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80 챕터

51화. 송편

새미가 손에 묻은 쌀가루를 털자 할매가 반죽 그릇을 앞으로 밀었다.“손 털기는 이따 하고 이것부터 치대라. 송편이 손바닥에서 갈라지믄 안 된다.”“아까는 너무 치대면 질어진다면서요.”“그랬제. 그러니 딱 알맞게 치대야제.”“그게 제일 어려운 말인디.”끝분은 대꾸 대신 반죽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말랑한 반죽이 손가락 사이로 조금 삐져나왔다. 끝분은 그만큼 떼어 새미 앞에 놓았다.마당에서는 두식이 솔잎을 다듬고 있었다. 밤톨이는 솔잎을 가지런히 놓다가 하나를 집어 코에 댔다.“누나, 이거 먹는 거야?”“송편 밑에 까는 거야.”“그럼 솔잎 맛이 들어?”“조금은.”“그럼 먹어 봐도 돼?”“안 돼.”밤톨이는 솔잎을 내려놓았다. 그 옆에서 단두식이 송편소를 담은 그릇을 옮겼다. 팥소가 그릇 가장자리까지 차 있었다.“아부지, 그거 너무 많이 담았어요.”“사람이 모자랄까 봐 넉넉히 담았지.”“송편 안에 넣을 소예요.”“알아유. 그러니 넉넉히 담았잖여.”“그릇이 넉넉하다고 송편도 넉넉해지는 건 아니여.”두식은 그릇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털었다. 새미가 보고 있자니 아버지는 팥소를 한 숟가락 더 퍼서 자기 입에 넣었다.“아부지.”“그릇이 무거워서 좀 덜었슈.”끝분이 새미 쪽으로 반죽을 더 밀었다.“저 양반 입에 들어간 건 그릇 무게에서 빼면 안 된당께.”두식은 입을 다물고 웃었다. 밤톨이는 솔잎을 놓은 자리를 다시 살폈다. 한 장이 비뚤어져 있었다. 아이는 손끝으로 솔잎을 맞추고는 제 손바닥의 쌀가루를 털었다.물안골 집 부엌에는 쌀가루와 찐 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궁이에는 불을 살려 두었고, 시루 위에는 젖은 보자기를 펼쳐 놓았다. 송편을 빚어 시루에 넣고 솔잎을 깔 차례였다. 새미는 반죽을 조금 떼어 손바닥 안에서 둥글렸다.“이만큼씩 떼면 되겠지요?”“그렇제. 너무 크게 떼면 속이 비고, 너무 작게 떼면 팥이 밖으로 나오고.”끝분이 새미의 손을 보았다.“손목에 힘을 빼라. 장독 닦을 때처럼 꽉 쥐면 반죽이 숨을 못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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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대추

“그렇소.”“그 아이가 준 것이요?”“그렇소.”끝분은 세자의 손을 살폈다. 숟가락 손잡이에는 작은 글자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세자는 손바닥으로 손잡이를 가리지 않았다.“아직도 갖고 다니는구려.”“버릴 까닭이 없었소.”끝분은 더 묻지 않았다. 세자는 국밥을 한 숟가락 더 떴다. 밥알이 국물에 젖어 숟가락 안에 얌전히 담겼다.―8월 20일, 물안골.끝분은 마당에 멍석을 펴고 대추를 펼쳤다. 꼭지가 붙은 대추는 한쪽에 모으고, 벌어진 것은 따로 골랐다. 햇볕을 받는 쪽이 고르게 마르도록 대추를 한 알씩 굴렸다.“할매, 이쪽은 다 뒤집었어요.”새미가 멍석 끝을 살피며 말했다.“다 뒤집었으면 여기 이쪽도 봐라. 꼭지가 바닥에 붙은 게 있잖여.”새미는 대추를 한 알 집어 뒤집었다. 꼭지가 멍석에 눌려 있었다. 손끝으로 대추를 굴리자 햇볕을 받은 면이 드러났다.“이런 건 꼭지가 밑으로 가도 잘 마르지 않아요?”“마르기는 허제. 근디 그 밑에 물기가 남으믄 곰팡이가 붙을 수도 있당께.”끝분은 대추를 집어 손톱으로 꼭지 주변을 눌렀다. 말랑하게 들어간 대추를 바구니에 던지지 않고 따로 놓았다.“이건 벌써 상한 거예요?”“상한 건 아니고, 먼저 먹어야 할 것들이제. 버릴 것하고 먹을 것을 한데 담지 말어라.”새미는 대추를 하나씩 골라 바구니에 놓았다. 손등에 남은 장독 흉터에 햇볕이 닿았다. 바구니에서는 잘 익은 대추 냄새가 났다.끝분은 무릎에 올려 둔 『물안장 장부』를 펼쳤다. 대추를 말린 날과 거둬들일 때를 적으려는 참이었다. 장부의 낡은 종이가 바람에 들렸다. 끝분은 손바닥으로 눌러 놓았다.장부에는 여러 장이 묶여 있었다. 그 사이, 한 장이 찢겨 나간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남은 종이 끝은 거칠고 희미하게 뜯겨 있었다.끝분의 손이 그 자리에 멎었다.새미는 바구니에 대추를 놓다가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찢긴 자리를 덮고 있었다. 끝분은 장부를 덮었다.“그 장은 새로 쓰면 안 되겄냐.”끝분이 말했다.새미는 대답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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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밤

새미는 방에 적힌 문장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장부가 온전하지 않으면 출전하지 못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찢긴 장이 어디 있는지는 확인해 보겠습니다.”관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끝분은 부채를 접어 허리춤에 꽂았다.“그 장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아직은 몰라요. 아부지가 염대길에게 장부를 넘겼다고 했잖아요. 그때 장부에 있던 종이라면 염씨장전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두식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내가 꼼꼼히 안 봐서 그렇지, 장부를 통째로 넘겼슈. 찢어진 자리가 언제 생겼는지는 몰라유.”“그럼 그때 염대길이 받았을 때는 찢어진 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그려. 내가 그걸 확인했어야 했는디.”끝분이 부채를 손에 쥐었다. 손잡이가 손바닥에 눌렸다.“확인 안 한 건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제. 장부를 찾아야 한다.”“찾아볼게요.”“염대길이 순순히 내놓겄냐?”“내놓게 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새미는 방에 적힌 문장을 다시 훑었다. 장부가 온전하지 않은 집은 출전할 수 없다. 품평은 장맛으로 한다면서 종이를 내세웠다. 그 종이 한 장이 없으면 장을 내놓을 기회조차 없었다.두식은 갓을 바로잡았다. 한쪽으로 기운 갓이 손을 놓자 다시 비뚤어졌다.“내가 염대길한테 가서 물어볼까유?”“아부지가 먼저 가시면 염대길은 장부를 감추거나 없다고 할 거예요.”“그럼 어쩌면 좋대유.”“제가 물어볼게요.”끝분이 새미의 손목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부채를 쥔 손을 새미 앞에 내밀었다.“아가, 혼자 말부터 앞세우지 말어라. 그 집은 말 한마디로 장 한 독을 삼킬 사람이다.”“알아요.”“알면 더 조심혀.”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에 든 나무 맛숟가락이 허리에 닿았다. 손가락으로 주머니 입구를 눌렀다가 놓았다.“할매, 장부를 다시 한번 살펴봐 주세요. 찢긴 쪽에 적힌 게 뭔지 기억나는 게 있는지요.”“기억은 하고 있제. 근디 그걸 다시 적어도 원본은 아니여.”“그래도 제가 염대길에게 물을 때 필요해요. 어떤 장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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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고구마

염대길은 새미의 웃는 얼굴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우리 장부 한 장이 모자라는데, 혹시 보셨어요?”“내가 그걸 왜 봤겠소?”“아버지가 장부를 넘기셨으니, 염 사장님 댁에 남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두식은 새미의 뒤에서 갓을 고쳐 썼다. 갓은 손을 떼자마자 다시 한쪽으로 기울었다. 두식은 이번엔 바로잡지 않았다.염대길은 새미와 두식의 얼굴을 차례로 봤다.“장부를 넘긴 사람이 이제 와서 찾으러 온 거요?”“제가 찾으러 왔습니다.”“네가 넘겼소?”“아니요. 아버지가 넘기셨습니다.”두식이 한발 앞으로 나왔다.“그때 내가 넘긴 건 맞슈. 그 뒤에 어찌 됐는지는 모르고유.”염대길의 은가락지가 가게 문턱을 두드렸다. 똑, 똑. 가게 안에 늘어선 독들 사이로 장 냄새가 올라왔다. 새미는 숨을 들이마시지 않고 코끝만 움직였다. 가까운 독에서는 짠 냄새가 먼저 났다. 그 뒤에 단내가 희미하게 붙었다.“내가 받은 장부는 멀쩡했소.”“그럼 지금도 갖고 계세요?”염대길이 새미를 노려봤다.“내 장부가 왜 궁금하오?”“품평에 나가려고요. 물안장 장부가 온전해야 출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희 장부에 빈자리가 있어서, 그때 넘긴 장부에 그 종이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품평은 장으로 겨루는 자리요. 종이로 장사를 하겠다는 거요?”“장부를 대조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규정은 나도 읽었소. 그러니 그 장부가 어쨌다는 말이오?”“찢긴 장 한 장이 없으면 출전할 수 없다고 합니다. 혹시 염 사장님이 갖고 계시다면 확인만 하겠습니다.”“없다니까.”염대길의 대답은 빨랐다. 두식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새미가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아버지의 소매가 새미의 손등에 닿았다가 멈췄다.“없다는 말씀이시군요.”“내가 방금 했잖소.”“그럼 저희 장부에서 나온 종이도 못 보셨겠네요.”염대길의 은가락지가 문턱을 두드리는 일을 멈췄다.“그 종이가 네 집 장부에서 나왔다는 증거가 있소?”“아직은 없어요. 그래서 찾고 있습니다.”“증거도 없는데 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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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맑은 간장

염대길의 손가락이 장부 맨 앞장을 두드렸다. 종이 귀퉁이의 물결무늬가 새미의 눈에 들어왔다.“원조가 누군지 오늘 보자고.”염대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장부를 품에 끼웠다. 새미는 종이에서 시선을 거뒀다. 손끝이 허리춤의 맛숟가락을 찾았다가 멈췄다.“장부는 심사하실 때 내시면 됩니다.”“내가 알아서 하오.”“네. 심사에 필요한 장부라면, 안에서 확인하시면 되겠네요.”염대길의 굵은 은가락지가 장부 표지를 긁었다. 그는 새미를 한 번 더 노려본 뒤 품평장 안으로 들어갔다. 새미는 그 뒤를 따랐다.품평장 안에는 간장 단지들이 한 줄로 놓여 있었다. 단지마다 이름 대신 작은 표식이 붙었다. 심사를 맡은 사옹원 제조가 표식과 장부를 맞춰 보았고, 중전이 보낸 상궁은 종지의 자리를 살폈다. 종지는 여러 개였지만, 오늘 심사할 것은 간장이었다.끝분은 물안장 장부를 새미에게 건넸다. 새미가 장부를 받아 들자 끝분은 단지에 묶은 이름표를 한 번씩 만져 보았다.“매듭은 단단허다.”“네. 장부도 여기 있습니다.”“잘 챙겨라. 장맛은 입에 남아도 종이는 손에서 놓치면 안 돼.”새미는 장부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찢긴 자리에는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그 빈자리를 다시 살피려던 순간, 염대길이 자기 장부를 제조 앞에 내밀었다.“저희 장부도 대조해 주십시오. 오래전부터 이어 온 법을 적은 기록이오.”제조가 장부를 받았다. 염대길은 장부 맨 앞장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이 종이부터 보시면 됩니다.”새미의 손가락이 장부 가장자리를 꼭 눌렀다. 끝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조의 손이 종이를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장부를 먼저 대조하겠습니다.”제조는 염대길의 장부를 펼쳤다. 맨 앞에 붙은 종이가 드러났다. 종이 한쪽에 눌린 무늬가 보였다. 새미는 물결무늬를 알아보았다. 할머니가 장부에 자주 눌러 두던 무늬였다.그렇다고 지금 말할 수는 없었다. 종이의 무늬가 같아도, 누가 붙였는지는 확인해야 했다.염대길은 턱을 들었다.“보셨지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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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토장

새미는 제조의 물음이 끝나자 물안장 장부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먼저 장부를 맞춰 보아 주십시오.”염대길이 장부를 제 쪽으로 당겼다.“맛으로 흉내를 가려야지 종이로 가리겠다는 게요?”“장부도 심사에 들어갑니다.”“그렇다고 찢어진 장부를 내민다고 온전해지는 건 아니오.”“온전하지 않은 장부는 출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규정을 알고 있습니다.”새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장부의 찢긴 자리를 짚었다. 끝분이 그 곁에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두식은 갓을 누르던 손을 내려 장부 아래를 받쳤다.“새미 말이 맞습니다.”제조가 염대길의 장부를 바라봤다.“두 장을 대조하겠습니다. 염씨장전 장부를 이쪽에 놓으십시오.”염대길은 장부 표지를 잡은 채 손을 놓지 않았다.“무엇을 대조하겠다는 거요?”“물안장 장부에 찢긴 자국이 있습니다. 염씨장전 장부 맨 앞에 붙은 종이가 그 자리에 맞는지 확인하겠습니다.”“그 종이가 어찌 물안장 장부에서 나온 거라고 단정하오?”“아직 단정하지 않았습니다.”제조는 담담히 대답했다.“그러니 맞춰 보려는 것입니다.”염대길의 굵은 은가락지가 장부 표지를 두드렸다. 아까처럼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새미는 그 손가락을 보지 않고 종이 귀퉁이만 살폈다. 눌린 물결무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끝분이 장부를 쓸 때 종이 아래에 받치던 무늬였다.새미는 염대길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장부를 심사관께 맡겨 주십시오.”“내 장부요.”“심사에 내신 장부입니다.”“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염 사장님.”새미는 손바닥을 거둬 장부를 자기 가슴 쪽에 붙였다.“저는 찢긴 장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종이를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염대길의 눈이 가늘어졌다.“그 말이 그 말 아니오?”“아닙니다. 원본을 보전해야 하니까요. 심사관께서 직접 대조하시면 됩니다.”잠깐 말이 끊겼다. 품평장 안에는 종지를 내려놓는 소리와 사람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이름 가린 간장 종지들은 심사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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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고추장

“그 장은 이 집 서방이 팔아먹은 거요!”염대길의 목소리가 품평장 안에 울렸다. 심사대 앞에 놓인 장부가 그의 손아귀에서 구겨졌다.제조가 장부를 붙잡았다.“손을 놓으십시오.”“내 장부요.”“심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끝나지 않았으니 말하는 거요. 저 사내가 장을 넘겼소.”담장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품평장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렸다. 담장 위에 매달려 있던 밤톨이가 허둥지둥 내려왔다. 강내관이 아이의 어깨를 받쳐 땅에 세웠다.“여기는 아니 되옵니다. 아이고, 손에 흙이 묻었사옵니다.”“아저씨, 저기 우리 아부지 있어.”밤톨이가 두식 쪽을 가리켰다. 두식은 갓을 양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아까부터 휘어 있던 갓은 더 삐뚤어져 있었다.두식은 염대길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새미는 그 모습을 보며 장부에서 손을 뗐다. 아버지 대신 대답할 수는 없었다.끝분이 장부의 찢긴 자리를 내려다봤다. 굵은 손마디가 무릎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끝분은 두식 쪽으로 가지 않았다.“내가 넘겼슈.”두식의 목소리가 품평장 안에 퍼졌다.염대길은 눈을 가늘게 떴다.“무엇을 넘겼다는 거요?”“장부 한 장이유.”두식이 갓을 가슴에 안았다.“빚 대신 넘겼슈. 그때는 이 장 한 장이면 염 사장님이 빚을 미뤄 줄 줄 알았어유.”새미는 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갓 챙이 손가락에 눌려 휘었다. 두식은 곧 그 손을 풀었다. 갓을 더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단 낭자네 장법도 같이 넘겼소?”제조가 물었다.두식은 고개를 저었다.“장법은 안 넘겼슈. 장부 한 장만 줬어유.”“장부에 적힌 건 장법이 아니오?”염대길이 물었다.“독 이름하고 담근 때가 적혀 있었지.”“그걸 보고 따라 담글 수 있소.”“그럴 수는 있겠지유.”두식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염대길을 피하지 않았다.“근디 그 법은 우리 어머니 것이유.”끝분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새미는 할머니를 보았다. 끝분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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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장국

“물안골 단가, 1등.”제조의 말이 끝나자 품평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었다. 끝분은 눈을 감았다 떴다. 두식은 갓을 쓴 채로 한동안 서 있었다. 밤톨이가 먼저 달려와 새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누나, 우리 장이 제일이래.”“그래. 들었어.”“그럼 이제 장을 더 먹어도 돼?”“그건 1등이랑 상관없어.”밤톨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새미는 동생의 앞니 빠진 자리를 보고 웃었다. 끝분은 제조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두식의 갓을 다시 한번 살폈다. 두식은 이번엔 갓을 만지지 않았다.세자는 참관 자리에서 일어났다. 쪽빛 도포 소매에 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는 새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했소.”“저하께서도 오래 서 계셨습니다.”“그대가 품평을 치르는 동안 서 있는 것쯤은 괜찮소.”새미는 대답 대신 손에 든 나무 맛숟가락을 허리춤에 꽂았다. 품평장에서 맡은 장 냄새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 냄새를 씻으려면 집에 가서 손을 여러 번 닦아야 했다.제조는 품평 결과를 적은 문서를 접었다. 사옹원에서 온 관리가 염대길 앞에 서서 별도의 문서를 내밀었다. 염대길은 문서를 받아 들고도 펼치지 않았다.“납품권은 물안골 단가에 돌아갑니다. 염씨장전은 품평 기록과 장부 출처에 관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내가 장을 잘못 담갔다는 말이오?”“그 판단은 이미 품평으로 내렸습니다. 조사는 장부와 빚 문서에 관한 일입니다.”염대길은 은가락지를 낀 손으로 문서 끝을 구겼다. 사옹원 관리는 문서가 찢어지기 전에 손을 내밀었다.“그대로 두십시오.”“이 종이 한 장으로 장사꾼을 죄인 취급하는 거요?”“죄가 있는지는 조사 뒤에 정해질 일입니다.”염대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끝분이 두식의 갓을 고쳐 씌웠던 손을 무릎 옆에 내렸다. 그 손은 장부를 쓸 때 굳어 있었다. 두식은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품평장을 나서자 밤톨이가 새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먹을 걸 묻지 않았다. 새미는 아이가 제 손가락을 꽉 붙든 것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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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누룽지

세자는 손을 빼지 않았다. 새미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감싼 채 놋숟가락을 붙들고 있었다. 숟가락 손잡이의 ㄷ 자가 달빛을 받았다.“맞소.”새미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어떻게 저하 손에 들어갔습니까?”“그대가 내게 주었소.”“제가요?”“10년 전 겨울이었소.”새미는 세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장독대에서 불어온 밤바람이 무명 끈으로 묶은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손등의 얕은 흉터 두 개가 차가운 공기에 닿았다. 새미는 놓칠세라 숟가락을 다시 봤다.세자는 숟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새미의 손은 아직 그 손등에 얹혀 있었다.“내가 열두 살이었을 때요. 몰래 궁을 나왔소.”“혼자요?”“그랬소.”“열두 살에 궁을 몰래 나와요?”새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품평장에서 장맛을 설명할 때보다 더 또렷했다.“그때는 그게 괜찮은 생각인 줄 알았소.”“괜찮은 생각이 아니잖아요.”“지금은 알고 있소.”“그럼 그때는요?”“그때는 길을 잃었소.”세자는 장독대를 둘러봤다. 독은 세 줄로 놓여 있었다. 앞줄 가운데에 씨간장 독이 자리했다. 밤에는 독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미는 어느 독이 어디에 있는지 눈을 감고도 알았다. 세자는 그 장독대 뒤에 숨었다고 했다.“궁을 나와서 어디로 가려 했습니까?”“그건 기억나지 않소.”“기억이 안 나요?”“길을 잃은 뒤에는 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소. 어두웠고, 배가 고팠소.”세자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접었다 폈다. 활을 당기며 굳은살이 잡힌 손가락이었다. 그 손은 숟가락을 쥐었을 때도 어색하지 않았다.“장독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누가 찾으러 올까 봐 숨을 죽였지.”“그래서 검댕이 묻었어요?”“불을 피우려다 묻었소.”“불도 피우려고 했어요?”“불을 피우는 법을 몰랐소.”“저하, 궁에서는 뭘 가르친 거예요?”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왼쪽 눈썹이 먼저 올라갔다. 새미는 그 표정을 품평장에서도 보았다. 세자는 자신을 변명하려는 얼굴은 아니었다.새미는 붙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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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밥 한 공기

새미는 세자의 대답을 들은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상 위의 누룽지 그릇은 비어 있었다. 놋숟가락은 그 옆에 놓여 있었다.“그때 제 대답을 들으셨다고요?”“그렇소.”“초간택에서요?”“그렇소.”새미는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둘. 이번에는 셋까지 세었다.“세자께서는 품평을 지켜보셨지만, 제 대답을 들으신 것만으로 저를 붙이신 겁니까?”“내가 그대를 알아본 것은 그때요. 하지만 간택의 결과에 손을 댄 적은 없소.”“저를 알아보셨는데도요?”“알아보았다고 해서 결과를 바꾸지는 않았소. 그대의 답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도 내가 정할 일이 아니었소.”“그럼 제가 재간택까지 간 것도, 삼간택 후보가 된 것도 저 혼자 한 일이네요.”“그렇소.”“그때부터 제 편이셨다는 말은요?”“그대가 궁에서 불리한 일을 겪지 않게 살피고 싶었소. 하지만 그대를 붙이려고 평가를 바꾸지는 않았소.”새미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썹이 먼저 올라가 있지 않았다. 세자는 웃지 않았다. 새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꾸미지도 않았다.“왜 그때 바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그대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소. 내가 먼저 말하면 그대가 답을 바꾸거나, 간택을 포기할 수도 있었소.”“전 이미 떨어지려고 했어요.”“알고 있었소.”“알고도 가만히 계셨네요.”“그대가 원하는 일을 대신 정할 수는 없었소.”새미는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손등의 흉터에 밤바람이 닿았다. 장독대의 뚜껑은 모두 닫혀 있었다. 오늘 낮에 닦은 독마다 물기가 말라 가고 있었다.“그러면 제가 간장 한 종지라고 답했을 때, 바로 아셨겠네요.”“그랬소.”“저를요?”“그대가 했던 말도, 그 말투도 기억했소. 국밥을 건넬 때 그대는 간장 한 종지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소. 초간택에서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 그날의 아이가 그대라는 걸 알았소.”“저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말했어요.”“그대는 장 얘기를 할 때 늘 진지했소.”“그 말은 칭찬인가요?”“그렇소.”“제가 귀한 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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