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서하는 노트북보다 먼저 빈 상자를 꺼냈다.작업실에서 가져갈 물건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당장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건 아니었다.하지만 시어머니가 생활비를 끊겠다고 한 이상, 자신이 어디에 무엇을 두고 살았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결혼 전부터 쓰던 원고와 외장 저장 장치가 있었다. 준혁의 발표문을 고치느라 몇 년 동안 열지 못한 파일도 그 안에 남아 있었다.이 오피스텔은 준혁과 살던 집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져 있었다. 리콜 수습이 끝난 뒤 준혁이 계약했다며 데려온 곳이었다. 당시 그는 문을 열어 보이며 웃었다.‘이제 여기서 네 글을 써.’그 말이 좋아서 서하는 한동안 집보다 그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 며칠은 결혼 전에 쓰다 만 장편을 다시 열었다.인물 이름을 바꾸고, 지워 둔 장면을 살리고, 새벽까지 문장을 고쳤다. 준혁은 가끔 커피를 들고 와서 물었다.얼마나 썼느냐고. 재미있느냐고. 서하는 그 질문을 응원이라고 생각했다.수습이 끝난 뒤에도 리콜 후속 업무 연락은 이어졌다. 준혁이 해외 업무를 맡는 동안, 서하는 일정과 브리핑을 계속 정리했다.처음에는 한두 번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더, 이번 한 번만, 이번 발표까지만. 어느새 원고 파일은 회사 이름으로 바뀌었고, 개인 작품은 폴더 안쪽으로 밀렸다.상자의 먼지를 털어 거칠어진 손끝을 비비며 서하는 창문을 열었다. 소파의 접힌 이불, 촬영 때 정리한 책장 아래로 길게 든 햇빛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책상 위에는 마지막으로 열었던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모니터 옆에 세워 둔 작은 액자도 제자리에 있었다. 결혼 전 첫 방송 대본을 끝낸 날, 자신이 직접 산 것이었다.서하는 상자를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잠금 화면이 뜨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이곳에 들어오면 다시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준혁이 말한 대로,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책상 서랍을 열자 회사
Zuletzt aktualisiert : 2026-11-01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