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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한나는 더럭 겁이 났다. 주사를 맞은 뒤 출혈이 멈췄다.‘이러다 들키면...’“오빠.” 자극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쉬고 떨렸다. “나 생리...”한나의 손도 눌러 막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기혁이 계속할까 봐, 생리대를 붙이지 않은 사실을 알까 봐 두려웠다.똑똑똑-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한나야, 문 좀 열어.”놀랍게도 혜나의 목소리였다.하나를 넘기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닥쳤다.한나는 다급히 기혁을 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숨어.”기혁이 긴장한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봤다. “어디에?”“욕실!”망설이지 않고 답했다.기혁은 순순히 욕실로 들어갔다.한나는 흐트러진 옷과 머리를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언니, 갑자기 왜 왔어?”“생리 시작했어. 어제 네 욕실에 생리대 있던데 잠깐 쓸게.”혜나가 욕실로 가자 한나는 눈을 크게 뜨고 황급히 막았다. “내가 가져다줄게.”혜나가 가방에서 새 속옷을 꺼내 작게 말했다. “묻어서 갈아입어야 해. 너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어. 내가 들어갈게.”‘큰일 났다!’기혁이 안에 있었다.이틀 내내 가슴 졸일 일이 이어졌다. 혜나가 문에 다다르려 하자 한나가 앞질러 입구를 가로막았다.“방금 보니까 배관이 터졌어. 못 써. 수리할 사람 찾는 중이야.”혜나가 눈썹을 들었다. “너 많이 이상하다. 욕실에 귀신이라도 있어?”깊은 시선이 욕실로 향했다.한나는 당황을 감추기 어려웠다. 기혁과의 관계가 들키면 모든 게 끝이었다.동생을 잘 아는 혜나는 곧바로 손잡이를 잡고 낮게 물었다. “내가 나가자마자 전 남자친구라도 왔어?”“아니. 언니, 들어가지 마. 내가 가져올게...”‘언니가 나와 송기혁의 관계... 언니가 알면 절대 안 돼!’‘나와 우리 집안을 모두 망가뜨릴 일이야!’한나도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남자가 숨어서 얼굴도 못 보여? 어떤 못된 놈인지 내가 봐야겠네!”혜나는 혹시나 동생이 전 남자친구에게 기만당할까봐 걱정했다. 힘껏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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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동생이 정말 화나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자 혜나는 밖으로 나갔다.혜나가 떠난 뒤 기혁의 메시지가 왔다.[먼저 갈게.]이렇게 됐으니 아무리 친밀하게 행동하려고 했어도 이미 흥은 깨졌을 것 같았다.또 메시지가 왔다.[순진한 우리 한나랑 연애하기 힘드네. 몸놀림이 느렸으면 떨어져 죽었겠다.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한나는 짧게 답했다.[생각해 볼게...]아래로 내려간 기혁은 단지 청소 직원이 수거차의 쓰레기봉투에서 크리스털 그릇을 꺼내는 걸 봤다.그리고 눈이 한층 어두워졌다.메시지를 보낸 한나는 겨우 숨을 놓고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한나의 집’에 도착해 안방으로 곧장 갔다. 문을 열자 기혁이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허리에 흰 수건만 두른 채 젖은 머리를 닦았다.선명한 근육 위에는 이틀 전 캠핑에서 남긴 붉은 자국이 아직 희미하게 있었다.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기혁이 다가왔다. 길고 곧은 다리는 단단했다.군살 없는 몸에서 남성적인 매력이 짙게 풍겼다.가까워지자 씻고 나온 몸의 은은한 시더우드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었다.냄새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사랑을 나눈 수많은 밤낮을 단숨에 불러왔다.코끝이 시큰했다.그토록 선명한 기억들이 어쩐지 흐려지기 시작했다.고고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바로 앞에 왔다. “벌써 위로할 방법 생각했어?”한나는 결과지를 가지러 왔는데, 이제 물러날 수도 없었다.‘내 생각이 진짜 짧았어!’청결에 예민한 기혁은 창틀을 건너느라 먼지를 뒤집어 썼으니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돌아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기혁은 바로 앞에 있었다. 뜨거운 숨결이 온몸에 닿았다. 매혹적인 광경에 한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신이 공들여 만든 남자 같았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방심하면 아름다운 외모에 홀렸다.기혁의 손끝이 여자의 뾰족한 턱을 들었다. 가볍고 은밀한 동작이었다. “내 순진한 여친, 왜 말이 없어?”붉은 입술이 한나의 입술에 닿을 듯했다.한나는 멍했다. 기혁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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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남자의 키스는 더욱 한나의 마음을 흔들었다.한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지난 2년간 기혁의 능숙한 손길에 몸이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주변의 은밀한 분위기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짙어졌다.“자기야. 한나야...”낮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뜨거워진 몸과 팽팽한 근육이 다가올 위험을 알렸다.예전에는 끝없이 빠져들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 모든 걸 내주고 싶었다.이런 상황에서는 망설임 없이 풀어주고 어떤 요구든 들어주었을 것이다.이번에는 밀어 내야 했다.“오늘은 안 돼...”한나는 가만있지 않는 남자의 손을 막았다. 어느새 풀린 상의 단추 때문에 옷이 어깨에 느슨하게 걸렸고, 흰 살갗이 드러났다.기혁이 멈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많이 놀랐네. 오늘은 안 건드릴게. 대신 네가 먼저 키스해줘.”앞선 요구보다는 키스가 훨씬 쉬웠다.한나는 발끝을 들고 입술을 포갰다.기혁이 한나의 뒷머리를 감싸며 깊이 입을 맞췄다.거셌다.통째로 삼키려는 것 같았다.한참 뒤 한나가 숨을 쉬지 못할 때쯤 놓아주었다.거친 손끝으로 입가의 물기를 닦았다. “옷 갈아입을게.”한나 앞에서도 숨기지 않았다. 수건을 풀고 차분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옷을 집어서 입었다.한나는 몸을 돌려, 서글픈 마음으로 흐트러진 상의를 정리했다.지난 2년간 함께 있을 때 기혁은 절제하지 않았다. 원하면 참기 힘들어 아프다고 했다.방금 기혁의 몸의 반응... 한나도 모두 봤다. 왜 그가 중간에 멈추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머릿속이 어지러운 한나의 손을 익숙한 큰 손이 잡았다.“박람회 같이 가자.”한나는 검사 결과지를 가지러 온 것이다. 기혁이랑 같이 나가면 다시 기회를 찾아야 했다.“언니가 거기 있는 거 알잖아.”“도착하면 너는 네 언니랑 있으면 되지.” 기혁이 어깨를 감싸고 낮게 말했다. “너랑 떨어지기 싫어.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서 힘들어.”오늘 한나는 이미 한 번 기혁을 거절했다. 또 거절하기 어려워 함께 나갔다.밖에서는 비서가 차 안에서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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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한나는 기둥 뒤에 숨어 언니의 반응을 기다렸다.다른 여자라면 이런 기혁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나더러 송 대표랑 밥 먹자고?” 혜나는 냉랭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다음 생에 한 번쯤 기대해.”눈을 한번 치켜뜨고 돌아섰다.머리카락 한 올까지 도도해 보였다.해운시에서 기혁의 권세에 맞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에 비위를 거스른 사람은 하룻밤 새 회사를 잃었다.이토록 매몰차게 대하는 사람도 혜나뿐일 것이다.왜냐하면 혜나는 기혁이 사랑하는 여자였다. 얻지 못하는 만큼 마음도 흔들리는 것이니까.사업에서 혜나가 기혁과 맞서지만, 기혁이 혜나에게는 그렇게까지 모진 수를 쓰지 않는 듯했다.대신 그는 한나부터 건드리려 했다.최씨 집안은 원래 학자 집안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뒤에도 예전의 엄격한 가풍을 지켰다.한나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학자 집안의 딸과 혼인했다.할머니는 대학교수였고, 어머니는 포명시 시청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뒤 퇴직했다.집안에서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체면은...그 영상들이 공개된다면...최씨 집안에 닥칠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기혁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법을 알았다. 무엇이 집안의 급소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두 집안이 원수가 된 까닭은 할아버지에게 들었다. 한나의 증조부와 기혁의 증조부는 모두 해운시에서 보석과 귀금속 사업을 운영했다.송씨 집안은 해운시 토박 집안이었다. 한나의 증조부는 포명시에서 해운시까지 사업을 넓혀 갔다.송씨 집안이 운영하는 보석과 귀금속 가게는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노포였다.한나의 증조모는 전통 금세공 기술을 잇는 무형 문화유산 보유자였다.처음에는 두 증조부가 동업하기로 했다. 그러다 기혁의 증조부가 한나의 증조모를 사랑하게 됐다. 한나의 증조모가 거절하자 기혁의 증조부는 한나의 증조모를 강제로 범했다.보수적인 시절이었다. 한나의 증조모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그 일로 두 집안은 갈라섰다.증조부는 포명시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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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예전에 그런 말을 들으면 한나는 가슴이 벅찼다.오늘은 기혁이 멀리서라도 언니를 보려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았다.“우리 집안 사이 알잖아... 나 곤란하게 하지 말아 줘. 무서워.”전에도 혜나는 해운시로 출장 온 적이 있었는데, 기혁이 부르면 한나는 어떻게든 나가서 그를 만났다.그리고 달라진 모습을 들킬까 걱정스럽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너무 많았다.일단 임신 사실부터 숨겨야 했다.영상의 저장 장소를 찾을 방법도 아직 몰랐다.목소리가 뚜렷하게 떨렸다.[미안해. 놀라게 했네. 네 언니랑 있어.]한나가 조심히 물었다. “오빠... 화났어?”[화라기보다는 조금 서운하지. 언제쯤 날 당당히 공개해 줄까 싶어서.]‘또 저런다!’정작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기혁 본인일 것이다.기혁은 그저 한나를 망가뜨리고 싶었다.한나가 다정하게 말했다. “얼마 안 남았어.”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기혁이 준비한 약혼식까지 한 달 반이었다.[네 고집을 내가 어떻게 이겨? 내 여친이니까 다 들어줘야지. 먼저 끊을게.]핸드폰을 내린 한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차갑게 봤다.얼마 안 남았다는 건 공개할 날이 아니라 떠날 날이었다.한나는 혜나에게 가지 않고 ‘한나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지금은 기혁도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 같았다.전시장을 나와 주차장에 간 기혁은 한나에게 선물한 차를 발견했다.‘아직 안 나왔나?’차 옆에 기대 담배를 붙였다.조금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한 대를 다 피우기도 전에 혜나가 왔다.차 옆에 선 모습을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짜 귀찮게 하네. 밥 한 끼 먹겠다고 주차장까지 따라와?”기혁이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내뱉었다. “널 기다린 거 아니야. 생각이 좀 지나치네.”“그럼 내 차 옆에는 왜 기대 있어?”기혁이 눈썹을 들었다. “네 차?”“내 동생 거. 오늘 빌렸어.”눈이 한층 깊어졌다. ‘언니에게 들킬까 봐 그렇게 겁내면서도 차를 빌려줬다니.’‘갑자기 새 차가 생긴 이유를 최혜나는 한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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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한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안방의 소파 옆에 엎드리자마자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얼른 손을 넣어 결과지를 더듬었다.조금만 밀어 넣었는데... 손끝에 닿지 않았다.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았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이 곧 다급해졌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급히 손을 빼고 침대로 뛰어가 누우며 허둥지둥 이불을 덮었다.안방으로 들어온 기혁이 침대의 한나를 발견했다.빠르게 다가와 불렀다. “한나야?”한나는 막 잠에서 깬 듯 흐릿한 눈을 떴다가 놀란 척했다. “여긴 왜 왔어?”“내가 묻고 싶은데. 점심 먹자니까 네가 언니랑 먹는다더니 왜 여기서 자?”검은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배 아파서 먼저 왔어.”‘연기라면 나도 할 수 있어.’기혁은 손을 비벼 이불 안에 넣었다. 한나의 아랫배에 손바닥을 얹고 살살 문질렀다.손의 온기가 피부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그는 한나가 생리통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배를 문질러 주곤 했다.잠시 뒤, 그가 손을 꺼내 다시 비벼 따뜻하게 만든 다음 배에 얹었다.남자의 몰두한 표정에 한나의 마음이 뒤엉켰다.한나 역시 진실을 몰랐다면 이 남자에게 계속 빠져들었을 것이다.정성껏 아껴주는 모습이 너무 진짜 같아서 마음이 떨렸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안타깝게도 거짓이었다.목이 메어 아팠다.한참 뒤 기혁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좀 괜찮아졌어?”한나는 똑바로 응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송기혁 씨... 나 사랑한 적 있어?”한나는 장난스럽게 그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다.기혁의 검은 눈이 멈칫했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옅은 웃음이 실렸다. “내가 사랑하는지 아닌지 안 느껴져?”“직접 듣고 싶어.”어디까지 연기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기혁이 불쑥 한나를 안았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책임이 따르잖아. 지금 관계가 정리되면 원하는 만큼 말해 줄게.”한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여자를 가볍게 만나는 남자도 사랑한다는 말에 책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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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기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였다.깊이 들이마셨다. 푸르스름한 연기 속에서 얼굴이 흐려졌다 또렷해졌다. “관계 들키는 게 제일 무서운 사람이 내 비서를 하겠다고?”“비서가 된다고 관계를 공개하는 건 아니잖아. 곧 졸업하니까 당신과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 약혼도 곧 할 거고. 얼마 안 되니까 잘 숨길 수 있어.”집안끼리 사업의 라이벌이라, 한나는 기혁이 의심하지 않도록 관련된 일은 먼저 피하곤 했다.기혁은 계속 담배를 피웠다.담배 냄새가 공기에 퍼졌다.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내뿜는 모습도 우아하고 매력적이었다.한나보다 7 살 많아도 겨우 27살이었다. 침대에서 여러 방식을 즐기는 것과 달리, 평소에는 세월이 숙성시킨 듯한 깊이가 있었다.그런 남자라면 비열한 짓 따위는 경멸할 것 같았다.그래서 한나는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직접 들었으니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자신이 처음부터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인지도 몰랐다.기혁은 아직 말이 없었다.한나가 작게 다시 물었다. “해도 돼?”“그래.”한나도 기혁이 허락할 줄 알았다. 그가 아직 한나를 망가뜨릴 날을 기다리는데 아직은 그날이 오기 전이니 쉽게 부탁을 거절할 리 없었다.한나는 몹시 기쁜 척 연기했다. “우리 오빠가 나한테 정말 잘해 준다, 최고야!!”말과 달리 속으로는 빨리 기혁이 이 집에서 나가길 기다렸다.그래야 한나는 소파를 옮겨 결과지를 꺼낼 수 있었다.그런데 혜나의 전화가 왔다.[한나야, 어디야?]“밖에서 친구랑 놀고 있어.”박람회가 재미없고 눈에 띄는 제품도 없어서 오후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같이 쇼핑하자고 했다.한나는 언니에게 ‘알겠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곧바로 기혁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기혁이 물었다. “언제부터 출근할래? 책상 마련해 둘게.”“언니 돌아간 뒤에.”“알았어.”...한나가 ‘한나의 집’을 나왔다.이틀 동안 이상할 만큼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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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혜나의 심장이 이유 없이 불안하게 뛰었다.핸드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했다.“부가티 신형 스포츠카, 해운시에 몇 대나 있는지 알아봐요.”통화하는 언니를 보고 한나는 옆에서 기다렸다.남자 둘은 웃으며 지나갔다. 기혁의 눈에 들었으니 혜나의 운이 무척 좋다는 이야기를 떠들었다.한나가 미간을 좁혔다. 이 두 사람... 기혁이 산 차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곧이어 혜나에게 다가가 불렀다.통화를 마친 혜나가 차를 흘끗 봤다. “최한나, 이 차... 언제 샀어?”역시 언니는 의심하고 있었다.어떻게든 모르게 해야 했다.한나가 웃었다. “그저께.”“구매 서류는?”“집에 있어.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혜나는 숨기지 않았다. “주차하는데 옆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나더러 송기혁 새 여자친구라고 하더라. 영업 담당자인데 해운시에 한 대뿐인 이 차를 송기혁이 샀대. 직접 팔았다고.”“잘못 알았나 봐. 내가 살 때는 한 대뿐이라는 말 못 들었어.”혜나가 어깨를 감싸고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돼서 물었어. 네가 샀으면 됐지. 너무 확신하면서 말하니까 한 대뿐인 줄 알았어. 한나야, 송기혁은 여자관계도 복잡하고 속도 깊어서 믿기 어려워. 마주치면 피해. 약속해 줘. 알았지?”한나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혜나는 더 묻지 않고 함께 백화점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한나 옷을 골랐다. 모두 평소 동생이 입던 스타일이었다.“언니, 나 스타일 좀 바꿔 보고 싶어.”“어떤 걸로?”한나는 언니를 살피며 말했다. “언니처럼. 언니 패션 센스 알아주잖아.”“내 옷은 너한테 안 어울려. 나이 들어 보여.”한나가 웃었다. “어디가. 성숙하고 일 잘하고 멋있어 보이지.”“그래서 너랑 안 맞지. 딸만 둘 있는 게 아니었으면 부모님도 나를 너처럼 얌전하게 키웠을걸. 넌 여성스러운 옷이 더 예뻐.”“그냥 입어 보고 싶어. 몇 벌만 사서 가끔 입을게.”한나의 애교에 혜나도 버티지 못했다. 평소 자신이 입는 스타일로 몇 벌 골라 입어 보라고 했다.옷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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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한나는 언니 혜나처럼 옷과 헤어스타일을 바꾸자 확연히 닮아 보였다.다가온 혜나가 위아래를 살피더니 입술을 비죽였다. “별로야. 네 분위기랑 안 맞아.”“난 마음에 들어. 이거 다 살래.”한나는 혜나보다 작고, 키가 168센티미터였다. 그래도 하이힐을 신으면 비슷한 존재감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갖고 싶으면 사. 네가 평소 입는 것으로도 몇 벌 더 골라 줄게.”혜나가 옷을 고르러 가자, 한나는 거울을 보며 부드럽던 눈빛을 거두었다.눈매를 날카롭게 세우고 차갑고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다.기혁이 잊지 못하는 여자가 언니라면, 실제로 좋아하는 유형도 이런 여자일 것이다.도전할 것이다.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에게 헤어 나올 수 없이 빠지게 할 것이다.당했던 방법 그대로 확실히 되돌려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자매는 오후 내내 쇼핑하고 저녁도 밖에서 먹은 뒤 돌아왔다.구경할 때는 괜찮았는데 끝나니 몹시 피곤했다.혜나도 차를 더 조사할 겨를 없이 일찍 잠들었다.기혁의 메시지가 왔다.[차는 정리됐어. 같은 차로 한 대 더 샀는데, 어떻게 보답할 거야?]한나가 키스 이모티콘을 보냈다.[키스하고 싶어? 그럼 나와. 네 아파트 아래야.]‘또 왔다고?’내려가고 싶지 않았다.[언니 있잖아.][네 언니 방 불 꺼졌던데?]‘참 자세히도 살펴...’한나는 기혁의 속을 알 수 없었다.그래서 혜나도 그렇게 걱정되었다. 동생이 기혁을 알게 되면 상처만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실제로 그랬다. 지금의 한나는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그녀는 이미 씻고 잠옷 원피스를 입었다. 다시 갈아입기 귀찮아 위에 겉옷만 걸치고 내려갔다.기혁은 한나가 나오지 않으면 나오게 만드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남자였다.어두운 가로등 아래에서 기혁이 담배를 피웠다.희미한 빛이 내려앉아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온몸의 분위기는 여전히 사람을 사로잡았다.한나가 다가갔다. 듣기 좋은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걸을까?”기혁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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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한나는 황급히 기혁의 손을 눌러 막았다.“오빠는 내가 생리 중이라는 걸 자꾸 잊나 봐.”“안 잊었어. 그냥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못 참는 것뿐이야.”기혁은 그제야 손을 거두고 품에 안긴 한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왜 왔어?”한나 역시 괴로웠다.기혁에게서는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지난 2년 동안 한나는 그 향기와 따스한 품에 깊이 빠져 있었다.시간이 흐를수록 한나의 몸은 기혁에게 더욱 익숙해졌다.머리로는 거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좀처럼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기혁의 다정한 손길이 닿기만 해도 본능적인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한나의 이성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모순 속에서 한나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고 눈치 없이 반응하는 제 몸이 원망스러웠다.“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기혁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었다.그가 한나를 지나치게 세게 끌어안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오빠, 아파.”그제야 기혁은 팔에 힘을 풀었다. 그는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한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한나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기혁이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너도 하고 싶지?”한나는 예전처럼 수줍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손으로 기혁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냈다.하지만 손끝에는 힘이 거의 실리지 않았다. 기혁의 눈에는 그저 애교 섞인 투정으로 보일 뿐이었다.기혁은 한나의 손을 잡아 손가락 끝에 입을 맞췄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한나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그만해. 계속 이러면 우리 둘 다 힘들어져.”“내가 힘든 건 아나 보네.”기혁의 목소리가 한층 더 잠겼다.“그럼 오늘 딱 한 번만 해 줘.”기혁은 아침에도 한나를 한껏 자극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멈춘 적이 있었다.‘그런데 지금 또?’“나 오래 밖에 못 있어. 조금만 참으면 안 돼? 언니가 내일 미팅을 하고, 일이 잘 풀리면 곧 돌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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