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혼을 생중계합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29 챕터

11화. 그 시각에 어디 있었지

출입기록이라는 네 글자가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서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날 저장한 검토 자료를 다시 열었다. 문구는 여전히 모호했다.‘과거 업무상 출입 권한 관련 확인 자료.’ 날짜도, 기록을 제공한 부서도,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설명도 없었다. 그 정도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는 한성 측이 그 자료를 정규 방송의 검토 목록에 올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노트에 확인할 항목을 적었다. 자료가 가리키는 날짜와 시간, 출입구와 층, 카드 번호와 발급 이력, 영상의 원본 여부.그다음에야 누가 그 자료를 제시했는지 물을 수 있었다. 순서를 바꾸면 의심이 사실처럼 굳어질 수 있었다.휴대전화가 울렸다. 제작사 법무팀의 박가연이었다.“어제 남긴 검토 의견 봤어요. 한성 쪽에서 추가 자료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은 출입기록이 있다는 설명뿐이에요. 실제로 어떤 기록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공개 전에 원본과 생성 이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가능한 범위를 요청하겠습니다. 다만 출입 기록과 CCTV는 관리 부서가 다를 수 있어요. 영상만 받는다고 기록이 검증되는 건 아닙니다.”“그럼 둘 다 요청해 주세요. 제가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도 확인하겠습니다.”가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서하 씨가 먼저 기억하는 내용이 있어요?”“아직은 시간이 걸려요. 자료를 보기 전부터 누구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아요.”“좋습니다. 그 태도를 유지해 주세요. 지금은 의혹을 반박하는 것보다, 의혹이 무엇인지 특정하는 게 먼저예요.”통화를 끊고 일정표를 열자 지난 며칠이 화면에 펼쳐졌다. 촬영, 인터뷰, 새 거처를 보러 간 시간. 서하는 그 칸들 사이를 짚어 보며 자신이 놓친 날이 있는지 되물었다.자료가 어느 날을 가리키는지 아직 알 수 없어, 더 이전의 일정도 거슬러 확인했다. 이혼을 결심하고 준혁에게 말을 꺼낸 날, 그녀는 밤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다가 변호사에게 연락했다.당장 상담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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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밤 11시 14분

아침 8시 12분, 서하는 첫 번째 알림을 확인했다.한성홀딩스와 거래하는 홍보 계정이 올린 게시물이었다. 공식 입장문은 아니었다.‘최근 확산 중인 이혼 리얼리티 관련 사실 확인 자료’라는 제목 아래 짧은 영상이 첨부돼 있었다. 게시물은 몇 분 사이 여러 계정으로 퍼졌다. 본문에는 윤서하라는 이름이 직접 쓰여 있지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개인의 사생활을 넘어 회사의 기밀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를 바랍니다.’서하는 링크를 열었다. 영상은 20초 남짓이었다.어두운 복도, 보안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옆모습, 문이 닫히기 직전의 흐릿한 화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영상 위에는 날짜와 시각이 표시돼 있었다.23:14.이어 출입기록 화면이 나왔다. 이름 칸에는 윤서하가 적혀 있었다.카드 번호와 임원실 구역 코드가 붙어 있었고, 기록 아래에는 ‘자료 접근 시도’라는 문구가 덧씌워져 있었다. 영상은 누군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끊겼다. 설명은 없었지만, 보는 사람이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는 분명했다.서하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프레임은 없었다.문 안쪽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출입기록이 실제 시스템 자료인지, 영상과 같은 날인지도 아직 모른다. 그런데 화면 아래로 내려가자 이미 답을 안다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남편 회사에서 일했다더니 기밀도 빼돌렸나.’‘이혼 방송으로 돈 벌더니 이번엔 회사까지 이용하네.’‘남편 말이 맞았던 건가.’서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이 차가워졌다.자신을 돈을 노리는 사람으로 몰던 말이 이제는 기밀을 훔친 사람이라는 의혹으로 바뀌었다. 한성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자료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조작했다고 지금 단정할 수도 없었다.서하는 먼저 영상의 게시 시각과 원문 주소를 저장했다. 화면을 캡처하고, 댓글이 달린 시각도 기록했다.게시물을 퍼 나르는 계정이 늘어나는 동안에도 원본 링크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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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화면을 끝까지 보세요

서하는 메일을 받은 뒤 1시간 가까이 파일을 열지 않았다.오세진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리콜 당시 준혁의 일정과 보고를 가까이에서 관리하던 사람이었다.서하가 만든 브리핑 문안을 전달받고, 준혁의 지시를 다시 정리해 보내던 실무자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왜 지금 원본을 보냈는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그녀는 메일 원문을 별도 폴더에 저장한 뒤 박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연은 파일을 개인 노트북으로 열지 말고, 전달 경로와 첨부 정보가 보존된 상태에서 확인하자고 했다. 서하는 알겠다고 답하고, 변호사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다음 날 오전 9시 40분, 제작사 법무팀의 회의실에는 세 사람이 모였다. 가연은 보안이 적용된 검토용 컴퓨터를 켰고, 서하는 의자에 앉기 전에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꿨다.화면에 파일 목록이 뜨자 그녀는 무심코 손을 맞잡았다. 어젯밤부터 기다린 자료였지만, 원본이라는 말만 믿고 결과를 정할 수는 없었다.“먼저 파일 자체와 전달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가연이 말했다.“영상에 나온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건 그다음이에요.”메일에는 영상 파일 하나와 출입기록 내보내기 파일, 그리고 짧은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가연은 첨부 파일의 생성 정보와 내부 시스템에서 추출할 때 남는 식별값을 비교했다.영상은 한성 건물의 보안 시스템에서 내보낸 파일 형식과 맞았고, 출입기록 역시 화면 캡처가 아니라 시스템에서 추출한 원본 데이터였다. 그렇다고 이 자료가 모든 사실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가연은 확인된 항목과 추가 확인이 필요한 항목을 구분해 적었다.“영상은 원본 시스템의 내보내기 형식과 일치해요. 기록도 별도 시스템에서 추출한 형태고요. 전달 경로는 변호사에게도 그대로 보존해 달라고 하세요. 지금부터는 이 파일을 누가 만들었는지 추측하지 말고, 파일이 실제로 보여주는 것만 확인하겠습니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는 복도와 보안문이 나타났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영상과 같은 장소였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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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거짓을 만든 사람

라이브가 끝난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제작사 법무팀 메일함에 항의가 쌓였다.한성홀딩스는 공식 공문을 통해 공개된 영상의 출처와 취득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회사 보안 자료를 외부에 유출한 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며,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까지 관련 클립을 내리라는 내용이었다. 공문에는 서하가 회사 기밀을 무단으로 취득했을 가능성도 적혀 있었다.서하는 출력된 문서를 읽다가 마지막 장에서 손을 멈췄다. 어제는 그녀가 기밀을 훔쳤다는 영상이 돌았고, 오늘은 그 영상의 원본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자료 취득 경위를 문제 삼고 있었다.무엇을 해도 한성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려 들었지만, 그 요구를 전부 부당하다고 몰아갈 수도 없었다. 출처와 공개 범위만큼은 실제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클립을 바로 내리면 어떻겠습니까?” 제작사 운영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한성 쪽에서 법적 조치를 언급했습니다. 제작사도 계약 관계가 있으니까요.”박가연은 공문을 덮지 않은 채 답했다.“내릴지 유지할지는 위협의 크기가 아니라 공개 내용의 정확성과 계약상 권리로 판단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있으면 고치고, 공개 범위를 넘은 부분이 있으면 가려야죠. 하지만 사실을 바로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내려야 하는 건 아닙니다.”공개를 고른 사람도 자신이니, 그 말에 기대어 화면을 닫을 수는 없었다. 서하는 보여 준 것과 끝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자기 눈으로 다시 보려고 재생 버튼으로 손을 옮겼다.그녀는 라이브 최종본을 처음부터 재생했다. 시간 표시와 출입기록의 차이를 설명한 부분,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부분, 누가 편집을 지시했는지 단정하지 않겠다고 말한 부분을 차례로 점검했다. 공개 화면에는 카드 번호 전체가 나오지 않았고, 변호사 사무실의 주소와 상담 내용도 가려져 있었다.“이 부분은 유지해도 될 것 같아요.” 서하가 말했다.“다만 ‘원본 기록과 맞지 않는다’는 자막이 제가 말한 범위보다 강하게 나간 건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원본과 다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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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제가 직접 했습니다

준혁의 영상은 오전 9시 정각에 올라왔다.회사 공식 계정이 아니라 개인 계정이었다. 배경은 한성홀딩스의 회의실도, 사내 브리핑룸도 아니었다.집무 공간처럼 꾸민 작은 방에 앉은 준혁은 어두운 재킷을 입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화면 아래에는 ‘개인 자격으로 말씀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회사의 공식 입장과 구분하려는 표시였지만, 영상에 담긴 내용은 회사가 오래전부터 내세우던 설명과 다르지 않았다.서하는 촬영을 준비하다가 알림을 확인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손이 잠깐 멈췄다.어젯밤 기록해 둔 문장이 떠올랐다. ‘미국 리콜 당시 제 역할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준혁은 원본 영상의 반박을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자신의 역할을 다시 설명하기로 한 모양이었다.“재생할까요?” 제작진이 물었다.“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장해 주세요. 편집된 클립 말고 전체 영상이 필요해요.”서하는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재생했다. 준혁은 먼저 자신이 회사의 공식 대변인 자격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개인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는 서두 뒤로 미국 리콜 이야기가 이어지자 서하는 이어폰을 낀 채 들었다. 전문 부서가 맡은 기술 판단과 규제 대응은 금방 지나가는 반면, 대외 대응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는 대목에서만 준혁의 말이 길어졌다.“미국 리콜 당시 언론 대응 전략과 브리핑 원고, 전체 대외 일정은 제가 직접 수립하고 관리했습니다.”서하는 영상을 멈췄다.낯설기는커녕 너무도 익숙한 문장이었다. 평소 대화에서는 ‘전체 대외 일정’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던 준혁의 목소리라, 그 말이 더욱 귀에 걸렸다.일정을 맡길 때면 ‘밖에 나가는 건 네가 정리해’라거나 ‘브리핑은 이번에도 네가 봐 줘’라고 하던 사람이, 보고서에는 서하가 정리한 문장을 자기 말처럼 다듬어 썼다. 방금 들은 말 역시 그중 하나였다.서하는 다시 재생해 문장을 들었다. 준혁은 같은 표현을 한 번 더 반복했다.전략, 브리핑 원고, 전체 일정. 세 가지를 모두 자신이 직접 수립하고 관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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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남은 의혹까지

준혁의 개인 영상이 공개된 뒤, 온라인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돌기 시작했다.하나는 서하가 회사 기밀을 훔쳤다는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 다른 하나는 그녀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자료를 이용해 남편을 공격했다는 비난이었다. 원본 영상과 출입기록의 차이를 확인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자료를 누가 보냈는지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하의 설명 자체를 의심했다. 준혁이 직접 리콜 업무를 했다고 주장한 영상까지 퍼지면서, 댓글은 서로 다른 문제를 한 덩어리로 섞고 있었다.서하는 댓글 창을 닫고 노트에 세 가지 질문을 적었다. 공개된 자료가 원본과 일치하는가. 자신이 그 시각에 임원실에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인가.자료를 전달한 사람의 신원을 공개해야 하는가. 첫 두 질문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자료의 진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범위와 개인의 안전을 함께 따져야 했다.그녀는 박가연과 변호사에게 짧은 후속 라이브를 열어도 되는지 물었다. 새 증거를 더 공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확인된 내용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구분하는 자리였다.가연은 화면에 쓸 자료를 다시 확인한 뒤 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만 공개본을 반복해서 틀어 조롱하거나, 준혁이 조작을 지시했다고 단정하는 문구는 넣지 않기로 했다.“이번에도 누가 편집했는지 묻는 질문이 나올 겁니다.” 가연이 말했다.“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건 달라요. 확인되지 않은 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면 됩니다.”“자료를 보낸 사람 이름을 공개하라는 요구는요?”“필요한 경로로 확인받을 수 있도록 제출했으면, 인터넷에 이름을 올려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조사나 적법한 요청이 있으면 변호사와 상의해 대응해야 해요.”서하는 그 답을 메모했다. 누군가의 신원을 보호한다는 말이 모든 확인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게, 자신이 한 조치와 공개하지 않을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기로 했다.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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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끝내야 하는 사람

오전 9시 12분,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서하는 노트북을 켜 둔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는 어젯밤 라이브를 잘라 만든 영상들이 여전히 떠 있었다.원본의 시각과 공개본의 시각을 비교한 영상은 수십만 회를 넘겼고, 그 아래에는 서하가 자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밝히라는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는 이미 누명을 벗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출처를 숨기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고 했다. 어느 쪽도 그녀가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았다.“윤서하 씨, 어제 보내 주신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한성 측 대리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변호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서하는 그 차분함 때문에 오히려 자세를 바로 했다.“무슨 연락인가요?”“자료 취득 경위와 공개 범위를 문제 삼겠다는 취지입니다. 방송에서 회사 내부 자료를 더 공개하면 영업상 비밀 침해와 명예훼손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무실에 선임 범위와 비용 부담을 다시 확인해 달라는 요청도 했고요.”“제 의뢰를 맡지 말라는 뜻인가요?”“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사건이 커질수록 비용이 늘어날 수 있고, 자료를 계속 다루면 저희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서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성은 자신에게 직접 전화해 협박하지 않았다.대리인에게 비용과 책임을 하나씩 떠올리게 하는 정중한 말을, 서하는 가만히 되짚었다. 물러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듣고 나면 한 발 뒤로 가야 할 것 같았다.“변호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우선 현재 의뢰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방송에서 다루는 모든 문제를 무제한으로 맡는 게 아니라, 지금 확인할 사안을 나눠야 합니다. 자료의 보존과 공개 가능 범위, 기밀 유출 의혹에 대한 대응, 준혁 씨 측의 허위 주장에 대한 정정과 법적 검토. 이 세 가지를 우선으로 정리하고, 재산 정산은 별도 절차로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비용도 그렇게 나눌 수 있나요?”“가능합니다. 예상 비용과 추가 업무가 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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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진짜 잘못을 겨누다

한성 측의 메일은 다음 날 오전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전달됐다.제목은 ‘리콜 당시 절차 준수 여부에 관한 사실 확인’이었다. 본문은 정중했다.한성은 과거 미국 리콜 대응 과정에서 외부 자문이 담당한 업무 범위를 재확인하고 싶으며, 관련 자료가 외부로 공개될 경우 회사의 계약상 권리와 비밀 유지 의무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회신 기한은 사흘 뒤였다. 마지막 문단에는 서하가 법무 사전 검토와 재무 확인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감 사용과 부속합의 진행을 강행했다는 내부 기록이 있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서하는 두 번 읽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았다.준혁이 해외 출장 중 메신저로 인감 사용을 지시했고, 서하는 지시문을 인감 장부에 첨부한 뒤 인감을 받아 왔다. 법무 검토가 끝나지 않았고 재무의 코사인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일정을 먼저 진행했다. 이사회가 나중에 계약을 추인해 대외 계약은 유효하게 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절차를 우회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변호사는 메일을 화면에 띄운 채 말했다.“이 문서는 아직 소송 서류가 아닙니다. 다만 상대가 어떤 방향으로 주장할지 보여 줍니다. 출입기록 문제와 별개로, 리콜 당시 절차 위반을 공개해 윤 씨의 신뢰성을 흔들려는 것 같습니다.”“그럼 제가 그때 절차를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준혁 씨가 했다는 주장까지 전부 사실처럼 보이지 않을까요?”“그래서 구분이 필요합니다. 윤 씨가 실제로 한 선택, 준혁 씨가 지시한 내용, 회사가 추인한 결과는 각각 다른 사실입니다. 하나를 인정한다고 다른 사실까지 자동으로 인정되는 건 아닙니다.”고개를 끄덕여도 속을 조이는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부정하면 거짓말이고, 인정하면 준혁이 내민 이야기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어느 답을 골라도 그만 편해지겠구나 싶어 그대로 둘 수 없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때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게 제가 회사의 모든 결정을 대신 내렸다는 뜻은 아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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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그 부분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준혁 측에서 보낸 사실 확인 요청에는 답변 기한이 적혀 있었다. 사흘 안에 리콜 당시 서하가 맡은 업무와 인감 사용 경위를 설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법무 검토와 재무 확인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속합의를 진행한 이유, 그 과정에서 준혁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서하가 최종 판단을 내린 범위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서하는 질문을 읽고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검토와 기억을 문서에 대조할 시간이 필요한 데다, 상대가 정한 사흘을 자기 입을 열어야 할 시점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기한 안에 답하지 않으면 불리해질까요?” 그녀가 변호사에게 물었다.“요청서가 어떤 법적 성격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상대방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문서이지, 법원의 명령은 아닙니다. 다만 무시하기보다는 답변할 항목과 시기를 정해 회신하는 게 좋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확인 중이라고 밝히고요.”“그럼 제가 먼저 말할 수 있는 부분은요?”“그 부분은 윤 씨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개 발언과 상대방 대리인에게 보내는 답변은 목적이 다릅니다. 방송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지는 제작 계약과 공개 범위도 함께 봐야 합니다.”통화를 마친 서하는 노트를 펼쳐 답변을 두 갈래로 준비하기로 했다. 상대에게는 확인된 사실과 자료 목록을 보내고, 방송에서 할 말은 따로 고를 생각이었다. 하나의 답변으로 모두 해결하려다가는 법적 대응과 대중을 향한 설명이 서로 어긋날 수 있었다.그날 제작사 회의실에는 다음 방송의 편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 정규 3회에는 서하의 별거 생활과 출입기록 의혹이 이어지고, 이후에는 결혼생활과 리콜 당시 업무가 점차 다뤄질 예정이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이미 서하의 과거 업무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준혁의 개인 해명에 대한 반박을 빠르게 준비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지금 반박하면 반응이 좋을 겁니다.” 마케팅 담당자가 말했다.“준혁 씨가 직접 전략을 세웠다고 했으니까, 서하 씨가 그때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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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누구의 얼굴을 쓸 것인가

다음 촬영 회의에서 제작진은 리콜 당시 업무를 다룰 구성을 제안했다. 서하의 설명만으로는 시청자가 실제 업무를 상상하기 어려우니, 당시 품질팀과 일정 조율을 했던 관계자의 인터뷰를 넣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얼굴과 목소리를 가리면 신원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서하는 큐시트를 읽다가 펜을 내려놓았다.“그분은 출연에 동의했나요?”회의실에서 잠시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났다. 담당자는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우선 인터뷰가 가능한지 검토하고, 동의를 받을 수 있다면 섭외를 진행하려 했다는 설명이었다.“그럼 출연을 정한 것처럼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서하 씨, 이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터뷰예요. 당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제삼자가 확인해 주면, 준혁 씨의 주장에 대응하기도 훨씬 수월합니다.”“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그분이 출연해야 한다는 건 다른 문제예요.”서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화면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바꾸는 일은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부서에서 일했는지,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어떤 시기에 회의에 참석했는지까지 나오면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한성 내부에서는 더 그럴 수 있었다. 익명이라는 표시는 위험을 없애는 보증이 아니었다.“그분이 당시 회의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에서는 누군지 추측할 수 있어요. 화면에 얼굴이 안 나온다고 안전한 건 아니에요. 본인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 알고 선택해야 합니다.”마케팅 담당자가 반론을 냈다.“그렇다고 아무도 안 나오면 서하 씨 말만 남아요. 시청자들은 당사자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기록을 확인하자는 거예요. 누군가를 화면에 세우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 먼저 찾아야죠. 그분이 말해 주면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그분이 감수할 위험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회의실 끝에 앉아 있던 도윤이 큐시트를 덮었다.“인터뷰 자체를 금지하자는 건 아닙니다. 동의 전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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