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안에서 당신이 뛴다: Chapter 51 - Chapter 60

80 Chapters

51화

“그럼 누가 이준 씨한테 내 의료 상태를 알려준 거예요?”윤서하의 질문에 정하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나도 정확히는 몰라.”“대기 절차까지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그건 음성메시지 듣고 나도 처음 알았어.”“하린 씨한테서 들은 건 아니고?”“아니야.”서하는 통화를 끊지 않은 채 노트를 펼쳤다.이준이 알고 있던 것 — 서하가 이식 대기 절차에 들어갔다는 사실.그 아래에는 빈칸을 남겼다.누가 알려줬는지.어디까지 알려줬는지.무엇보다 이준이 어떻게 계속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혹시 병원 쪽 사람한테 들었다는 얘기는 했어요?”“그런 말은 한 적 없어.”“태경 씨는요?”“모르겠어.”서하는 곧바로 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이식 대기 중이라는 거, 이준 씨한테 알려준 적 있어요?”태경은 잠시 침묵했다.“없습니다.”“확실해요?”“네.”“내 상태를 물어본 적은요?”“몇 번 있었습니다.”서하의 펜이 멈췄다.“언제.”“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 못 합니다.”“뭘 물었는데요.”“잘 지내는지, 치료는 받고 있는지.”“그래서 뭐라고 했어요?”“내가 아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서하는 미간을 눌렀다.“병원 재단 쪽으로 알아본 건 아니고요?”“아닙니다.”이번 대답은 더 단호했다.“서하 씨 진료정보를 이준에게 전달한 적도 없고, 내가 임의로 알아본 적도 없습니다.”“그럼 그 사람은 어디서 알았는데요?”“그건 나도 모릅니다.”통화를 끝낸 뒤 서하는 한동안 노트만 내려다봤다.하린은 몰랐다.태경은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의료진이 환자 동의 없이 과거 연인에게 상태를 알려줬을 가능성은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중 한 사람의 이름에서 펜이 멈췄다.윤미경.서하는 바로 전화를 걸지 못했다.삼 년 전에도 엄마는 자신 모르게 이준을 만났다.떠나달라고 부탁했다.당시에는 딸을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그 뒤에도 둘이 연락했다면.서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추측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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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미경이 가져온 예전 휴대폰은 액정 한쪽이 깨져 있었다.충전기를 꽂자 한참 뒤에야 화면이 켜졌다.윤서하는 비밀번호를 묻지 않았다.미경이 직접 풀었다.그 모습이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얼마나 연락했어?”“정기적으로 한 건 아니야.”“어제는 가끔이라며.”미경이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한두 달에 한 번일 때도 있었고, 몇 달씩 연락 안 한 적도 있었어.”“삼 년 동안?”“응.”서하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강이준과 헤어진 삼 년 동안 자신은 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엄마는 아니었다.“누가 먼저 연락했어?”“처음엔 이준 씨가.”“뭐라고.”“네가 어떻게 지내는지만 물었어.”“그래서 엄마는 대답했고?”미경이 잠시 망설였다.“응.”“어디까지.”“그냥… 치료 잘 받고 있다, 집에 있다, 병원 다닌다. 그 정도.”서하가 웃었다.“그 정도?”“진료 결과 같은 건 말한 적 없어.”“약 이름은?”“안 했어.”“검사 수치.”“몰랐고, 말한 적도 없어.”“담당 교수, 입원 기록, 대기 순번?”“그런 건 정말 몰라.”미경의 대답이 빨라졌다.“서하야, 엄마가 병원에서 네 기록을 받아다가 알려준 게 아니야. 네가 집에 와서 하는 말이나 내가 옆에서 보는 걸 가지고 그냥 잘 지낸다, 치료 중이다, 그 정도만—”“그걸 왜 알려줘?”미경이 말을 멈췄다.서하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엄마를 봤다.“떠나달라고 한 건 엄마잖아.”“맞아.”“그래서 그 사람은 떠났고.”“응.”“근데 뒤에서는 계속 내 소식을 알려줬어?”미경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궁금해할 수 있잖아.”“그걸 엄마가 왜 판단해.”“네가 너무 아팠으니까.”“또 그 얘기.”서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가슴으로 손이 가려는 걸 알아차리고 손가락을 말아쥐었다.“엄마도, 이준 씨도 계속 똑같아. 내가 아프면 내 선택은 없어져?”“그런 뜻 아니야.”“나 몰래 만나서 떠나달라고 했고, 나 몰래 연락했고, 나 몰래 내가 잘 살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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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윤서하는 강이준의 마지막 문자를 읽지 않았다.화면에는 발신자와 날짜만 떠 있었다.강이준.사고 당일.손가락 한 번이면 내용을 볼 수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지난 몇 주 동안 서하는 너무 자주 결론부터 봤다. 우연을 증거로 만들고, 기억을 사실처럼 붙잡았다가 다시 무너졌다.그래서 휴대폰을 미경에게 돌려줬다.“처음부터 다시 볼게.”“뭘?”“엄마가 이준 씨한테 정확히 뭘 알려줬는지.”미경의 얼굴이 굳었다.“어제 다 말했잖아.”“말 말고 기록으로.”두 사람은 오래된 대화방을 위에서부터 내려갔다.처음 몇 달은 간격이 길었다.[서하는 괜찮습니까.][그럭저럭 지내.][치료는 받고 있고요?][응.]그다음 해에는 입원 이야기가 몇 번 있었다.[며칠 병원에 있어.][많이 안 좋은 겁니까.][검사하고 치료받는 거야.]병원 이름도 없었다.검사 결과도, 약 이름도, 수치도 없었다.어느 의사가 무슨 판단을 했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서하는 따로 노트에 적었다.미경 → 이준치료 지속 여부.입원·퇴원 여부.몸이 좋지 않은 시기.치료를 다시 적극적으로 받기로 했다는 정도.그리고 그 아래 선을 그었다.전달되지 않은 것검사 수치.처방.의료진 소견.진료기록.기증·이식 관련 공식 정보.“이게 다야?”“내가 기억하는 건.”“대화 삭제한 건 없어?”“일부러 지운 건 없어.”서하는 휴대폰의 오래된 백업 날짜까지 확인했다.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이준은 병원에서 서하의 진료정보를 직접 받아본 사람이 아니었다.적어도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그 대신 생활 속 조각을 꾸준히 받았다.입원이 잦아졌고.치료를 다시 시작했고.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다.그 정도만 알아도 오랫동안 서하의 병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서하는 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준 씨, 내 상태를 얼마나 알고 있었어요?”“정확히는 모릅니다.”“대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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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윤서하는 마지막 문자의 본문을 열었다.발신자는 강이준.날짜는 사고 당일이었다.짧은 두 문장이 화면에 떠올랐다.오늘 다 끝내고 서하에게 갑니다.더는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서하는 한 번 읽고도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다시 읽었다.‘갑니다.’오겠다는 뜻이었다.삼 년 동안 자신에게서 사라졌던 사람이, 죽기 몇 시간 전에는 돌아올 방향을 정해놓고 있었다.“엄마.”미경이 대답하지 못한 채 서하를 바라봤다.“이 문자, 그날 본 거지?”“응.”“무슨 뜻이라고 생각했어?”“네한테 사실대로 말하려는 줄 알았어.”“뭘 사실대로.”“그건 나도 몰랐어.”서하는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거짓 약혼.하린에게 남긴 음성메시지.사고 전날 일정표에 적힌 ‘서하에게 전화’.그리고 이제 사고 당일의 문자까지.조각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몇 시간만 빨랐으면.”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서하는 입술을 다물었다.그 생각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몇 시간만 빨랐으면 만났을지도 모른다.전화를 받았을지도 모른다.진실을 들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런 가정은 사고를 되돌리지 못했다.더구나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은 일과 이준이 사고를 당한 일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그날의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모르게 만든 사람이 이준이었다.서하는 그 사실까지 지우고 싶지 않았다.“엄마는 이준 씨가 돌아오면 내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어?”미경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모르겠더라.”“나도 몰라.”서하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지금도 모르겠어.”사랑했다는 사실과 용서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일이었다.이준이 돌아오려 했다는 사실 역시 삼 년 동안의 거짓말을 없애주지 않았다.그런데도 다시는 오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오겠다고 적었다는 사실은 잔인할 만큼 선명했다.약 알람이 울렸다.서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약을 꺼냈다.물을 마신 뒤 복용 시간을 기록했다.과거 때문에 지금의 몸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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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나였습니다. 그날 이준이 만나려던 사람은 나였어요.”윤서하는 강태경의 말을 곧바로 믿지 않았다.“몇 시에요?”“저녁이었습니다.”“정확히.”태경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6시쯤.”“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요?”“재단 밖에서.”“왜요.”“이준이가 가져올 게 있었습니다.”서하는 펜을 들었다가 멈췄다.“취재 자료?”“네.”어제 태경은 ‘다 끝낸다’는 말에 취재 자료 전달과 가족과의 결별이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그것 역시 태경의 설명이었다.서하는 노트에 적었다.태경의 기억. 아직 기록 확인 전.“약속한 증거 있어요?”태경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찾아보겠습니다.”“찾아보고 연락 주세요.”전화를 끊자마자 서하는 하린에게 연락했다.“사고 당일 이준 씨 일정 알고 있었어요?”“일부만.”“태경 씨 만나기로 한 건?”하린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형 만나러 간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아.”“들은 것 같다는 건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거죠?”“응.”“무슨 일로 만나는지는?”“자료 정리한다고 했던 것 같고.”또 ‘것 같다’였다.서하는 물었다.“가족이랑도 끝내겠다는 얘기는 했어요?”이번에는 하린의 답이 빨랐다.“그건 했어.”“정확히 뭐라고.”“이제 집안이 자기 인생에 손 못 대게 하겠다고.”“재단도?”“그런 얘기도 했던 것 같아. 근데 그때 나는 약혼 연극 끝내자는 말 때문에 화가 나 있어서 세세하게 기억 안 나.”서하는 적던 손을 멈췄다.하린에게 그날은 거짓 약혼이 끝나는 날이었다.태경에게는 이준이 자료를 넘기러 오던 날이었다.미경에게는 딸에게 돌아가겠다고 연락한 날.한 사람의 마지막 하루가 세 사람 안에서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하린 씨.”“응.”“그날 이준 씨가 행복해 보였어요?”질문하고 나서 서하는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린도 잠시 침묵했다.“행복하진 않았어.”“그럼?”“결정한 사람 같았어.”“뭘.”“그건 내가 붙이는 해석이야.”하린이 먼저 선을 그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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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형에게 넘긴 뒤, 약속대로 정리할 것.윤서하는 사진 속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약속이 뭐였어요?”전화기 너머 강태경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죠.”“또 숨기려고요?”“아닙니다. 말로만 설명하면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자료도 같이 보여드리겠습니다.”그날 오후, 태경은 병원 근처 카페로 왔다. 서하가 앉자마자 얇은 파일 하나를 테이블에 올렸다.“이준이가 넘기려던 자료 일부입니다.”서하는 첫 장을 넘겼다.세림의료재단 내부 결재 문서, 회의 기록, 사업 관련 메모가 복사돼 있었다. 몇몇 부분에는 이준이 직접 표시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이준 씨가 왜 이런 걸 가지고 있었어요?”“취재하고 있었습니다.”“자기 집안을?”“정확히는 재단을.”태경이 파일 한쪽을 눌렀다.“아버지가 재단을 운영하는 방식과 내부에서 묻힌 문제들을 오래 보고 있었어요. 전부 공개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확인할 건 확인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밖으로 드러내겠다고 했죠.”서하는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형은 그걸 도와주기로 했고요?”“내가 법적으로 확인할 부분을 맡기로 했습니다.”“그래서 사고 당일 만나기로 한 거고.”“네.”이제야 어제의 문장이 조금 선명해졌다.자료를 넘긴 뒤, 약속대로 정리할 것.“정리한다는 건 이것뿐이에요?”태경이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서하의 손가락이 파일 위에서 멈췄다.“이준이는 자료를 넘긴 다음 가족과 공개적으로 선을 긋겠다고 했습니다.”“가족과?”“아버지와 재단의 이름을 더는 자기 일에 쓰지 못하게 하겠다고.”“그게 가능해요?”“쉬운 일은 아니었겠죠.”태경은 잠시 말을 골랐다.“그래도 할 생각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어요.”서하는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그동안 이준이 돌아오려 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모든 선택이 자신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거짓 약혼을 끝내는 것도.전화를 거는 것도.진실을 말하려는 것도.그런데 사고 당일 이준이 정리하려 한 것은 자신 하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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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블랙박스 영상이 사라졌다고 했죠.”윤서하는 다음 날 아침 강태경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어젯밤에는 그 말만 듣고도 머릿속에서 결론이 먼저 만들어졌다.강태성.재단.취재 자료.가족과 결별하려던 이준.그리고 사라진 영상.너무 쉽게 이어졌다.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처음부터 물었다.“형이 직접 확인한 사실이에요?”태경이 잠시 침묵했다.“사고 기록을 다시 보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직접 블랙박스를 본 건 아니고요?”“아닙니다.”“그럼 ‘사라졌다’는 것도 형이 기록을 보고 판단한 거네요.”“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서하는 노트를 펼쳤다.블랙박스 실물 확인 — 안 함.영상 존재 여부 — 기록 추가 확인 필요.“아버지가 사고 전에 이준 씨 압박했다는 건요?”“그건 확인할 수 있습니다.”태경은 잠시 뒤 메시지 몇 장을 보내왔다.강태성과 이준 사이에 오간 문자였다.[재단 관련 일에서 손 떼라.][더 건드리면 가족 이름으로 보호해줄 생각 없다.]이준의 답은 짧았다.[바란 적 없습니다.]다른 메시지에는 취재를 멈추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준은 거절했다.서하는 날짜부터 확인했다.사고 전 몇 주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 연락이었다.“협박 아닌가요?”“압박은 맞습니다.”“사고까지 연결할 정도는 아니고?”“그건 다른 얘기입니다.”“아버지가 사람을 붙였다거나, 차를 따라오게 했다거나.”“확인된 것 없습니다.”“사고 당일 연락은?”“있습니다. 싸운 흔적도 있고요.”“내용 보여줘요.”“그것도 정리해서 보내겠습니다.”태경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서하 씨,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합니다.”“알아요.”서하가 먼저 잘랐다.“강태성이 이준 씨를 압박한 건 사실. 사고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음.”태경이 대답하지 않았다.서하는 노트에 그대로 적었다.화를 낼 근거와 살인을 의심할 근거는 같지 않았다.그 선을 넘고 싶지 않았다.오후에는 하린을 만났다.서하가 태성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자 하린은 한동안 화면만 들여다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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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현장 관련 블랙박스 영상 1건 — 확보 예정.그 문장은 최초 기록에만 있었다.최종 증거목록에는 없었다.윤서하는 두 문서를 번갈아 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어젯밤부터 머릿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강이준은 사고 당일 재단 내부 자료를 넘기려 했다.그 뒤 가족과 결별하고, 서하에게 진실을 말하러 오려 했다.강태성은 그 전부터 이준의 취재를 막고 있었다.그리고 사고가 났다.영상 하나는 사라졌다.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많은 것이 한날에 겹쳤다.서하는 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지금부터 하는 말, 말도 안 된다고 해도 돼요.”“말하세요.”“이준 씨 사고.”목이 잠겼다.서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사고가 아닐 수도 있지 않아요?”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재단 때문에 죽은 걸 수도 있잖아요.”태경의 대답은 예상보다 늦었다.“가능성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서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형도 그렇게 생각했어요?”“아니요.”“방금 가능하다면서.”“의심하는 것과 사실이라고 믿는 건 다릅니다.”태경은 단어를 하나씩 끊어 말했다.“아버지가 이준에게 압박을 가한 건 사실입니다. 사고 직전 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맞고요. 그런데 사고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영상이 사라졌잖아요.”“그 영상이 왜 없어졌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하필 그날이에요.”“알고 있습니다.”“이준 씨가 자료 넘기던 날이고, 집이랑 끝내려던 날이고.”서하의 말이 빨라졌다.“그 사람이 살아서 형 만나고, 나한테 왔으면 다 밝혀졌을 수도 있잖아요.”태경은 끼어들지 않았다.그래서 서하는 결국 가장 두려웠던 말을 내뱉었다.“누군가 그걸 막으려고 한 거라면요?”말하고 나자 손끝이 떨렸다.슬픈 것보다 화가 났다.며칠 전까지는 이준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숨이 막혔다.그런데 이제 누군가의 의지가 그 죽음에 섞였을 가능성을 생각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살아서 돌아오려던 사람을 누군가 막았다면.그건 전혀 다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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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후행 차량 블랙박스 영상 확보 예정.윤서하는 전날 받아둔 기록을 다시 펼쳤다.사라진 영상은 강이준의 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사고 직후 뒤를 지나던 차량의 블랙박스.그 사실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자신이 어젯밤까지 만들어놓은 이야기도 달라졌다.누군가 이준의 차에서 영상을 빼냈다.재단이 증거를 없앴다.강태성이 사고에 개입했다.어느 것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서하는 노트에 새로 적었다.후행 차량 존재 — 확인.블랙박스 영상 확보 시도 — 확인.최종 증거목록에 영상 없음 — 확인.누군가 고의로 없앴음 — 미확인.마지막 줄을 두 번 그었다.미확인.그 단어를 붙이지 않으면 분노가 너무 쉽게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다.약을 먹을 시간이 되자 노트를 덮고 물부터 마셨다.그제야 강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뒤차 운전자, 재단이랑 관련 있는 사람이에요?”“현재 확인된 바로는 아닙니다.”“아버지 쪽 사람도 아니고?”“그런 자료는 없습니다.”“차량 소유자는요?”“일반 개인 명의입니다.”서하는 펜을 들었다.“사고 직후 조사받았어요?”“간단한 진술은 있습니다.”“뭐라고 했는데요.”“비가 많이 왔고, 앞차가 갑자기 움직였다는 정도입니다.”서하의 손이 멈췄다.“갑자기?”“그 이상은 기록이 짧습니다.”“왜.”“당시엔 단독 교통사고 쪽으로 판단이 기울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영상은 제출했고?”“확보 예정이라고만 적혀 있고, 최종 목록에는 없습니다.”같은 자리로 돌아왔다.서하가 물었다.“경찰은 왜 빠졌는지 설명했어요?”“재검토 중입니다.”“분실?”“그것도 아직 모릅니다.”“제출 자체가 안 됐을 수도 있고?”“가능합니다.”태경의 말에는 단정이 없었다.서하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형도 처음엔 이준 씨 차 블랙박스인 줄 알았죠.”“네.”“왜 그렇게 생각했어요?”“사고 기록을 너무 빨리 읽었습니다.”태경이 잠시 멈췄다.“내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 본 것 같습니다.”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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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윤서하는 파일을 바로 재생하지 않았다.사고일_후행차량_블랙박스_복구본.mp414초.그 짧은 시간 안에 강이준의 마지막 운전이 들어 있었다.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서하는 영상 정보를 먼저 확인했다.촬영 날짜.사고 당일.시간도 경찰 기록과 맞았다.후행 차량에서 복구된 파일이라는 표시까지 확인한 뒤에야 이어폰을 내려놓고 화면을 가로로 돌렸다.소리는 거의 필요 없었다.영상은 비가 쏟아지는 도로에서 시작됐다.와이퍼가 앞유리를 빠르게 훑었다.몇 미터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강이준의 차량이었다.서하는 첫 번째 재생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화면 끝에서 차가 크게 흔들렸고, 그대로 영상 밖으로 밀려났다.14초가 끝났다.그녀는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두 번째.이번에는 사고 순간 직전에 집중했다.이준의 차량은 처음부터 불안하게 달리지 않았다.차선을 유지하고 있었다.갑자기 방향이 꺾인 것은 마지막 몇 초였다.왼쪽으로 한 번.곧바로 반대쪽으로 크게 틀었다.브레이크등이 강하게 들어왔다.그러고는 차량이 젖은 노면 위에서 미끄러지며 화면 바깥으로 사라졌다.서하는 영상을 멈췄다.“왜 저렇게 틀었지.”다시.0.5배속.차가 방향을 바꾸기 직전, 전방 오른쪽 어딘가에 흐릿한 움직임이 있었다.형체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빗물과 와이퍼 때문에 화면이 끊겨 보였다.사람인지, 물체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다만 이준의 차가 아무 이유 없이 곧장 도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무언가를 피하려고 급하게 방향을 튼 움직임에 가까웠다.서하는 강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영상 봤어요.”“나도 봤습니다.”“앞에 뭐 있었죠?”“확정할 수 없습니다.”“사람 같지 않아요?”“그럴 수도 있지만 화면만으로 단정하면 안 됩니다.”서하는 입술을 눌렀다.“적어도 차가 그냥 미끄러진 건 아니잖아요.”“그것도 정확한 분석이 필요합니다.”“형은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돼요?”“지금은 그래야 합니다.”태경의 대답은 단호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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