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리 집에는 남편이 둘 있습니다: Chapter 31 - Chapter 40

80 Chapters

31화. 티 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불꽃이 꺼진 자리에서 흰 연기가 흩어졌다.레티는 어깨에 걸린 외투의 깃을 잡았다. 유리엘은 호수 쪽을 보고 있었다. 다음 불꽃이 오르기 전까지 짙은 파란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그 자리는 제가 정할 거예요.”유리엘이 고개를 돌렸다.“내년에도 제가 여기 오고 싶으면 오는 거예요. 전하께서 미리 정해 두지 마시고요.”“그래.”너무 쉽게 받아서 준비한 말이 남았다.“다른 데 가고 싶을 수도 있어요.”“그럼 거기로 가지.”레티는 외투 깃을 조금 놓았다. 멀리서 불붙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아직 어디인지는 몰라요.”“정하면 말해.”호수 위로 붉은 불꽃이 번졌다. 레티는 대답 대신 무릎 위 인형을 바로 앉혔다. 한쪽 귀가 자꾸 접혔다. 손끝으로 펴도 곧 도로 기울었다.유리엘이 그 귀를 내려다봤다.“끈이 풀렸군.”“아까부터 이래요.”“내가 하지.”“바느질도 하세요?”잠깐 대답이 없었다.“사람을 부르면 된다.”레티는 작게 웃었다.“에런 경은 직접 해 주실 텐데요.”유리엘이 인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배우지.”‘귀 하나 때문에 황궁에 바느질 선생이 들어가겠네.’레티는 인형을 품에 당겼다. 외투 안쪽이 아직 따뜻했다.▽여름 둘째 달 16일 아침, 인형의 귀는 말끔히 서 있었다.레티는 식당 문 앞에서 인형을 들어 보였다.“누가 고쳤어요?”오른쪽 의자를 빼던 에런이 손을 멈췄다.“제가 고쳤습니다. 노라가 아침에 가져왔습니다.”왼쪽에서 유리엘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뚜껑 안에는 가는 바늘과 실, 손가락에 끼우는 골무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다음에는 이걸 써.”에런이 상자를 살폈다.“좋은 바늘입니다.”“굵은 것도 있다.”“인형에는 가는 쪽이 좋겠습니다.”“알고 있다.”레티는 상자를 닫아 노라에게 건넸다.“제 인형이 두 분 덕분에 오래 살겠어요.”에런이 빼 둔 의자에 앉으려는데 유리엘이 접은 천을 등받이에 걸었다. 얇은 방석이었다.레티는 멈춘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의자는 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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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또 그렇게 하실 거예요?

레티는 빈 의자에서 눈을 떼고 종이를 당겼다.궁정에서 받아 온 목록 아래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칸이 남아 있었다. 펜 끝으로 그 칸을 짚다가, 서류 사이에 끼워 둔 질문을 꺼냈다.「오늘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레티는 종이를 접지 않고 책상 한쪽에 놓았다.“아가씨, 이 목록은 제가 내일 근무 전에 확인해 보겠습니다.”에런이 빈 항목을 가리켰다. 가게에서 쓰는 약초를 궁정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적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부탁드려요. 저는 전하께 여쭤볼 게 있으니까요.”“그럼 사본만 가져가겠습니다.”에런은 원본을 레티 쪽에 남겨 놓았다. 종이 모서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가볍게 맞춘 뒤 일어났다.레티는 오른쪽 의자를 다시 보지 않았다.대신 질문을 적은 종이 위에 펜을 올려 두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여름 둘째 달 17일 아침, 식당 오른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그레고리는 의자를 당기지 않은 채 레티를 맞았다.“전하께서는 물푸레관에서 식사하셨습니다.”“벌써요?”“조금 전에 식기를 내보내셨습니다.”레티는 자기 의자에 앉았다. 왼쪽에 앉은 에런 앞에는 어제 가져간 사본이 놓여 있었다.“확인은 조금 더 걸립니다. 근무를 마치고 말씀드리겠습니다.”“급하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아가씨가 직접 가셔야 하는 항목부터 골라 두겠습니다.”에런이 서류를 식탁 바깥쪽으로 옮겼다. 빵 부스러기가 묻지 않게 접시와 거리를 두었다.레티는 오른쪽에 놓인 빈 받침을 봤다.“노라.”“네, 아가씨.”“오늘은 차를 따르지 마.”노라가 들고 있던 주전자를 멈췄다. 곧 레티의 잔에만 차를 채웠다.노엘은 의자에 올라앉으며 양옆을 살폈다.“전하 형님은 또 바빠?”“직접 물어보려고.”“그럼 내가 가서 불러올까?”“네 아침부터 먹어.”노엘은 손에 든 빵을 내려다봤다. 빵 끝에 잼이 몰려 있었다.에런이 작은 칼을 건넸다.“조금 펴서 드시면 됩니다.”“전하 형님은 빵을 반으로 갈라 주시는데.”“오늘은 직접 해 보십시오. 잼이 더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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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업히십시오

에런이 바구니 손잡이를 잡자 유리엘이 반대쪽을 들었다.“내가 들지.”“안에 가위가 있습니다. 기울이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기울이지 않는다.”레티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바구니를 꺼냈다. 아직 찻잎 한 장도 들어 있지 않은 바구니였다.“이건 제가 들어요. 두 분 것은 문 옆에 있어요.”현관 옆에 그만한 바구니가 두 개 더 놓여 있었다. 노라는 그것까지 챙긴 뒤에야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여름 셋째 달 3일 아침이었다. 노엘은 제 몫의 작은 바구니를 팔에 끼고 계단을 내려왔다.“누나, 나도 가위 줘.”“잎만 딸 거라 필요 없어.”“그럼 왜 가져가?”“줄기가 얽혔을 때 쓰려고.”노엘이 바구니 안을 들여다봤다. 가위 밑에는 얇은 천과 물병이 있었다.레티는 새벽이슬풀 그림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 가게 뒷방에서 조금씩 달여 쓰던 풀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받아 둔 차를 확인하려면 더 필요했다.“돌아올 때까지 혼자 다른 길로 가면 안 돼.”“알아. 내 잎도 누나가 봐 줘.”“전하께서 봐주실 거야. 어디서 나는지 아신대.”노엘이 곧장 유리엘 쪽으로 붙었다.“전하 형님, 제일 많이 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틀린 걸 따면 지는 거다.”“그럼 조금 따면 되겠네.”“필요한 만큼은 따야지.”노엘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레티는 웃음을 참으며 현관을 나섰다.‘쉬운 길은 벌써 막혔네.’에런이 마차 문을 열었다. 유리엘은 발판 옆에 서서 레티가 든 바구니를 받았다.“들어 준다는 뜻은 아니에요.”“탈 때만.”“내릴 때는 제가 받겠습니다.”에런이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레티는 치맛자락을 걷어 발판에 올랐다.“바구니한테도 차례가 생겼네요.”▽마차는 교외 언덕 아래에서 멈췄다.길 가장자리에는 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에런이 약속대로 레티의 바구니를 받아 내려놓았다. 마차 옆을 따라온 유리엘도 말에서 내렸다.레티는 모자 끈을 턱 아래에서 고쳐 묶었다. 시장을 걸을 때 신던 낮은 구두 밑창에 작은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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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이 향은 어디서 났어요?

레티는 에런의 어깨에 얹은 손을 바로 떼지 못했다.마차 문을 잡고 있던 유리엘이 안쪽의 발 받침을 조금 당겼다.“다친 발은 여기에 둬.”에런이 레티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몸을 낮췄다. 레티는 오른발부터 발판에 딛고, 열린 문 안으로 손을 뻗었다. 유리엘이 손바닥을 위로 돌려 기다렸다.“제 소매를 잡으셔도 됩니다.”“손이 더 가깝다.”레티는 유리엘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에런은 레티가 앉을 때까지 다친 발 아래를 받쳤다.“두 분 다 감사해요.”노엘이 뒤에서 바구니를 밀어 넣었다.“나는?”“너도. 오늘 잎을 제대로 골랐잖아.”노엘이 만족한 얼굴로 올라왔다. 레티는 발 받침에 발을 올리고 에런 쪽을 한 번 더 봤다. 옷깃에 손가락으로 잡았던 주름이 남아 있었다.항상 와 주는 이유를 물었는데, 다음에 와 주겠다는 답까지 받은 셈이었다.레티는 무릎 위의 모자 끈을 가지런히 접었다.▽여름 셋째 달 6일, 레티는 아침 식탁 아래에서 발 받침을 밀었다.부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발을 오래 내리고 있으면 발목이 당겼다. 의원은 오늘까지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에런이 오른쪽 자리에서 몸을 숙였다.“조금 더 앞으로 옮기겠습니다.”왼쪽에 앉은 유리엘은 작은 방석을 집었다.“높이도 맞춰야지.”“받침을 옮긴 뒤에 놓으시면 됩니다.”“네가 잡고 있으면 지금 놓을 수 있다.”두 사람이 식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레티는 빵을 든 채 기다렸다. 발 받침이 움직이고, 방석이 올라가고, 에런이 방석 끝을 접었다.“이 정도면 괜찮으십니까?”“조금 높다.”“아가씨께 여쭈었습니다.”레티가 발을 올렸다. 다친 발목에 힘이 덜 들어갔다.“딱 좋아요. 이제 두 분도 식사하세요.”맞은편의 노엘이 식탁 아래를 들여다봤다.“누나, 내 방석도 가져올까?”“이제 충분해.”‘식탁보다 발 받침이 먼저 차려졌네.’레티는 빵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식당 문이 열리고 하녀가 빈 우유병을 가지러 들어왔다. 노라가 잔을 모으는 동안 하녀는 찬장 앞에 서서 쟁반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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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이 집 회의엔 간식이 필요해

그레고리의 펜이 하녀의 말을 끝까지 받아 적었다.레티는 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펜 끝을 보고 있었다. 황태자비가 될 사람에게 매일 먹일 차. 하녀가 한 말에는 자신이 차를 거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었다.“제가 지금 황태자비가 아닌 건 알고 있었어요?”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유리엘의 장갑 낀 손이 쟁반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에런은 문 쪽을 한 번 확인했다.레티는 그레고리가 적은 종이를 앞으로 당겼다.“처음부터 읽어 주세요.”그레고리는 한 줄씩 읽었다. 하녀는 돈을 받은 날과 봉지를 숨긴 곳에서 말을 보탰다. 기록이 끝나자 레티는 종이 아래의 빈칸을 짚었다.“오늘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내일은 아버지께도 말씀드릴 거예요.”하녀의 손이 수프 그릇 옆에서 움츠러들었다.“저도 가야 합니까?”“다시 물으실 게 있으면요. 했던 말을 여러 번 하게 될 수도 있어요.”레티는 잠깐 기다렸다가 덧붙였다.“그때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요. 아버지가 화를 내셔도 없는 말을 보태지 말고요.”그레고리가 기록을 덮었다.“어머니께는 의원을 보내겠습니다. 오늘은 노라와 함께 다른 방에서 쉬도록 하세요.”하녀가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레티는 찻잎 봉지에 닿지 않도록 빈 물잔을 옆으로 옮겼다.누군가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봉지였다.레티에게는 이미 마신 차였다.▽여름 셋째 달 7일, 공작의 서재 책상 위에는 향유병과 묶인 찻잎 봉지가 놓였다.그 옆으로 대공가에서 받은 차 상자, 약재 출고 서류를 옮겨 적은 종이, 하녀의 진술이 나란히 펼쳐졌다. 레티는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공작은 안경을 코 위로 밀어 올렸다.“향유를 선물하고 돈도 줬다는 거냐?”“네. 어머니 약값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접근했어요.”“그래서 네 차를 바꾸라고?”“아직 바꾸지는 않았어요. 봉지도 묶인 그대로고요.”공작이 종이를 다시 읽었다. 레티는 아버지가 다음 줄로 넘어가기 전에 차 상자를 가리켰다.“이쪽에서는 겨울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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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이제는 제가 고른 것만 마셔요

공작은 초대장을 다시 펼쳤다.“병문안을 마치고 우리 집에 온다고.”레티는 봉투에 찍힌 문장을 봤다. 차 상자에도, 하녀가 받은 향유병에도 있던 문장이었다.“답장은 제가 써도 될까요?”“뭐라고 쓰려고?”“저녁을 준비하겠다고요.”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노엘은 남은 과자를 집으려다 손을 멈췄다.유리엘이 초대장 아래쪽을 짚었다.“평소와 다르게 준비하지 마십시오. 숙부는 그런 걸 먼저 봅니다.”“그러면 평소대로 하겠네.”공작은 잠금장치가 있는 상자를 책상 안쪽으로 밀었다.“그레고리, 손님용 차도 평소대로 준비하게.”그레고리가 고개를 숙였다.“내올 것과 보관할 것은 제가 구분하겠습니다.”레티는 빈 종이를 당겼다. 펜을 들자 에런이 잉크병 뚜껑을 열었다. 유리엘은 종이가 밀리지 않게 모서리를 눌렀다.노엘이 두 손을 번갈아 봤다.“답장은 누나가 쓰는 거지?”“그럼.”레티가 펜 끝에 묻은 잉크를 덜었다.‘종이까지 나눠 맡을 생각은 아니겠지.’▽여름 셋째 달 8일 저녁, 노라가 레티의 소맷단을 마지막으로 폈다.옅은 회색 드레스의 소매는 손등 가까이 내려왔다. 안쪽에는 얇은 면 손수건을 접어 넣었다. 손목을 굽혀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너무 두껍나요?”“괜찮아. 팔만 안 올리면 돼.”레티는 빈 찻잔을 들어 봤다. 잔을 입 가까이 가져갔다가 소매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노라가 재빨리 받침을 내밀었다.“정말 이렇게 하실 거예요?”“안 마시고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지.”“따르지도 못하게 하면 더 좋고요.”“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고.”레티는 빈 잔을 내려놓았다.그레고리는 대공이 가져오는 상자를 곧바로 보관할 생각이었다. 다만 손님이 직접 차를 골라 권하면, 새 찻잎을 쓰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레티는 소맷단을 잡아 손목에서 조금 떨어뜨렸다.“오래 들고 있지는 않을 거야. 잔도 작게 준비해 달라고 했어.”노라는 접은 손수건이 빠지지 않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 뒤 레티의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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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검은 그 사람 지키는 데만 써

대공은 레티의 찻잔에서 손을 거두었다.“가게 주인다운 말이군요.”“배우다 보니 고르는 일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레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런이 의자를 뒤로 빼 주었고, 유리엘은 젖은 소매가 닿지 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노라가 마른 손수건을 받친 채 따라왔다. 응접실 문이 닫히자 레티는 왼팔을 몸에서 조금 떨어뜨렸다.“이건 벗으면 그레고리에게 가져다줘.”“씻지 않고요?”“응. 안에 넣은 손수건도 같이.”계단 아래에서 유리엘이 고개를 들었다.“갈아입고 내려올 필요 없어.”에런도 레티 쪽을 보았다.“저녁을 많이 못 드셨습니다. 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레티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랐다. 방에 들어가 젖은 소매를 벗고 나서야, 손목에 남은 찻물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여름 셋째 달 20일 아침, 레티는 작은 차 통의 뚜껑을 세 번째 닫아 보았다.기울여도 찻잎이 새지 않았다. 뚜껑을 열면 말린 사과와 보리의 구수한 냄새가 먼저 났고, 뒤에 박하 향이 조금 남았다.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게 여러 번 덜고 더한 차였다.책상 한쪽에는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에런 브리그 경의 차.뜨거운 물에 짧게 우리고, 늦은 밤에는 연하게.」노라가 이름표를 들여다봤다.“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안 쓰세요?”“그건 직접 할 거야.”“차 마시는 법은 직접 안 말씀하시고요?”“그건 잊을 수도 있잖아.”레티는 마른 잉크를 손끝으로 확인했다. 노라가 접어 둔 얇은 끈을 건네자 이름표를 통 옆에 묶었다.남에게 팔 차는 몇 번이고 맛을 보면 끝났는데, 선물할 차는 뚜껑까지 자꾸 열어 보게 되었다. 레티는 끈의 매듭을 조금 돌려 이름이 앞에 오도록 했다.“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시네요.”노라가 말했다.“응. 오늘은 쉬게 해 드리고 싶어.”“그 말씀은 빨리 하셔야겠어요.”“왜?”“에런 경이 벌써 부엌에 계시거든요.”레티의 손이 차 통 위에서 멈췄다.▽부엌으로 내려가는 복도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났다.문 안쪽에서 에런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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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직접 물어야 대답합니다

에런은 검집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그러겠습니다.”유리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노엘이 빈 상자에 손을 넣으려 하자 뚜껑만 먼저 닫았다.“그건 왜 가져가려고.”“내 검도 넣어 보려고요.”“네 건 목검이잖니.”레티가 말하자 노엘은 상자 길이를 눈으로 재다가 손을 거두었다. 에런은 이름표가 달린 차 통을 들고 일어났다.“차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검집도 받으셨는데 한꺼번에 들기 힘드시겠어요.”“이 정도는 괜찮습니다.”에런이 통을 조금 높이 들었다. 유리엘이 비워 둔 길로 걸어가면서도 끈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 번 더 살폈다.레티는 식탁에 남은 끈 조각을 모았다. 노라가 접시를 치우는 동안 유리엘은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검집을 살펴보던 손에는 다시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문이 열리지 않았다.레티는 침대에 누운 채 문간을 보고 있었다. 창문 밖에는 눈이 내렸고, 침대 곁의 잔에는 식은 은방울잎 차가 남아 있었다.목이 말랐다. 물을 달라고 부르려 했지만 입술이 벌어지지 않았다.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아는 걸음이었다. 멈추는 자리도 알았다. 문 앞에 와서 잠깐 머무르고, 끝내 돌아가던 걸음.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았다.문이 열렸다.검은 외투를 걸친 사람이 문턱을 넘었다. 레티는 얼굴을 보려고 눈을 조금 더 떴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문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제 와서.’다음 말을 생각하기 전에 침대가 조금 내려앉았다.유리엘이었다.외투 어깨에 눈이 붙어 있었다. 검은 머리 끝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숨을 들이쉴 때 입술이 벌어졌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유리엘이 손을 뻗었다.왼손이었다. 장갑이 없었다.손끝에서 떨어진 붉은 물방울이 흰 이불에 닿았다. 또 하나가 그 옆에 떨어졌다. 레티는 손을 치우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지 말고 상처부터 감싸라고.유리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짙은 파란 눈 밑으로 물이 흘렀다. 눈에 묻은 물이 아니었다. 턱까지 내려온 물방울이 이불 위로 떨어졌다.‘왜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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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물어볼 게 있어요

레티는 가방 끈을 잡고 일어났다.“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으시네요.”오르반은 탁자에 놓인 잔을 한쪽으로 옮겼다.“영애께서 제게 이름을 말씀하지 않으신 것처럼요.”레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 서 있던 유리엘이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검은 장갑을 낀 손이 외투 끝에서 떨어졌다.“물 한 잔 잘 마셨어요.”“쿠키도 잘 먹었습니다.”오르반은 더 붙잡지 않았다.레티가 현관으로 나오자 에런이 가방을 받아 들었다. 유리엘은 마차 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 모두 무엇을 물었는지 묻지 않았다.레티는 신전 계단을 내려가다 한 번 뒤를 돌아봤다.오르반은 문 앞에 남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노라는 책상 위에 마른 종이를 놓았다.“여름 셋째 달 24일. 오늘 주문이요.”레티는 펜을 들다가 손을 멈췄다.종이에는 찻잎 이름과 봉지 수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는 노라가 덧붙인 말도 있었다.「노엘 도련님 몫 쿠키는 주문에 넣지 않았음. 부엌에서 이미 받으셨음.」“두 번 받으려고 했어?”“가게 쿠키와 집 쿠키는 다르다고 하셨어요.”“배는 하나인데.”“저도 그렇게 말씀드렸어요.”노라는 빈 물병을 들고 나갔다. 레티는 주문서를 책상 왼쪽으로 밀고 새 종이를 꺼냈다.첫 줄에 펜을 댔다가 펜촉을 들었다.신전에서 돌아온 뒤 이틀 동안 질문을 골랐다. 왜 그날 문 앞에 있었는지. 왜 울었는지. 손에서는 왜 피가 났는지.그렇게 물으면 꿈을 설명해야 했다.꿈이 아니라면, 다른 것도 설명해야 했다.레티는 잉크를 조금 더 묻혔다.「가지.」딱 두 글자를 적고 펜을 내려놓았다.전생에 황궁 식탁에서 가지를 남긴 적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리엘에게 싫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공작저에서 처음 식사를 함께할 때에도 입을 대기 전에 접시가 바뀌었다.하르벨 공작저에서 누군가 알려 주었을 수도 있었다.레티는 그 옆에 작은 점을 찍었다.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정할 수 없었다.다음 줄에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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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기억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레티는 등불을 조금 내렸다.유리엘은 외투를 벗은 채였다. 셔츠 소매는 손목까지 내려와 있었고, 왼손에는 아직 검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들어와.”유리엘이 문을 더 열었다. 레티는 문턱을 넘기 전에 안쪽을 보았다. 책상에는 펼친 서류와 펜이 놓여 있었다. 창가 탁자에는 물잔 하나가 있었다.“일하시던 중이었죠.”“멈추면 돼.”레티가 들어서자 유리엘은 등불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레티는 손잡이를 건넸다. 불빛이 두 사람 사이에서 잠깐 흔들렸다.뒤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아가씨.”에런이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노라가 그 옆에서 물병을 받쳐 들었다.“물푸레관에 찻물이 떨어졌다고 해서 가져왔습니다.”노라가 물병을 조금 들어 보였다.“늦어서 차 대신 물로 준비했어요.”유리엘은 등불을 문 옆에 놓았다.“여기도 물은 있어.”“찬물입니다. 밤에는 따뜻한 쪽이 낫습니다.”에런은 웃으며 쟁반을 내밀었다. 유리엘이 받아 들자 이번에는 노라가 물병을 올렸다.“잔은 내가 놓지.”“받침도 함께 놓아 주십시오. 탁자가 뜨거워집니다.”“그건 알고 있어.”레티는 쟁반에 가지런히 놓인 잔 두 개를 보았다.‘물 한 잔도 그냥은 못 마시네.’에런은 더 들어오지 않았다. 레티의 외투 깃을 한 번 살피고 계단에서 물러났다.“돌아가실 때 등불은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고마워요, 에런 경.”“편히 말씀 나누십시오.”노라도 짧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정원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레티는 문을 닫았다.문고리에서 손을 떼기까지 조금 걸렸다.유리엘이 쟁반을 창가 탁자에 놓았다.“앉겠나.”레티는 의자로 가지 않았다.가방 안에는 낮에 적은 종이가 있었다. 꺼내서 하나씩 물으면 쉬울 수도 있었다. 가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손의 흉터는 무엇인지, 왜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지.그러나 종이를 펴면 또 맨 아래까지 가지 못할 터였다.레티는 가방 끈을 놓았다.“전하도 기억하세요? 그 겨울을.”유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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