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 Chapter 61 - Chapter 70

80 Chapters

61화. 홍시

감나무 아래에서 밤톨이가 두 팔을 벌렸다.“누나, 여기 홍시가 있어.”새미는 장독대 뚜껑을 닦다 고개를 들었다. 밤톨이는 감나무 아래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있었다. 한 손에는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손은 붉게 익은 감을 향해 뻗었다.“거기서 더 올라가지 마. 가지 약해.”“이것만 따면 돼.”“아까도 하나만 딴다 했잖여.”밤톨이가 감을 따서 품에 넣었다.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봤다. 발이 사다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누나.”“왜.”“내려가는 길이 멀어.”새미는 손에 든 천을 내려놓고 다가갔다. 사다리는 밤톨이 무게에 맞춰 조금 흔들렸다. 세자는 새미보다 먼저 사다리 아래쪽을 잡았다.“밤톨 도령, 발을 천천히 옮기시오.”“저는 도령 아니에요.”“그렇소. 그럼 밤톨이라 부르겠소.”“그건 더 맞아요.”“밤톨아, 오른발을 아래 칸에 두시오.”밤톨이는 아래를 보며 발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너무 아래예요.”“그러면 지금 발을 둔 곳보다 1칸 아래요.”새미가 사다리 옆을 짚었다.“발밑에 있는 데여. 눈 감고 내려오지 말고.”“눈 감으면 안 보여?”“그러니까 감지 말라고.”세자는 사다리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밤톨이는 한 손으로 가지를 놓고 사다리를 붙들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세자가 낮게 말했다.“천천히. 좋소. 이제 다른 발도.”밤톨이는 마지막 칸에 발을 딛고 땅으로 내려왔다. 품에 안은 홍시는 멀쩡했지만, 소매 끝에는 나뭇잎이 붙어 있었다.“저하, 밤톨이가 홍시를 살렸어요.”“홍시가 밤톨이를 붙들고 있었소.”“홍시가 사람을 어떻게 붙들어요?”“밤톨이가 떨어지지 않게 손에 꼭 안고 있었잖여.”새미가 소매의 잎을 떼어 주자 밤톨이는 홍시를 내밀었다.“누나가 먹어.”“네가 딴 거잖여.”“나는 더 따면 돼.”“또 올라갈라고?”밤톨이는 대답 대신 세자가 잡은 사다리를 바라봤다. 세자는 사다리를 놓지 않았다.“사다리를 옮겨 두겠소. 밤톨이가 다시 올라가면 안 되오.”“한 개 더 따면 안 돼요?”“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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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유과

별궁 대문이 열렸다. 새미는 문턱 앞에서 짐 보따리를 고쳐 들었다. 보따리 안에는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었다. 허리춤의 숟가락은 빠지지 않았는지 손으로 한 번 눌러 확인했다.“단 낭자, 안으로 드시지요.”강내관의 목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렸다. 새미는 고개를 돌렸다. 강내관은 세자를 배웅하러 온 참인지, 문밖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세자는 없었다. 그 대신 별궁 안쪽에서 옥상궁이 걸어 나왔다.“짐은 안채에 두라. 교육은 곧 시작할 것.”“예, 상궁님.”새미는 짐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별궁은 전에 머물렀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당의 매실나무 아래에는 마른 잎 몇 장이 떨어져 있었다. 방은 3칸이었다. 그중 하나의 문이 열려 있었고, 방 안에 윤보옥이 앉아 있었다.보옥은 새미를 보자 책장을 덮었다. 옷깃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머리 장식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예전보다 단정해진 것이 아니라, 단정함을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단 낭자.”“윤 아씨.”“다시 뵙습니다.”“저도요.”보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새미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둘 사이에는 방 한 칸만큼 거리가 있었지만, 인사말은 그보다 멀리 놓였다.“짐을 제가 옮겨 드릴까요?”방 밖에 서 있던 시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옥이 새미의 보따리를 보았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직접 들고 오셨으니, 직접 두시겠지요.”말은 공손했지만 더 물을 틈은 없었다. 새미는 보따리를 들고 빈방으로 향했다.“저는 괜찮습니다.”새미가 먼저 말하자 시녀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보옥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낮은 상과 방석이 놓여 있었다. 새미는 보따리를 벽 쪽에 두고 끈을 풀었다. 무명 치마를 꺼내 옷걸이에 걸었다. 허리춤의 맛숟가락은 손에 들었다가 다시 허리에 찼다. 궁에 있을 때는 장독을 만질 일이 없었다. 그때도 이 숟가락은 곁에 두었지만, 장맛을 볼 수는 없었다.“단 낭자.”보옥이 문밖에 서 있었다.“예.”“상궁님께서 교육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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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곶감

보옥의 말이 끝난 뒤에도 새미는 접시 위의 마지막 유과를 보았다. 가루가 손끝에 묻어 있었다. 보옥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렸지만 손가락은 펴지지 않았다.새미는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눌렀다. 숫자를 세려던 손끝이 나무에 걸렸다.“대충 아니야.”보옥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무엇이 대충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내가 여기 남아 있는 이유.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건 아니야.”“그렇다면 정하셨습니까?”“아직.”보옥은 입을 다물었다. 새미는 그 짧은 침묵을 급히 채우지 않았다. 빈궁 자리가 무서웠다. 궁에 들어가면 장독대와 할매를 두고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여전했다. 지난 생에 혼자 밥을 먹던 기억은 마음에 남아 있었다.하지만 그 두려움만으로 보옥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새미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다. 장을 지키고, 궁 안의 일을 살피고, 세자와 함께 다음 일을 생각했다. 그 모든 일을 자신이 고른 것처럼 말할 수는 없어도, 대충 넘긴 적은 없었다.“저는 자리를 원합니다.”보옥이 말했다.“윤 아씨는 그랬지.”“준비해 온 시간도 있습니다.”“알아.”“그런데 단 낭자께서는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후보로 남으십니다.”“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없어.”“원한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말하려고.”새미는 손을 상에서 떼었다. 손바닥에 유과 가루가 묻어 있었다. 새미는 그것을 치마에 닦지 않고 손가락으로 털었다.“나는 빈궁 자리가 싫기만 한 건 아니야. 무서운 거야.”보옥의 시선이 새미의 손에 잠깐 머물렀다.“무엇이 두렵습니까?”“궁에서 혼자 지내는 일.”새미는 그 말 뒤에 붙이려던 말을 삼켰다. 지난 생의 일은 누구에게도 꿈이라고만 했다. 보옥에게 모든 것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보태고 싶지도 않았다.“그리고 집에 있는 사람들과 장독을 놓치는 일.”“단 낭자께서는 장독을 궁으로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지금은 몰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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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식초

옥상궁의 말이 끝나자 보옥이 들고 있던 문서를 접었다.“잔치에 쓸 장은 후보들이 함께 살피기로 했습니다.”“함께 살피는 것과 맡는 것은 다르다.”옥상궁은 처마 밑 곶감 줄을 지나 중궁전 안으로 걸었다. 나인들이 바구니를 내려놓고 길을 비켰다. 새미는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눌렀다.“저희는 재료를 함께 확인하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확인할 것은 내가 내어 줄 것이다. 어디에 두고 어떻게 쓸지는 내가 정한다.”옥상궁은 문간에서 멈췄다. 가늘게 뜬 눈이 보옥의 문서에 닿았다.“후보들은 정해진 일을 하라. 장고에 들락거리며 장을 고르고 바꾸는 일은 맡지 말 것.”“아직 장을 고르지도 않았습니다.”“그러니 지금 정해 주는 것이다.”옥상궁의 목소리는 낮았다. 보옥은 문서를 다시 펼치지 않았다.“그렇다면 장을 살펴볼 때 저희도 곁에 있겠습니다.”“필요하면 부르겠다.”“장맛을 음식에 맞추려면 장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후보가 장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조리하는 나인들의 몫을 빼앗는 일이다.”“판단이 아니라 확인입니다.”새미가 말했다. 옥상궁은 새미를 보았다.“단 낭자는 장을 잘 안다고 들었다.”“제가 아는 만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그 말은 장을 고르겠다는 뜻으로도 들리는구나.”“장맛이 음식과 맞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보옥이 새미 쪽으로 문서를 조금 기울였다. 새미는 적힌 음식 이름을 짚었다. 된장을 쓸 음식과 간장을 곁들일 음식을 나누어 둔 목록이었다.“이 음식에는 간장을 따로 놓기로 했습니다. 장맛이 달라지면 음식의 간도 달라집니다.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그렇다면 나인에게 맡겨라.”“나인들도 장을 살필 수 있지만, 어떤 음식을 준비할지 정한 사람도 맛을 알아야 합니다.”옥상궁은 답을 하지 않고 문안으로 들어갔다. 소매가 문설주를 스쳤다. 그 안쪽에는 장을 보관하는 곳이 있었다. 새미는 그 문을 바라보다가 보옥에게 눈길을 돌렸다.“우리 몫은 아직 남아 있어.”“옥상궁께서 장을 내어 주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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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무

옥상궁의 손이 뚜껑 위에서 멈췄다.“무엇을 더 넣었다는 말이냐?”“식초요. 어제보다 시큼한 냄새가 강해졌습니다.”새미는 코를 막은 손을 내렸다.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콩을 삶은 냄새 아래로 식초 향이 퍼져 있었다. 어제는 혀끝에 먼저 닿았던 신맛이 오늘은 코에도 선명했다.보옥이 옹기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저는 어제보다 더 잘 모르겠습니다.”“윤 아씨는 여기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돼요. 옹기 가까이 오지 마세요.”“무슨 뜻이지?”옥상궁이 물었다. 새미는 옹기 입구를 살폈다. 간장 위에 얇은 기름막이 떠 있었다. 식초가 들어간 양을 눈으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누가 넣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대로 음식에 쓰면 안 됩니다.”“아직 맛도 보지 않고 단정하는구나.”“어제 맛을 봤습니다. 오늘은 냄새가 더 강해졌고요.”옥상궁은 뚜껑을 덮었다. 나인들이 상을 들고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잔치 음식을 옮겨야 하는데 장을 정하지 못해 손이 멈춘 참이었다.“준비한 간장을 쓰면 된다.”“이 간장이 준비한 간장입니다.”“그러니 쓰면 되겠구나.”새미는 맛숟가락을 꺼냈다. 옥상궁은 옹기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또 맛을 보겠다는 것이냐?”“제가 확인한 맛을 다시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확인해도 괜찮습니다.”“후보가 장맛을 따지는 일은 그만하라.”보옥이 새미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새미는 손을 들어 보옥을 막았다. 옹기 옆에는 씻어 둔 나무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새미는 그중 하나를 집었다.“제가 맛보겠습니다.”옥상궁이 말했다.새미는 숟가락을 내밀지 않았다.“옥상궁께서 직접 맛보시면, 제가 한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내가 장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장이 달라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옥상궁은 잠시 새미의 손에 든 숟가락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숟가락을 가져갔다. 옹기 뚜껑을 열고 아주 조금 떠서 입에 댔다.옥상궁의 턱이 굳었다. 숟가락은 천 위에 내려놓았다.“간장 맛은 난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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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배추

보옥의 손끝이 문서 모서리에서 멈췄다.“장을 몰라서라니.”“아씨가 장에 식초를 넣지 않았다는 뜻이에요.”“그건 알아들었어.”“그럼 됐어요.”“왜 나를 감싸느냐고 물었잖아.”새미는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꺼내 천으로 닦았다. 손잡이에 남은 국물 자국이 옅어질 때까지 문질렀다.“아씨는 장에 식초를 타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맛을 봐서 알아요.”“내가 안 했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식초를 넣은 손은 못 봤지만, 아씨가 장을 만지는 걸 봤어요. 장을 넣기 전에는 늘 물어봤잖아요. 어느 독에서 덜었는지, 얼마나 쓸 건지.”보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서를 쥔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그런데 내가 장을 모른다고 했지.”“그건 사실이니까요.”“그 말을 듣고도 편을 드는구나.”“모르는 것과 잘못한 건 다른 일이니까요.”새미는 맛숟가락을 허리춤에 넣었다. 보옥은 새미의 손을 보다가 제 손에 든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내가 장을 몰라도, 빈궁이 되려는 마음은 대충이 아니야.”“그것도 알아요.”“너는 떨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그랬어요.”“그러면 내가 이기면 네가 바라던 일이 되는 것 아닌가?”새미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보옥은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문서의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눌렀다. 잔치 음식 냄새가 아직 중궁전 안쪽에 남아 있었다. 된장과 무가 끓은 냄새 사이로 식초의 날카로운 기운이 희미하게 따라왔다.“제가 떨어지고 싶은 건 제 일이에요. 아씨가 잘못했다는 증거가 없는 건 다른 일이고요.”“그럼 내게 증거를 찾아 주겠다는 말이야?”“아씨와 같이 찾겠다는 말이에요.”“왜?”“제가 혼자 찾으면 아씨가 또 의심받을 테니까요.”보옥은 문서를 접어 품에 넣었다. 종이가 옷깃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좋아. 내가 사옹원 출납 장부를 볼게.”“장부를 볼 수 있어요?”“잔치에 든 재료는 내가 확인했어. 간장만 살핀 게 아니야. 출납 장부도 가져오라고 할 수 있어.”“그럼 저는 식초 맛을 확인할게요.”“식초를 어디서 구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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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동치미

중전의 말이 끝나자 새미는 맛숟가락을 손바닥 안에 넣었다. 보옥은 품에 넣었던 장부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옥상궁은 고개를 숙였고, 처소의 나인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중전은 보옥과 새미를 번갈아 보았다.“마마, 잔치에 올린 장이 시큼했던 일은 아직 살필 게 남았습니다.”보옥이 먼저 대답했다.“누가 장을 건드렸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옥상궁마마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그래. 확인한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누어 둔 것은 잘했다.”중전은 장부를 보옥에게 돌려주었다. 보옥이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삼간택은 오늘 열지 않겠다.”새미의 손가락이 맛숟가락 손잡이를 눌렀다.“마마, 언제로 미루십니까?”“열흘 뒤로 하겠다. 그 사이에 잔치 일은 더 살피고, 후보들도 준비를 마쳐라. 삼간택은 10월 10일에 열겠다.”“분부대로 하겠습니다.”보옥은 허리를 숙였다. 새미도 고개를 내렸다. 열흘이라. 새미가 세지 않아도 날짜는 똑똑히 들렸다. 손가락이 숟가락 손잡이를 놓았다.중전은 옥상궁을 보았다.“잔치에 쓴 장은 궁 장고에서 다시 살펴라.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장고의 물품도 확인해 두고.”“예, 마마.”옥상궁은 짧게 대답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거의 없었다. 다만 나인을 향한 눈길이 잠깐 머물렀다. 나인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꼼짝하지 않았다.“단 낭자와 윤 아씨도 장고를 살펴라. 두 아이가 함께 확인한 일이다. 각자 본 것을 따로 적어 두면 되겠구나.”“예, 마마.”새미가 대답했다. 보옥은 장부를 가슴에 안았다.중전이 자리를 거두자 사람들은 각자 손에 든 것을 챙겼다. 보옥은 장부를 놓치지 않으려 품 안쪽으로 넣었다. 새미는 맛숟가락을 허리춤에 넣고, 천을 한 번 접어 손에 쥐었다. 장고로 가는 동안 보옥은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 새미도 식초 맛에 관해 더 말하지 않았다.궁 장고의 문이 열리자 서늘한 기운이 뺨에 닿았다. 독이 줄을 맞춰 놓여 있었다. 옹기마다 뚜껑이 덮였고, 입구에는 보관 날짜와 용도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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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김

“저하, 옥상궁 처소에서 이상한 편지 꾸러미가…”강내관은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세자는 새미와 강내관을 번갈아 보았다. 새미의 손에는 천이 들려 있었고, 세자의 앞에는 동치미를 맛본 그릇이 놓여 있었다.“무슨 꾸러미요?”새미가 물었다.강내관은 세자에게 허락을 구하듯 고개를 숙였다. 세자는 짧게 턱을 끄덕였다.“옥상궁 처소의 나인 방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사옵니다. 옷가지 밑에 두고 가린 모양입니다.”“무엇이 들었소?”“쪽지들이옵니다. 묶여 있었고, 받는 사람은 단 낭자로 적혀 있사옵니다.”새미의 손이 천 위에서 멈췄다. 세자의 시선이 강내관의 손으로 향했다. 강내관은 품에서 천으로 싼 꾸러미를 꺼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꾸러미였다. 묶은 끈이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두 번 지어 놓았다.“그대로 가져왔사옵니다. 아직 열어 보지는 않았습니다.”“누가 찾았소?”“청소를 맡은 나인이 먼저 보았사옵니다. 옷을 꺼내다 안쪽에 넣어 둔 것을 발견했다고 하옵니다. 제가 확인하고 가져왔습니다.”“옥상궁은 알고 있소?”“아직 알리지 않았사옵니다. 처소를 정리하는 일이 끝나기 전에 나인이 제게 알렸습니다.”강내관은 꾸러미를 세자에게 내밀었다. 세자는 바로 받지 않았다. 새미를 먼저 보았다.“단 낭자에게 온 것이라 했소.”“저에게 온 쪽지라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새미는 천을 상 위에 놓았다. 손끝에 장고에서 쓰던 천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동치미 국물 냄새가 옅게 섞여 있었다. 새미는 손을 닦고 꾸러미 앞에 섰다.“저하께서 먼저 보시겠습니까?”“그대가 받아야 할 것이오.”세자가 꾸러미를 새미 쪽으로 밀었다. 새미는 천 매듭을 살폈다. 끈은 오래 묶여 있었는지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바깥 천에는 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이 안에 든 쪽지가 전부 저에게 보내신 것입니까?”“그렇소.”“언제 보내신 것입니까?”“6월 8일에 처음 썼소. 그 뒤에 몇 장 더 보냈소.”새미는 매듭을 풀다 손을 멈췄다.“그 쪽지들을 제가 받은 적은 없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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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들기름

새미는 쪽지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종이가 구겨지지는 않았다. 손가락 자국만 얕게 남았다.“저하께서는 그 꿈에서도 제게 쪽지를 보내셨습니까?”세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상 위에 펼쳐진 종이를 한 장씩 모았다. 접힌 자국에 맞춰 종이를 눌렀다.“그 꿈이 어떤 꿈인지 아직 다 듣지 못했소.”“말씀드리겠습니다.”“그대가 말하고 싶다면 들을 것이오.”강내관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주먹밥 접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지금 치우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냥 두자니 김 조각이 눈에 밟혔다.“강내관님.”“예, 낭자.”“이 쪽지들은 제가 가져가도 됩니까?”“물론이옵니다. 발견한 그대로 보관해 두었사오니, 단 낭자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되옵니다.”“저하께서도 괜찮으십니까?”“그대에게 온 것이오. 그대가 가지는 게 옳소.”새미는 쪽지를 모아 천에 쌌다. 끈은 묶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펼쳐 볼 수도 있었다.세자는 상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장고 앞에 가겠소?”“예. 그곳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러시오.”강내관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자 접시 위의 김 조각이 움직였다. 강내관은 손으로 눌러 잡고는 얼른 접시를 품에 들었다.“이것도 가져가겠사옵니까?”“그건 제가 먹다 남긴 것입니다.”“그러하오면 소인이 치우겠사옵니다.”“그대로 두세요. 김은 아직 먹을 수 있습니다.”강내관은 잠깐 접시를 보았다. 세자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 그는 접시를 든 채 새미를 따라갔다.장고 앞은 조용했다. 문 옆에 세워 둔 등잔이 바닥을 비췄다. 새미는 문지방 바깥에 서서 천 꾸러미를 품에 안았다. 세자는 새미 옆으로 다가오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 멈췄다. 강내관은 접시를 든 채 문 옆에 섰다.“여기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그대가 편한 곳이면 어디든 괜찮소.”“꿈에서는 제가 세자빈이었습니다.”세자는 새미의 얼굴을 살폈다. 새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제가 열여덟 살에 간택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궁에서 7년을 살았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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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참깨

새미는 종이 끝에 묻은 기름 자국을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는 멀쩡했다. 세자의 말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그 말이 믿을 만한지는 쪽지로 알 수 없었다. 사람 손으로 건네는 말이라면, 전보다 조금 나을지도 몰랐다.“저하.”“말하시오.”“제가 믿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그렇소.”“그럼 이번에는 제 일을 함께해 주십시오.”세자의 왼쪽 눈썹이 먼저 올라갔다.“무슨 일이오?”“옥상궁 처소로 쪽지를 보낼 겁니다. 옥상궁이 직접 읽게 만들겠습니다.”세자는 곧바로 묻지 않았다. 새미는 그 침묵이 허락도 거절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자기가 먼저 할 말을 마저 해야 했다.“쪽지에는 염씨장전에서 남은 장을 궁 장고로 들이는 날을 적겠습니다. 옥상궁이 그 내용을 믿고 움직이면, 누가 쪽지를 가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미끼를 놓겠다는 것이오.”“예. 제가 장맛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쪽지가 어디로 가는지 봐야 합니다.”“그대가 직접 옥상궁 처소에 갈 생각이오?”“아닙니다. 옥상궁이 제게서 쪽지를 받으면 의심부터 할 테니까요.”세자는 새미가 쪽지를 쥔 손을 봤다. 새미는 손을 펴서 종이를 상 위에 놓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면 종이가 구겨졌다. 이번에는 구기지 않았다.“누가 가져가게 하겠소?”“옥상궁 처소 나인을 거치게 할 겁니다. 쪽지가 그 손을 떠나지 않게 살피겠습니다.”“그 나인이 위험해질 수도 있소.”“나인에게는 쪽지 내용을 알려 주지 않을 겁니다. 전달하라고 시키지도 않겠습니다. 눈에 띄게 두고, 나인이 발견하면 어디로 가져가는지 볼 생각입니다.”“그대도 그 길을 지켜보겠소?”“예.”“내가 곁에 있겠소.”“저하께서는 쪽지를 쓰시면 됩니다.”“그대가 내 글씨를 써도 된다고 허락하겠소?”“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야 옥상궁이 믿을 겁니다.”“새미가 정한다면 그리하겠소.”―10월 4일, 별궁의 작은 상 위에는 종이와 붓이 놓였다. 새미는 벼루에 물을 조금 붓고 먹을 갈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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