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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대일 로맨스
우리의 일대일 로맨스
Author: 산초강

제1화

Author: 산초강
“하룻밤만 함께하는 관계, 괜찮아?”

늦은 밤, 특급호텔의 로얄 스위트룸.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차마 그냥 흘릴 수 없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강도희의 손이 흠칫하면서 멈췄다.

야근을 너무 오래 한 탓에 헛소리라도 들은 줄 알았다.

도희는 서둘러 손에 든 서류를 파쇄기에 밀어 넣었다.

지금은 그저 얼른 퇴근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푹 자고 싶을 뿐이었다.

“강도희 씨. 지금 도희 씨한테 하는 말이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깊고 검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눈동자 속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욕망이 담겨 있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다름 아닌 도희의 상사, 하시경이었다.

젊은 나이에 상장기업을 이끄는 대표.

젊고 돈 많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외모까지도 지나치게 잘난 남자였다.

정교하게 빚어 놓은 듯한 이목구비에 188센티미터에 달하는 훤칠한 키.

넓게 벌어진 어깨 아래로는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한 허리선이 이어졌다.

어릴 적부터 귀하게 자란 엄친아 특유의 품위와 여유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오죽하면 J시 여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남자 부동의 1위로 꼽힐 정도였다.

반면 도희는 달랐다.

기댈 집안도, 내세울 배경도, 변변한 돈도 없는 평범한 대학 졸업반 인턴이었다.

이 깊은 밤, 도희가 대표의 객실에 남아 있는 건 지방 출장 때문이었다.

무려 6시간이나 이어진 프로젝트 회의가 조금 전 끝났다. 도희는 회의에 사용된 초안 서류를 정리해서 파쇄하는 일을 맡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객실을 나서는 마지막 사람이 된 것이었다.

입사한 뒤로 도희는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묵묵히 해냈다.

업무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바라는 건 오직 하나.

하루라도 빨리 정규직 전환 확정을 받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이렇다고 할 존재감조차 없는 신입 인턴에게, 여직원들이 하나같이 눈독을 들이는 잘생기고 돈 많은 대표가 하룻밤을 제안하다니!

그녀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고급 맞춤 정장을 완벽하게 입고서 검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던 시경은, 도희의 표정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 위의 귓불이 서서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잘 익은 복숭아를 보는 것 같았다.

문득 그 말랑해 보이는 귓불에 입술을 대 보고 싶어졌다.

“도희 씨?”

시경이 나지막이 부르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도희의 눈매가 가볍게 파르르 떨렸다.

“대표님,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시경은 소파 등받이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밤새 이어진 지루한 업무에 질리기라도 한 듯, 말투마저 한층 느슨해졌다.

“그냥 물어보는 거야. 혼자 지낸 지도 꽤 됐고, 요즘 일도 워낙 힘들어서 좀 풀고 싶거든. 쉽게 말하면... 도희 씨 외모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지.”

지나치게 직설적인 말이었다.

그런데도 도희는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는 살짝 들뜨기까지 했다.

도희 역시 생각도 있고 욕구도 있는 평범한 젊은 여자였다.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사람의 판단이 조금쯤 관대해지기 마련이었다.

시경처럼 반듯하고 눈부신 남자는 평범한 인생에서 한두 번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그런 남자와 하룻밤을 보낼 기회라니.

도희가 조심스럽게 그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게 필요하시면 비서실을 통해서 다른 분을...”

“괜찮아. 아무한테나 마음이 가는 건 아니라서.”

결국 도희에게 끌린다는 뜻이었다.

도희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지금 상황을 차분히 저울질했다.

‘받아들일까, 거절할까?’

받아들이자니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주제에 벌써부터 자신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이런 남자와 잠자리를 가질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뒤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지?’

‘혹시라도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닐까?’

도희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시경이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누그러뜨렸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내키면 그러는 거고, 싫으면 하던 일이나 마저 하면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희는 마음을 정했다.

시경은 헛된 약속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정규직 전환을 들먹이며 은근히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가 원해서 함께 보내는 하룻밤.

거기에 다른 뜻은 없었다.

원하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대표와 직원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선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희에게도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인데... 한 번쯤 같이 자도 괜찮지 않을까?’

한편 시경은 괜히 인턴을 겁먹게 했다가 그대로 달아나게 만들까 싶어, 슬쩍 화제를 돌렸다.

“아까 회의에서 놀이공원 확장 부지에 모래성을 만들자고 했지.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어. 실제로 추진해 봐도 좋겠던데, 예산안은 있어?”

그런데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도희가 느닷없이 물었다.

“정말 하룻밤뿐이고, 그 뒤에 제 업무에는 영향이 없는 거죠?”

이번에는 오히려 시경이 말을 멈췄다.

잠깐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없어.”

“그럼 좋아요.”

도희가 눈꼬리를 살짝 휘면서 웃었다. 언제나 얌전하고 성실한 인턴의 모습을 벗어 던지자, 그 얼굴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감돌았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경은 자기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흰 셔츠에 검은 스커트.

더없이 평범한 OL룩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홀렸다.

밤새 시경의 마음이 어수선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대가는 챙겨 줄게.”

시경은 이런 관계에서 여자 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필요 없어요.”

도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러더니 커피잔이 놓인 낮은 테이블을 돌아서 시경의 옆자리에 앉았다.

긴 머리카락이 가까워지자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 순간, 시경의 온몸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시선을 조금 들어 올리자, 새하얀 손가락이 자신의 넥타이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가볍게...

툭-

잡아당겼다.

그 힘에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입술이 도희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풀어 드릴까요? 너무 긴장하신 것 같으니까요.”

예상 밖의 적극성이었다.

시경은 조금 놀랐다.

그러나 놀란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한번 더 해 보라는 듯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해 줘. 도희 씨 말대로, 너무 긴장해서.”

도희가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따스한 조명 아래 환하게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했다.

시경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도희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핑크빛으로 물든 귓불을 입술로 가볍게 물었다.

“이리 올라와.”

도희는 기다렸다는 듯 긴 다리를 뻗으면서 시경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세였다.

몸을 조금 더 바짝 붙이자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검은 눈동자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욕망이 먹구름처럼 짙어지더니,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사이 목을 단정하게 감싸고 있던 검은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서 옆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셔츠 단추가 하나, 둘... 천천히 풀렸다.

답답한 셔츠 칼라에서 벗어난 목젖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도드라진 윤곽이 한층 더 선명해졌다.

도희가 손끝으로 그곳을 살짝 건드렸다.

“혼자 지내신 지는 얼마나 됐는데요?”

시경은 시선을 내리깔면서 눈앞의 도톰한 입술을 바라보았다.

“키스해 줘.”

그러나 도희는 이번만큼은 순순히 남자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표님도 좀 움직여 보세요. 얼마나 원하는지 보고 싶은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경이 입술을 겹쳤다.

부드러운 여자의 입술 사이로 은은한 수박 맛이 느껴졌다.

아까 회의 도중 먹었던 과일 때문이었다.

그 입술은... 촉촉하고, 더없이 말랑했다.

도희 역시 피하지 않았다.

시경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맞춰 주다가도 이따금 먼저 다가서면서 입술을 포갰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얌전히 몸을 맡기는 듯하다가도, 가끔씩 예상치 못한 적극성을 드러냈다.

그 완급이 실로 절묘했다.

“대표님, 몸이 좋으시네요.”

도희의 손끝에 셔츠 너머로도 선명하게 잡힌 복근이 느껴졌다.

“몇 개예요? 전 여섯 개가 좋은데.”

“여섯 개.”

시경이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손을 옮겼다.

“여기 사이즈는?”

“80D요. 마음에 들어요?”

“응... 평소에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니지?”

“그게 중요해요?”

시경이 소리 없이 웃었다.

“안 중요해.”

“대표님은 어떤 자세를 좋아하세요?”

어느새 도희의 윗옷을 벗긴 시경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눈앞에 드러난 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그러면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하나씩 다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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