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당한 영애가 등대지기가 되었더니 제독이 밤마다 불을 확인하러 온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80 챕터

11화. 클라우스의 선물

「등대 불빛이 마당의 돌을 훑고 지나갔다.꽃다발에서 진한 향이 났다.」나는 관리실 앞마당에서 일지를 덮었다. 렌즈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빛이 담장과 마당을 지나갔다.도리는 내 옆에서 간격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종이 모서리를 맞추던 손이 멈췄다.“누나, 마차가 와요.”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는 마당 입구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클라우스 비스가 내렸다.한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다른 손에는 서류철이 있었다.“노엘라.”“클라우스.”그는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네가 좋아하던 꽃이야.”나는 꽃을 받지 않았다. 향이 먼저 코에 닿았다. 곁에 있던 도리가 고개를 돌리더니 재채기했다.“에취!”“도리, 괜찮아?”“네. 향이 너무 세요.”클라우스가 꽃다발을 조금 내렸다.“미안하구나. 꽃향기에 민감한 줄은 몰랐어.”도리는 코를 문지르며 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괜찮아요. 제가 여기 있으면 될 것 같아요.”“꽃을 받아도 되는지는 노엘라가 정하는 일이야.”나는 도리에게 일지를 건넸다.“관리실 안에 두고 와 줘.”“네, 누나.”도리는 일지를 안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나는 클라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무슨 일로 왔어?”“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왔어.”“꽃과 서류도 같이?”클라우스는 서류철을 내려다봤다.“네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덜어 주려고 가져왔어.”“어떤 일을?”“등대 관리 말이야. 기름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잖아. 네가 계속 혼자 하다 보면 버티기 어려울 거야.”그는 다시 꽃을 내밀었다.“다시 생각해 보자. 파혼은 감정이 앞서서 한 일이었어. 지금이라도 서로 이야기하면 바로잡을 수 있어.”“무엇을 바로잡자는 거야?”“약혼을 말하는 거야.”“그 이야기는 끝났어.”클라우스의 손이 꽃다발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포장지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아무렇지 않다고 말한 적은 없어.”“그런데도 혼자서 여기까지 왔잖아.”“내가 맡은 일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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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물 섞인 탱크

「저장실 벽에 번진 불빛이 전보다 흐렸다.기름관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누나, 불이 약해졌어요.”도리가 저장탱크 옆에서 고개를 들었다. 손에 든 병이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병 안의 기름은 바닥에 얇게 남아 있었다.“심지가 꺼졌어?”“아니요. 켜져 있어요. 그런데 빛이 반쯤 줄었어요.”나는 탱크의 밸브를 잠갔다. 손잡이가 뻑뻑하게 움직였다. 관 안에서 한 번 더 물방울 소리가 났다.유리안 제독은 탱크 맞은편에 서 있었다. 군복 소매가 기름통에 스친 듯 어두운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는 내려다보지 않았다.“언제부터 약해졌습니까?”“조금 전이에요. 처음에는 불이 흔들리는 줄 알았는데, 계속 어두워졌어요.”도리가 병을 탱크 옆 선반에 내려놓았다. 병 밑에 검은 자국이 남았다.“제가 위쪽에서 불을 확인하고 내려왔습니다.” 유리안이 말했다. “조금 전에는 밝았습니다. 잠시 뒤 빛이 약해졌습니다.”나는 밸브 손잡이를 다시 확인했다.“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습니까?”“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문은 잠겨 있었어요.” 도리가 말했다. “제가 기름 병을 챙기러 왔을 때도요.”“열쇠는 누가 갖고 있지?”“저랑 누나, 마게 아저씨요.”도리는 말끝을 낮췄다. 나는 열쇠 꾸러미를 허리춤에서 꺼내 손바닥에 펼쳤다. 열쇠가 서로 부딪혀 짧게 울렸다.“문이 잠겼다고 안심하면 안 돼. 탱크는 안쪽에서 건드릴 수도 있어.”도리는 탱크 뚜껑을 보았다. 뚜껑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지 않았다. 기름을 확인할 때마다 열어야 해서 잠금장치가 없었다.“누나, 물이 들어간 거예요?”“확인해 보자.”나는 선반에서 빈 유리병을 꺼냈다. 밑바닥에 먼지가 붙어 있어 천으로 닦았다. 유리안이 옆으로 다가왔지만 병을 건네려 들지는 않았다.“제가 들겠습니다.”“괜찮습니다. 병 하나면 돼요.”탱크 옆에 달린 확인관에는 기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밸브를 아주 조금 열었다. 누런 기름이 먼저 흘러나왔다. 뒤이어 투명한 물이 가느다랗게 떨어졌다.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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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검은 돛

「등대의 긴 빛이 바다 위를 돌았다.검은 물결 사이에는 배의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나는 일지의 새 장을 펴고 꼭대기 창가에 섰다. 밤바람이 창틀 틈으로 들어왔다. 렌즈실에는 기름 냄새가 남아 있었다.“도리, 졸리면 잠깐 앉아 있어.”도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간 옆 작은 의자에 앉아 눈을 깜박였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었다.“안 졸아요.”“눈을 감고 있었잖아.”“생각하고 있었어요.”“무슨 생각?”“불빛이 몇 번 돌았는지요.”도리는 눈을 비볐다. 연필 끝이 무릎 위 종이에 닿아 있었다. 짧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나는 종이를 도리 쪽으로 당겼다.“몇 번인지 세는 것보다, 바다를 살펴보는 게 먼저야.”“알아요. 그냥 손이 심심해서요.”“그러다 기록에 선이 들어가면 지워야 해.”도리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연필로 그은 선을 지우개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종이가 얇아져 구멍이 날까 봐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이 정도면 괜찮죠?”“응. 다시 확인해.”도리는 종이를 빛에 비추었다. 지운 흔적이 남았지만 글씨를 쓸 자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도리는 종이를 접어 일지 아래에 놓았다.유리안 하그 제독은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열린 주머니 시계가 손바닥에 놓여 있었다. 렌즈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제독의 시선은 바다에 머물렀다.“오늘은 배가 없네요.” 도리가 말했다.“지금까지는.”“밤에 오는 배는 다 보이나요?”“불을 켜고 오면 보입니다.”“불을 안 켜면요?”제독은 시계 뚜껑을 닫았다.“그런 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도리는 곧장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뒤 창턱을 잡았다.나는 일지를 펼쳤다.“바다를 볼 때는 창에 붙지 마. 렌즈 빛이 눈에 직접 닿을 수 있어.”도리는 창턱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여기서 봐도 잘 보여요.”“눈이 피곤하면 말해.”“안 졸려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리의 고개가 조금씩 내려갔다. 그는 눈꺼풀을 들려고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연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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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감사 통지

「렌즈의 흰 빛이 관리실 창을 지나갔다.탁자 위 통지서가 바람에 들려 종이 끝을 떨었다.」9월 22일 월요일이었다.나는 통지서의 첫 줄을 다시 읽었다. 왕립 감독청의 인장이 종이 아래쪽에 찍혀 있었다. 인장 가장자리는 눌린 자국까지 선명했다.“누나, 무슨 내용이에요?”도리가 탁자 반대편에서 연필을 들었다. 글씨를 확인하려고 목을 길게 뺐다.“감사 통지야.”“등대 감사요?”“그래. 감사일은 9월 29일이야.”도리는 손에 든 연필을 탁자에 내려놓았다.“왜요?”“비스 쪽에서 고발했대. 내가 관리인 자격이 없고, 일지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적혀 있어.”도리의 눈이 통지서에 머물렀다.“일지를 위조했다고요?”“의혹이라고만 적혀 있어.”“우리가 쓴 게 있는데요.”“그러니까 확인받으면 돼.”나는 통지서를 탁자 한가운데 놓았다. 종이 위에는 감사관의 이름도 있었다.[감사관 오트마 켈러]이름 아래에는 감사 날짜와 확인할 항목이 적혀 있었다. 관리인 자격, 일지 기록, 기름 납품과 사용 내역. 글씨는 고르고 문장은 짧았다.“켈러 감사관이 직접 온대요?”“그렇게 적혀 있어.”“어떤 분인데요?”“아직 만나 본 적은 없어. 이름과 직책만 확인했어.”도리는 통지서를 읽으려다 중간에서 멈췄다.“저도 감사받아요?”“네가 쓴 기록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어. 네가 본 것만 말하면 돼.”“틀리게 말하면요?”“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돼.”도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으로 연필을 굴렸다. 연필은 탁자 위를 조금 움직이다가 통지서 끝에 닿았다.나는 연필을 도리 쪽으로 밀어 주었다.“먼저 우리가 가진 기록을 정리하자.”“지금요?”“오늘 안에 할 수 있는 것부터.”나는 두꺼운 일지를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일지는 무게가 있어서 탁자에 놓을 때마다 낮은 소리가 났다. 표지는 손때가 묻어 가장자리가 조금 닳아 있었다.도리는 일지에 손을 대지 않고 통지서를 한 번 더 읽었다.“일지 위조 의혹이라는 게, 날짜를 바꿨다는 뜻이에요?”“그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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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하루 쉬는 날

「해가 낮아지자 렌즈의 흰 빛이 모래밭을 한 번 훑었다.파도 끝에서 작은 조개껍데기들이 서로 부딪혔다.」나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모래를 살폈다. 밀려온 물이 빠진 자리에는 조개껍데기가 몇 개 드러나 있었다.“누나, 이건 어때요?”도리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작은 조개껍데기 안쪽에 모래가 붙어 있었다.“모양은 괜찮네.”“그럼 가져가도 돼요?”“모래를 털고.”도리는 손가락으로 조개껍데기를 문질렀다. 모래가 잘 떨어지지 않자 물가로 가서 물에 담갔다. 조개껍데기를 손바닥 안에서 굴리고, 다시 물 밖으로 꺼냈다.“이제 깨끗해요.”“안쪽도 봐.”도리는 조개껍데기를 뒤집었다. 얇은 모래 알갱이가 안쪽에 남아 있었다. 도리는 입술을 다물고 물에 한 번 더 담갔다.“이제 됐어요.”“네가 갖고 싶으면 챙겨.”“누나도 하나 골라요.”나는 발치에 놓인 조개껍데기들을 살폈다. 넓고 납작한 것, 끝이 조금 깨진 것, 흰 줄이 몇 개 난 것이 있었다. 나는 끝이 매끈한 조개껍데기를 집었다.“이걸로 할게.”“그건 너무 작아요.”“손에 쥐기 편하잖아.”“이건 더 커요.”도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둥근 조개껍데기를 주워 왔다. 한쪽 가장자리가 닳아 둥글었다. 도리는 그걸 내 손에 주려다 멈췄다.“이것도 괜찮아 보여요.”“네가 먼저 찾았으니까 네가 가져.”“저는 이미 골랐어요.”도리는 처음 주운 조개껍데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모래가 묻지 않게 손으로 입구를 눌렀다.“그럼 누나가 이걸 가져요.”“고마워.”나는 조개껍데기를 받아 손바닥에 놓았다. 차가운 표면에 모래가 조금 붙어 있었다. 손끝으로 털어내자 얇은 모래가 손등으로 떨어졌다.도리는 내 조개껍데기를 가리켰다.“그건 제가 주운 거잖아요.”“그래서 고맙다고 했어.”“제가 줬으니까 누나 거예요.”“그럼 네 것도 잘 챙겨.”도리는 자기 주머니를 다시 확인했다. 조개껍데기가 빠져나오지 않은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파도가 발목 가까이까지 밀려왔다가 물러났다. 도리는 발을 뒤로 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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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선반 맨 위

「렌즈의 흰 빛이 관리실 창을 스쳤다.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리고, 탁자 위 종이가 조금 떨렸다.」나는 조개껍데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안쪽에 남은 모래가 손끝에 묻었다.“모래가 아직 있어요?”도리가 물었다.“조금.”나는 손바닥을 털었다. 모래가 관리실 바닥에 떨어졌다. 도리는 그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빗자루를 가져왔다.“제가 쓸게요.”“내가 할게. 너는 종이를 정리해 줘.”“일지가 아니라 준비용 종이죠?”“그래. 일지는 그대로 두고, 감사에 보여 줄 영수증과 날짜를 맞춰 보는 거야.”도리는 탁자 위에 놓인 종이 묶음을 당겨 제 앞에 놓았다. 한 장씩 넘기며 날짜를 확인했다. 연필 끝이 종이에 닿았다가 떨어졌다.“이 날짜는 영수증이랑 같아요.”“좋아. 그 옆에 표시해 둬.”도리는 작은 표시를 남겼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맞췄다. 연필 가루가 손가락에 묻자 앞치마에 문지르려다 멈췄다.“손에 묻은 연필은 털어. 종이에 문지르면 자국이 남아.”“알겠어요.”도리는 손가락을 맞부딪쳐 연필 가루를 털었다.나는 빗자루를 벽에 기대고 탁자 끝을 닦았다.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종이 한 장을 들었다. 도리가 손바닥으로 눌렀다.“창문을 닫을까요?”“조금만 열어 두자. 안에 기름 냄새가 남아 있어.”“오늘은 기름을 안 썼는데도요?”“창고에서 가져온 통이 옆에 있잖아.”도리는 탁자 아래 놓인 작은 기름통을 살폈다. 뚜껑을 열지는 않았다.“이 냄새도 기록해야 해요?”“기름을 확인한 일이 아니니까 일지에는 안 적어. 지금은 감사 준비용 종이에만 적으면 돼.”“기름통이 여기 있다고요?”“필요하면 확인할 수 있게 둔 거야.”도리는 종이 묶음 한쪽에 짧게 적었다.[기름통, 관리실 안쪽]나는 글씨를 확인했다.“좋아. 날짜는 쓰지 않아도 돼. 오늘 일어난 일은 일지에 적혀 있으니까.”“그럼 준비용 종이에는 필요한 것만 적으면 되네요.”“그래.”도리는 종이 위에 연필을 놓고, 그 아래에 있던 일지를 바라봤다. 일지의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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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감사관 켈러

「렌즈의 흰 빛이 창틀을 지나갔다.관리실 문밖에서는 구두 굽이 계단에 닿는 소리가 났다.」문밖에서 소리가 다시 났다. 구두 굽이 멈춘 뒤,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도리가 문을 바라봤다.“누구세요?”“왕립 감독청 감사관 오트마 켈러입니다.”도리가 내 쪽을 보았다. 나는 준비용 종이를 덮지 않고 문을 열었다.마른 체구의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각진 안경 너머로 관리실 안을 살폈다. 한 손에는 서류철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회색 잉크가 든 만년필이 있었다.“페른 관리인입니까?”“맞습니다.”“오늘은 정식 감사가 아닙니다. 서류 상태만 먼저 보겠습니다.”“들어오시죠.”켈러는 문턱을 넘으며 탁자 위를 보았다. 그 시선이 영수증 묶음에서 준비용 종이로 옮겨갔다.“관리실에서 진행해도 괜찮습니까?”“기록과 영수증이 모두 여기 있습니다.”“그렇다면 여기서 보겠습니다.”켈러는 서류철을 탁자 위에 놓았다. 나는 그 옆에 자리를 비웠다. 도리는 종이 묶음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가, 내가 눈짓하자 손을 거두었다.“이 아이는 누구입니까?”“등대 조수 도리입니다. 영수증 날짜를 대조하는 일을 도왔습니다.”“직접 확인한 날짜가 있습니까?”“있습니다.”도리가 허리를 폈다.“제가 장부와 영수증을 맞춰 봤어요.”켈러는 도리를 잠깐 바라보고는 준비용 종이를 펼쳤다.“그럼 확인한 내용만 말하십시오. 추측은 필요 없습니다.”“네.”“페른 관리인도 마찬가지입니다.”“알겠습니다.”켈러는 회색 잉크 만년필을 열었다. 뚜껑이 탁자에 닿아 짧게 소리가 났다.“영수증은 날짜순입니까?”“네. 오래된 날짜부터 정리했습니다.”“장부와 맞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글씨가 흐린 영수증은 장부를 확인한 뒤 표시했습니다.”“표시는 누가 했습니까?”“제가 했습니다.”도리가 대답했다. 켈러의 만년필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어느 장부를 확인했습니까?”도리는 탁자에 놓인 장부를 가리켰다.“이 장부입니다. 영수증의 날짜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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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사라진 납품서

「렌즈의 흰 빛이 창틀을 스치고 지나갔다.관리실 안에서는 종이 넘기는 소리와 잉크병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나는 납품서 묶음의 끈을 풀었다.날짜가 적힌 종이를 한 장씩 탁자 위에 펼쳤다. 영수증과 장부를 맞춰 본 뒤, 확인한 것부터 다시 모았다.“도리, 이 날짜의 납품서가 맞아?”“장부에는 있어요. 여기요.”도리가 손가락으로 장부의 줄을 짚었다. 나는 날짜와 기름의 양을 읽고, 납품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살폈다.빈자리였다.“다음 장도 확인해 줘.”도리는 장부를 넘겼다. 종이 귀퉁이가 손끝에 걸렸다가 풀렸다.“이 줄에는 납품서가 있어야 해요.”“그렇지.”나는 묶음의 앞뒤를 다시 훑었다. 아까 지나친 종이가 있을까 싶어 영수증 사이도 확인했다. 얇은 종이가 접힌 곳은 손가락으로 펴 봤다.없었다.“한 장이 비었어.”도리가 장부에서 손을 뗐다.“처음부터 다시 볼까요?”“응. 네가 장부를 읽어 줘. 내가 납품서를 확인할게.”도리는 날짜부터 읽었다. 나는 납품서 묶음에서 같은 날짜를 찾았다. 한 장씩 확인할 때마다 종이를 탁자 오른쪽으로 옮겼다.“여기까지는 맞아요.”“다음 날짜.”도리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작아졌다. 나는 종이를 찾느라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조금만 더 보자.”“네.”그다음 장부 줄에는 물품 이름과 수량이 적혀 있었다. 납품서가 없는 줄이었다.나는 손가락으로 줄 아래를 짚었다. 그 옆에 놓인 영수증에는 날짜가 흐리게 남아 있었다. 대조를 위해 따로 둔 종이였다. 납품서와 영수증은 다른 문서였다. 하나가 있다고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누나, 이건 영수증이에요.”“맞아. 납품서는 아니야.”“그럼 장부에 적힌 건 확인할 수 있어도, 실제로 어떻게 받았는지는 납품서로 확인해야 하죠?”“그래. 지금은 그 한 장이 없어.”도리는 종이 묶음을 내려다봤다. 탁자 위에 펴 둔 문서들이 서로 닿아 있었다. 나는 모서리를 맞춰 문서 사이의 빈틈을 살폈다.“아까 제가 넘길 때 떨어졌을까요?”“그럴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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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감사 날

「밤이 깊자 등대 불이 회색 창틀을 한 번 훑었다.렌즈가 돌 때마다 흰 빛이 접견실 문 아래로 지나갔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오십시오.”나는 탁자 위에 펼쳐 둔 장부를 눌렀다. 바람이 창틀을 건드려 종이 한 장의 모서리가 들렸다.문이 열리고 오트마 켈러 감사관이 들어왔다. 회색 잉크 만년필을 손에 쥔 채였다. 각진 안경 너머의 시선이 탁자 위 서류를 훑었다.“페른 관리인. 감사를 시작하겠습니다.”“준비했습니다.”“준비한 서류와 확인하지 못한 서류를 나누어 두었습니까?”“네. 원본과 사본도 따로 두었습니다.”나는 탁자 왼쪽의 서류철을 가리켰다. 납품서 사본은 원본 묶음과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원본이 없다는 표시도 붙였다.켈러는 의자를 빼고 앉았다. 만년필을 탁자 위에 놓은 뒤 손가락으로 서류철의 모서리를 맞췄다.“먼저 점등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나는 두꺼운 일지를 켈러 앞에 놓았다. 표지에 묻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었다.켈러는 일지 앞부분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관리실에 짧게 이어졌다.“회색곶 등대는 일몰부터 일출까지 점등하는 것이 맞습니까?”“맞습니다.”“9월 2일 일몰 시각은 저녁 7시 4분입니다. 첫 점등 기록은 7시 15분이군요.”“네.”“11분 늦었습니다.”“그렇습니다.”켈러는 고개를 들었다.“왜 늦었습니까?”“제가 준비를 제때 끝내지 못했습니다.”“그날의 상황을 확인할 기록은 있습니까?”“점등 시각과 제가 기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유를 적은 별도 기록은 없습니다.”켈러의 만년필 끝이 종이에 닿았다. 그는 답을 짧게 받아 적었다.“지각한 사실을 숨기지 않았군요.”“숨길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관리인으로서 책임을 인정합니까?”“네. 다음 점등부터는 일몰 시각을 확인하고 준비를 마쳤습니다.”“그 뒤의 기록은 이 일지에 있습니까?”“있습니다.”켈러는 일지를 넘겨 다음 기록을 확인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날짜를 따라가는 것을 지켜봤다.“점등 시각과 일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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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거짓말하지 않는 일지

「렌즈의 흰 빛이 접견실 바닥을 지나갔다.만년필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이 일지의 종이 일련번호는 누가 확인했습니까?”켈러 감사관의 손가락이 일지 마지막 장 아래쪽 모서리에 멈춰 있었다. 등대국이 찍어 내려보낸 작은 숫자가 거기 있었다.“제가 확인했습니다. 대조한 표도 있습니다.”나는 서류철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왼쪽 칸에는 일지 쪽마다 찍힌 일련번호, 가운데 칸에는 그 쪽의 날짜, 오른쪽 칸에는 같은 날 들어온 기름의 납품서 날짜를 적었다. 9월 2일부터 어제까지였다.“일련번호는 등대국이 인쇄해 보낸 것이라 제가 고칠 수 없습니다. 번호가 하나씩 올라갈 때 날짜도 하루씩 올라갑니다. 기름이 들어온 날은 납품서 날짜와 겹칩니다. 중간에 끼워 넣은 쪽이 있다면 번호든 날짜든 어딘가 어긋납니다.”켈러는 대조표를 받아 들지 않았다. 먼저 일지를 펼쳐 쪽마다 모서리의 번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러고 나서야 대조표를 옆에 놓고 맞춰 보았다. 회색 잉크 만년필이 번호마다 작은 점을 찍었다.접견실 안에서는 그 점 찍는 소리만 났다.클라우스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꽃을 꽂은 옷깃을 손끝으로 만지고 있었다. 향이 탁자 너머까지 왔다.마지막 점을 찍은 켈러가 고개를 들었다.“빠진 번호도, 날짜가 거꾸로 간 쪽도 없습니다. 납품서 사본이 원본이 아니라는 표시도 확인했습니다.”“원본은 이틀 전 밤에 없어졌습니다. 사본은 도리가 날마다 베껴 둔 것입니다.”“그 점은 어제 들었습니다. 이 대조표는 언제 만들었습니까.”“감사 통지를 받은 날 밤부터입니다. 비스 해운이 위조를 걸었으니, 위조가 아니라는 걸 숫자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다음.”켈러는 군더더기를 싫어했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기름 시험 기록은 길지 않았다. 9월 4일, 기준 기름 30셈, 비스 해운 기름 12셈. 9월 7일, 수잔나 가게 기름 30셈. 그 뒤로 기름이 들어올 때마다 한 줄씩.켈러가 물었다.“숫자를 센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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