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루터 사공이 되었더니 첫 배 손님이 다리 놓을 자리를 나에게 묻는다: Chapter 71 - Chapter 80

80 Chapters

71화. 나루를 지우는 다리

심의장 안의 시선이 서류에 모였다. 여울은 도원의 손이 종이 모서리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 문 앞에서 확인한 명단과 달리, 이번 서류에는 심의에 올릴 안건과 함께 이름이 적혀 있었다.심의장 안쪽에 앉은 관리가 서류를 받아 들었다. 종이가 책상에 닿으며 마른 소리를 냈다. 그가 1장을 훑고는 여울과 사공들을 향해 말했다.“이름은 확인했습니다. 심의는 다리와 나루를 함께 유지하는 안이 타당한지 살피는 자리입니다. 사공들이 서류를 확인하러 온 일은 따로 기록해 두겠습니다.”달삼이 모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확인하러 온 게 아니라, 우리 일이 서류에 어떻게 적혔는지 보러 왔어.”“그 부분은 들었습니다. 오늘은 양쪽 안을 비교하겠습니다.”“양쪽이라면 나루를 없애는 안도 있다는 거야?”“기존 통지에 적힌 폐쇄 방안도 검토 대상입니다.”여울은 도원의 옆얼굴을 봤다. 도원은 모자를 쓴 채 심의장 앞을 보고 있었다. 안쪽 관리가 손짓하자 다른 관리가 서류를 옮겼다. 종이들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먼저 다리를 놓는 안을 설명해 주십시오.”도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모자를 벗어 한 손에 들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의 먹줄 자국이 드러났다. 측심 줄과 납추는 심의장 안으로 들고 오지 않았다. 줄이 없어도, 도원은 서류에 적힌 수치를 짚을 수 있었다.“다리 기둥은 12개를 놓는 안입니다. 다리 오른쪽 아래 계단 끝에는 선착장을 둡니다. 배가 드나드는 길은 다리 기둥과 겹치지 않도록 잡았습니다.”관리 하나가 서류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선착장과 계단을 더하면 공사에 드는 비용이 늘어납니다.”“그렇습니다.”“다리만 놓으면 되는데 선착장을 남기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나루를 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착장을 없애면 강을 건너는 배가 오갈 자리가 사라집니다.”“다리가 생기면 배를 탈 사람은 줄어듭니다. 다리와 선착장을 함께 유지하는 비용을 낼 만큼 이용자가 남는다는 계산이 있습니까?”도원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책상 위 자료에서 해당 항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2화. 나루를 품은 다리

의자가 움직이던 소리가 멎었다. 서류를 넘기던 손도 멈췄다. 여울은 증언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심의장 안쪽 관리가 입을 열었다.“윗마을 이장이 제출한 대피 기록은 확인했습니다. 큰물이 들었을 때 나루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그 기록에는 배가 몇 번 오갔는지도 적혀 있습니까?”“운항 횟수까지는 없습니다. 대피 인원과 도착한 곳이 적혀 있습니다.”“그렇다면 배가 얼마나 필요했는지는 알 수 없겠군요.”여울은 증언대 위에 놓인 서류를 봤다. 종이 위에는 윗마을 이름과 대피한 사람들의 기록이 있었다. 배가 오간 횟수는 적혀 있지 않았다.“기록에 없는 횟수는 제가 더할 수 없어요. 다만 나루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어려웠다는 건 말할 수 있어요.”“다리도 있으면 강을 건널 수 있지 않습니까?”“물이 높아져 통행을 막으면요?”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 붓을 굴리던 손이 멈췄다. 반대편 관리가 서류를 당겨 읽었다.“다리가 통행을 멈추는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여기에 적혀 있습니까?”“공사 기준에는 있습니다. 다만 그 수위와 나루 운항 기준은 다른 항목입니다.”도원이 말하자 관리가 고개를 들었다.“다리가 닫혀도 배를 띄우면 된다는 뜻입니까?”“아닙니다. 배도 위험하면 띄우지 않습니다. 사공이 물살과 수심을 살핀 뒤 운항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여울은 도원을 보았다. 도원은 모자를 손에 든 채 관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서류에 적힌 말보다 넓게 약속하지 않았다.“그 판단을 사공에게 맡기면 책임도 사공이 져야 합니까?”다른 관리가 물었다.“책임을 나누어 정해야 합니다. 사공에게 다리의 안전까지 맡길 수는 없습니다. 배와 선착장의 운항을 맡기는 안입니다.”도원은 심의 자료를 펴서 해당 내용을 짚었다.“다리 구조와 통행 제한은 수운청에서 관리합니다. 사공 조합은 선착장과 배를 맡고, 물이 높아져 운항을 멈춰야 할 때에는 그 판단과 상황을 기록합니다.”“다리를 맡는 일과 나루를 맡는 일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3화. 뜻밖의 반대

탁순 할멈이 국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그릇 밑에 깔린 널판이 덜컹했다. 국물 냄새가 주막 안에 퍼졌다.“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오늘은 외상으로 적어 둘 테니.”“오늘은 내가 낼게.”달삼이 모자를 벗어 평상 위에 놓았다. 모자 챙에 묻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고는 주머니를 뒤졌다.“나루가 남았는데 국 한 그릇 값을 왜 외상으로 달아. 조합장이 먼저 내야지.”“내가 내겠다는 말은 안 했어요.”여울이 숟가락을 들었다.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눌렸다. 주막에는 심의장에서 함께 나온 사공들이 모여 있었다. 국솥 뚜껑이 들릴 때마다 김이 올라왔다. 평상 끝에 놓인 심의 자료는 여러 사람 손을 거쳐 가장자리가 구겨져 있었다.새남은 그 옆에서 국그릇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릇이 뜨거운지 손가락을 번갈아 떼었다 붙였다.“새남, 그릇은 내려놓고 먹어.”탁순 할멈이 말했다.“그러면 달삼 사공님이 제 국을 가져가실 것 같아서요.”“내가 네 국을 뺏어 먹을 사람으로 보이냐?”“아까 제 몫도 할멈 외상으로 달라고 하셨잖아요.”달삼이 입을 다물었다. 하돌은 담뱃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국을 한 숟갈 떴다. 뜨거운 김을 불어낸 뒤에야 입에 넣었다.“나루가 남았다는 말만으로 다 끝난 건 아니야.”국그릇을 들던 손들이 잠깐 멈췄다. 하돌은 숟가락을 그릇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사기그릇에 닿아 짧게 울렸다.달삼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뜻이오?”“다리지기 겸직 말이야.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공이라는 이름은 어디에 남지?”탁순 할멈이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걸쳤다.“결정문에는 선착장과 배를 맡는다고도 적혔잖아.”“일은 적혔지. 이름은?”하돌이 담뱃대 끝으로 심의 자료를 가리켰다. 손을 뻗지는 않았다. 여울은 숟가락을 그릇 옆에 놓았다.“조합 이름은 서류에 있어요.”“서류에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부르는 건 다르지. 다리지기라고 불리기 시작하면, 배를 모는 사공은 어디로 가나.”“우리는 배도 맡게 됐습니다.”도원이 평상 맞은편에서 말했다. 모자는 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4화. 시작 종

여울은 다리 터에 첫 줄을 들고 섰다. 하돌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지만, 오늘은 먼저 줄을 맞춰야 했다. 줄을 잡은 사공들이 선착장 쪽에 늘어섰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옆에 두고 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새남은 제 앞에 놓인 줄을 발로 밟지 않으려고 발끝을 안쪽으로 모았다.“새남, 발 치워.”“안 밟았는데요.”“밟기 직전이잖아.”새남은 얼른 발을 뒤로 뺐다. 줄이 널판 위를 스쳤다. 젖은 섬유가 나무에 닿아 끼익 소리를 냈다.“줄은 한꺼번에 당기지 마세요. 제가 신호하면 조금씩 당겨요.”여울이 말했다.사공들은 각자 잡은 줄을 살폈다. 길이가 모자란 곳은 줄 끝을 다시 풀어 잡았다. 너무 팽팽한 줄은 손바닥만큼 늦췄다. 여울은 버드나무 쪽에서 다리 터까지 줄이 곧게 뻗었는지 확인했다. 강물이 닿는 선착장 아래는 장마 뒤로 흙이 눌려 있었다. 줄을 끌 때마다 널판에 고인 물이 가장자리로 흘렀다.“사공님, 이쪽은 줄이 더 남아요.”새남이 줄 끝을 들어 보였다.“남는 만큼 감아 두지 말고, 선 옆에 붙여 놔. 줄이 걸리면 말뚝 자리가 틀어져.”“네.”새남은 줄을 둥글게 감으려다 여울의 시선을 받고 손을 멈췄다. 감은 줄이 땅에 닿지 않도록 널판 위에 올려놓았다.도원은 측심 줄과 납추를 옆에 내려두고 다리 기둥이 설 자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모자를 벗은 채 여울에게 다가왔다.“줄이 이 자리에서 맞습니까?”“강 쪽 끝을 조금 옮겨야 해요. 물이 들면 배가 닿는 면이 넓어져요.”도원은 여울이 가리킨 곳을 보고 줄의 방향을 살폈다.“말뚝 자리를 옮기면 기둥 간격도 달라집니다.”“기둥 자리를 바꾸라는 건 아니에요. 선착장 쪽 줄을 당겨서 표시를 맞추자는 거예요. 물이 빠졌을 때만 보고 줄을 놓으면 배가 닿을 자리가 좁아져요.”“배가 붙는 곳부터 다시 재겠습니다.”도원은 측심 줄을 들었다. 말하기 전 모자를 벗었으니 이번에는 줄을 손에 걸지 않았다. 납추가 물에 닿자 짧은 물소리가 났다. 도원은 줄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여울은 물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5화. 여울의 청

버들나루 널판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여울은 종이의 모서리를 돌멩이로 눌렀다. 강바람이 불 때마다 빈 종이가 들썩였다.조합원들은 선착장 옆에 둘러서 있었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놓았고, 하돌은 담뱃대를 손에 쥔 채 널판에 기대 있었다. 탁순 할멈은 주막에서 가져온 국솥을 가까운 곳에 내려놓았다. 새남은 종이와 먹그릇을 번갈아 보며 발끝을 모았다.“이름을 새길 자리를 정하는 모임은 아니지?”하돌이 물었다.“그건 동의한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정하기로 했어요.”여울이 답했다.“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른 거야?”여울은 손에 든 줄을 내려다봤다. 허리에 걸린 물때 매듭 줄을 풀어 매듭이 서로 엉키지 않게 손바닥에 얹었다. 줄을 풀면 말이 나올 것 같았는데, 손끝만 움직였다.“먼저 모여 주셔서 고맙습니다.”달삼이 모자를 무릎에서 들어 올렸다.“고맙다는 말은 듣고 나서 하게. 할 말이 있으면 해.”“네.”여울은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모서리가 다시 들리지 않게 돌멩이를 가운데로 옮겼다.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도원은 여울의 옆에 서 있었다. 어깨에 측심 줄을 걸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 여울은 조합원들을 보다가 도원에게 시선을 옮겼다. 도원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탁순 할멈이 국솥 뚜껑을 들어 김을 빼냈다.“말할 게 길면 국부터 먹이고 들을게. 빈속으로 꺼내는 말은 자꾸 꼬이더라.”“길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그럼 더더욱 먹어. 짧게 하려다 말이 목에 걸릴 수 있잖니.”여울은 솥 옆에 놓인 국그릇을 보았다. 탁순 할멈이 국자를 들고 있었지만 여울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을 엄지로 문질렀다.“저는 부탁할 일이 있어요.”달삼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다리 일인가?”“아니요.”“나루 일?”여울은 잠시 말이 막혔다. 나루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다리와 선착장, 사공들의 이름을 두고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고, 이제는 그곳을 지키는 일에 여울 혼자 서 있을 수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6화. 정 부인의 나룻배 표

대청 안쪽에서 붓대가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정 부인은 문턱을 넘기 전 손에 든 보자기를 고쳐 쥐었다. 여울은 한 걸음 뒤에서 그 손을 보았다. 보자기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정 부인이 말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매듭을 누르는 힘으로 보아 가볍지는 않았다.윤 판관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펼쳐 둔 문서에는 붓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먹그릇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눈썹이 조금 모였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정 부인은 보자기를 탁자 위에 놓았다.“잠깐 보여 드릴 것이 있어요.”윤 판관은 보자기 매듭을 보았다가 정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무엇입니까?”“먼저 앉아도 되겠어요?”정 부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탁자에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여울도 곁에 앉으려다 멈췄다. 정 부인이 손바닥으로 자리를 가리켰다.“여울도 앉아요.”“네.”여울은 정 부인 옆에 앉았다. 대청 바닥은 잘 닦여 있었고, 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 문밖에 선 도원은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시선은 탁자 위의 보자기에 머물렀다.윤 판관은 붓을 내려놓았다.“도원은 밖에 세워 두고, 사공까지 데려왔군.”“여울은 함께 있어 주기로 했어요.”“내가 그 아이를 부른 적은 없습니다.”“제가 부탁했어요.”정 부인의 목소리는 낮았다. 여울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정 부인이 원하지 않으면 바로 나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 부인은 이미 여울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했고, 여울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대신 정 부인의 말을 대신 꺼내지는 않기로 했다.윤 판관은 잠시 정 부인을 바라봤다.“무엇을 보여 주려는지 말씀해 주세요.”“보면 아실 거예요.”정 부인은 보자기 매듭을 풀었다. 천이 탁자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모서리는 닳았고, 한쪽 귀퉁이는 반듯하지 않게 찢겨 있었다. 종이 가운데에는 희미한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정 부인은 종이를 손바닥으로 펴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7화. 윤 판관이 오다

첫 종이 울리기 전, 윤 판관이 버들나루 널판 위에 섰다.여울은 배에 실을 바구니를 선착장 끝으로 밀어 두다가 손을 멈췄다. 단정한 도포의 소매가 새벽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윤 판관은 혼자였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도원도, 수운청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버드나무 잎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맺혀 있었고, 널판 아래에서는 물이 말뚝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여울은 바구니를 널판 안쪽으로 더 밀었다. 새벽 물기가 밴 나무가 발밑에서 조금 미끄러웠다. 배 옆에 놓인 노는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고, 밧줄은 말뚝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손님을 태우기 전에 확인하던 것들이었다. 여울은 밧줄을 손끝으로 당겨 보고 나서 윤 판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윤 판관님.”여울은 허리를 숙였다. 윤 판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널판에 발을 올렸다. 도포 자락이 나무에 스치지 않도록 손으로 걷어 들었다. 그는 널판 끝에 이르러 배를 한 번 살폈다. 배 안에는 노와 향 받침이 놓여 있었고, 아직 아무도 타지 않았다.“첫 배를 타겠네.”“건너실 곳은 맞으시죠?”“그렇네.”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 윤 판관이 나루로 온 까닭을 묻고 싶었지만, 첫 종이 울리기 전부터 대답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여울은 배 옆에 놓인 노를 새남에게 건넸다.“새남아, 손님부터 태워.”“네, 사공님.”새남은 노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배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다 윤 판관의 옷자락을 다시 보고 발을 멈췄다. 비단 소매가 새남의 눈에 걸린 듯했다. 새남은 노를 고쳐 쥐었지만, 손가락이 자루 끝에서 미끄러졌다.노가 널판에 부딪히기 직전 여울이 잡았다.“손에 힘 줘.”“네. 죄송합니다.”새남은 노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노 끝이 바닥을 긁었다. 널판 위에 낮은 소리가 나고, 새남은 노를 들고 선 채 윤 판관의 소매를 다시 흘끗 보았다.“옷이 눈에 들어왔구나.”여울이 말하자 새남은 귀를 붉혔다.“저렇게 고운 옷은 가까이서 처음 봤습니다.”“옷은 배에 안 태워. 사람을 태워.”새남은 얼른 윤 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8화. 뱃삯

구월 열이틀, 수운청 심의장에는 뱃삯 상한을 고치는 문서가 놓여 있었다.윤 판관은 문서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눈으로 훑었다. 그 옆에는 붓과 먹이 놓였고, 맞은편에는 버들나루 사공 조합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울은 조합장 자리에서 문서를 바라봤다. 도원은 윤 판관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모자는 쓰고 있었고, 어깨에는 측심 줄이 걸려 있었다.“뱃삯 상한을 6푼으로 고치는 안입니다.”수운청 서기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서기는 문서가 놓인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지금 상한은 4푼입니다. 이 문서가 통과되면 성인 한 명의 뱃삯은 6푼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6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요?”여울이 물었다.“그렇습니다. 상한을 고치는 겁니다. 4푼을 받는 나루는 그대로 4푼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럼 사공마다 값을 달리 정해도 됩니까?”“상한 안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루마다 값을 알 수 있게 밝혀야 합니다.”서기는 말끝을 고르고 문서에 시선을 내렸다. 여울은 그가 설명을 빼먹지 않도록 잠시 기다렸다.“같은 나루에서 사람에 따라 값을 다르게 받으면 안 됩니다. 짐값이 따로 있으면 그것도 밝혀야 합니다.”“노를 같이 젓는 사람도 성인 한 명으로 셉니까?”하돌이 물었다. 담뱃대는 손에 들려 있었지만, 심의장 안에서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사공은 뱃삯을 받지 않습니다.”서기가 답했다.“그건 지금도 그렇지 않나?”달삼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예. 다만 문서에 기준을 적어 두려는 겁니다.”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돌은 담뱃대 끝을 손바닥에 두드렸다.“상한을 올리면 사람들은 6푼을 받으려 하겠지. 지금까지 4푼으로 건너던 사람이 더 내야 할 수도 있고.”“그럴 수 있습니다.”서기가 고개를 들었다.“그래서 조합에서 먼저 정할 값이 필요합니다. 나루마다 제각각 받으면 사람들은 어느 배를 타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버들나루는 4푼으로는 배를 고치고 줄을 갈기 어렵습니다.”여울이 말했다.“그렇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79화. 항아리 열기

구월 스무날, 여울은 버들주막 평상 가운데 거스름 항아리를 놓았다. 항아리 밑바닥이 나무에 닿으며 둔한 소리를 냈다. 주막 안에 모인 사공 조합원들이 말을 멈췄다.탁순 할멈은 국솥에서 국자를 꺼내 솥 가장자리에 걸었다.“그렇게들 쳐다보면 항아리도 부끄럽겠다. 열려면 뚜껑부터 열어야지.”“뚜껑 열기 전에 할멈 장부부터 치워 주세요. 동전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해요.”여울이 말했다.탁순 할멈은 평상 한쪽에 펼쳐 둔 외상 장부를 집어 들었다. 장부를 목에 건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다시 평상 끝에 내려놓았다.“이 장부는 오늘 없어지는 거 아닌데.”“그건 이따 봐요.”“그럼 이따 보자.”탁순 할멈은 장부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놓고 자리를 비켰다. 조합원 12명이 평상과 벽 쪽에 둘러앉았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았고, 하돌은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 끝이 천에 걸려 삐죽 나왔다.여울은 항아리 뚜껑에 손을 얹었다.“여기 든 돈은 선착장 수리비로 씁니다. 어느 쪽부터 손볼지 조합에서 정하고, 쓴 돈은 장부에 적을 거예요.”“먼저 널판부터 봐야지.”하돌이 말했다.“말뚝도 확인해야 하네. 줄 묶는 데가 헐거우면 널판만 고쳐도 소용없어.”달삼이 손을 들었다.“그러니까 다 같이 보고 정하자는 거예요. 오늘은 먼저 얼마가 모였는지 확인해요.”“자네가 매일 적은 것과 맞춰 보면 되겠네.”하돌은 여울의 허리에 묶인 물때 매듭 줄을 보았다. 여울은 줄을 손으로 덮었다.“이건 물때 적는 줄이에요. 돈은 장부로 맞출 거예요.”달삼이 웃었다.“강은 줄로 알고 돈은 장부로 알고. 조합장 손이 모자라겠네.”“그래서 조합원이 12명이에요.”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돌도 더 말하지 않았다.도원은 평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 먹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깨에 걸었던 측심 줄은 벽에 기대어 두었다. 도원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놓고, 여울이 항아리 뚜껑을 여는 손을 보고 있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80화. 개통 안내

첫 종이 울리자 여울은 말뚝에 묶인 배의 줄을 풀었다. 새 다리 위에 모인 사람들의 발소리가 널판 아래까지 들렸다. 버드나무 3그루 사이로 강바람이 들어왔다. 여울은 배 안을 살피고 노를 놓았다.“첫 배 탑니다. 타세요.”동실 할머니가 광주리를 안고 먼저 배에 올랐다. 동실은 종이배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뒤따랐다. 종이배의 뱃머리가 조금 눌려 있었다.“동실아, 배는 젖으면 다시 접어야 해.”새남이 말했다. 새남은 노를 배 안에 내려놓고 승객들이 앉을 자리를 비웠다.“안 젖게 할 거예요.”“그럼 왜 배를 가져왔니?”“오늘 배가 어디로 가는지 볼 거예요.”새남은 대답 대신 배의 바닥을 확인했다. 종이가 젖을 만한 물기는 없었다. 여울은 동실에게 배를 꼭 쥐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양손으로 조심히 들고 있었다.탁순 할멈이 주막 쪽에서 작은 향을 들고 왔다.“첫 배에 향도 태워야지. 오늘은 강 건너는 사람 말고 다리 건너는 사람도 많겠네.”“향은 배에 타는 동안만 피울게요.”여울은 향을 받아 배 앞쪽에 꽂았다. 탁순 할멈은 향에 불을 붙이고 1걸음 물러났다. 향 끝에 붉은 불이 붙었다.새남은 맞은편 강둑을 봤다. 새 다리의 계단 끝 선착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리의 기둥들이 물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아래로 강물이 지나갔다.“아저씨는 아직 안 왔네요.”새남이 말했다.“누구?”“측량관님이요. 오늘 다리를 처음 건너신다면서요.”“배가 먼저 가면 오겠지.”“다리로 가면 배보다 빠르잖아요.”“그래도 첫 배는 첫 배야. 줄 풀어.”새남은 줄을 선착장 말뚝에서 완전히 벗겼다. 여울은 배를 밀었다. 물이 배 옆을 쳤다. 승객들이 자리를 잡자 여울은 노를 물에 넣었다.배가 나루를 떠났다. 여울은 강물의 냄새를 맡고 노를 저었다. 물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배 아래에서 노가 한 번 긁혔다. 여울은 방향을 조금 틀었다.“여기서 건너면 돼요?”동실이 물었다.“응. 배는 선착장으로 갈 거야.”“다리도 저쪽으로 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Read more
PREV
1
...
34567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