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당한 영애가 등대지기가 되었더니 제독이 밤마다 불을 확인하러 온다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80 챕터

51화. 약값

「복도 등잔불이 창틀에 비쳤다.닫힌 병실 문 안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병원비는 금화 60닢입니다.”접수대 직원이 장부를 덮었다. 마른 종이가 맞닿는 소리가 복도에 짧게 났다.나는 장부 위에 놓인 청구서를 내려다봤다. 금액 아래에는 마게 씨 손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을 읽고도 나는 소리 내지 않았다.“지금 낼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부터 확인해도 될까요?”“아직 납부한 돈은 없습니다. 기한을 넘기면 자선 병상 심사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신청하면 바로 자선 병상으로 옮길 수 있나요?”“신청서와 형편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병원비 전부가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직원은 서랍에서 양식을 꺼내 청구서 옆에 놓았다. 종이 위에 칸이 여러 개 있었다. 보호자 이름과 수입, 납부 가능한 금액을 적는 자리였다.“이 병원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 돈을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야 합니다.”“그럼 가진 돈이 전혀 없다는 걸 보여야 하나요?”“지금 낼 돈이 있어도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사실대로 적으시면 됩니다.”“병원비를 일부 낸 뒤에도 신청할 수 있습니까?”“남은 돈을 감당할 수 없다면요.”나는 양식에서 눈을 떼고 직원의 얼굴을 살폈다.“그 기준을 적은 규정이 있나요?”직원은 잠시 나를 보더니 양식 아래에 끼워 둔 안내문을 빼 주었다.“여기 적혀 있습니다. 병원비를 낼 수 없다는 사정과, 보호자의 수입을 확인합니다.”나는 안내문을 받아 읽었다. 자선 병상 신청 자격과 심사 순서가 적혀 있었다. 내 손에 든 일지가 젖은 외투에 닿지 않도록 팔을 조금 벌렸다.“복사본이 없어도 신청할 수 있습니까?”“원본을 확인하고 돌려드립니다. 사실과 다르게 적으면 취소될 수 있습니다.”“알겠습니다. 금액부터 마련하겠습니다.”직원이 양식을 거두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금화 60닢. 선장들의 모금과 수잔나의 선불 일감이 약속대로 모이면 그 금액에 닿았다. 하지만 아직 내 손에 들어온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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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빚 문서

「창문에 등잔불이 길게 비쳤다.만년필 끝에서 잉크가 종이로 떨어졌다.」나는 일지를 책상 한쪽에 펼쳤다. 켈러 감사관은 문서를 바로 펼치지 않고, 먼저 우리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페른 관리인. 제출할 자료가 이것입니까?”“네. 도리 아버지의 빚 문서와 증언입니다.”도리 아버지는 두 손을 모은 채 의자 끝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놓인 손등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도리는 그 옆에 바짝 붙어 섰다.“문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원본입니까?”“제가 받은 그대로 가져왔습니다.”도리 아버지가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펼치려다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내가 직접 내도 되겠소?”“네. 이 문서가 본인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받아 적을게요.”그는 종이를 책상 위에 놓았다. 모서리가 여러 번 접혀 희미하게 닳아 있었다. 켈러 감사관은 만년필을 들고 문서를 읽었다.나는 일지 옆에 연필을 놓았다.“문서가 제출된 시각과 상태를 먼저 적겠습니다.”“그렇게 하십시오.”“도리 아버지, 문서에 적힌 글을 제가 큰 소리로 읽어도 괜찮을까요?”“괜찮소.”나는 종이 윗부분부터 눈으로 따라갔다. 빌린 돈의 액수와 갚아야 할 의무가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도리 아버지의 서명이 있었다. 임금에 대한 말은 보이지 않았다.“여기 적힌 금액을 실제로 빌리셨습니까?”“아니오.”“그럼 이 문서에 서명하신 까닭을 말씀해 주세요.”그는 손가락을 모았다가 풀었다.“일한 대가를 받으러 갔소. 그런데 돈을 줄 수 없다고 했소. 대신 이 종이에 서명하면 밀린 임금을 나중에 정산해 주겠다고 했소.”“문서에 빚이라고 적혀 있다는 걸 알고 서명하셨습니까?”“아니오. 밀린 임금을 확인하는 종이라고 들었소.”켈러 감사관이 문서에서 시선을 들었다.“서명하기 전에 내용을 읽어 보셨습니까?”“읽으려 했소. 하지만 글을 다 읽지는 못하오. 내게 설명한 사람은 임금 정산을 위한 확인서라고 했소.”“그 설명을 들은 곳은 어디입니까?”“비스 해운의 창고 사무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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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겨울 폭풍 경보

「폭풍 구름 아래 렌즈의 흰빛이 창문에 스쳤다.항구 쪽 경보종이 두 번 울리고 그쳤다.」나는 창가에 기대 둔 경보문을 관리실 책상에 펼쳤다.[칼메 항 폭풍 경보. 회색곶 인근 해역의 운항을 삼가고, 등대의 점등 상태를 확인할 것.]종이 아래에는 감독청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경보가 도착한 시각과 상태를 일지에 적었다. 종이 가장자리가 젖어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등잔을 멀리 밀어 두었다.도리가 젖은 소매를 걷었다.“누나, 창문이 제대로 닫혔어요?”“아래쪽 걸쇠가 헐거워. 네가 잡아 줄래?”“네.”도리가 창틀을 눌렀다. 나는 걸쇠를 걸고 손바닥으로 틈을 확인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았다.“이제 괜찮아요.”“고마워.”도리는 창틀에서 손을 떼고 경보문을 내려다봤다.“폭풍이 곶까지 올라오는 거예요?”“그럴 수 있어. 그래서 미리 준비하는 거야.”나는 연료 장부를 꺼냈다. 등대는 해가 진 뒤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불을 켜야 했다. 하루에 필요한 기름은 18리터였다. 평소에도 빈틈없이 챙겨야 하는 양이었다. 폭풍이 불면 기름을 들고 창고와 렌즈실을 오가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기름통부터 확인하자. 뚜껑이 풀린 게 없는지 보고, 물이 섞였는지도 확인해야 해.”“제가 장부를 들게요.”도리는 두꺼운 장부를 받쳐 들었다. 나는 지하 저장 탱크에 보관한 기름통을 하나씩 살폈다. 봉인이 온전한 통과 먼저 쓸 통을 나눴다. 물기가 묻은 통은 따로 두었다.“이건 오늘 쓰면 안 되겠어요.”도리가 통 밑을 가리켰다.“왜 그렇게 생각했어?”“바닥에 맺힌 물이 다른 통보다 많아요. 전에 누나가 물이 섞인 기름은 따로 적으라고 했잖아요.”“잘 봤어. 이 통은 사용할 수 있는 기름과 섞지 말고, 상태를 적어 두자.”나는 장부에 통의 위치와 상태를 적었다. 확인하지 않은 기름의 양은 쓰지 않았다. 도리가 장부를 내려다봤다.“기름이 모자라면 어떡해요?”“먼저 남은 양과 쓸 수 있는 양을 구분해야 해. 모르는 채로 모자란다고 쓰면, 다음 사람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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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삼십 분

「관리실 등잔불이 젖은 바닥에 번졌다.마게 씨 장갑에서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났다.」마게 씨는 말을 마친 뒤에도 난간을 잡고 있었다.나는 기름통을 내려놓았다.“잠시 쉬었다 가세요. 켈러 감사관님이 관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겠소.”“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마게 씨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난간에서 천천히 떼었다. 유리안 님이 한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내 손에는 기름통 손잡이 자국이 남았다.“제가 들겠습니다.”“아까도 말했지만, 통은 내가 들겠소.”“알겠습니다.”나는 통을 다시 들었다. 마게 씨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유리안 님은 뒤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관리실 문을 열자 책상 위에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켈러 감사관은 회색 잉크 만년필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리도 옆에 서 있었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었다.켈러 감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마게 올든 씨. 증언을 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마게 씨는 장갑 낀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할 수 있소.”“무릎이 불편하시면 앉아서 말씀하셔도 됩니다.”“앉겠소.”나는 기름통을 벽 쪽에 내려놓고 의자를 책상 가까이 당겼다. 마게 씨는 한동안 의자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낮췄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끈을 풀었다.“장갑을 벗으시겠습니까?”켈러 감사관이 물었다.마게 씨는 반쪽인 가운뎃손가락이 드러난 장갑을 내려다봤다.“이대로 하겠소. 손은 숨기지 않겠소.”“알겠습니다.”켈러 감사관은 서류 한 장을 마게 씨 앞에 놓았다.“먼저 이름과 직책을 확인하겠습니다. 마게 올든, 전임 등대지기. 맞습니까?”“맞소.”“현재 증언이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며, 본인이 기억하는 사실을 말하겠다는 뜻입니까?”“그렇소.”“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모른다고 답하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이 말한 일을 직접 본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알겠소.”켈러 감사관은 첫 줄을 적었다. 만년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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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폭풍 속 검은 돛

「폭풍 속에서 렌즈의 흰 빛이 바다를 훑었다.돛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파도 소리 사이로 들렸다.」유리안 님의 말이 끝난 뒤에도 나는 일지의 빈 줄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그때와 달리, 지금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바람이 등대 꼭대기 창을 때렸다. 유리가 떨릴 때마다 렌즈실의 불빛이 흔들렸다. 아래쪽 바다에서는 파도가 암초를 덮었다가 물러났다.“노엘라.”유리안 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외투 깃에 빗물이 맺혀 있었다.“바다 쪽을 보십시오.”나는 창가로 갔다. 검은 구름 아래로 작은 불빛이 하나 보였다. 파도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배입니까?”“그렇습니다. 등불을 가렸습니다.”유리안 님은 주머니 시계를 꺼내 바늘을 확인했다. 뚜껑 안쪽의 흠집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는 시계를 닫고 창밖을 살폈다.“유리안 님, 어느 쪽에서 오고 있습니까?”“곶의 바깥쪽입니다. 바람을 타고 암초 사이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함대는요?”“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형선은 수로에 숨겼습니다.”“그쪽으로 배를 이끌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그렇습니다. 다만 지금은 배의 위치가 보이지 않습니다.”도리가 등대 아래쪽 계단을 올라왔다. 젖은 앞머리가 눈에 붙어 있었다. 도리는 품에 감싼 일지와 연필을 들고 있었다.“누나, 바람이 문을 밀어요. 제가 닫아 둘게요.”“문을 잡아 줘. 종이가 날아가지 않게.”도리는 일지를 창에서 떨어진 벽 쪽에 놓았다. 연필을 손에 쥔 채 문을 당겼다. 문틈으로 비가 들이쳤다.“도리, 시계를 확인해. 폭풍이 시작된 시각부터 적어.”“네. 유리안 님의 시계하고 맞춰 적을게요.”“숫자가 보이도록 써. 번지면 다시 적으면 돼.”“알았어요.”도리는 일지 위에 몸을 숙였다. 연필 끝이 종이를 긁었다. 바람에 손이 흔들릴 때마다 팔꿈치로 종이를 눌렀다.나는 렌즈 쪽으로 돌아섰다. 빛은 계속 돌고 있었다. 한 바퀴가 끝날 때마다 긴 빛이 바다를 쓸었다.창 너머로 보이는 암초는 파도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려는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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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젖은 밤

「등대의 흰 빛이 젖은 창을 지나갔다.난로 위 주전자에서 작은 끓는 소리가 났다.」“48개.”나는 보고를 되뇌며 일지 위에 연필을 놓았다. 도리가 젖은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누나, 상자 수는 제가 적을까요?”“조금 있다가 적어. 먼저 손부터 말리자.”“손은 괜찮아요.”도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필을 쥔 손을 무릎 밑으로 숨겼다. 손가락 끝이 붉었다. 나는 일지를 덮고 도리 앞에 있던 연필을 치웠다.“괜찮은 손은 그렇게 숨기지 않아.”“안 숨겼어요. 그냥 추워서요.”“그럼 더더욱 난로 앞에 앉아.”도리는 의자를 끌어 난로 가까이 옮겼다.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젖은 장화에서 물이 떨어져 발밑에 작은 자국이 생겼다.유리안 님이 창가에서 돌아섰다. 군복의 어깨가 젖어 있었다. 외투 끝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졌다.“도리, 손이 떨립니다.”“안 떨려요.”“연필을 쥐어 보십시오.”도리는 빈손을 펴 보였다. 손끝이 조금씩 움직였다. 유리안 님은 더 말하지 않고 난로 옆에 놓인 마른 천을 집어 건넸다.도리는 천을 받아 손을 감쌌다.“고맙습니다.”“따뜻한 걸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제가 끓일게요.”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뻣뻣했다. 의자 등받이를 짚고 잠시 기다린 뒤에야 똑바로 설 수 있었다.“노엘라, 제가 하겠습니다.”유리안 님이 몸을 일으켰다. 젖은 소매가 손목을 덮고 있었다.“앉아 계세요. 제독님도 옷이 젖었습니다.”“불 앞에 있으면 마릅니다.”“옷은 불 앞에서 저절로 마르지 않아요.”“알고 있습니다.”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주전자를 난로에서 내려 관리실 한쪽에 놓았다. 아직 물이 미지근했다. 생강을 꺼내 얇게 썰고, 남은 물에 넣어 다시 불 위에 올렸다.칼끝이 도마에 닿을 때마다 짧은 소리가 났다. 손목에 힘을 주자 칼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펴 보았다.“손도 떨려요, 누나.”도리가 말했다.“추워서 그래.”“저랑 똑같네요.”“그러니까 둘 다 따뜻한 걸 마셔야지.”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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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청문 준비

「관리실 창에 흰 불이 지나갔다.난로 옆에서 종이 모서리가 가볍게 들렸다.」“그 말은 일지에 적지 않겠습니다.”유리안 님이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를 보다가 펼쳐 둔 종이를 끌어당겼다.“제가 졸았다는 말이요?”“그렇습니다.”“그럼 제독님도 적지 마세요.”“무엇을 말입니까?”“제독님도 졸았다는 것요.”유리안 님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컵을 들었다가 안에 남은 차를 확인하고 내려놓았다.“알겠습니다.”나는 웃으려다 그만두었다. 책상 위에 아버지의 일지를 펼쳤다. 덮개 모서리에 남은 물기가 말라 있었다.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도리는 방석 위에서 외투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코끝이 조금 붉었지만 숨은 고르게 이어졌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도리가 깨어나기 전에 증거 목록부터 정리해야겠어요.”“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유리안 님이 물었다.“서류가 빠지지 않았는지 살펴봐 주세요. 정리와 번호는 제가 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그는 책상에 다가오지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일지를 펼친 자리와 거리를 두었다. 젖은 군복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소매 끝은 아직 축축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도리가 외투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나는 손을 멈췄다.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오십시오.”켈러 감사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색 잉크 만년필을 손에 쥔 채 책상 쪽을 확인했다.“준비 중이십니까, 페른 관리인?”“네. 증거 목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그럼 목록을 먼저 보겠습니다. 증거 자체는 제가 손대지 않겠습니다.”“알겠습니다.”켈러는 의자를 끌지 않았다. 책상 옆에 선 채로 내 앞의 종이를 살폈다. 각진 안경 너머로 시선이 한 줄씩 움직였다.“이중 장부부터 정리하시려는군요.”“네. 장부의 출처와 제출할 부분을 함께 적으려고 합니다.”“원본입니까?”“확인된 장부입니다. 원본 여부는 제가 단정하지 않겠습니다.”켈러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점을 먼저 적으면 됩니다.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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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감독관 제안서

「창에 등대 불빛이 한 번 스쳤다.난로에서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나는 손을 멈췄다. 켈러 감사관의 말이 책상 위에 남아 있었다.“자료마다 번호표가 목록과 맞는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그렇게 하십시오. 확인한 뒤에는 대조한 사람도 적으십시오.”“네.”도리는 책상에 펼쳐 둔 표지를 하나씩 살폈다. 나는 목록을 옆에 두고 번호와 자료 이름을 읽었다. 젖었던 번호표는 치워 두었다. 새로 만든 표지는 풀 자국 없이 말라 있었다.“1번, 이중 장부.”도리가 표지를 들었다. 나는 목록의 첫 줄에 손가락을 얹었다.“맞아. 자료 이름도 같아.”“2번, 마게 할아버지 증언.”“그것도 맞아.”도리는 표지를 내려놓았다. 손끝이 종이 모서리에 닿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풀통을 엎지른 뒤로 책상 위의 종이를 만질 때마다 먼저 나를 확인했다.“괜찮아. 표지는 네가 만든 거니까 네가 확인해도 돼.”“그래도 안쪽 종이는 안 건드릴게요.”“응. 표지와 목록만 보면 돼.”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3번, 블레어호 선창 기록.”나는 3번째 줄을 확인했다. 자료 이름과 번호가 맞았다.“4번, 도리 아버지의 증언.”“맞아.”도리가 마지막 표지를 들었다. 나는 목록에 적힌 이름을 눈으로 따라갔다.“5번, 페른 후작의 일지 마지막 장.”“표지에 원본을 넣지는 않았지?”“네. 표지만 만들었어요. 안쪽은 손대지 않았어요.”“잘했어.”도리는 표지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손은 말라 있었다. 그래도 종이 가장자리를 오래 잡고 있어서 손끝에 풀이 다시 묻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켈러 감사관이 목록을 받아들지 않은 채 눈으로 훑었다.“번호는 맞습니다. 자료 이름도 빠지지 않았습니다.”“각 자료의 확인자와 작성 방식은 대조를 마친 뒤 채우겠습니다.”“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적지 마십시오.”“네.”나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목록의 빈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어 있다고 해서 지금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목록은 여기까지 정리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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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청문 첫날

「등잔불이 서류 가장자리를 누렇게 비췄다.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사이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청문장 앞줄에는 감사관 켈러가 앉아 있었다. 그의 회색 잉크 만년필은 서류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증인석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손바닥을 무릎에 댔다.앞에 놓인 물잔에서는 물 냄새가 났다. 마시려고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유리잔에 닿기 전에 맞은편에서 비스 측 변호사가 일어섰다.“페른 관리인께 질문하겠습니다.”“말씀하십시오.”변호사는 서류 1장을 들어 보였다.“관리인과 항로 확인관은 사적인 관계입니까?”청문장 안에서 의자가 조금씩 삐걱거렸다. 누군가 숨을 삼켰다. 나는 물잔에서 손을 거두었다.“예.”“인정하시는 겁니까?”“항로 확인관과 저는 사적인 관계입니다.”변호사는 잠시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펴고 다시 모았다.“그런 관계가 규정 12조를 위반한다고 생각하십니까?”“규정 12조는 감사·점검 직권을 가진 자와 관리인의 사적 관계를 금합니다.”“그 문장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항로 확인관은 제독입니다. 왕립 해군의 높은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직함만으로 그 조항의 직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페른 관리인께서 직접 판단하시는 겁니까?”“문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켈러가 만년필을 들었다.“발령 문서를 제출하십시오.”내 옆에 앉은 서기관이 서류철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 위에는 왕립 해군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서류를 받아서 켈러에게 건넸다. 손끝이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이 문서는 항로 확인관의 직무를 적은 발령 문서입니다. 직권의 범위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켈러가 첫 줄부터 읽었다. 만년필 끝이 문서 위를 따라갔다.변호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문서를 작성한 곳은 왕립 해군입니다. 당사자의 소속 기관이 작성한 문서를 그대로 믿어도 됩니까?”“문서의 작성 기관과 효력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페른 관리인께서 읽어 주십시오. 항로 확인관의 직무는 무엇입니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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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꺼진 밤의 진실

「등잔불이 증인석 난간을 비췄다.장갑 낀 손끝이 나무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다.」마게 올든은 난간에서 손을 뗐다.“3년 전 9월 14일 밤, 회색곶 등대에 아이삭 비스가 왔소.”청문장이 조용해졌다. 비스 측 자리 맨 앞에 앉은 은발의 사내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금 도장 반지를 낀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쥐어졌다가 펴졌다.켈러 감사관이 만년필을 들었다.“직접 보셨습니까.”“내 눈으로 봤소. 관리실에서. 23시가 조금 못 됐을 때요.”“그가 무엇을 했습니까.”마게가 증인석 옆 물잔을 보았다. 손을 뻗지는 않았다.“종이 한 장을 탁자에 펼쳤소. 내 손녀 병원비 빚 문서였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집이 사들였더구먼. 그러고 말했소. 30분만 불을 끄라고. 그러면 그 종이를 태워 주겠다고. 안 끄면 내일 아침 그 애를 병원에서 내보내겠다고.”비스 측 변호사가 일어섰다.“증인의 기억뿐입니다. 3년 전 일을 무엇으로 뒷받침합니까.”“증언을 다 들은 뒤에 물으십시오.”켈러가 짧게 막았다. 변호사는 앉지 않고 서 있다가, 재판장이 눈을 들자 그제야 앉았다.“계속하십시오.”“23시 10분에 렌즈실로 올라갔소. 심지를 손으로 눌러 껐소. 그 장갑 낀 손으로.”마게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가운뎃손가락이 반쪽인 장갑이었다. 청문장 안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23시 40분에 다시 켰소. 그동안 렌즈실 바닥에 앉아 있었소. 아무것도 안 했소. 일지도 안 적었소. 그래서 그 칸이 비어 있는 거요.”“프레야호가 좌초한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불을 다시 켜고 나서요. 새벽에 곶 아래가 시끄러워서 내려가 보니 다들 군함 얘기를 했소. 23시 12분이라고. 내가 심지를 누르고 2분 뒤였소.”마게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겼다. 노인은 물잔을 들었다. 물이 잔 안에서 흔들렸다. 입에 대기까지 한참 걸렸다.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포갰다. 오른손등의 작은 흉터를 왼손 엄지로 눌렀다. 마게의 증언은 12월 8일 관리실에서 한 번 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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