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경이 보낸 파일은 생각보다 많았다.사진전 도록.취재 원고.촬영 일정표.신문에 실리지 못한 기사 초고와 인터뷰 녹취 일부까지.윤서하는 파일을 날짜순으로 정렬했다.가장 오래된 기록은 자신과 강이준이 만나기 전이었다.그다음도.또 그다음도.화면 어디에도 윤서하는 없었다.그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었다.당연한 일인데도 그랬다.서하가 알고 있던 이준은 늘 자신과 연결돼 있었다.처음 만난 날.함께 걷던 길.싸운 날.헤어진 날.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던 사고 당일.그런데 컴퓨터 화면 속 남자는 어느 것에도 서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낯선 도시에서 사진을 찍었고, 사람들을 인터뷰했으며, 혼자 기차를 타고 지방을 돌아다녔다.누군가의 연인 이전에 이미 자기 삶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서하는 오래된 전시 도록 하나를 열었다.첫 페이지에 제목이 있었다.살아 있는 것들의 흔적.손이 멈췄다.제목 아래에는 강이준의 이름과 전시 날짜가 적혀 있었다.서하를 만나기 전이었다.그녀는 작품 목록을 천천히 넘겼다.비에 젖은 골목.문 닫은 가게 앞에 놓인 의자.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철거를 앞둔 집의 벽.손때가 묻은 작업 장갑.거창한 장면은 없었다.이준이 찍은 건 대부분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서하는 사진 한 장에서 오래 멈췄다.빈 식탁 위에 컵 두 개가 놓여 있었다.설명에는 짧은 촬영 장소와 날짜만 있을 뿐이었다.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의미를 붙이려다 멈췄다.이것도 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려 했네.그럴 리 없었다.그때의 강이준은 윤서하를 알지도 못했다.서하는 다음 파일을 열었다.취재 원고였다.재단도, 가족도, 자신도 등장하지 않았다.이준은 지역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를 만나고, 폐업을 앞둔 상점을 기록하고, 사라지는 동네를 사진으로 남겼다.기사 마지막까지 읽은 뒤에야 서하는 등을 의자에 붙였다.“이런 거 하는 사람이었구나.”말이 이상했다.연애할 때도 이준이 사진을 찍는다는 건 알았다.일 때문에
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