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은 레티의 찻잔에서 손을 거두었다.“가게 주인다운 말이군요.”“배우다 보니 고르는 일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레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런이 의자를 뒤로 빼 주었고, 유리엘은 젖은 소매가 닿지 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노라가 마른 손수건을 받친 채 따라왔다. 응접실 문이 닫히자 레티는 왼팔을 몸에서 조금 떨어뜨렸다.“이건 벗으면 그레고리에게 가져다줘.”“씻지 않고요?”“응. 안에 넣은 손수건도 같이.”계단 아래에서 유리엘이 고개를 들었다.“갈아입고 내려올 필요 없어.”에런도 레티 쪽을 보았다.“저녁을 많이 못 드셨습니다. 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레티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랐다. 방에 들어가 젖은 소매를 벗고 나서야, 손목에 남은 찻물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여름 셋째 달 20일 아침, 레티는 작은 차 통의 뚜껑을 세 번째 닫아 보았다.기울여도 찻잎이 새지 않았다. 뚜껑을 열면 말린 사과와 보리의 구수한 냄새가 먼저 났고, 뒤에 박하 향이 조금 남았다.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게 여러 번 덜고 더한 차였다.책상 한쪽에는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에런 브리그 경의 차.뜨거운 물에 짧게 우리고, 늦은 밤에는 연하게.」노라가 이름표를 들여다봤다.“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안 쓰세요?”“그건 직접 할 거야.”“차 마시는 법은 직접 안 말씀하시고요?”“그건 잊을 수도 있잖아.”레티는 마른 잉크를 손끝으로 확인했다. 노라가 접어 둔 얇은 끈을 건네자 이름표를 통 옆에 묶었다.남에게 팔 차는 몇 번이고 맛을 보면 끝났는데, 선물할 차는 뚜껑까지 자꾸 열어 보게 되었다. 레티는 끈의 매듭을 조금 돌려 이름이 앞에 오도록 했다.“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시네요.”노라가 말했다.“응. 오늘은 쉬게 해 드리고 싶어.”“그 말씀은 빨리 하셔야겠어요.”“왜?”“에런 경이 벌써 부엌에 계시거든요.”레티의 손이 차 통 위에서 멈췄다.▽부엌으로 내려가는 복도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났다.문 안쪽에서 에런의 목소리가
Last Updated : 2026-10-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