를 막고 있었다.“교수님이 들어야 할 변명이 있었어요?”“아니.”“그럼 왜 제가 변명해야 할 사람처럼 쓰셨어요?”도하는 고개를 숙였다.“내가 해야 할 말을 네게 넘겼다.”이서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그것을 듣기까지 오래 걸렸다. 처음 연구실에서 메모의 뜻을 물었을 때 도하는 정작 중요한 대답을 피했다. 어젯밤에야 그가 부인한 이유를 들었다. 이서는 오늘의 사과가 글씨 몇 줄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도하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너를 지도하던 방식까지 돌아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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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회사에서 보냈다는 사람들

토요일 오전 9시, 숙소의 무선 인터넷이 다시 연결됐다. 밤새 밀려 있던 알림이 한꺼번에 떴다. 이서는 가장 위에 있는 회사 대화방부터 열었다. 자료 회수를 지시한 내용은 없었다.“누가 회수하라고 했대요?”시설 담당자는 구매지원 쪽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어제 직원이 직접 건넨 결과 파일도 회수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이서는 받은 물품 목록과 인수 확인서를 꺼냈다. 프로젝트에서 쓰는 노트북에는 회사 자산표가 붙어 있었다. 개인 가방 안에는 호텔의 물건들이 있었다. 누군가 둘을 한꺼번에 가져가려 한다면 어디서부터 막아야 할지 분명히 해야 했다.태헌이 식탁에 앉았다. 이번에는 접시를 잘 들고 왔다. 도하가 커피를 따라주고 시현은 통신 상태를 확인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아침이었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말은 꼭 필요한 것뿐이었다.이서는 식탁에 묻은 커피를 먼저 닦고 휴대전화를 놓았다. 젖은 화면 때문에 지시서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이서가 메시지 화면을 돌려 보였다.“수석님, 받은 파일 중에 회수 조건 붙은 게 있어요?”시현이 원본 전달 메일을 열었다. 없다고 답했다. 태헌이 전화를 꺼냈다.“구매지원이면 내가 알아볼게.”“물어봐요. 취소하라고 하지는 말고. 누가 왜 지시했는지 먼저요.”태헌이 그녀를 봤다가 번호를 눌렀다. 첫 통화에서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 두 번째 담당자가 전화를 받자 그는 직함부터 댔다. 이서는 옆에서 인수 확인서에 적힌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실사 자료 회수 얘기가 있는데, 내가 받은 지시가 없어. 발신한 부서가 어디야.”수화기 너머의 대답은 길었다. 태헌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같은 질문을 더 짧게 반복했다. 결국 돌아온 것은 부회장실에서 외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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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가져갈 수 없는 가방

관리실 앞에는 회색 밴 한 대가 서 있었다. 회사 로고는 없었다. 비를 맞은 두 남자가 차 옆에서 서류를 펼쳤다. 앞에 선 사람이 명함의 박 대리였다. 그는 이서를 보고 태헌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장비 회수 요청받고 왔습니다.”이서는 그 남자가 내민 종이를 받았다. 회수 대상에는 노트북 한 대와 저장 장치 두 개가 적혀 있었다. 자산 번호가 빠져 있었고, 요청 담당자의 연락처는 대표번호뿐이었다.“어제 실사 자료도 포함된 건가요?”“저희는 적힌 것만 가져갑니다. 자세한 건 본사에 물어보세요.”태헌이 앞으로 나오려 하자 이서가 종이를 가리켰다. 시현은 회사 자산표와 회수 목록을 대조했다. 노트북 모델명이 달랐다. 도하는 자신의 이름이 승인자로 적힌 부분을 보고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이 서명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어디서 받았습니까.”방문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온 문서를 보여주었다. 종이와 같은 사진이었다. 도하가 화면을 들여다보는 동안 다른 남자가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장비 위치만 확인하겠습니다.”그가 관리동 옆의 숙소 연결 통로로 향하자 관리인이 앞을 막았다. 통로 입구에는 직원용 출입문이 있었다. 태헌이 돌아섰고, 방문자는 잠깐 멈췄다가 관리인이 쥔 손잡이를 밀었다. 문이 벌어졌다. 그 순간 태헌이 팔을 뻗어 문을 막았다. 손등에 붙은 밴드가 젖었다.“확인 안 끝났어.”“일하러 온 사람한테 왜 이러십니까.”“그럼 여기서 기다려.”태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서는 그가 상대의 멱살을 잡을까 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태헌은 손잡이를 놓지 않고 문만 막았다. 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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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서명보다 앞에 있는 것

숙소로 돌아온 뒤 한동안 아무도 식탁에 앉지 않았다. 태헌은 손등을 닦고 밴드를 갈았고, 시현은 문서 사진을 받았으며, 도하는 젖은 소매를 갈아입었다. 이서는 관리실에서 작성한 경위 메모를 가방 위에 놓았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피곤했다.김수경이 전화했다. 그녀는 회수 요청을 감사실에서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차진혁 부회장실에는 어떤 사유로 외부 업체를 보냈는지 확인을 요청해두었다. 이서는 서명란에 도하의 이름이 있었다는 말부터 덧붙였다.“사진은 받았어요. 원본 양식을 확인해야겠네요.”김수경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서는 그 침착함이 좋다가도 화가 났다. 자신은 방금 가방을 빼앗길 뻔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는 서류 하나가 잘못된 일처럼 들렸다. 그 생각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를 같이 내줄 사람이 아니었다.“개인 소지품에도 손을 댔어요.”“그 부분은 업무 확인과 별개로 남겨두세요. 회사가 알아서 했다고 덮을 일은 아니에요. 필요한 상담도 본인이 편한 곳에서 받으시고요.”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서는 어깨를 조금 내렸다. 자기에게 벌어진 일의 크기를 줄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도하가 통화에 함께 들어왔다. 그날의 승인 문서에 서명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자신의 서명이 사용된 기존 양식은 연구시설 계약에도 있다고 말했다. 서명 이미지가 누군가의 손에 있다는 사실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태헌은 숙부와 통화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고 거실 끝으로 갔지만 몇 마디는 들렸다.“왜 외부 사람을 보냈어요.”“……사고 수습? 누구 사고를요.”그가 돌아왔을 때 얼굴이 굳어 있었다. 차진혁은 무단 반출 우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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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

점심을 먹고 이서는 자기 방에 들어갔다.받은 자료를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첫 줄을 읽고도 무슨 말인지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세 번 읽다가 전원을 껐다. 피곤하다고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람이 잦아들어 커튼 끝만 움직였다.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 물가에 앉아 태헌의 손을 잡았던 일이 멀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때 잠깐 편했던 마음까지 거짓은 아니었다.이서는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문을 잠갔다. 누군가 들어올까 봐 시험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오늘은 노크에 일어나 대답하는 일도 하지 않고 싶었다.대화방에 1시간쯤 쉬겠다고 보냈다. 급한 일은 유나에게도 같이 전달해달라고 적었다. 태헌은 알겠다고 했다. 시현은 자기 자료는 저녁 전에 보내겠다고 했고, 도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이서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꿈을 꿨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햇빛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40분쯤 지났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머릿속의 소음은 조금 줄어들었다.가방에서 편한 셔츠를 꺼내 입었다. 태헌이 호텔에 가져다준 회색 티셔츠였다. 무심코 손이 갔다가 멈췄다. 그것을 입는다고 누구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없었다. 옷은 편했고, 지금은 그 이유면 됐다.거실로 내려오니 시현이 종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도하는 관리 직원과 낮은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태헌은 주방에서 과일을 씻었다. 이서를 보자 셋 다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저 뭐 검사받으러 나온 사람 같아요.”이서가 말하자 태헌이 먼저 웃었다.“잘 잤냐고 물으려고 했지.”“조금요. 다들 계속 일했어요?”시현은 커피를 쏟아서 닦은 시간이 더 길었다고 했다. 태헌이 그건 본인이 한 것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서는 의자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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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한 방 안의 다른 시간

밤 10시, 네 사람은 거실 식탁에 앉았다. 와인 대신 물을 놓았다. 이서는 호텔에서 보내온 객실 도면을 펼치고, 각자 가져온 휴대전화를 옆에 두었다. 한 사람이 아는 시간을 다른 사람이 곧바로 고치지 않도록 먼저 따로 적어왔다.태헌의 종이에는 몇 줄밖에 없었다. 시현은 시각별로 칸을 나누었고, 도하는 문장을 길게 적었다. 이서의 종이에는 빈칸이 가장 많았다.“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게요. 세 분도 기억 안 나는 걸 제 반응으로 채우지 마세요.”이서가 먼저 말했다. 어제 도하의 고백을 들은 뒤에도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태헌이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은 객실에 있었는지, 도면에 직접 표시해볼 생각이었다.태헌이 1시 30분을 짚었다. 방으로 들어간 시각은 그가 행사 담당자에게 보낸 메시지와 맞았다. 2시 15분에 밖으로 나갔다는 말은 이후의 결제 내역과 함께 확인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종이로 대신할 수 없었다.“네가 아프다고 했어. 토할 것 같다고. 그때 나갔다.”이서는 그의 얼굴을 봤다.“그 뒤 로비에서 옷을 받은 건 2시 44분보다 늦었죠.”“응. 기사님이 기다렸다가 줬어.”태헌은 편의점 영수증과 기사에게 받은 메시지를 놓았다. 그가 곧장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 숙부의 전화를 받은 시간이 끼어 있었다. 그 통화의 내용은 태헌의 설명으로 남았고, 영수증은 약을 산 시각만 알려주었다.이서는 그의 재방문을 시간표 뒤쪽에 표시했다. 그가 초반에 숨겼던 일은 이제 다른 두 사람도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기 좋은 부분만 남겨 기록할 수는 없었다.시현은 2시 20분에 들어갔다고 했다. 행사 안내에서 알게 된 객실 번호와 이서의 메시지를 보고 추가 키를 받아왔다. 자신이 그 정보를 어떻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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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누구였는지 안 다음에는

회의가 끝난 것처럼 모두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호텔에 관한 이야기는 일을 끝내듯 종료할 수 없었다. 이서는 세 물건을 치우고 식탁을 닦았다. 별 이유 없이 움직이고 싶었다. 태헌이 행주를 받으려 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그냥 제가 하고 싶어요.”“응.”그가 물러났다. 시현은 빈 컵을 주방으로 옮겼고 도하는 종이를 자기 가방에 넣었다. 아무도 결론을 한 줄로 정리하지 않았다. 이서는 그게 좋았다.그날 밤의 남자는 강도하였다. 하지만 자기가 바라던 대답은 그 이름 하나보다 컸다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을 때, 자신에게 끝까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은 가장 늦게 진실을 말한 사람이기도 했다.이서는 소파에 앉았다. 세 사람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 와주기를 바라면서도 지금 다가오면 밀어내고 싶을 것 같았다. 자기 마음이 모순이라는 이유로 남이 쉬운 쪽을 골라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오늘은 그냥 여기 잠깐 같이 있어요.”이서가 말했다.“무슨 얘기 안 해도 돼요.”태헌이 맞은편에 앉았다. 시현은 테이블 가까운 의자에, 도하는 창가 쪽 의자에 앉았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은 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태헌이 리모컨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텔레비전을 켜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서는 좋다고 했다. 여행 프로그램이 나왔다. 화면 속 사람들은 맛있다는 말을 번갈아 하고 있었다.“저 집 진짜 맛있어?”태헌이 묻자 시현이 가본 적 없다고 했다. 도하도 모른다고 했다. 이서가 웃음을 터뜨렸다.“셋 다 모르는 것도 있네요.”태헌이 그 말에 웃다가 입을 다물었다. 웃어도 되는지 살피는 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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