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0

30 فصول

제1화

“밖에서 하면 더 짜릿하다던데... 내가 갈아입혀 줄까?”캠핑 텐트 안. 송기혁의 셔츠가 벌어져 있었다. 선명한 가슴 근육 위로 붉은 자국들이 겹쳐 보였다. 조금 전 기혁의 달콤한 부추김에 한나가 남긴 흔적이었다.최한나가 눈을 내리깔고 작게 말했다. “오늘은 안 하면 안 돼?”기혁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 “생리 시작했어?”“아니.” 기혁은 매번 오래 한나를 붙들었고, 몸의 움직임도 과감하고 컸다. 오늘은 친구들까지 함께 캠핑을 왔다. 한나는 부끄러워 목소리를 낮췄다. “밖이라 소리 다 들리잖아.”말하지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임신한 것이다.“살살 할게. 너도 신음만 조금 참아. 텐트끼리 이 정도 떨어져 있으면 안 들려.” 기혁이 한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이마를 맞대고 달래듯 속삭였다. “오빠 말 들어. 자기야?”침대 위의 기혁은 다정하게 아껴 주다가도 능숙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한나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텐트에는 따스한 조명이 가득했다. 기혁은 분위기를 내겠다며 별빛 프로젝터까지 챙겨 왔다.텐트 천장 위로 별들이 흐르고 있었다.한나를 끔찍이 아끼는 듯한 입맞춤이 이어지자, 텐트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한나가 입었던 핑크색 토끼 의상은 조각조각 찢어졌다.일을 끝내자 기혁은 금세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돌아왔다. 한나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돌아다니지 말고 있어. 내가 조금 있다가 널 캠핑카로 안고 가서 씻겨 줄게.”기혁의 입은 달콤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기혁은 늘 이렇게 다정했다. 사랑을 나눈 뒤 몸을 씻는 일조차 기꺼이 직접 해 주었다.기혁이 나간 뒤, 한나의 핸드폰에 모르는 사람에게서 친구 요청이 왔다.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한나 씨, 꼭 알려 드릴 일이 있어요.]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나는 요청을 수락했다.곧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기혁의 혼인관계증명서와 결혼사진이었다.신부의 얼굴과 인적 사항은 덧칠해 가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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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자기야...”기혁이 손전등을 들고 급히 텐트로 들어왔다. 한나를 보자 긴 팔을 뻗어 목덜미를 감싸고 품으로 끌어당겼다.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불이 꺼졌길래. 우리 한나 어두운 거 무서워하잖아. 놀랐어?”은은한 시더우드 향이 한나를 감쌌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기혁을 밀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 생리할 때가 다가오는데 여기 너무 추워. 먼저 돌아가고 싶어.”기혁이 텐트 안의 무드등을 켰다.낭만을 더하려던 옅은 노란빛이 지금 한나의 눈에는 조롱으로만 보였다.기혁이 깊은 눈으로 한나를 바라봤다. “중요한 생일 선물 준다고 하지 않았어?”자정이 지나면 기혁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이었다.한나는 간절히 바랐던 대로 임신했다.그때까지는 그보다 좋은 생일 선물이 없다고 생각했다.지난 2년간 기혁은 잠자리에서 한나를 기쁘게 해 줄 줄 알았다. 피임약으로 몸이 상하는 게 싫다며 정관수술도 받았다.임신해서 결혼하고 싶다고 복원수술을 졸랐던 사람은 한나였다.하지만 당사자인 기혁은 둘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연기는 어쩜 그렇게도 진짜 같았을까?오늘 진찰한 의사는 임신 초기에는 관계를 피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검사 결과 임신 5주였다. 둘은 매일 밤 함께 잤고, 기혁은 하룻밤에 몇 번씩 한나를 붙들기도 했다.다행히 뱃속의 아기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그래서 기혁을 만족시키려고 조금 전에도 위험을 무릅썼다.살살 하겠다는 말은 지켰다. 평소보다는 훨씬 조심스러웠다.아직 임신한 사실을 몰라서였다. ‘알았다면 오늘 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을까... 하...’한나는 익숙하면서도 몹시 낯선 이 남자를 바라봤다.해운시에서 가장 손꼽히는 명문 송씨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더없이 빼어났다.188센티미터의 키에 또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 밤처럼 짙은 검은 눈동자.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조차 반듯함 속 자유분방한 매력을 더했다.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그 훌륭한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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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수화기 너머가 잠잠해졌다. 잠시 뒤 혜나의 단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인간을 왜 궁금해해? 여자만 밝히는 놈이야. 너는 알 필요도 없어. 해운시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피해 다녀. 알았지?]혜나는 기혁을 몹시 싫어했다. 평가하는 말에 좋은 뜻은 한 글자도 없었다.통화를 마친 한나가 ‘한나의 집에 들어서자 아랫배가 더 아픈 듯했다.가방에서 초음파 검사 결과지를 꺼냈다.뱃속에는 아기집이 두 개 있었다.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기뻐서 울고 싶었다.지금은 정말 눈물이 나려 했다.결과지를 내려놓고 배의 통증을 참으며 짐을 쌌다. ‘한나의 집’을 떠날 준비였다.“한나야.”‘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급히 결과지를 집어 소파 아래에 밀어 넣었다.안방으로 들어온 기혁은 소파 옆에 선 한나와 그 뒤의 캐리어를 봤다.반듯한 눈썹이 좁혀졌다. “어디 가려고?”한나는 기혁을 똑바로 보며 담담한 목소리에 걱정을 조금 섞었다. “언니가 내일 와.”언니 이야기에 기혁의 눈에서 이질적인 기색이 스쳤다.오늘 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방금 굳어진 눈빛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기혁이 한 걸음 다가와 한나를 안았다. “사람 보내서 그 집 정리해 둘게. 내일 공항에도 내가 데려다줄게. 오늘은 가지 마.”한나가 기혁을 밀어냈다. 아랫배가 다시 묵직하게 아파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고 배를 감쌌다.기혁은 늘 그랬듯 세심했다. “배 아파?”“생리가 시작됐나 봐. 화장실 좀 다녀올게.”한나가 서둘러 욕실로 갔다.기혁의 검은 눈이 가늘어졌다.이내 주방으로 향했다.욕실에서 확인하니 피가 비쳤다.한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역시 의사의 말을 듣고 참아야 했다.그래도 상관없었다. 쌍둥이라 해도 낳지 않을 것이었다.욕실 수납장에서 새 속옷을 꺼내 갈아입고 생리대를 붙였다. 피 묻은 속옷은 휴지통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버렸다.기혁은 여자 관계가 가벼워도 철없는 도련님은 아니었다. 그는 남다르게 영리했다. 직접 보게 해야 생리라는 말을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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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한나의 심장이 욱신거리며 아팠다.지난 2년간 기혁만 사랑하느라 작은 징후들을 외면하거나 놓쳤다. 그래서 이렇게 철저히 속았다. “다인아, 숨기지 마.”다인은 결국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4년 전, 23살이던 기혁은 바이크 대회에서 혜나에게 첫눈에 반했다.혜나를 찾으려고 해운시 전체를 뒤집다시피 했다.당시 혜나는 19살로 해운시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고고하고 자존심 강한 기혁은 2년간 구애했다. 바닷가에서 거창한 청혼식까지 준비했다. 요트 전체를 해외의 프랑스에서 항공편으로 들여온 핑크 장미로 채웠다.3시간 동안 이어진 불꽃놀이에만 20억 원 넘게 썼다.모두 기혁의 사랑이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혜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평생 기혁을 사랑할 일 없으니 포기하고 그만 따라다니라고 했다.그리고 개를 좋아할지언정 기혁에게 마음을 줄 일은 없다고.2년간 연락을 이어 온 이유도 오늘 기혁에게 망신을 주고, 수십 년 전 최씨 집안이 잃은 체면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그날 이후 기혁은 다른 사람이 됐다. 옷 갈아입듯 여자를 바꿨다.혜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포명시로 돌아가 YW그룹에서 일했다. 두 집안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언니가 바이크를 좋아하고 여러 로드 레이스에서 상을 받은 사실은 한나도 알고 있었다.다만 깊이 빠지거나 매달리지는 않았다. 언젠가 YW그룹을 이어받을 사람이기에 취미로만 즐겼다. 심지어 그 바이크 대회에 나간 목적도 유력한 집안의 자제들과 인맥을 맺어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이었다.최씨 집안에는 딸 둘뿐이었다. 혜나는 어릴 때부터 후계자로 엄격하게 교육받았다. 반면 부드럽고 얌전한 막내 한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사랑받았다.4년 전, 기혁에게 가까워지고 싶었던 한나는 혜나의 바이크를 몰래 타고 대회에 나가 기혁을 이겼다.그 사실을 들킨 뒤 혜나는 크게 화를 내며 한나를 꾸짖었다. 위험하고 여러 부류가 뒤섞인 바이크 세계는 한나가 어울릴 곳이 아니라고 했다. 순진하고 여린 동생이 다칠까 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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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남자의 입술이 닿기 직전 한나는 고개를 돌렸다.친밀한 접촉이 거북했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기혁에게 맞춰 줘야 했다. “나 요 며칠은 생리하잖아.”기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보고 싶다는 게 그것 때문인 줄 알아?”‘그럼 뭔데?’‘설마 사랑해서?’한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깊은 눈과 잘생긴 얼굴을 막막하게 바라보며 기혁의 셔츠 깃을 쥐었다. 맑고 커다란 눈은 순진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끌었다. “나랑 있으면 대부분 그런 것만 했잖아.”기혁이 잠깐 멈칫하더니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을 걸었다. “너랑 많이 못 놀아 줘서 미안해. 네 언니가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며칠 일정 비워 둘게. 같이 여행 가자. 장소는 네가 골라. 어때?”달래는 솜씨는 훌륭했다.예전 같으면 바쁜 와중에도 여행을 가 준다는 기혁의 말만 듣고도 기쁨에 겨웠을 것이다.지금 곱씹어 보니, 따져 볼수록 이상한 일이 많았다.기혁은 선물을 잔뜩 주고 침대에서 한나와 엉키는 것 외에는 거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기혁에게 선물은 가장 값싼 수단이었다.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니까.기혁의 핸드폰이 울렸다.한나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곁눈질로 화면을 보니 ‘예쁜 혜나’이라는 저장명이 떠 있었다.기혁은 전화를 끊었다. 곧 다시 전화가 왔다.그제야 받았다.잠시 뒤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알았어. 바로 갈게.”핸드폰을 넣고 한나의 뺨에 입을 맞췄다. “생리라 배 아플까 봐 너 괜찮은지 보려고 아침에 일부러 들렀어. 생강 넣은 잣죽 가져왔으니까 꼭 먹어.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갈게. 몸 잘 챙기고. 알았지?”한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기혁이 드레스룸을 나갔다.전에도 전화 받고 나서 급히 떠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나는 기혁을 믿었다.핸드폰 화면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자신이 너무 바보였다.어떻게 여자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하나뿐이라고 믿었을까?조금만 살폈어도 지난 2년간 자신 외에 ‘예쁜 혜나’라는 저장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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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오늘은 기혁의 생일이었다. 예년에는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나면 한나와 단둘이 다시 조촐하게 생일을 보냈다.한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약속이란 결국 준비해 둔 옷을 입고 침대에서 만족시켜 주는 일 아닌가.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해외 대학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한나는 올해 막 20살이 된 대학 2학년이었다. 18살에 수능을 치른 뒤 원래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더 배우러 유학할 계획이었다.기혁을 다시 만나면서 유학 기회를 포기하고 해운시의 대학을 택했다. 기혁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온 것이다.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년을 허비했다.남은 시간까지 쓸모없는 일에 낭비할 수는 없었다.지원 정보를 입력하고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돼 갔다. 한나는 언니를 깨우러 갔다.혜나는 미리 금빛정의 룸을 예약했다. 장소를 듣자 한나가 멈칫했다.해운시에서 손꼽히는 고급 레스토랑 세 곳 중 하나였다. 오늘 기혁도 친구들과 그곳에서 생일 저녁을 먹었다.하지만 한나는 곧 표정을 평소처럼 되돌렸다.룸에 들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언니, 이번엔 무슨 프로젝트 때문에 왔어?”“내 공유 충전소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결하려고.”“설마 HM테크?”혜나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한나 똑똑하네.”최근 인공지능 분야는 급격히 성장했다. HM테크도 짧은 기간에 치고 올라와 시가총액이 수조 원에 이르렀다.“한창 잘나가는 데다 업계 선두잖아. 언니 성격이면 당연히 HM테크를 골랐겠지.”“역시 내 동생. 나를 훤히 아네.” 혜나가 애정 어린 눈으로 한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회사 일까지 걱정하지 마. 넌 너 하고 싶은 공부 잘하고, 하고 싶은 일 잘하면 돼.”한나는 언니가 안쓰러웠다. 혜나는 체력도 달리는 와중에 최씨 집안의 이 세대에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장녀로서 회사의 미래까지 짊어져야 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요구도 유독 엄격했다.반대로 한나는 훨씬 편하게 자랐다.“언니, 일 많이 힘들어?”혜나가 메뉴를 고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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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들킬까봐 걱정된 한나는 꽉 안고 있는 기혁을 밀며 순하게 대답했다. “화장실이야. 방금 모기한테 물렸어.”기혁이 눈썹을 들며 다시 입을 맞추려 했다. 한나는 입을 손으로 막고 급히 말했다. “언니, 조금만 기다려. 바로 갈게. 끊어.”서둘러 전화를 끊자 기혁이 목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송기혁!”밀어 내고 거울 앞으로 갔다. 길고 흰 목에 키스마크가 남았다. 한나가 눈썹을 찌푸리며 따졌다. “언니한테 일부러 들키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기혁이 다가와 안았다. “남자친구 데려오라고 계속 그러잖아. 물어보면 내가 같이 인사하러 가면 되지.”한나의 눈동자가 좁아졌다. 기혁은 함께 집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걱정돼 거절했던 사람은 한나였다.그렇게까지 언니를 보고 싶은가 보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기혁을 혜나에게 데려갈 수 없었다. 예전에 숨겼던 이유와는 전혀 달랐다.“양쪽 집안 다 당장은 허락 안 할 거라는 거 알잖아. 알면서 왜 그래?” 한나가 목의 자국을 만지며 화난 눈으로 봤다. “다음부터 이러지 마. 먼저 갈게. 언니를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돼.”화장실 문으로 가는데 기혁이 뒤에서 허리를 안았다. 다정하게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그럼 빨리 아이 갖자.”‘아이...’한나는 시선을 내려 아랫배를 봤다.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응.”기혁이 그제야 놓아주었다. “가 봐. 밤에 보자.”한나는 빠르게 화장실을 나왔다. ‘또 보자고?’‘누가 만나 준대? 아이는 꿈도 꾸지 마!’룸으로 돌아가자 혜나는 목의 자국부터 알아봤다. 또렷한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모기였어?”“아니. 남자친구.”혜나가 바로 말했다. “어디 있어? 마침 만났으니 인사하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봐 줄게.”“안 해도 돼. 방금 헤어지자고 했더니 억지로 입 맞춘 거야. 언니가 괜히 찾아가서 다툴까 봐 모기라고 했어.”눈이 어두워지고 기분도 가라앉았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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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기혁이 한나의 허리를 붙잡았다. “나랑 안 자면 어떻게 임신하고, 어떻게 공개해? 오늘 좀 노력하자.”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그런 능청스러운 말도 매력적이었다.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함이었다.사랑이 식고 나면 그저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한나가 다시 말했다. “생리 중이라고.”기혁이 놓아주었다. 포기하나 했더니 말을 바꿨다. “그래도 오늘 내 생일인데. 약속한 선물은 아직 못 받았잖아.”선물은 더는 없었다.최고의 선물이라 여겼던 것은 아직 ‘한나의 집’의 소파 아래에 있었다.혜나가 가면 한나는 가장 먼저 뱃속의 아이들을 지울 것이다.결과지도 가져와야 했다. 계속 거기 두기에는 위험했다.오늘은 붙들린 김에 ‘한나의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먼저 내려가서 차에서 기다려. 바로 갈게.”기혁은 그제야 한나를 놓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한나는 방으로 돌아와 서랍에서 사파이어 블루 커프스를 꺼냈다.어제 백화점에서 보자마자 기혁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샀다. 아직 건네지 못한 선물이었다.커프스를 가방에 넣고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급히 나갔다.엘리베이터에서 혜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언니 먼저 자. 친구가 열이 많이 나는데 돌봐 줄 사람이 없대. 가 볼게. 나 기다리지 마.]내려가니 기혁이 차 문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붉은 담뱃불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한나가 가까이 갔다.푸르스름한 연기가 기혁을 감싸 얼굴을 더욱 신비롭고 잘생겨 보이게 했다. 길고 좁은 눈이 한나를 오롯이 바라봤다.눈빛이 너무 깊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한나도 한때는 거기에 빠졌다.은은한 담배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꽁초만 남자 기혁은 바닥에 던지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재떨이에 대고 담배를 눌러 껐다.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남자라고 할 만했다.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런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평생 믿지 못했을 것이다.기혁이 정중하게 차 문을 열어 주었다. 한나가 올라탔다.겉으로는 차분하지만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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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니... 언니가 캐물으니까 둘러댄 거야. 사업하면서 자주 만날 거 아냐. 언니 성격 어떤지 어느 정도 알잖아.”기혁이 앞에 멈췄다. “정략결혼을 하겠다는 약속도 둘러댄 거고?”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기혁이 턱을 움켜쥐었다. 힘이 세서 한나는 아픔에 미간을 찌푸렸다.표정은 없었고 눈은 어두웠다.“우리 한나가 말을 안 듣네.”붙들린 턱이 욱신거렸다.한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파.”놓아줄 기색은 없었다. 기혁이 길고 반듯한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지난 2년간 한나는 기혁이 한 모든 말에 고분고분 따랐기에 별문제가 없었다.그녀가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보이자 기혁은 꼭 이렇게 손을 댔다.한나는 이제야 알았다. 역시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 기혁의 모든 행동을 좋은 쪽으로만 보고 있었다.혼자 사랑이라 여긴 것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그건 사랑이 아니었다.진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도 이제 알 수 없었다.한나는 통증을 참으며 여전히 온순하게 말했다.허점을 보이면 안 됐다.검사 결과지는 아직 못 가져왔다.그 많은 영상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몰랐다.너무 일찍 들키면 손해는 자신만 볼 것이다.“속인 거 아니야. 언니가 알까 봐 걱정한 것뿐이야. 남자친구가 오빠인 거 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떼어 놓으려고 할걸.”턱을 잡았던 손이 마침내 풀렸다. 기혁은 한나의 손을 꽉 쥐고 눌렀던 자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낮고 차분하게 말했다. “미안해. 네가 떠날까 봐 너무 걱정했어.”이어서 목덜미를 감싸 단단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한나는 움직이지 않다가 차분히 말했다. “내가 어떻게 오빠를 떠나겠어. 이제 가야 해. 안 그러면 언니가 진짜 유학 보내.”“데려다줄게.”기혁이 품에서 놓아준 뒤 손을 잡고 저택 밖으로 나갔다.한나는 안방을 다시 한번 돌아봤다.임신 사실이 적힌 그 검사 결과지...가져오지 않는 한 들킬 위험은 매일 있었다.불안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아파트로 돌아와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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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한나는 갑자기 생각났다. 기혁도 박람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그는 오늘 갈 것이다.그렇다면 검사 결과지를 가지러 가도 기혁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나갈 채비를 마친 혜나가 말했다. “참, 네 차 좀 빌려줘.”한나는 속으로 아찔했다.‘송기혁도 거기 갈 텐데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하지만 언니에게 차를 아끼는 척할 수는 없었다. “키는 신발장 위에 있어.”“아침밥 주문해 뒀어. 일어나면 먹어. 먼저 간다.”혜나가 나가자마자 기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언니가 내 차로 박람회 가. 오빠도 간다고 했지? 비밀 지켜 줘.]‘이 메시지를 보면 송기혁... 박람회에 더 가고 싶겠지. 언니는 송기혁이 얻지 못한 사랑이었으니까.복수하려 이런 비열한 방법까지 썼다. 깊이 사랑했으니 깊이 미워하는 것이겠지.언니를 보고 싶을 것이다.남자는 처음 사랑한 여자를 쉽게 못 잊는다고 했다.생각할수록 마음이 시큰거렸다.언니가 부러운 게 아니라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쉽게 다정한 덫에 걸려들었다.기혁의 답장이 왔다.[걱정 마.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아침을 먹고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말끔하고 고고한 기혁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한나가 멈칫하며 눈꺼풀을 떨었다. “언제 왔어?”기혁이 담배를 끄고 다가왔다.“아래에서 네 언니가 차 몰고 나가는 거 보고 올라왔어.”‘몰래 언니 보러 오기라도 한 거야?’“왜 멍하니 있어. 들어오라고 말도 안 해?”“급한 일 있어서 나가야 읍!”기혁이 입술을 막았다.한나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자 재미없다는 듯 놓아주었다.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우리 얌전한 아가씨, 혼나고 싶어?”송기혁이라는 남자가 상황에 맞춰 유혹하는 말을 쓰는 데 능했다.사랑할 때는 그런 말도 마음을 울렸다. 짓궂으면서도 아껴 주는 이 남자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두 모습을 이토록 능숙하게 오가는 사람을 한나는 이 남자 말고는 더 알지 못했다.사랑이 식으니 같은 말을 들어도 예전처럼 심장이 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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