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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빌린 남자의 팔

Author: 花柳響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1 22:07:56

 태오의 목소리에는 떠보는 듯한 가시가 있었다.

 내가 대답하려던 순간, 민준이 먼저 한 걸음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가 일어서기만 했는데도 태오가 작아 보였다.

 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 시선을 두는 곳, 침묵을 사용하는 법. 남자로서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태오 자신이 절감한 얼굴이었다.

“아린이의 약혼자 민준입니다. 오늘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중한 말. 완벽한 미소.

 하지만 목소리에는 온기라고는 없었다.

“꽤 갑작스럽네요. 아린이와는 언제부터 만나셨나요?”

 태오가 웃었다. 적어도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린이가 가장 힘들어하던 때부터입니다.”

 연회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직접 탓하지도 않았다. 바람이라거나 배신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로 상처받은 쪽이 나라는 사실이 전해졌다.

 태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유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린이가 워낙 마음이 여려서요.”

 민준은 내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 내 몸에 직접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뒤에서 나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분의 새 출발을 끝까지 축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조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빠져나갈 곳을 막아 버리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저는 아린이가 무리하는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만.”

 주변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나의 미소는 이제 거의 모양만 남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울 것 같았다.

 분해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 내 편에 서 준 것 같아서였다.

◇

 피로연은 긴 악몽처럼 이어졌다.

 유나가 테이블의 초에 불을 밝히며 인사를 하러 다가올 때마다, 민준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태오가 이쪽을 볼 때마다 잔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으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웃고 있었다.

 일할 때의 미소도, 승자의 미소도 아니었다. 그저 무너지지 않고 앉아 있는 내 모습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괜찮아?”

 민준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아마도.”

“아마도 괜찮은 건, 괜찮은 게 아니지.”

“시끄러워.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있어. 그러니 너까지 일할 때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

 불쑥 가슴 깊은 곳에 손끝이 닿은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담당자가 아니다. 하객이다.

 배신당하고도 이곳에 온 여자다. 사실은 모든 것을 삼키고 웃을 필요 따위 없었다.

 그런데도 웃고 만다.

 그것이 내 버릇이자 갑옷이었다.

 민준은 말없이 테이블 아래에서 내 손을 잡았다. 커다란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는 단단하고 체온은 높았다. 그의 엄지가 내 손등을 딱 한 번 쓸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속에 맺혀 있던 긴장이 풀려 갔다.

 안 돼.

 이건 연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손을 놓지 못했다.

 피로연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출구에서 하객들을 배웅했다.

 마지막 관문이었다.

“유나야, 태오야. 오늘 정말 축하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유나는 울 듯한 얼굴을 했다.

“아린아…… 와 줘서 고마워.”

“응. 행복하게 살아.”

 태오는 내가 아니라 민준을 보고 있었다. 분함과 의심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다음에 넷이서 식사라도 하죠.”

 태오가 말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거짓말이라면 다음번에 밝혀내겠다는 얼굴이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순간, 민준이 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시죠.”

 그가 미소를 지었다.

“아린이 일정은 제가 확인해 두겠습니다.”

 그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태오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민준이 이끄는 대로 연회장을 나왔다.

 입구의 공기는 차가웠다.

 밤바람이 뺨의 열을 앗아 갔다. 발목이 아팠다. 거의 세 시간 동안 신고 있던 구두 때문에 발끝의 감각이 조금 무뎌져 있었다.

 끝났다.

 정말로 끝났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순간, 민준의 팔이 내 몸을 받쳤다.

“잘했어.”

 그 한마디에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졌다.

 안 돼. 이건 일이야.

 나는 가방에서 돈을 넣어 둔 봉투를 꺼냈다.

“지금 바로 줄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일은 완벽했어. 세 시간에 150만 원. 다른 추가 요금이 있으면…….”

 민준은 내가 내민 봉투를 보지도 않은 채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수고했어. ……멋진 쇼였어.”

 낮은 목소리가 밤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귓가에 달콤한 울림이 남았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와, 도망갈 곳을 막듯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 눈빛이 묘하게 빛난 것 같았다.

“계약을 연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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