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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외상센터 닥터E: Chapter 11 - Chapter 20

36 Chapters

011화. 먼저 온 약속

“54세 남자분이요. 일하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오셨는데, 침대 옮길 때부터 못 펴고 계세요.”은채는 간호사를 따라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남자의 작업복 가슴에 냉동창고 이름이 수놓여 있었다. 한쪽 주머니가 불룩했지만 손으로 누르고 있는 곳은 그 아래 명치였다. 함께 온 동료가 작은 생수병을 든 채 침대 곁에 서 있었다.“장동식 씨?”남자가 눈을 들었다. 관자놀이에서 흐른 땀이 귓바퀴에 고여 있었다.“밥을 잘못 먹었나 봐요.”“언제부터 아프셨어요?”“11시 좀 전…….”동료가 말을 보탰다.“10시 50분이었어요. 점검표 쓰다가 갑자기 주저앉았습니다. 기계에 부딪친 건 아니고요.”지금은 오전 11시 40분이었다. 은채는 환자에게 손을 대기 전 호흡과 맥박부터 살폈다. 숨을 깊이 들이쉬지 못하고 있었고, 혈압은 높지 않았다. 다친 환자는 아니었지만 즉시 외과 평가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물은 아직 드리지 마세요.”동료가 병뚜껑을 닫았다.은채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들은 뒤 진찰했다. 배를 눌렀다가 떼는 큰 동작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손이 닿자 복벽이 단단하게 긴장했고, 환자는 침대가 조금 움직이는 것에도 얼굴을 찌푸렸다.그녀는 담요를 내려준 뒤 권해진을 불렀다.“명치에서 시작해서 배 전체로 퍼졌습니다. 복막 자극 소견이 뚜렷해요.”“저도 그게 걸려서 바로 불렀습니다. 심전도는 먼저 찍었고, 혈액검사 진행 중입니다.”권해진이 초기 평가를 공유했다. 가슴 불편감과 겹치는 증상도 확인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복부 안의 급한 문제를 먼저 찾아야 했다.은채는 문정원에게 환자 상태를 전했다. 돌아온 답은 짧았다.―수액 반응 보면서 영상 준비해. 나도 내려갈게.동식은 간호사가 정맥 주입관을 정리하는 동안 눈을 감았다. 은채가 복용하는 약을 묻자 주머니 쪽으로 손을 움직였다.“허리약밖에 안 먹어요.”“처방받은 약인가요?”“예전에 받은 거하고, 약국에서 산 거하고요.”동료가 허락을 받고 주머니에서 약 봉투를 꺼냈다. 이름이 남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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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화. 바꿀 수 없는 순서

“그러니까 설명하고 준비를 같이 하겠습니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 수술 준비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은채는 수술실 연결 전화를 끊지 않았다. 조정 담당이 마취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경환과 더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동식의 치료 준비가 멈추지 않게 해야 했다.문정원이 돌아와 전화를 받았다.“3번실 다음은 장동식 환자로 바꿔주세요. 유선경 씨는 마취 시작 전이고, 오전 상태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보고 받았습니다. 직접 보고 설명하겠습니다.”전화기 너머에서 조정 담당이 변경된 이름을 되읽었다. 문정원이 동식의 환자번호까지 맞추고 통화를 마쳤다.오경환은 그녀가 휴대전화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정원 선생. 다른 방 하나 열면 안 되나? 저쪽은 이미 보호자도 오고 있어.”“방보다 마취하고 수술할 인력이 필요해요. 다른 응급수술에서 사람 뺄 수도 없고요.”“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추가 인원 부를 수 있는지.”“확인은 하고 있어요. 오기 전까지 이 환자부터 진행하고요.”오경환은 입을 다물고 수술실 상황표를 다시 봤다. 동식의 수술을 진행하면서도 선경을 오늘 안에 넣을 자리가 남아 있는지 눈으로 칸을 따라갔다.은채가 소민에게 환자의 경과를 넘겼다. 소민은 직접 상태를 확인하고 마취 준비를 이어갔다. 동식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딸에게 짧게 전화하고 싶다고 했다. 동료가 전화기를 잡아주는 동안 은채는 옆에서 소민의 평가를 기다렸다.“지금 유지되는 상태로는 복강경 접근을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들어가서 달라지면 바로 공유하죠.”소민의 말에 문정원이 계획을 맞췄다. 민재에게 남은 준비를 맡긴 뒤 두 사람은 같은 건물 위층의 유선경 병실로 올라갔다. 동식 곁에는 소민과 응급의학과 팀이 남았다.***병실 문 앞에는 원무 직원이 서 있었다. 문정원을 보자 안쪽부터 살폈다.“오전에 가능한 시간으로 안내드린 건데 확정이라고 받아들이셔서…….”“제가 설명할게요. 수술실에서 새로 정한 내용만 보호자께 전달해주세요.”문정원이 노크하고 들어갔다. 은채는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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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화. 작은 구멍의 무게

민재가 카메라를 조금 가까이 옮겼다.화면 속 십이지장 벽이 커졌다. 구멍 가장자리는 주변보다 색이 탁했고, 얇은 막처럼 들뜬 부분도 있었다. 은채는 물러진 조직을 무리하게 집지 않고 봉합이 버틸 범위를 살폈다.“류 선생, 지금보다 조금 뒤로요. 주변까지 보이게.”화면이 넓어졌다. 은채는 그 안에서 기구를 움직였다.작은 구멍 옆으로 조직이 물러져 있었다. 은채는 바늘을 대려던 곳에서 조금 더 바깥으로 눈을 옮겼다. 구멍을 덮어도 약한 가장자리가 찢어지면, 막았던 곳이 다시 샐 수 있었다.문정원이 다른 쪽 시야를 확보했다. 은채는 어디까지를 안정된 조직으로 보는지 설명했고, 문정원은 직접 상태를 살핀 뒤 진행하도록 했다.첫 봉합을 잡는 동안 기구의 각도가 불편했다. 은채는 손목에 힘을 더 주는 대신 잠깐 멈췄다.“교수님, 이쪽 시야 조금만 더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문정원이 위치를 바꾸었다. 다음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졌다.전에는 그런 부탁을 하는 몇 초가 아까웠다. 본원에서는 어색해하는 틈을 보이면 바로 기구를 넘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손에 힘을 더 주고 어떻게든 해내는 버릇이 남아 있었다.지금 문정원은 기구를 빼앗지 않았다.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은채가 끝낼 때까지 자기 위치를 지켰다.“그 각도면 괜찮겠어?”“네. 이제 보입니다.”은채는 말한 대로 진행했다.손끝보다 화면 속 조직의 움직임을 먼저 봤다. 당기는 힘이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조절하자 들떠 있던 부분이 안정됐다. 문정원이 같은 자리를 확인하는 동안 그녀는 다음에 필요한 것을 준비했다.수술실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흡인기가 멈추는 순간, 마취기에서 이어지는 숨소리, 기구간호사가 필요한 물건을 놓는 소리. 은채가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순환 유지되고 있습니다.”소민의 보고가 왔다.은채는 반사적으로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환자가 지금 견딘다고 불필요한 시간을 더 써도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두르다 다시 해야 하는 일도 만들 수 없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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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화. 기다리는 환자도 환자라서

은채는 먼저 이유를 물었다.“환자분 상태가 달라졌습니까?”“그건 아닙니다. 보호자분이 병원 옮기는 문제를 물어보셔서요.”원무 직원이 종이에 적힌 병실 번호를 보여줬다. 은채는 문정원에게 연락하고, 회복실과 병동 사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인계를 마친 뒤 올라가겠다고 전했다.수술 순서를 정할 때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을 잘 끝내고 나서 또 같은 설명을 하러 가려니 어깨가 무거웠다. 인사팀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차분하게 말하려고 문장을 고르던 기억이 스쳤다.그녀는 장동식의 경과부터 확인했다. 회복실에서 깨어나는 정도와 통증, 호흡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병동에서는 감시가 가능한 자리가 준비됐고, 달라지는 점을 바로 보고할 계획도 맞춰져 있었다.환자에게 남겨둘 말을 마친 뒤 가운을 입었다.***유선경의 병실에는 오경환도 와 있었다.박재학은 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은채를 봤다.“다른 병원에서는 오늘도 알아볼 수 있다는데요.”은채는 병실 간호사가 기록한 최근 상태를 먼저 살폈다. 선경은 현재 통증이 심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몇 번이나 수술 시간이 바뀌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했다고 덧붙였다.재학이 말했다.“우리가 순서를 빼앗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처음 안내한 대로 하자는 건데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합니까?”“기다리는 시간이 달라져 불편하신 건 이해합니다. 다만 다른 병원에서 바로 수술할 수 있는지는 그쪽에서 진료와 인력 상황을 확인해야 합니다.”은채는 옮기는 편이 더 위험하다고 겁주지도, 빨리 옮기라고 떠밀지도 않았다.“이동을 원하시면 문 교수님과 함께 필요한 기록과 진료 연결을 확인하겠습니다. 여기 남으실 경우에는 내일 오전 수술로 조정하고 있고요.”오경환이 끼어들었다.“서 선생은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고. 오늘 남은 시간에 가능한 방법도 찾아보자는 거지.”“추가 수술팀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조정 담당과 마취과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확정되지 않은 시간을 먼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은채는 목소리가 너무 단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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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화. 옆방 사람의 사정

“저녁은 아직이요.”“그럼 밖에서 먹죠. 주방 배수관 수리 끝나려면 늦는답니다.”은채는 관사에서 데워 먹으려고 생각했던 냉장고 속 반찬을 떠올렸다.“전자레인지는 되지 않아요?”“설거지할 곳이 없어요.”“일회용 용기 쓰면 되는데.”“그걸 꼭 오늘까지 해결하면서 먹어야 합니까?”태오의 질문에 은채가 입을 다물었다. 오늘 하루 동안 했던 질문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다음 수술은 언제 가능한지, 다른 방은 쓸 수 있는지, 담당은 누구인지.저녁 한 끼까지 그렇게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어디로 가면 되는데요?”병원 뒤 골목의 작은 국숫집이었다. 은채가 출입문 앞에 도착했을 때 태오는 가게 밖에 붙은 메뉴를 보고 있었다. 흰 가운 대신 얇은 점퍼를 입고 있었고, 소매 끝에서 시계가 조금 드러났다.“여기 자주 오세요?”“가끔요. 자리가 있을 때.”“예약해야 되는 국숫집입니까?”“의자 다섯 개라서요.”문을 열자 정말 다섯 개였다. 은채는 안쪽 두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주인이 메뉴를 묻자 태오는 그녀부터 보았다.은채는 따뜻한 국수를 골랐다. 태오도 같은 것을 주문하고 물을 두 잔 받았다.나란히 앉으니 마주 볼 일이 줄었다. 은채는 그게 조금 편했다. 일을 마친 뒤 누군가와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주인이 주방에서 그릇을 꺼내는 동안 태오가 물었다.“오늘 일이 늦게 끝났네요.”“설명이 좀 길어졌어요.”환자 이름이나 상세한 치료 내용은 꺼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가게에서 할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제가 같은 말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듣는 사람은 다른 걸 물어보고 있었더라고요.”“뭘요?”“기다리는 동안 누가 봐주냐고요. 저는 왜 기다려야 하는지만 말했고.”태오는 물잔을 내려놓았다.“나중에는 들었습니까?”“네.”“그럼 그 설명도 했겠네요.”“수습했다는 뜻이에요?”“내가 현장에 없었는데 채점할 수는 없죠.”은채는 그를 봤다. 평가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는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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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화. 같은 손으로

유선경은 마취 전 마지막까지 은채를 보고 있었다.“어제 설명한 선생님 맞죠?”“네. 서은채입니다.”“가운 벗으니까 더 어려 보여서.”은채가 웃자 선경도 조금 웃었다. 긴장으로 뻣뻣했던 손이 수술대 위에서 펴졌다.마취팀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은채는 영상과 준비된 기구를 대조했다. 담낭 안에 있는 결석 때문에 통증이 반복된 환자였다. 어제 수술하지 않아도 됐다는 판단과 수술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은 전혀 달랐다.문정원은 은채가 맡을 부분을 짚고 맞은편에 섰다.수술 전 확인이 끝나자 움직임이 시작됐다. 응급상황에서 서둘러 준비한 방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확인은 생략되지 않았다. 은채는 새로 호흡을 맞추는 기구간호사에게 선호하는 기구를 미리 알렸다.화면에 담낭이 보였다.주변에 붙어 있는 조직을 정리하며 접근했다. 당장 크게 부어오른 담낭을 상대하는 수술은 아니었으나, 반복된 증상과 별개로 해부학적 구조를 하나씩 구분해야 했다.민재는 오늘 다른 수술 지원에 들어가 있었다. 보조를 맡은 의사와 문정원이 은채의 시야를 함께 잡아줬다. 익숙한 사람이 없다고 지시를 모호하게 할 수는 없었다.은채는 진행할 위치를 짧게 말하고 기구를 움직였다.담낭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구조가 드러났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만 보면 어느 쪽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 조직이 시야의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클립 기구를 받을 시점처럼 보였지만 은채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아래쪽 조금 더 분리하겠습니다.”문정원이 화면을 봤다.“어디가 아직 안 보이지?”“이 뒤쪽입니다. 지금 각도만으로 확정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은채는 가려진 부위를 더 확인했다. 담낭과 연결된 관과 혈관을 분명히 구분하고, 주변 구조를 잘못 잡고 있지 않은지 다른 각도에서도 살폈다. 문정원도 같은 시야를 확인했다.“이제 됐어.”그제야 은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은채는 확인한 관과 혈관의 위치를 짧게 짚어준 뒤 다음 기구를 받았다. 보조의가 시야를 유지하는 동안 손을 움직였다. 조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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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화. 아직은 빼지 않습니다

“스스로 숨 쉬는 힘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보고 결정합니다.”은채가 임기석에게 설명했다.“내일 다시 평가할 계획입니다. 눈을 뜨셨다고 바로 뺄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환자는 잠깐 눈을 감았다. 옆에 선 선옥은 남편이 같은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듯 그의 손을 감쌌다.은채는 그날의 상태와 다음 담당팀에 전할 내용을 정리했다. 당장 불편함을 덜어주겠다고 약속하면 남편도 아내도 조금은 안심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그 약속 때문에 판단이 좁아져서는 안 됐다.목요일 저녁에 인계를 마치고 귀가한 뒤에는 호출이 없었다.***금요일 오전, 임기석은 전날보다 또렷하게 눈을 떴다.순환이 안정되어 있었고, 호흡을 기계에 전부 맡기지 않아도 되는지 살펴볼 조건이 갖춰지고 있었다. 밤사이 기록을 확인한 중환자실 팀은 태오와 함께 자발호흡 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기계가 도와주는 정도를 줄였을 때 환자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 보는 과정이었다. 거기서 괜찮아 보여도 기침과 분비물 처리, 기도를 지킬 힘까지 따로 확인해야 했다.은채는 준비 중인 미경에게 밤사이 변화를 들었다. 미경은 아침 근무로 들어와 이전 근무자의 기록과 직접 본 상태를 연결하고 있었다.“깨어 있는 시간은 늘었는데, 가래 끌어올릴 때 좀 힘들어합니다.”“통증 조절 뒤에도 비슷했어요?”“조금 낫긴 했습니다. 평가 시작하고 움직임 같이 볼게요.”태오가 환자에게 지금 할 일을 설명했다. 임기석은 눈을 뜬 채 들었다. 고개를 크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의료진이 말하는 쪽으로 시선이 따라왔다.처음 몇 분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은채는 혈액의 산소 상태를 나타내는 산소포화도뿐 아니라 숨의 깊이와 속도를 함께 봤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폭은 비슷했다. 손끝도 처음 이송됐을 때처럼 차갑지 않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들이쉬는 동작이 달라졌다.목 부근에 힘이 들어갔다. 숨을 들이쉰 뒤 바로 다음 숨으로 넘어갔다. 환자의 이마에 땀이 맺혔고 손가락이 시트 모서리를 움켜쥐었다.미경이 먼저 말했다.“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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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화. 내일도 여기 삽니다

은채가 의국을 나설 때 장유리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손에는 비어 있는 약 봉투가 들려 있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먼저 묻자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약 이름 확인 끝났다고 돌려주셨거든요. 그런데 이걸 집에 다시 가져가도 되나 싶어서요.”은채는 봉투에 약이 남아 있는지 살폈다. 내용물은 이미 담당팀이 확인해 따로 관리했고, 유리가 든 것은 포장뿐이었다.“집에 같은 약이 더 있으면 목록을 만들어두세요. 퇴원할 때 앞으로 드실 약과 중단할 약을 같이 안내할 겁니다. 지금은 입원 중 처방대로 치료합니다.”“아빠가 허리 아픈 건 그대로라고 해서요.”은채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궤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을 멈추라는 설명만으로는 동식의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면 그는 다시 약을 찾을 수 있었다.“허리 통증도 치료팀에 이야기해주세요. 계속 참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함께 상의해야 합니다.”“수술한 배 말고도 물어봐도 돼요?”“약을 다시 먹게 되는 이유니까 알아야죠.”은채는 아직 병동에 있는 담당에게 그 내용을 넘겼다. 동식의 통증과 평소 약 사용을 다음 진료 계획에 함께 반영하기로 했다.유리는 약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아빠가 오늘은 제가 가도 된다고 했어요.”“집에 다녀오시게요?”“옷 좀 가져오려고요. 계속 여기 있으니까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서.”은채는 병동 연락 방법과 현재 계획이 안내돼 있는지 확인했다.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치료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는 그 설명을 듣고서야 가방을 어깨에 멨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은 갈라졌다. 은채는 담당자에게 넘긴 내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병원을 나왔다.***관사에 돌아왔을 때는 해가 남아 있었다.책상 위로 빛이 들어왔고, 아직 풀지 못한 캐리어가 벽에 기대 있었다. 은채는 지퍼를 열어 안에 남은 옷을 꺼냈다. 세면대 아래에 둘 수납 바구니도, 작은 거울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였다.서울에서 정리한 원룸의 보증금 잔액이 들어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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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화. 다시 듣는 목소리

토요일 아침에는 공용 주방에서 달걀을 삶아 먹을 시간이 있었다.은채는 사용한 그릇을 씻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안쪽 달걀판에는 302호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에 펜으로 무언가 보태려다 그대로 뒀다. 먹어도 된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병원에서는 밤사이 인계를 먼저 받았다. 임기석은 필요한 처치 뒤 호흡과 순환이 안정적으로 유지됐고, 분비물을 다루는 상태도 전날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깨어 있을 때 간단한 지시에 반응하는 정도도 달랐다.중환자실 팀은 태오와 상의해 다시 호흡을 평가하기로 했다.은채는 환자 곁에 서서 오늘 할 일을 설명했다.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이유로 관을 반드시 빼겠다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몸이 어떻게 견디는지 같이 보겠습니다.”임기석이 눈을 맞췄다. 전날의 두려움이 남아 있는 듯 시트를 잡은 손에 잠깐 힘이 들어갔다.오늘 담당 간호사는 미경에게서 이어진 관찰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제 평가에서 언제부터 호흡 양상이 달라졌는지, 그 뒤 무엇을 조정했는지가 기록돼 있었다. 다시 처음부터 짐작할 필요가 없었다.지원이 줄어든 뒤에도 환자의 호흡은 전날처럼 가빠지지 않았다.은채는 시간을 보았다가 환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해둔 시간이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숨이 얕아지지 않는지, 얼굴에 힘이 더 들어가는지, 힘들다는 표현이 나타나는지 계속 봤다.태오가 환자의 반응과 기침을 확인했다. 가래가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스스로 처리할 힘이 있는지를 함께 평가했다. 중환자실 담당 전문의도 상태를 검토한 뒤 다음 계획에 동의했다.“오늘은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뺀 뒤 호흡 지원하고 변화에 대응할 준비부터 맞추죠.”태오의 말에 팀이 움직였다.환자에게 지금 할 일을 설명하고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은채는 발관 뒤에도 관찰이 계속된다는 내용을 들으며 한발 비켜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 순간에 침대 옆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입 안의 관이 제거됐다.임기석이 기침했다. 길고 거친 소리가 났다. 담당팀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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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화. 수술하지 않는 선택

월요일 아침, 은채는 일요일 하루 동안의 경과부터 읽었다.쉬는 날 병원에 나오지는 않았다. 집을 정리하고 잠을 잤고, 밀려 있던 세탁을 마쳤다. 처음에는 조용한 휴대전화가 어색했지만 오후에는 충전기에 둔 채 잊고 있었다.병원에서는 그동안에도 치료가 이어졌다.임기석은 발관 뒤 호흡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추가 지원이 갑자기 늘거나 복부 출혈이 다시 의심되는 변화는 없었다. 흉관은 경과를 보며 유지 중이었다. 담당팀은 오늘 병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 최종 평가할 계획이었다.조혜린은 수술 후 식이와 활동을 이어갔다. 장동식 역시 봉합 부위와 감염 경과를 보며 치료 중이었다. 두 환자 모두 퇴원이나 이후 계획을 정할 조건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었지만, 날짜는 각각의 상태에 맞춰 달랐다.짧은 주간 인계에는 지난주 응급수술 상황도 함께 올랐다.오경환이 공용 수술실 조정 내역을 보며 말했다.“수요일 일정 변경, 원무 쪽 설명이 엇갈렸던 건 다음부터 좀 줄이자고.”은채는 자기 차례가 아닌 말을 먼저 가로채지 않았다. 문정원이 당시 두 환자의 상태와 순서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마취팀에서 전달한 가동 인력 상황도 같이 공유됐다.송현섭이 말을 보탰다.“유선경 씨는 제가 오전에 봤고, 그때부터 응급수술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새 환자가 생기면 조정되는 일정이었고요.”그는 은채가 정리한 시간표를 살폈다.“장동식 씨 평가하면서 수술팀 준비도 같이 들어간 게 좋았네요. 검사 끝난 다음에 처음 연락했으면 더 늦어졌을 텐데.”문정원이 고개를 들었다.“서 선생이 먼저 연결했어. 수술에서도 자기 담당 범위 잘 마쳤고.”은채는 손에 쥔 펜을 내려놓았다. 문정원이 짚은 시각 옆에 자신이 먼저 연결한 마취팀 연락이 남아 있었다.“환자 순서를 바꾼 판단하고, 안내가 엇갈린 문제는 나눠서 남겨주십시오.”은채가 말했다. 오경환은 넘기려던 화면을 잠깐 멈췄다.“그래. 우선순위는 맞았네. 안내 문제는 따로 보지. 다음 건 보자.”오경환은 그제야 다음 자료를 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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