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분 뒤, 일행을 태운 차가 H시 중심가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원형 식탁에 자리를 잡을 때, 도희는 시경의 정면에서 한참 비껴난 자리를 골라 앉았다.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눈이 직접 마주칠 일은 없는 자리였다.도희는 간밤에 가까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시경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무슨 역병이라도 피하듯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는 도희를 보자, 시경은 아직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른 여자였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눈앞에 머물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을 텐데... 도희는 정반대였다. 간밤의 일을 빌미로 출세할 생각도, 무슨 이득을 챙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리숙한 게 아니었다.오히려 현명한 처신이었다.이번 자리는 출장의 마지막 식사이자 발주처인 소영남 대표와의 만남이었다.소영남이 도착하자, 시경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나눴다.술잔이 몇 차례 오간 뒤, 본격적인 협업 이야기가 시작됐다.프로젝트 담당자인 수진 역시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소영남의 얼굴에도 슬슬 취기가 올랐다.소영남이 혀가 살짝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좋습니다. 다음 주에 팀을 데리고 J시로 가서 계약하죠. 제안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업계에서 손꼽히는 하양그룹 아닙니까? 걱정할 게 없죠.”“좋은 협업을 기대하겠습니다, 소 대표님.”“그럼요. 잘해 봅시다, 잘해 봐요!”...한편, 인턴 세 사람은 술 대신 과육이 들어 있는 오렌지 주스를 여러 잔이나 마셨다.이제는 배가 빵빵할 지경이었다.소영남이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지윤과 나연도 화장실로 향했다.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다들 술 진짜 잘 마신다. 배 이사님은 소주만 두 잔에 맥주도 한 네 병은 마셨지? 난 주스만 마셨는데도 토할 것 같던데.”지윤은 화장품을 꺼내 들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배경도 지위도 없는 배 이사님 같은 사람은 몸이라도 갈아 넣어야 계약을 따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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