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궁 대문이 열렸다. 새미는 문턱 앞에서 짐 보따리를 고쳐 들었다. 보따리 안에는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었다. 허리춤의 숟가락은 빠지지 않았는지 손으로 한 번 눌러 확인했다.“단 낭자, 안으로 드시지요.”강내관의 목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렸다. 새미는 고개를 돌렸다. 강내관은 세자를 배웅하러 온 참인지, 문밖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세자는 없었다. 그 대신 별궁 안쪽에서 옥상궁이 걸어 나왔다.“짐은 안채에 두라. 교육은 곧 시작할 것.”“예, 상궁님.”새미는 짐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별궁은 전에 머물렀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당의 매실나무 아래에는 마른 잎 몇 장이 떨어져 있었다. 방은 3칸이었다. 그중 하나의 문이 열려 있었고, 방 안에 윤보옥이 앉아 있었다.보옥은 새미를 보자 책장을 덮었다. 옷깃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머리 장식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예전보다 단정해진 것이 아니라, 단정함을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단 낭자.”“윤 아씨.”“다시 뵙습니다.”“저도요.”보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새미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둘 사이에는 방 한 칸만큼 거리가 있었지만, 인사말은 그보다 멀리 놓였다.“짐을 제가 옮겨 드릴까요?”방 밖에 서 있던 시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옥이 새미의 보따리를 보았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직접 들고 오셨으니, 직접 두시겠지요.”말은 공손했지만 더 물을 틈은 없었다. 새미는 보따리를 들고 빈방으로 향했다.“저는 괜찮습니다.”새미가 먼저 말하자 시녀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보옥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낮은 상과 방석이 놓여 있었다. 새미는 보따리를 벽 쪽에 두고 끈을 풀었다. 무명 치마를 꺼내 옷걸이에 걸었다. 허리춤의 맛숟가락은 손에 들었다가 다시 허리에 찼다. 궁에 있을 때는 장독을 만질 일이 없었다. 그때도 이 숟가락은 곁에 두었지만, 장맛을 볼 수는 없었다.“단 낭자.”보옥이 문밖에 서 있었다.“예.”“상궁님께서 교육을
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