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혁이었다.한나는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요즘은 어째서인지 어디를 가든 기혁과 마주치는 것 같았다.기혁은 한나의 어깨를 붙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어디 아파?”“요즘 심장이 좀 불편해서 순환기내과에서 검사받았어. 다행히 별문제는 없대. 그런데 오빠는 여기 왜 왔어?”“나는...”“오빠!”기혁이 대답하려던 순간,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말이 끊겼다.한나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예쁜 혜나’가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지를 들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곧장 기혁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더니 환하게 웃었다.“오빠, 초음파 봐 주신 선생님이 아기 건강하대. 심장도 벌써 뛰고 있대.”그 말을 듣는 순간, 한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다행히 기혁이 재빨리 한나의 팔을 붙잡아 몸을 지탱해 주었다.‘예쁜 혜나’는 그런 한나를 보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오빠, 아는 사람 만났어?”“응.”짤막한 대답에 한나의 입가에 씁쓸한 비웃음이 스쳤다.법적으로 아내가 된 여자 앞에서 자신은 그저 아는 사람에 불과했다.게다가 ‘예쁜 혜나’의 아이도 이제 막 심장박동이 확인됐다면, 두 사람의 임신 시기도 비슷하다는 뜻이었다.순간 한나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이제는 기혁과 관련된 일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이런 광경을 마주하니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그때 ‘예쁜 혜나’가 한나를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나우혜예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최한나예요.”한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렇게 정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언젠가 이 관계가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기혁은 우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아직 채혈 하나 더 남았지? 같이 가자.”“응.”우혜는 다시 한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한나 씨, 다음에 또 봬요.”그녀의 미소는 눈부실 만큼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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