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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푸른불씨
오늘은 기혁의 생일이었다. 예년에는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나면 한나와 단둘이 다시 조촐하게 생일을 보냈다.

한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약속이란 결국 준비해 둔 옷을 입고 침대에서 만족시켜 주는 일 아닌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해외 대학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

한나는 올해 막 20살이 된 대학 2학년이었다.

18살에 수능을 치른 뒤 원래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더 배우러 유학할 계획이었다.

기혁을 다시 만나면서 유학 기회를 포기하고 해운시의 대학을 택했다. 기혁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년을 허비했다.

남은 시간까지 쓸모없는 일에 낭비할 수는 없었다.

지원 정보를 입력하고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돼 갔다.

한나는 언니를 깨우러 갔다.

혜나는 미리 금빛정의 룸을 예약했다. 장소를 듣자 한나가 멈칫했다.

해운시에서 손꼽히는 고급 레스토랑 세 곳 중 하나였다.

오늘 기혁도 친구들과 그곳에서 생일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한나는 곧 표정을 평소처럼 되돌렸다.

룸에 들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언니, 이번엔 무슨 프로젝트 때문에 왔어?”

“내 공유 충전소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결하려고.”

“설마 HM테크?”

혜나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한나 똑똑하네.”

최근 인공지능 분야는 급격히 성장했다.

HM테크도 짧은 기간에 치고 올라와 시가총액이 수조 원에 이르렀다.

“한창 잘나가는 데다 업계 선두잖아. 언니 성격이면 당연히 HM테크를 골랐겠지.”

“역시 내 동생. 나를 훤히 아네.”

혜나가 애정 어린 눈으로 한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회사 일까지 걱정하지 마. 넌 너 하고 싶은 공부 잘하고, 하고 싶은 일 잘하면 돼.”

한나는 언니가 안쓰러웠다.

혜나는 체력도 달리는 와중에 최씨 집안의 이 세대에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장녀로서 회사의 미래까지 짊어져야 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요구도 유독 엄격했다.

반대로 한나는 훨씬 편하게 자랐다.

“언니, 일 많이 힘들어?”

혜나가 메뉴를 고르며 말했다.

“당연히 힘들지. 너까지 이 고생시키기 싫어.”

혜나는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집에서는 장차 경영을 맡을 사람이 악기 연주에 시간을 쓰면 안 된다며 배우지 못하게 했다.

10살 무렵부터 성적은 늘 최상위여야 했고, 시간을 쪼개 경영 공부도 미리 시작했다.

그래서 혜나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한나는 종종 집에 오빠나 남동생이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그토록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식사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기혁의 전화였다.

한나는 끊었다.

또 걸려 왔지만 다시 끊었다.

혜나가 쳐다봤다.

“누구야? 왜 안 받아?”

“스팸이야. 언니 먼저 먹어. 나 화장실 좀.”

룸을 나와 화장실 앞에 도착했다. 고개를 숙여 기혁에게 답장을 보내려는데, 누군가 손을 잡아 화장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기혁이 한나를 문 뒤로 밀어붙였다. 압도하는 기운이 한나의 몸에 가까이 닿았다.

여기서 마주친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메시지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네?”

잘생긴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내려앉았다. 조금 언짢은 듯했다.

한나는 모르는 척했다.

“언니랑 있잖아.”

“전에는 네 언니랑 있어도 답했잖아.”

‘뭔가 알아챘나?’

바다처럼 깊은 눈을 더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내렸다. 조금 서운한 목소리를 냈다.

“옆에 다른 여자도 있던데?”

기혁의 얼굴에 드리운 냉기가 옅어졌다.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기혁이 길고 고운 손가락으로 한나의 턱을 들었다. 얇은 입술에 웃음이 걸렸다.

“질투하는 거야?”

한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혁이 이마를 맞댔다. 너무 가까워 숨결이 뒤섞일 것 같았다.

입을 맞추려 다가오자 한나가 고개를 돌렸다.

“진짜 질투했네.”

웃음이 짙어졌다. 큰 손이 가느다란 허리를 감쌌다.

“친구 아내야. 여행 간다기에 공항까지 데려다준 거고. 혼자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까,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분명 기혁 자신의 아내였다.

한나는 깊은 눈을 똑바로 봤다. 기혁은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다 이렇게 태연하게 거짓말하나?’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 언니가 찾겠다. 나 룸으로 갈게.”

기혁은 허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당신이 놔.”

“오빠라고 해야지.”

한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부드럽게 불렀다.

“오빠.”

“한나야.”

밖에서 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나는 바짝 긴장해 다급한 눈으로 기혁을 봤다.

기혁은 자기 입으로 오히려 한나의 입술을 막고 거세게 입을 맞췄다.

뜨겁고 끈질긴 키스에 대응할 틈도 없었다.

마음이 아득해져 소리를 낼 뻔했다.

밖에 언니가 있다는 생각에 한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참았다. 두 손으로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

기혁이 아쉬운 듯 입술을 떼었다. 다정하고 잘생긴 눈은 여전히 가볍게 웃었다.

한나는 정신이 없을 만큼 다급했다.

이제는 언니에게 이 관계를 들켜서는 안 됐다.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이쪽 화장실은 수리 중입니다. 복도 반대편을 이용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혜나의 하이힐 소리가 멀어지고서야 한나는 깊이 숨을 놓았다.

주먹으로 기혁의 가슴을 쳤다.

밖에 사람까지 세워 두고 일부러 놀라게 한 것이다.

기혁이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갔다. 입을 맞추고 낮게 말했다.

“네 언니랑 밥 먹어. 일찍 나올 방법 생각해 두고.”

“오늘은 아마 못 나올...”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 보니 혜나였다.

한나는 입술에 검지를 대고 쉿, 하고 기혁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전화받자마자 기혁이 한나의 귓불 뒤 여린 살을 살짝 깨물었다.

한나가 묘한 소리로 비명을 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나야, 너 어디서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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