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80 챕터

21화. 두부

새미의 말이 떨어지자 가희가 들고 있던 다식 조각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보옥도 간장 종지를 바라봤다.“단 낭자 댁 장이라는 뜻입니까?”“맛이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동일한 독에서 덜어 왔다는 뜻은 아닙니다.”새미는 말끝을 낮췄다. 혀끝에 남은 맛을 다시 살피듯 입을 다물었다. 짠맛이 먼저 났고, 뒤에 묵은 장의 단맛이 붙었다. 끝에 남는 향도 익숙했다. 장독대 맨 앞줄 가운데, 씨간장 독의 뚜껑을 열 때마다 맡던 향과 닮았다.가희가 새미의 얼굴을 살폈다.“그럼 할머니가 담그신 장이 궁에 온 걸까?”“그건 아직 몰라.”“그런데 왜 우리 할매 장이라고 했어?”“맛이 똑같아서.”“한 번 먹고도?”“한 번 먹고 다 아는 건 아니야. 그래도 이 맛은 알아.”새미는 자기 말을 고쳐 말하지 않았다. 맛을 안다고 해서 어디서 왔는지까지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장맛을 맞히는 혀가 가끔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보옥이 종지 옆에 놓인 작은 숟가락을 내려다봤다.“궁에서 쓰는 장은 여러 곳에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담그면 맛이 비슷할 수도 있지요.”“그럴 수 있어요.”새미는 보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집집마다 담그는 법이 달라도 오래 익은 장에는 비슷한 맛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미가 방금 맛본 간장은 비슷한 정도가 아니었다. 입안에 남은 향이 씨간장 독의 뚜껑 안쪽에 밴 냄새와 같았다.상 위를 치우러 온 궁인이 종지에 손을 뻗었다. 새미는 숟가락을 먼저 거두었다.“잠시만요. 이 간장은 어디서 가져왔습니까?”궁인의 손이 멈췄다.“궁 장고에서 받았습니다, 낭자.”“어느 가게에서 들어온 것인지도 적혀 있습니까?”“그것까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물목에 적혀 있을 겁니다.”“물목은 어디에 있습니까?”궁인은 대답을 고르듯 잠깐 입을 다물었다. 새미가 종지를 품에 넣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가희가 다식 접시를 제 쪽으로 슬쩍 당겼다. 그 동작은 새미를 도우려는 뜻이었지만, 다식 접시는 간장 종지와 한 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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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묵은 간장

“혀가 길면 궁에서 오래 못 산다.”옥상궁이 돌아선 뒤에도 새미는 물목 앞에 서 있었다. 종이 묶음은 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고, 새미의 손은 치맛자락을 누르고 있었다.가희가 새미의 옆으로 다가왔다.“방금 말, 너한테만 한 거지?”“너한테 한 말이야.”“그런 것 같다는 말은 또 뭐야. 분명히 너한테 했잖아.”“그럼 분명히 나한테 한 거네.”가희는 입술을 다물었다. 새미의 대답은 맞았지만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는 않았다.보옥이 물목의 접힌 귀퉁이를 살펴봤다. 옥상궁이 손으로 눌러 펴 둔 자리였다.“그 말이 위협이었는지 충고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충고라면 참 살벌하네요.”가희가 말하자 보옥은 물목에서 시선을 들었다.“궁에서 오래 살고 싶다면 말을 삼가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그럼 혀가 길다고 하지 말고 말을 삼가라고 하면 되잖아요.”“둘 다 말을 삼가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가희는 손가락으로 고름을 만졌다. 손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새미는 그 손을 봤다가 제 손등으로 시선을 내렸다. 장독을 닦으며 생긴 얕은 흉터가 두 줄 보였다.“내가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한 적은 없어.”“그건 알아.” 가희가 말했다. “네가 아는 걸 모른다고 한 적도 없고.”“그럼 됐어.”“그게 끝이야?”“응.”가희는 새미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폈다. 새미는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치맛자락 아래로 숨겼다. 하나, 둘. 숫자를 세려다 멈췄다. 옥상궁의 말에 숫자를 붙이면 오히려 더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보옥은 상 위의 물목을 옥상궁이 가져간 방향으로 밀었다.“말을 조심하는 것과 확인을 그만두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나도 알아.”“그럼 무슨 일을 먼저 확인하시겠습니까?”새미는 물목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간장이 어디서 왔는지.”“물목에는 절반이 염씨장전에서 들어온다고 적혀 있었습니다.”“그건 가게 이름이지 독 이름은 아니야. 궁 장고 안에서 섞였는지도 몰라.”가희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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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누룩

“저하?”새미의 손에 든 맛숟가락이 멈췄다. 세자는 독 사이에 서 있었다. 쪽빛 도포 자락에 먼지가 묻었고, 오른손은 허리춤에 닿아 있었다. 검지와 중지의 굳은살이 어둠 속에서도 도드라졌다.“그대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소.”“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나도 그대가 이 독을 열 줄은 몰랐소.”새미는 얼른 숟가락을 손바닥 안에 감췄다. 세자의 시선이 독 뚜껑으로 향했다. 새미는 열린 틈이 없는지 살펴보고, 뚜껑을 손끝으로 눌러 제자리에 맞췄다.“제가 잘못했습니다. 허락 없이 들어왔습니다.”“그 말은 맞소.”“돌아가겠습니다.”“잠시만 기다리시오.”새미는 문 쪽을 향하던 발을 거두었다. 문밖에서 강내관이 기척을 죽이고 있었다. 아까부터 발소리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궁 장고 안에는 묵은 간장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새미가 맛본 독에서는 그 사이로 신맛이 났다.“저하께서도 장고를 살피러 오셨습니까?”“장고의 장이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소.”“어디서 들으셨습니까?”“사옹원에서 올린 말이오. 독 몇 개에서 신맛이 난다더군.”세자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누가 말했는지는 덧붙이지 않았다. 새미는 그가 더 말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그럼 이 독도 알고 계셨습니까?”“아니오. 방금 그대가 열어 본 것을 보았소.”“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맛을 보니 아직 심하게 상하지는 않았습니다.”새미는 숟가락을 소매 안쪽에 넣지 않았다. 장맛을 본 도구를 다른 데 닿게 하면 안 됐다. 작은 나무 숟가락을 손에 쥔 채 독의 옆면을 살폈다.“독에 표시가 없소?”“이 독에는 없습니다. 물목에 가게 이름은 적혀 있어도, 어느 독에 어느 장이 들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그럼 그대는 어떻게 독을 구분하오?”“냄새와 맛, 독의 놓인 자리로 봅니다. 집에서는 독마다 이름이 있고 장부도 있습니다.”“궁 장고에는 독이 몇 개 있소?”새미는 대답하기 전에 장고 안쪽을 훑었다. 어둠에 눈이 익자 독의 둥근 어깨들이 하나씩 드러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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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꿀떡

4월 20일, 별궁 마당에 다과상이 놓였다. 흰 꿀떡과 붉은 꿀떡이 낮은 접시에 가지런히 담겼고, 따뜻한 차가 작은 잔에 나뉘었다.가희는 붉은 떡을 집었다가 손을 멈췄다.“이거 안에 꿀 들었지?”“꿀떡이니 그렇겠지.” 새미가 말했다.“혹시 안 들었을까 봐 물어본 거야.”가희는 떡을 반으로 잘랐다. 꿀이 조금 흘러 손가락에 묻었다. 가희는 얼른 혀로 핥았다가 새미의 시선을 보고 손을 내렸다.“그렇게 먹으면 상궁님이 또 뭐라고 하실 텐데.”“지금은 안 계시잖아.”“곧 오실 수도 있고.”“그럼 그때 얌전하게 먹으면 되지.”가희는 붉은 떡을 입에 넣었다. 입안이 가득 차자 볼이 둥글어졌다. 새미가 흰 떡을 하나 집어 반으로 나눴다. 속에 든 꿀이 반짝였다.윤보옥은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도 작았다. 손끝은 잔의 테두리를 꼭 맞춰 잡았다.“두 분은 다과를 앞에 두고도 걱정이 많으시네요.”가희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떡을 삼키려는 듯 목을 움직였다.“걱정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새미가 해.” 가희가 말했다. “떡을 먹다가도 꿀이 몇 숟가락 들었을지 생각하거든.”“그런 적 없는데.”“그럼 지금 생각해 봐. 이 떡에 꿀이 얼마나 들었을까?”새미는 손가락에 묻은 꿀을 살폈다.“정확한 양은 몰라. 반죽에도 조금 넣었을 거야.”“보옥 아씨라면 답을 아실 텐데.” 가희가 보옥을 보았다. “예법 시험마다 1등이시잖아.”“예법 시험과 떡 속 꿀의 양은 관계가 없습니다.”“그렇지. 예법으로 꿀을 재면 떡이 딱딱해질 거야.”보옥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보옥은 웃음을 삼켰다.새미는 흰 떡을 접시 가운데 놓았다. 꿀이 손끝에 묻지 않게 떡의 가장자리를 잡았다. 보옥은 그 손을 잠깐 바라봤다.“단 낭자.”“네, 윤 아씨.”보옥은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가희가 차를 마시는 틈을 보고 새미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장맛을 볼 때는 무엇부터 확인합니까?”새미는 보옥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예법과 꿀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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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새우젓

“옥상궁, 염씨장전 사람이랑 담 밑에서 만나더라.”새미는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가희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은 채로 멈췄다.“언제 봤어?”“아까 낮에. 내가 물동이를 가지러 뒤뜰에 갔다가 봤어. 담장 틈으로 말소리가 들려서 잠깐 서 있었는데, 옥상궁이 먼저 돌아섰어.”“그 사람 얼굴은?”“잘 못 봤어. 키가 크고, 옷자락이 어두웠어. 염씨장전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확실하진 않아.”새미는 몸을 일으켜 가희를 마주 봤다.“그런데 염씨장전 사람이라고 했잖아.”“옥상궁 소매에서 나던 냄새가 그 사람한테도 났어. 장 냄새. 네가 말한 그 짠내 나는 냄새.”“냄새만으로는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어.”“알아. 그래서 확실하다고는 안 했어.”가희는 이불 끝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고름을 만지는 버릇이 밤에도 나왔다. 가희는 손끝을 잠시 움직이다가 이불에서 손을 뗐다.새미는 방 문 쪽을 봤다. 바깥은 조용했다. 옥상궁이 그 사람과 무엇을 나눴는지는 아직 모른다. 소매에 밴 냄새만으로 잘못을 정할 수도 없었다. 냄새가 나면 기억해 두고, 독을 보면 자리를 살피면 됐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내일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나도 그럴 생각이야.”“본 걸 더 확인할 때까지는.”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말이 끊겼다. 가희가 새미의 이불을 조금 끌어당겼다.“그런데 새미야.”“응?”“보옥 아씨가 세자빈이 되면 우리 둘 다 떨어지는 거지?”“그게 작전이잖아.”“그럼 보옥 아씨를 잘 붙여야겠네.”“붙이려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중전마마께서 보시게 하는 거야.”“그게 붙이는 거랑 뭐가 달라?”“우리가 밀어서 넘어뜨리는 건 아니잖아.”“말은 그럴듯하다.”“잠이나 자.”“네가 먼저 자.”가희는 눈을 감았지만, 손가락은 이불 끝을 꼭 쥐고 있었다. 새미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셋까지 세자 가희의 숨이 고르게 바뀌었다.새미는 등잔불을 바라봤다. 보옥은 세자빈 자리를 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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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골마지

보옥의 말이 부엌에 남았다.가희가 고름을 만지려다 손을 내렸다. 새미는 젖은 쪽지를 덮은 천을 바라봤다. 새우젓 냄새가 부엌에 퍼져 있었다.“맞아. 우리는 떨어지고 싶어.”가희가 먼저 말했다.보옥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런데 저를 세자빈으로 밀고 계십니까?”“밀려는 건 아니야.” 새미가 말했다. “아씨가 잘하는 일을 보여 드린 거야.”“그게 결국 제가 붙도록 돕는 일 아닌가요?”“붙을지는 중전마마께서 정하실 일이야.”보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새미는 천 끝을 눌렀다. 종이가 아직 축축했다.“새미 낭자와 연 아씨께서 저를 돕는 까닭은요?”“우리 둘이 떨어지고 싶으니까.”“그건 이미 들었습니다.”“보옥 아씨는 자리를 원한다고 했잖아.” 가희가 말했다. “그러면 잘하는 걸 보여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저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으셨고요.”“응.”보옥의 턱이 조금 들렸다.“저는 자리를 원합니다. 세자빈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하를 좋아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원할 수 있습니다.”“알아.” 새미가 말했다.“그런데 새미 낭자와 연 아씨께서는 제가 저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리를 밀어 주시는 건가요?”가희가 새미를 보았다. 새미는 천 위의 쪽지를 다시 눌렀다.“아니. 아씨가 그 자리를 원한다고 했으니까.”“그 말만 믿으시나요?”“그 말 말고는 아씨가 하신 말이 없어.”보옥은 소매 끝을 매만졌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손가락은 소매를 놓지 못했다.“저를 동정하시는 건 아니군요.”“아니야.” 새미가 말했다. “동정할 일이 아니잖아.”가희가 눈을 크게 떴다. 보옥은 가희를 보고 새미를 보았다. 잠시 뒤, 보옥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앞으로는 제게 먼저 물어보십시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알겠어.”“저를 대신해 중전마마께 말하지도 마십시오.”“그럴게.”“가희 아씨도요.”“나도 알았어.”“그리고 제 앞에서 작전을 짜실 때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가희가 입술을 오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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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수정과

새미는 “네, 상궁마마.” 하고 대답했다.“근신 방으로 가라. 허락 없이 문밖에 나서지 말 것.”“알겠습니다.”옥상궁은 더 말하지 않았다. 새미는 치맛자락에 묻은 흰 가루를 털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뒤에서 가희가 한 발 내딛는 소리가 났지만, 옥상궁의 기침에 멈췄다. 보옥은 말없이 새미를 바라봤다. 눈길이 한 번 닿았다가 떨어졌다.근신 방은 별궁 안쪽에 있었다. 새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걸쇠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새미는 문을 확인하고, 방 가운데에 놓인 작은 상 앞에 앉았다.“3일.”새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단오까지 남은 날도 3일이었다. 궁 장고의 장은 오늘도 그늘 밑에 있을 테고, 반들거리는 뚜껑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새미가 따로 빼 둔 뚜껑은 사라졌다. 증거를 감추려는 사람이 있는지, 누군가 치운 것뿐인지도 아직 몰랐다.장고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장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새미는 손을 펴 상 위를 살폈다. 종이도 붓도 없었다. 근신 방에 들어온 사람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대신 물그릇과 수정과가 놓여 있었다. 수정과 위에는 잣이 몇 알 떠 있었다. 새미는 사발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우선 마셔야지.”목이 말랐다. 새미는 수정과를 조금 마셨다. 계피 냄새가 코끝에 남고, 생강 맛이 혀에 닿았다. 달았다. 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강을 넉넉히 넣어 끝에 알싸한 맛이 남았다.새미는 사발을 상에 놓고 손가락을 접었다.“하나, 장을 살핀다. 둘, 뚜껑이 바뀐 걸 보인다. 셋, 장고를 옮긴 까닭을 묻는다.”말로 꺼내니 순서가 생겼다. 하지만 장고에 들어가지 못하면 첫째부터 할 수 없었다. 옥상궁에게 다시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허락 없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중전에게 직접 말씀드리면 됐다. 장이 상하는 일은 후보의 처소 안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단오 수라에 올라갈 장이었다. 새미는 장맛을 확인했고, 뚜껑이 바뀐 뒤 습기가 갇혔다는 것도 봤다. 다만 지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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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세 종지

“저하 무거워요.”새미의 말이 끝난 뒤에도 담 너머는 잠잠했다. 세자는 담을 넘지 않았다. 새미는 잠깐 손을 뻗은 채 있다가 천천히 팔을 내렸다.“중전마마께 여쭙겠소.”“제가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대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하겠소.”새미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세자는 약속을 부풀리지 않았다. 중전이 허락할지까지 대신 정하지도 않았다.새미는 빈 사발을 상 위에 놓았다. 가희가 가져온 수정과는 다 마셨고, 보옥이 둔 곶감은 몇 조각 남았다. 새미는 곶감을 보자기를 접어 덮었다. 근신이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했다.―중전은 상 위의 찻잔을 한쪽으로 밀었다.“단 낭자, 장고의 장이 상하기 시작했다고 했느냐?”“예, 마마.”“장고에 들어가 보았다고도 들었다.”“허락 없이 들어간 것은 제 잘못입니다.”새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변명부터 하지 않았다. 장고에 들어간 일은 잘못이었다. 장이 상할 것을 보고 그냥 돌아서지 못한 일도 사실이었다.중전은 새미의 얼굴을 살폈다.“그런데도 장고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예. 장이 상하는 까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전마마께서 직접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무엇을 확인하라는 것이냐?”“이름을 가린 장 세 종지를 맛보아 주십시오.”중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내가 장을 맛보면 네 말이 증명되느냐?”“제가 말한 장이 어느 것인지 맞히겠습니다. 맛으로 구별한 뒤, 왜 상하는지도 설명드리겠습니다.”새미는 손가락을 무릎 위에서 접었다. 하나, 둘. 손을 더 움직이지 않았다.“맞히지 못하면 어쩌겠느냐?”“제가 잘못 짚은 것입니다. 그러면 근신을 그대로 받겠습니다.”“맞히면?”“장고를 살펴볼 기회를 주십시오. 허락 없이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중전은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그 장 세 종지는 어디서 가져오느냐?”“장고를 맡은 사람에게 부탁해 주십시오. 하나는 원래 동쪽 볕 드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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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앵두

중전의 말이 끝나자 새미는 무릎 위에서 폈던 손을 내렸다.“장고에 들어갈 사람을 정해 주십시오, 마마.”“네가 혼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들었느냐?”“예. 허락받은 사람과 함께 살피겠습니다.”“장고를 맡은 이들과 사옹원에 말해 두겠다. 오늘은 볕이 있을 때 옮길 수 있도록 하라.”새미는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감사는 장이 상하지 않은 뒤에 들어도 늦지 않다.”중전은 곁에 선 나인을 불렀다. 장고 문을 열 사람을 부르고, 그곳에 있는 뚜껑을 살피게 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새미는 중전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그늘에 놓인 독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장의 표면과 뚜껑 안쪽을 보고, 볕 드는 자리로 옮기겠습니다.”“옮긴 뒤에는?”“장부에 독 이름과 자리를 적겠습니다. 뚜껑도 어느 독에 썼는지 함께 적겠습니다.”“좋다. 네가 본 것을 적고, 네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적어라.”“예, 마마.”중전은 새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장고 앞에 도착했을 때는 햇빛이 동쪽 담을 넘어 바닥까지 들어와 있었다. 새미는 문턱에서 발을 멈췄다. 허락 없이 들어왔던 날과 달리, 이번에는 문밖에 장고를 맡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단 낭자, 중전마마의 분부대로 함께 들어가겠습니다.”“고맙습니다. 먼저 서쪽 담 밑에 놓인 독을 보여 주십시오.”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장 냄새가 새미의 코에 닿았다. 신맛이 지난번보다 진해졌는지 확인하려 새미는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코끝에 짠 냄새가 먼저 오고, 그 뒤에 시큼한 기운이 남았다.“지난번보다 신맛이 강해졌습니다.”장고를 맡은 사람이 눈썹을 모았다.“제가 맡기에는 비슷합니다.”“독 가까이에서 맡아 보십시오. 입을 다물고 코로만요.”그는 새미가 가리킨 독 앞에 섰다. 뚜껑 가장자리에 손을 대지 않고 몸을 조금 숙였다.“이제 알겠습니다. 뚜껑 안쪽에도 물기가 있군요.”“예. 장에 섞이지 않았더라도, 물기가 오래 고이면 독 안이 마르지 않습니다.”새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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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오미자

새미는 세자의 소매 끝을 바라봤다. 숟가락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오래된 물건입니까?”“그렇소.”“그럼 잃어버리면 곤란하시겠네요.”“그렇소.”세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새미도 묻지 않았다. 숟가락을 꼭 쥔 세자의 손이 잠시 소매 안에서 멈췄다가 내려왔다.장고 안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잦아들었다. 문이 닫히자 새미는 장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장고 앞 마당에는 볕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낮에 맡았던 장 냄새는 그대로였지만, 서늘한 공기가 섞여 조금 덜 짰다.“장부를 다 확인했소?”“예. 독 이름도, 새 자리도 모두 맞습니다.”“그럼 오늘 일은 끝났소.”“오늘 할 일은요.”새미는 장부 모서리를 한 번 눌러 반듯하게 했다. 내일 다시 살펴야 할 독이 있었다. 골마지가 생긴 독은 맛이 어떻게 달라질지 확인해야 했다. 뚜껑 안쪽에 물기가 맺혔던 독도 그대로 둘 수 없었다.세자는 새미가 장부를 품에 넣는 모습을 보았다.“아직 마음을 놓지 못하겠소?”“장고를 살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오늘 옮긴 독은 볕을 받을 것이오.”“볕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그렇겠소.”“뚜껑을 바꾸어도 장이 이미 상하기 시작했으면 다시 맛을 봐야 합니다. 냄새도 확인하고, 표면도 살펴야 합니다.”“그대가 내일 확인하면 되겠소.”“예.”새미는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허락받은 일은 해야 했다. 세자는 그 대답을 듣고 더 재촉하지 않았다.그때 마당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보옥이 작은 보자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걸어왔다. 뒤에는 가희가 따라왔다. 가희는 보옥의 손에 든 보자기를 자꾸 바라봤다.“단 낭자, 아직 장고 앞에 계셨군요.”보옥은 새미에게 인사한 뒤 세자에게도 예를 갖췄다. 가희도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세자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엇을 가져왔소?”세자가 보자기를 보며 물었다.“예법 시험에서 받은 상입니다. 오미자청을 조금 나누어 주려고 가져왔습니다.”보옥은 보자기를 풀었다. 작은 병이 나왔다. 병 안에는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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