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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곁에 두고 싶은 것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12:12:45

714호를 나온 건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옥탑방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나는 정류장 앞에서 멈췄다. 광고판 속 노인의 손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의 마지막 1분을 설계합니다. 삼십만 명이 산 그 1분이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과 전단지와 광고판에서만 보았다. 그 하늘이 실제로 누군가의 귀 뒤에 붙는 곳을 보고 싶었다.

성진대학병원은 안식을 가장 먼저 들인 병원이었다. 석 달 전, 호스피스 병동에. 나는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강을 건너는 동안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저녁 일곱 시, 본관 엘리베이터가 12층에서 열렸다.

엘리베이터 옆 벽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 하얀 바탕, 노인의 손. 본 병동 환자 및 가족 대상 할인. 그 아래 상담 가능 시간과 전화번호. 나는 모자챙을 조금 더 내리고 복도로 들어섰다. 면회는 여덟 시까지였다.

복도는 넓었고 조용했다. 병실 문 앞마다 작은 화분이 있었다. 어느 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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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43화. 철웅의 선택

    자정이 조금 넘어 성진대학병원 12층에 도착했다.복도의 불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간호사실 모니터들이 푸르게 빛났고, 야간 간호사 한 명이 기록지 위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가족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 연회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태블릿을 무릎에 올려놓고 혼자 앉아 있었다. 안식의 코디네이터였다. 두 달 전 철웅 어머니의 귀 뒤에 패치를 붙이던 그 사람. 그녀는 나를 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이 시간에 여기 앉아 있는 이유를 나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임종 동행 서비스. 안내판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1207호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병실 안은 어둑했다. 침대 머리맡의 작은 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창가 보호자 소파에 아이 하나가 어른 코트를 덮고 웅크려 자고 있었다. 박다은. 초등학교 3학년. 코트 밖으로 나온 운동화 한 짝이 소파 끝에 걸려 있었다. 소파 옆 의자에 마흔 초반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무릎 위에 모은 손. 철웅의 아내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일어나 작게 고개를 숙였다."와 주셔서 고마워요. 미경이에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철웅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지팡이를 침대 난간에 기대 놓고, 두 손으로 어머니의 손 하나를 감싸 쥐고. 그는 나를 보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김정옥 씨는 누워 있었다. 두 달 전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이불이 거의 평평해 보였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고, 숨소리가 들렸다. 길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고, 그리고 멈췄다. 한참.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 멈춤을 같이 기다렸다. 다시 숨이 들어왔다. 얕고 빠르게, 몇 번. 그리고 또 길게.간호사가 말해 주었다고 철웅이 속삭였다. 이런 숨이 시작되면 몇 시간이라고.왼쪽 귀 뒤에 하얀 패치가 붙어 있었다. 작은 등 불빛 아래에서 그것만 이상하게 밝았다.나는 문가에 섰다. 병실 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는 이 가족의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42화. 하도경

    하도경은 마포 기사식당 골목의 해장국집을 골랐다.오후 세 시, 점심 손님이 빠지고 저녁 손님이 오기 전이었다. 가게 안에는 택시 기사 두 명이 구석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고, 주방에서 뼈 삶는 냄새가 김과 함께 흘러나왔다. 벽에 붙은 메뉴판은 기름에 절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나는 모자를 쓴 채로 문 옆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오 분 늦게 왔다. 서른여덟쯤, 짧게 자른 머리, 낡은 갈색 가죽 점퍼. 어깨에 멘 천 가방이 불룩했다. 들어오자마자 가게를 한 번 훑고, 나를 찾아 곧장 걸어왔다. 앉기도 전에 말했다."서지우 씨 맞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았다."걱정 마요. 청문회 때 저 거기 있었어요. 방송국 탐사팀이었거든요. 가림막 뒤 목소리 기억해요. 본 사람은 지금 누워 있어요." 그녀가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억양까지. "그 문장, 제가 그날 밤 뉴스 헤드라인으로 올리자고 했다가 까였어요. 너무 감상적이라고."그녀는 점퍼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하나를 입에 넣고,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담배 끊은 지 석 달 됐어요. 이거라도 씹어야 돼." 그녀가 씹으며 말했다. 말이 빨랐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 같았다. "해장국 드세요? 여기 잘해요. 저 여기 단골이에요. 택시 기사님들 이야기 들으려고."해장국 두 그릇이 나왔다. 그녀는 숟가락을 들기 전에 가방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빨간 불은 켜지 않았다."켜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게요. 제가 왜 여기 있는지."그녀는 숟가락으로 선지를 반으로 갈랐다."보름 전에 방송국 공용 제보 메일함에 메일이 하나 들어왔어요. 소생자 이야기. 모르는 골목, 하얀 하늘, 남의 집 안방. 첨부 파일에 뇌파 그래프 같은 것도 있고. 제가 그거 열어 봤어요. 그리고 팀장한테 가져갔어요. 팀장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41화. 200만

    첫눈은 12월 22일 밤에 왔다.자정이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철웅이었다. 문자 대신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병실 창가,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를 비스듬히 내리는 눈. 그리고 사진 앞쪽에 누군가의 손. 앙상한 손가락, 누런 피부.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주황색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는 초승달. 거의 다 자라 나가서, 손톱깎이로 한 번만 깎으면 없어질 만큼.사진 아래 한 줄이 따라왔다.남았다.나는 옥탑방 창문을 열었다. 눈이 빨랫줄 위에 얇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소원 뭐래요. 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안 알려 준대.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나는 그날 밤 무전을 켜지 않고 잤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그 뒤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세상은 빠르게 움직였다.연말 뉴스는 올해의 말을 뽑았다. 1위는 마지막 1분이었다. 보험사 네 곳이 실손 보험에 라스트 미닛 특약을 기본으로 끼워 넣었다. 새로 보험에 드는 사람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패치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대형 병원 스무 곳이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도입했다. 요양 시설 단체 가입이 줄을 이었다. 1월 첫 주, 안식은 가입자 이백만 명 돌파를 발표했다. 11월에 삼십만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였다.지하철 광고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약국 계산대 옆 전단지에서 하얀 바탕의 노인의 손이 나를 따라왔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계산대 아르바이트생의 귀 뒤에 흰 동그라미가 붙어 있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그걸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 필요하세요, 하고 두 번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나오다가 돌아서서 물었다. 그거, 왜 붙였어요? 아르바이트생은 귀 뒤를 만지며 웃었다. 보험 들었더니 그냥 왔어요. 떼기 귀찮아서요. 그리고 이거 있으면 좀 덜 무섭잖아요, 오토바이 탈 때. 나는 고개를 끄덕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40화. 명단에 없는 사람들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9화. 붐비는 영원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8화. 새 파형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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