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당한 영애가 등대지기가 되었더니 제독이 밤마다 불을 확인하러 온다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80 챕터

21화. 선장들의 생선

「렌즈의 흰 빛이 앞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생선 비늘에 빛이 스치고, 바닷바람에 소금 냄새가 났다.」앞마당에 나서자 코브 선장이 해도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생선이 든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젖은 밧줄이 손잡이에 묶여 있었고, 바구니 아래로 물이 조금씩 흘렀다.수잔나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도리는 내 옆에서 발끝으로 흙을 건드렸다.“관리인님, 감사가 끝났다고 들었소.”코브가 먼저 말했다.“네. 관리권이 확정됐습니다.”“그럼 이건 받아야지.”코브는 바구니를 내 쪽으로 밀었다.“선장들이 가져온 생선이오. 다들 직접 들고 오겠다고 했는데, 앞마당에 줄을 서면 길을 막을까 봐 내가 모아 왔소.”“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필요해서 주는 게 아니오. 고마워서 주는 거지.”코브는 말끝을 자르고 손바닥으로 바구니 옆을 두드렸다. 생선이 서로 부딪혀 젖은 소리를 냈다.수잔나가 웃으며 덧붙였다.“받아 둬요. 내 가게 앞에도 가져다 놓겠다는 사람이 있었어. 장사할 생선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더니, 그럼 등대에 주겠다더라고.”“감사에서 이겼다고 생선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이긴 건 관리인님이잖아. 우리가 가져온 건 우리 마음이고.”수잔나는 손을 털었다. 팔뚝에 묻은 물기가 햇빛에 반짝였다.코브가 내 얼굴을 살폈다.“받기 어렵다는 표정이군.”“제 몫을 따로 챙기는 게 익숙하지 않습니다.”“그럼 이제 익숙해지시오. 등대를 지키는 데 쓴 힘까지 남한테 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나는 대답 대신 바구니 손잡이를 잡았다. 젖은 밧줄이 손바닥에 닿았다. 안쪽에서 소금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감사관님 앞에서 증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내가 본 일을 말했을 뿐이오.”코브가 어깨를 으쓱했다.“노엘라 관리인이 간격표를 나눠 줬고, 내가 다른 선장들에게 전했소. 그보다 더 보태면 거짓이 되지.”“그 말씀을 그대로 적어 주셔서 도움이 됐습니다.”“기록을 정확히 하는 건 그쪽이 더 잘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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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안개종 아래

「안개종 소리가 부두 끝에서 짧게 울렸다.등대의 흰 빛이 안개 속에서 끊겼다가 다시 나타났다.」나는 안개종 탑의 난간을 붙들고 바다를 바라봤다. 손가락에 닿은 나무가 축축했다. 안개는 부두 끝까지 내려와 물과 하늘의 경계를 가렸다.등대의 빛이 보였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긴 빛이 안개를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가슴께에 끼워 둔 간격표를 꺼냈다. 짙은 안개에 표시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그 줄이 맞습니까?”유리안 하그 제독이 내 옆에서 물었다. 제독의 군복 어깨에도 물기가 맺혀 있었다.“네. 짙은 안개 간격표입니다. 렌즈도 그 간격에 맞춰 돌고 있습니다.”“확인했습니다.”“아홉 척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나는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까부터 안개 너머를 살폈지만 돛도 배의 등불도 보이지 않았다.“선장들은 돌아오는 길에 이 표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예상보다 빨리 짙어졌습니다.”“표를 바꾸겠습니까?”“아니요. 짙은 안개 줄을 따르겠습니다. 표에 없는 간격을 제가 정할 수는 없습니다.”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간격표를 접어 다시 가슴께에 끼웠다. 종이가 젖지 않도록 외투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안개종을 치겠습니다.”“제가 치겠습니다.”“종은 제가 맡겠습니다. 제독님은 바다를 봐 주세요.”제독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말없이 난간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종줄은 탑 기둥에 묶여 있었다. 나는 줄을 잡아당겼다.종이 울렸다. 낮은 소리가 탑 아래로 퍼졌다가 안개 속으로 멀어졌다.한 번 더 줄을 당겼다. 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에 묻은 물기를 치마에 문질렀다.“배들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들릴 겁니다.”“안개가 소리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다시 울리면 됩니다.”제독의 말은 짧았다. 나는 줄을 놓지 않았다.“불빛은 보입니까?”“보입니다.”“렌즈가 간격표대로 도는지도요?”“확인하고 있습니다. 긴 빛이 지나간 뒤 짧은 빛이 이어집니다. 순서가 맞습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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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모르는 척

「관리실 창으로 아침 빛이 들어왔다.젖은 외투에서는 바닷물 냄새가 났고, 방 안은 조용했다.」나는 일지를 펼쳐 두고 연필을 쥐었다.어젯밤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날짜와 기록은 가지런했다.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에 닿았다가 멈췄다.[10월 4일, 짙은 안개. 어선 아홉 척 귀항. 인명 피해 없음.]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나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들은 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시계 뚜껑을 닫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자꾸 생각났다.“누나.”도리가 관리실 안쪽에서 불렀다.“응?”“연필을 거꾸로 잡았어요.”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연필 끝이 손바닥을 향하고 있었다.“잠깐 딴생각을 했어.”“일지 쓰는데요?”“그래서 다시 쓰려고.”연필을 돌려 잡았다. 손바닥에 남은 밧줄 자국이 쓰렸다. 나는 손을 편 채 잠시 기다렸다가 기록을 이어 갔다.도리는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한동안 종이를 살피던 아이가 주머니에서 달걀 두 개를 꺼냈다. 탁자에 하나씩 놓고는 말없이 껍질을 벗겼다.나는 연필을 멈췄다.“도리, 그건 어디서 났니?”“집에서 가져왔어요.”도리는 껍질을 벗긴 달걀 하나를 내 앞에 놓고, 나머지 하나는 자기 쪽으로 당겼다.“아침은 먹었니?”“먹었어요.”“그런데 왜 하나를 주는 거야?”도리는 대답하지 않고 달걀을 한입 베어 물었다. 입가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아까 일지를 넘기며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지른 모양이었다.“잉크 묻었어.”“어디요?”“입가.”도리는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잉크가 더 번졌다. 아이는 자기 손을 보더니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나는 달걀을 집었다. 껍질을 벗기는 손이 잠깐 멈췄다.도리의 눈이 내 입술에 머물렀다. 아주 짧았지만, 나는 연필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뭘 봐?”“아무것도 안 봤어요.”도리는 잉크 묻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도리.”“네.”“일지에 적을 일이 있으면 말해.”“달걀은 적을 일이 아니잖아요.”“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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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소문

「어젯밤 등대의 흰 빛이 항구 지붕을 지나갔다.안개종은 울리지 않았고, 시장에는 생선 비린내와 수군거림이 퍼졌다.」“등대지기는 제독의 정부라던데.”나는 생선 바구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말을 꺼낸 여자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옆에 선 남자가 생선 비늘을 털며 웃었다.“밤마다 제독이 등대에 간다잖아. 불을 확인한다는 핑계로.”“직접 본 사람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항구 사무소에서 들었다던데.”여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시장은 조용하지 않았다. 바구니가 바닥에 놓이는 소리, 값을 흥정하는 소리 사이로 그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나는 생선 바구니를 지나 수잔나의 가게로 갔다. 가게 앞에는 소금 자루와 말린 생선이 놓여 있었다. 수잔나는 장부에 숫자를 적다가 나를 보았다.“관리인님, 일찍 나왔네요.”“시장에 확인할 일이 있어서요.”“무슨 일이에요?”나는 대답 대신 가게 앞을 지나던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남자가 여자에게 낮게 속삭였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수잔나는 장부를 덮었다.“방금 들었죠?”“네.”“내 가게에서 그딴 소리 하면 소금물 줘야지.”수잔나는 소금 자루를 한 번 쳐서 먼지를 털었다. 자루 입구에서 굵은 소금 몇 알이 떨어졌다.“지금 그 사람들을 찾아가 따지면 더 커질 것 같아요.”“그럼 그냥 두자는 거예요?”“아니요. 누가 처음 말했는지 찾겠습니다.”수잔나가 장부를 팔 아래 끼웠다.“어디서부터 찾을 건데요?”“들었다는 사람부터요. 그 사람이 누구에게 들었는지 묻겠습니다.”“해명은 안 하고요?”“제가 제독님과 어떤 사이인지 설명하러 다니면, 소문을 들은 사람마다 대답해야 합니다. 먼저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하겠습니다.”수잔나는 잠시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그럼 같이 물어봐요. 혼자 찾으려고 하지 말고.”“부탁드리겠습니다.”나는 방금 말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생선 바구니를 고르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시장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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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막힌 짐길

「회색곶 등대의 불빛이 길 위를 비췄다.안개종은 울리지 않았고, 막힌 수레길에서 바퀴가 삐걱였다.」나는 수레 앞에 놓인 나무 걸이를 살폈다. 통나무와 밧줄로 길을 막아 둔 탓에 마차가 지나갈 틈이 없었다.“등대에 가는 길입니다. 기름과 심지가 실려 있습니다.”비스 해운의 표식이 붙은 수레 곁에서 사내가 팔짱을 꼈다.“지금은 지나갈 수 없습니다.”“길이 무너졌습니까?”“아닙니다.”“그럼 통행을 막은 까닭을 알려 주십시오.”사내는 내 손에 든 납품서를 훑었다.“회사 지시입니다. 이 길은 비스 해운의 수레가 쓰기로 했습니다.”“등대에 들어가는 물품도 막겠다는 말씀이십니까?”“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지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나는 납품서를 접지 않고 펼친 채 들고 있었다. 종이 끝이 바람에 들렸다.“언제까지입니까?”“모릅니다.”“통행을 막으라는 지시가 적힌 문서를 보여 주십시오.”사내의 입이 굳었다.“그런 문서는 없습니다.”“그럼 회사 지시라는 말은 누가 했습니까?”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뒤편에 선 일꾼이 밧줄을 당겨 걸이를 더 단단히 묶었다. 젖은 밧줄이 나무를 긁었다.도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심지 꾸러미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누나, 이거 들고 더 기다려야 해?”“잠시만.”“기름 냄새가 새는 것 같아.”나는 통마개를 확인했다. 밖으로 흐른 흔적은 없었다. 그래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등대에 남은 기름을 생각하자 손가락이 납품서 모서리를 눌렀다.[10월 9일, 곶으로 가는 길 통행을 막음. 기름과 심지의 반입 지연.]나는 방금 확인한 사실을 적어 납품서 뒤에 끼웠다.“적으셔도 소용없습니다.”“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말도 적었습니다.”“난 그런 말 안 했습니다.”“문서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사내는 내 손의 종이를 보았다. 그가 말을 고르는 사이,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유리안 제독이 군마를 멈춰 세웠다. 군복의 어깨에 흙이 묻어 있었다.“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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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말할 수 없는 일

「렌즈의 흰 빛이 계단 벽을 훑었다.아래쪽에서 파도 소리가 올라왔다.」나는 계단 중간에 앉아 수잔나의 장부 사본을 무릎에 펼쳐 놓았다. 옆에는 비스 해운에서 받은 서류가 놓여 있었다. 바람이 계단 틈으로 들어올 때마다 종이 끝이 조금씩 들렸다.나는 연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장부의 적힌 값과 서류의 값을 다시 맞춰 보고 있었다. 같은 물건인데 적힌 금액이 달랐다. 아직 어느 쪽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노엘라 씨.”계단 아래에서 유리안 제독의 목소리가 들렸다.“제독님.”그가 올라왔다. 군복에 묻은 소금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장부를 치우지 않았다. 그가 밤마다 불을 보러 오는 일은 익숙해졌지만, 장부와 비스 해운 서류를 함께 둔 자리에서 마주치는 일은 달랐다.유리안은 내 앞에 멈췄다.“오늘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네. 저녁 점검은 끝났습니다.”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장부를 내려다봤다. 연필 끝으로 한 줄을 따라가다가 손을 멈췄다.그의 시선이 종이에 머물렀다.길지 않았다. 장부 사본에서 비스 해운 서류로 옮겨갔다가 내 손에 든 연필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장부를 찾으십니까?”유리안의 손이 주머니 시계 위에서 멎었다.“아닙니다.”“그러면 비스 해운 서류를 보신 겁니까?”그는 대답하기 전에 종이를 다시 보았다. 시선이 서류의 머리글에 닿았다가 거두어졌다.“봤습니다.”“무엇을 확인하려고 하셨습니까?”유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 바람이 틈을 지나며 종이 모서리를 흔들었다.나는 종이를 손바닥으로 눌렀다.“제독님은 수잔나 씨 장부와 비스 해운 서류를 계속 살펴보십니다.”“그렇습니다.”“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나는 연필을 장부 위에 내려놓았다.“제독님.”“죄송합니다.”“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단단하게 나왔다. 나는 서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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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시계 뒷면

「렌즈의 흰 빛이 관리실 벽을 지나갔다.창틀 틈으로 파도 소리가 들어왔다.」“말씀드릴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말하지 않습니다.”유리안 제독의 말이 끝난 뒤에도 나는 장부를 덮은 채 손을 올려 두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제독님은 계단 한 칸 아래에 앉아 있었고,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보고 있었다. 종이 끝이 바람에 들썩였다.“알겠습니다.”내 대답은 짧았다.유리안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내가 묻지 않았으니 답할 말도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말을 끌어내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장부를 한쪽으로 치우고 서류를 가지런히 맞췄다. 수잔나의 장부 사본과 비스 해운에서 받은 서류는 모서리가 서로 어긋나 있었다. 종이 위의 숫자도 여전히 맞지 않았다.“오늘은 이만 정리하겠습니다.”유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방해해서 죄송합니다.”“방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럼 다행입니다.”나는 서류를 일지 아래에 끼웠다. 어디까지 살폈는지 표시한 연필은 일지 위에 놓았다. 제독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계 주머니를 눌렀다.“불이 켜졌는지 확인하러 오셨습니까?”“그렇습니다.”“매일 확인하시는군요.”“그렇습니다.”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일지를 펼쳐 오늘 기록을 찾았다. 저녁 점검과 렌즈 상태는 적혀 있었다. 기름도 부족하지 않았다. 확인할 내용은 이미 끝났는데, 제독님은 바로 계단으로 향하지 않았다.“제독님.”“네, 노엘라 씨.”“제가 묻지 말아야 할 일과, 물어도 답할 수 없는 일은 다릅니까?”유리안은 잠시 나를 보았다.“다릅니다.”“그럼 지금 제가 물어도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제가 아는 일이라면 답하겠습니다.”“말씀하실 수 없는 일은요?”“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나는 연필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 말은 조금 전과 같았다. 그래도 둘러대는 답은 아니었다.“알겠습니다.”이번에는 아까보다 천천히 말했다.유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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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이틀의 냉전

「렌즈의 흰 빛이 계단 벽을 돌았다.아래에서 파도 소리가 올라오고, 황동 시계 뚜껑이 닫혔다.」나는 시계에서 눈을 거뒀다.유리안은 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열린 일지를 덮지도, 나를 재촉하지도 않았다.“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조심히 내려가십시오.”그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곧 계단을 내려갔다. 군화 소리가 몇 칸 이어지다가 멎었다.나는 일지에 눈을 돌렸다. 오늘 점검한 내용을 다시 읽었다. 글씨는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그 뒤로 나는 인사를 줄였다.불이 켜졌는지 확인하러 온 그에게 먼저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가 계단을 오르면 일지부터 펼쳤다. 묻는 말에는 필요한 만큼만 답했다.유리안은 그럴 때마다 더 묻지 않았다.*다음 밤, 렌즈실로 오르는 계단에서 유리안의 군화 소리가 들렸다.나는 일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연필을 쥐었다. 그가 계단 끝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노엘라 씨.”“제독님.”그 인사는 짧았다. 나는 기록한 줄을 확인했다.“오늘 불은 켜졌습니다. 점검도 마쳤습니다.”“확인했습니다.”유리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 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렌즈의 흰 빛이 계단 벽을 지나갔다. 그 빛이 닿자 유리안은 시계 뚜껑을 닫았다.나는 그 모습을 보지 않은 척했다.“기름 상태는 괜찮습니까?”“오늘 확인한 범위에서는 괜찮았습니다.”“알겠습니다.”그는 계단을 내려가지 않았다. 돌계단 아래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군복 자락이 계단 모서리에 닿았다.나는 일지로 시선을 내렸다.그가 앉아 있는 동안 렌즈가 몇 번이고 벽을 밝혔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빛이 계단을 훑었다. 그때마다 그의 어깨가 잠깐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나는 기록을 마쳤다. 연필을 일지 위에 놓고, 다음 줄을 읽었다. 그 아래도 읽었다.유리안은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제독님, 불은 확인하셨으니 내려가셔도 됩니다. 계단에 계속 앉아 계시겠습니까?”“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 있겠습니다.”그 말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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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검은 돛 추격

「안개가 렌즈의 흰 빛을 가렸다.빛이 다시 바다를 훑을 때, 검은 돛이 나타났다.」“아직 다 쓰지 않았습니다.”유리안의 말에 나는 일지를 덮지 않은 채 연필을 들었다. 꼭대기 창 밖은 안개로 흐렸다. 렌즈가 돌 때마다 흰 빛이 안개를 가르고, 곧바로 사라졌다.“점검 기록은 끝났습니다. 방금 보신 건 바다였습니다.”“그렇습니까?”“네. 빛이 닿는 순간 검은 것이 움직였습니다.”유리안은 창 가까이 다가갔다. 손은 창틀에 얹지 않았다. 황동 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어느 쪽입니까?”“곶 바깥쪽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나는 일지를 펼쳤다. 오늘 날짜가 적힌 줄 아래에 연필을 댔다.“아직 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맞습니다.”렌즈가 한 바퀴 돌았다. 흰 빛이 안개 속으로 길게 뻗었다가 창 너머에서 끊겼다.이번에는 검은 돛이 보였다. 돛 아래쪽에 검은 줄이 나란히 지나갔다. 빛이 돌아오기 전, 배는 다시 안개에 묻혔다.“비스 해운의 배입니까?”유리안이 물었다.“돛에 검은 줄이 세 개 있습니다. 지난번 배와 같습니다.”나는 방금 본 모양을 일지에 적었다.[안개 짙음. 검은 돛 확인. 돛 아랫단에 검은 줄 세 개.]“배가 등대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게 보입니다.”“저희 빛이 닿으면 방향을 바꾸는지 확인하겠습니다.”“위험합니다.”“배를 따라가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빛에 반응하는지 보겠습니다.”유리안은 시계를 확인한 뒤 뚜껑을 닫았다.“세바스에게 알리겠습니다.”“먼저 배가 어느 쪽에 있는지 더 보겠습니다.”그는 나를 잠시 바라봤다. 나는 일지를 덮지 않았다.“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확인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배가 위험해지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알겠습니다.”유리안은 창 앞에 남았다. 나는 렌즈실의 신호판을 확인했다. 평소 빛을 가리는 판이었다. 렌즈를 멈추지 않고 창으로 나가는 빛의 일부를 가릴 수 있었다.나는 판의 손잡이를 잡았다.“어떤 간격을 보시겠습니까?”“먼저 평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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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돛 조각

「등잔불이 젖은 천 위에 번졌다.창밖은 안개로 흐렸고, 가게 안에는 바닷물 냄새가 남아 있었다.」검은 줄 세 개가 난 천 조각이 수잔나의 탁자 위에 놓였다.젖은 끝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수잔나는 천을 집지 않고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그대로 둬요. 먼저 누가 만졌는지부터 말해 봐요.”세바스가 손을 들었다.“제가 부두에서 주웠습니다. 젖은 건 그대로였고요. 다른 사람 손은 안 탔습니다.”“어디에 걸려 있었죠?”“부두에 걸려 있었습니다. 배는 안 보였고요.”수잔나는 내 쪽을 봤다.“아가씨는요?”“꼭대기 창에서 검은 돛을 봤습니다. 돛 아랫단에 검은 줄이 세 개 있었습니다. 그 뒤에 세바스가 조각을 가져왔습니다.”“언제 봤는지도 기억해요?”“일지에 적었습니다. 안개가 짙었고, 빛을 바꾼 뒤 배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다만 배가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잘했어요. 본 것하고 짐작한 걸 섞지 않았네요.”수잔나는 낡은 장부를 탁자 한쪽으로 밀었다. 그 아래에서 기름 냄새와 소금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그런데 이 조각은 아직 젖었어요. 젖은 채로 문지르면 실밥이 더 풀릴 수 있겠네요.”“펴서 말려야 합니까?”내가 묻자 수잔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무렇게나 펴면 안 돼요. 가장자리를 잡고, 천이 늘어나지 않게 두면 돼요. 바람을 쐬는 건 나중이고요.”수잔나는 마른 천을 탁자에 깔았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러 평평하게 만든 뒤, 세바스에게 고개를 까딱했다.“저쪽 끝을 잡아 줘요. 끌어당기지는 말고.”세바스는 천 조각의 한쪽을 조심히 들었다. 나는 반대쪽 끝을 잡았다. 젖은 실이 손끝에 닿았다.“힘을 빼세요. 그래요. 거기까지만.”수잔나가 마른 천 위에 조각을 내려놓았다. 물이 아래 천에 조금씩 배었다.유리안은 탁자 맞은편에 서 있었다. 검은 천을 보고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시계를 꺼내지도 않았다.“이걸로 배를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수잔나는 천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아직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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