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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눈치 빠른 막내들(1)

  소문은 언제나 탕비실에서 시작됐다. 혜주는 그 사실을 입사 두 달 만에 깨쳤다. 누가 이직을 준비하는지, 어느 팀 회식이 파토 났는지, 인사 발령이 언제 나는지. 정수기 앞에서 오가는 반쯤 흘린 말들이 결재 서류보다 빨랐다. 그러니 사내 커플 이야기도 탕비실에서 처음 들었다. “진짜래요. 2팀 인턴 동기가 그랬어요.” 도윤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다고 낮춘 게 평소 목소리의 절반이었다. “우리 층이래요. 퇴근은 따로 하는데 지하철역 지나서 같은 차에 타는 걸 본 사람이 있대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혜주는 컵에 커피를 받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 소문은 한 철에 한 번씩 돌았고, 대개는 같은 방향에 사는 두 사람이 택시를 같이 탔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도윤 씨, 그런 거 함부로 옮기면 안 돼요. 강 주임님한테 혼나요.”“저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선배님한테만…….”“그게 옮기는 거예요.” 도윤이 시무룩해졌다. 혜주는 웃음을 참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혜주는 원래 사람들 사이의 기류를 빨리 읽었다. 대학 때도 누가 누구와 사귀기 시작했는지 제일 먼저 알아맞히곤 했으니까. 도윤의 말이 괜히 신경 쓰여 모니터를 보는 척 사무실을 둘러봤다. 홍 과장님은 일단 제외였다. 남자 얘기만 나오면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요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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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눈치 빠른 막내들(2)

  이튿날 오후, 지수가 주함을 불렀다. “남 대리님, 창고에서 샘플 박스 두 개만 가져다주시겠어요?” 주함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 같았으면 왜 하필 자신이냐고 한마디쯤 했겠지만, 요즘은 그런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적어도 재발 방지안을 몇 번이나 퇴짜 맞은 뒤로는. 복도 끝 비품 창고에 도착한 주함이 손잡이를 잡으려던 찰나, 열린 문틈으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지하철역 지나서래요.”“쉿. 목소리.” 혜주와 도윤이었다. 선반 사이에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의 정수리가 A4 박스 위로 나란히 솟아 있었다. 주함은 일부러 인기척을 죽인 채 단숨에 문을 활짝 열었다.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둘이 이렇게까지 숨길 일이 있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두 분, 여기서 뭐 해요?”“으악!” 도윤이 움찔하는 바람에 손에 쥔 클립 통이 떨어졌다. 자르르, 은색 클립이 바닥 위로 쏟아져 흩어졌다. 혜주는 이마를 짚었고, 도윤은 클립보다 제 입부터 틀어막았다. 정작 떨어뜨린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아 주함이 먼저 통을 세워 놓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아무것도 아닌데 숨어서 할 얘기요?” 주함이 빈 상자를 옆으로 밀어 놓고 쪼그려 앉았다. 세 사람이 클립을 줍는 동안 도윤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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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눈치 빠른 막내들(3)

  칼국수 그릇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회사에서 세 블록쯤 떨어진 골목 안쪽 가게였다. 지수가 찾아낸 곳으로, 점심시간에도 다른 부서 사람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여긴 진짜 회사 사람이 안 와요. 사내 커플이면 이런 데서 만나겠네.” 지수가 수저를 나눠 주며 농담했다. 주방에서는 면을 삶는 소리가 났고, 종업원은 김치 접시를 분주히 날랐다. 차율도 그 말을 듣고는 괜히 국수 그릇으로 눈을 돌렸다. 혜주는 도윤을 봤고, 도윤은 주함을 봤다. 주함은 두 사람의 눈짓을 무시하고 깍두기부터 덜었다. 어제 창고에서 입단속을 단단히 당한 참이었다. 차율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지난번 탕비실에서 들은 소문이 아직도 돌고 있는 걸까. 자신과 호빈을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나누는 눈길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부장님은 오늘도 안 오세요?” 지수가 빈자리를 확인했다. “본부 회의요. 노 차장님도 거래처에서 드신대요.” 차율이 대답하자 도윤이 어쩐지 아쉬운 얼굴로 젓가락 포장을 뜯었다. 혜주는 그의 무릎을 테이블 아래에서 툭 건드렸다. “왜요?” 혜주가 대답 대신 앞접시를 밀었다. 도윤은 그 위에 면을 수북하게 덜어 놓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국수보다 할 말이 더 많아 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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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회사 이야기(上)

  딸랑- 유리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벽 너머 유치원 쪽에서 컹, 하고 익숙한 대답이 돌아왔다. 콩이였다. 주인 발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는 녀석. 로비는 비어 있었다. 카운터에는 유치원 기록지가 가지런했고, 진열장에는 알록달록한 간식 봉지가 쪼로니 늘어서 있었다. 안쪽 미용실에서는 드라이기 소리가 웅- 하고 새어 나왔다. 잠시 뒤 드라이기가 멎고 미용실 문이 빼꼼 열렸다. “오셨어요? 이 친구만 마무리하고 콩이 데리고 나올게요.” 앞치마 차림의 지온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사라졌다. 소매에 갈색 털이 잔뜩 묻어 있었다. 주함은 인사할 틈도 없이 닫힌 문을 바라봤다. 콩이는 유치원에서 잘 놀았을까. 언제나 먼저 달려오던 녀석이 오늘은 짖기만 하고 나오지 않으니 영 낯설었다. 주함은 대기 의자에 앉았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면접 대기실에서도 이렇게 얌전했던 적은 없었다. 헬로펫에서는 회사 얘기를 하지 않는다. 홍 과장님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은 날 혼자 정한 원칙이었다. 사장님이 과장님의 친구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이곳은 더 이상 대나무숲이 아니었다. 콩이 자랑만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오는 길에 할 말을 미리 골랐다. 날씨. 콩이. 하필 오늘은 그 약속이 야속했다. 창고에서 당한 일을 털어놓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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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회사 이야기(下)

  주함은 콩이를 안은 채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건… 회사 얘기라서요.”“회사 얘기 말고, 차율이 얘기요.” 지온이 기록지를 덮었다. 주함은 콩이의 귀를 가지런히 쓸어 주며 시간을 벌었다. 예전에 여기서 떠들었던 말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콩이가 주함의 셔츠 단추를 잘근잘근 씹었다. 단추를 떼어 놓고서야 그는 다시 지온을 봤다. 이제 와 칭찬을 늘어놓으면 변명하는 것 같고, 사실대로 말하자니 겁이 났다. “걱정 마세요. 손님 이야기는 밖에 안 해요. 차율이한테도요.”“…정말요?”“제가 여기서 들은 말 다 옮겼으면 벌써 문 닫았죠.” 주함이 픽 웃었다. 하긴. 지온은 진작부터 과장님과 친구였는데도 한 번도 그걸 말한 적이 없었지. “무섭죠, 홍 과장님.”“그건 알아요.”“일 틀리면 봐주는 법도 없고요.”“그것도 알죠.” 주함은 작게 헛기침했다. 막상 입을 열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말이 먼저 나왔다. “근데 사람을 끝까지 보긴 하세요.” 지온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제가 자료 잘못 보내서 큰일 났을 때, 방지안을 쓰게 하셨거든요. 세 번째에 겨우 통과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팀 회의에서 제가 직접 설명하라고 하시더라고요.”“남 대리님이 만든 거니까요?”“네. 그땐 그것도 벌인 줄 알았죠.”&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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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사진

  소회의실 B의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져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도윤이 노트북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차율이 지나가자 그가 벌떡 일어났다. “과장님! 사진 좀 봐 주세요.” 분기 활동을 정리해 사내 게시판에 올리기로 한 참이었다. 워크숍부터 캠페인 오픈까지, 행사 사진만 삼백 장이 넘었다. 그중 게시할 만한 컷을 고르는 건 도윤의 몫이었다. “열 장만 추렸어요. 이것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열 장이면 금방 보겠네요.” 차율이 옆자리에 앉자 도윤은 폴더를 열었다. 딸깍, 딸깍. 현장 인터뷰에서 마이크를 든 혜주, 퀴즈 판을 번쩍 들어 올린 주함, 돌아오는 버스에서 입을 벌리고 잠든 지수. 차율은 마지막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지수 씨한테 허락받고 올려요.”“그렇죠? 저도 좀 걸렸어요.”“게시판은 전 직원이 보잖아요. 사진 올라갈 사람한테 먼저 물어보고요.”“네. 그래서 이건 따로 표시해 놨어요.” 도윤은 아쉽다는 듯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발표가 진행되던 연수원 강당이었다. 스크린 앞에서 차율은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고, 청운은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었다. 앞줄에는 호빈이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도윤이 사진을 확대했다. 마우스 화살표가 앞줄의 호빈 주위를 동그랗게 돌았다. 마치 사진 속에서 따로 찾아낸 장면이라도 있다는 듯했다.&n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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