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의 그룹을 인수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23 챕터

11화. 이곳에 당신 자리는 없습니다

“차서은 씨를 해고하십시오.” 태강그룹 부회장 강태준의 말에 오명석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빛정밀과 체결한 자문 계약 말입니다. 즉시 해지하시죠.” 태준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그의 앞에는 태강그룹 전략투자실장과 법무팀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반면 오명석의 곁에는 재무담당 임원 김상무 한 사람뿐이었다. 태준은 이 협상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빛정밀은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동우모빌리티에서 42억 원의 지급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실제 입금까지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돌아오는 차입금 만기만 수십억 원. 태강그룹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회사였다. 적어도 태준은 그렇게 믿었다. 오명석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차 자문위원의 계약 해지가 인수 협상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죠.” 태준이 미소 지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제 아내입니다.” 오명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현재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아직 법적으로는 제 아내입니다.” “…….” “그런 사람이 제 회사의 인수 대상 기업에 자문을 제공한다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오명석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차 자문위원이 태강그룹의 기밀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런 문제는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그럼 없다는 말씀이군요.” 태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오명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는 차 자문위원과 정식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업무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한빛정밀 상황을 잊으신 겁니까?” “…….” “다음 달 차입금 만기,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태강그룹이 인수를 철회하면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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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그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죠

태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압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알고 계셨다면.” 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빛정밀을 지금 가격에 사겠다는 제안은 하지 않으셨겠죠.” “지금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겁니까?”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었다.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멈췄다. 서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제가 검토한 자료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차서은.” “강 부회장님.”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단호해졌다. “제가 틀렸다면 숫자로 반박해 주세요.” 태준의 턱이 굳었다. 그 말.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결혼 초기. 서재에서 아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여보, 이 계약은 환율 위험을 너무 낮게 잡았어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럽니까?' '제가 틀렸다면 숫자로 설명해 주세요.' 당시 자신은 화를 냈다. '내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날 밤.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은 주먹을 쥐었다. 서은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강 부회장님은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 “그럼 증명하시면 됩니다.” 그녀가 서류를 밀어 주었다. “저도 제 분석이 틀렸다면 인정하겠습니다.” 태준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한빛정밀의 현금흐름 추정치와 투자 위험 요소가 정리되어 있었다. 단순한 주장만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근거와 가정, 시나리오별 결과까지 담긴 분석이었다. 태준은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서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시죠.”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끝내도 된다고 했습니까?” 서은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강 부회장님.” “…….” “이 회사는 아직 태강그룹 소유가 아니에요.” 그녀는 계약서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회의가 끝나는 것도 당신 허락을 받을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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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당신 지금 일부러 이러는 겁니까?

그날 밤. 서은은 고시원 방으로 돌아왔다. 작은 책상 위에 계약서를 펼쳐 놓았다. 월 500만 원. 물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일을 찾아야 할 수도 있었다.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이제는 당장 다음 달 방값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서은은 휴대전화로 은행 계좌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서은아. 무슨 일이니?“나 오늘 계약 다시 했어.”— 계약?“응. 월급도 받기로 했어.”— 정말?“응.”서은은 웃었다.“나 이제 돈 벌어.”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울먹였다.— 우리 딸, 고생 많았네.서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녀는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이제 시작이야.”통화를 끝낸 뒤. 서은은 서랍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결혼 전 사용하던 다이어리였다. 첫 장에는 오래전 자신이 적어 둔 문장이 있었다.'서른 살이 되기 전에 내 이름으로 회사를 세울 것.'서은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늦었지만, 반드시 이룰 것.'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강태준]서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오늘 일은 선을 넘었습니다.]서은은 피식 웃었다. 두 번째 메시지.[내 사업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세요.]세 번째 메시지.[당신이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잊지 마십시오.]서은은 천천히 답장을 입력했다.[저도 한 가지 부탁드릴게요.]잠시 후.[제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세요.]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당신은 이제 제 남편이 아니라 경쟁사 임원일 뿐이에요.]전송. 서은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내일은 채권단 협상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전남편의 자존심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다음 날 오전. 태강그룹 부회장실. 강태준은 밤새 잠을 설쳤다. 아내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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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어머님, 이제 저한테 명령하지 마세요

“차서은! 너 지금 당장 나와!” 한빛정밀 본사 로비. 오전 열한 시 십 분. 대리석 바닥 위로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강그룹 안주인, 한정숙 여사였다. 그녀는 수행비서 두 명을 대동한 채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차서은 어디 있어요?” 안내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객님,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시면…….” “고객?” 정숙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누군지 몰라요?” “죄송합니다만…….” “태강그룹 강 회장 부인입니다.” 순간 안내 직원의 표정이 굳었다. 정숙은 팔짱을 꼈다. “차서은 불러요. 지금 당장.” 직원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들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시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서은이 로비로 걸어왔다. 정숙의 눈이 번뜩였다. “너!” 서은은 걸음을 멈췄다. 오랜만에 보는 시어머니였다. 정확히는, 마지막으로 통화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녀는 잠시 정숙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정숙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네가 나한테 인사할 처지니?” 주변 직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서은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무슨 일이냐고?” 정숙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네가 우리 태준이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 “집 나가서 며칠 고생하더니 이제는 남편 회사까지 망치려고 들어?” 서은은 조용히 대답했다. “저는 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네 일?” 정숙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무슨 일을 해!” 로비에 정적이 흘렀다. “5년 동안 우리 집에서 밥 먹고 놀던 애가 무슨 사업을 한다고!” 서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희미하게 웃었다. “어머님.” “왜!” “여기는 제 직장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밖에서 하시죠.” “내가 왜?” 정숙이 한 걸음 다가왔다. “네가 지금 누구 덕분에 이런 데서 일하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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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앞으로는 혼자 참지 마세요

정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서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머님.” 정숙이 고개를 돌렸다. “왜!” 서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세요.” “…….” “여기서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 것 같으니까요.” 정숙은 이를 악물었다. “너, 집에 돌아올 생각은 있는 거니?” 서은은 망설이지 않았다. “없습니다.” “태준이랑 정말 이혼하겠다고?” “네.” “후회할 거야.” 서은은 작게 웃었다. “그 말씀은 태준 씨한테도 들었어요.” “…….”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녀는 정숙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혼하기로 한 게 제일 잘한 결정 같네요.” 정숙이 떠난 뒤. 로비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서은은 오명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뭐가요?” “저 때문에 회사에 소란이 생겨서요.” 오명석은 고개를 저었다. “차 자문위원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그리고.” 그가 웃었다. “오늘 보니까 차 자문위원이 왜 그렇게 독립하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서은은 멋쩍게 웃었다. “많이 놀라셨죠?” “솔직히 조금요.” 오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 자문위원.” “네.” “앞으로는 그런 일 생기면 혼자 참지 마세요.” “…….” “여기는 차 자문위원 직장입니다.” 그 말에 서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명석은 따뜻하게 덧붙였다. “누구든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 사람을 모욕하게 둘 생각은 없습니다.” 서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우리 사람. 5년 동안 태강그룹 며느리로 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주 함께 일한 사람이 자신을 우리 사람이라고 불러 주고 있었다. 서은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 같은 시각. 태강그룹 본사. 쾅! “강태준!” 부회장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태준은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정숙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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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부회장님께서 듣지 않으셨던 거겠죠

오명석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까?” “네. 다만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담당자가 서은을 바라보았다. “추가 자료를 제출해 주셔야 하고, 일부 조건도 조정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서은은 곧바로 대답했다. “필요한 자료는 기한 내 제출하겠습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 자문위원님.” “네.” “오랜만에 제대로 준비된 정상화안을 봤습니다.” 그 말에 서은의 눈이 커졌다. “감사합니다.” “결과는 심의를 거쳐야겠지만.” 그가 미소 지었다. “적어도 검토할 가치는 충분하군요.” 회의가 끝난 뒤. 오명석은 서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차 자문위원.” “네.” “오늘 정말 잘했습니다.” 서은은 커피를 받아 들었다. “아직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명석이 웃었다. “그래도 오늘은 칭찬받아도 됩니다.” 서은은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때 오명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었다. “……강태준 부회장이군요.” 서은의 손이 멈췄다. “받으세요.” 오명석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네, 강 부회장님.” — 오늘 채권단 회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오명석은 서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정상화안을 바탕으로 조건부 만기 연장안을 심의하기로 했습니다.” 짧은 침묵. — ……뭐라고요? “아직 최종 승인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습니다.”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 차서은 씨가 진행했습니까? “네.” — 그 사람 지금 옆에 있습니까? 오명석은 서은을 바라보았다. “네, 있습니다.” — 바꿔 주십시오. 오명석은 휴대전화를 건넸다. 서은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네, 강 부회장님.” — 차서은 씨. “말씀하세요.” — 지금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서은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무슨 말씀이세요?” — 당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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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그 여자에게 투자하겠습니다

“차서은 씨에게 100억을 투자하겠습니다.”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차서은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 느슨하게 풀어 놓은 넥타이. 그리고 이 상황이 퍽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 남자는 서은의 맞은편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정확히는 차서은 씨가 앞으로 설립할 회사에요.”서은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물었다.“죄송하지만.”“네.”“저희 오늘 처음 뵙는 사이 아닌가요?”남자가 웃었다.“맞습니다.”“그런데 저한테 100억을 투자하시겠다고요?”“네.”“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아세요?”“기업 구조조정 전문가.”“…….”“현재 한빛정밀 경영 정상화 총괄 자문위원.”그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그리고 태강그룹 강태준 부회장님의 아내.”서은의 표정이 굳었다. 남자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아.”그가 미소 지었다.“마지막 소개는 마음에 안 드셨나 보네요.”서은은 차갑게 대답했다.“곧 전남편이 될 사람입니다.”“그렇군요.”남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그럼 마지막 소개는 빼겠습니다.”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류태오. 아르덴캐피탈 대표이사.“처음 뵙겠습니다, 차서은 씨.”그는 웃었다.“저는 남의 아내 말고, 돈 벌어 줄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사흘 전. 한빛정밀 본사.“차 자문위원님!”재무팀 직원이 복도 끝에서 달려왔다. 서은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무슨 일이에요?”“동우모빌리티 잔여 대금이 입금됐습니다!”“정말요?”“네! 22억 원 전액이요!”서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확인서 받았어요?”“네. 입금 내역도 정리했습니다.”“좋아요. 그럼 바로 13주 현금흐름표에 반영해 주세요. 자금 사용 우선순위도 다시 확인하고요.”“알겠습니다!”직원이 뛰어가자 서은은 잠시 벽에 기대섰다. 42억 원. 전액 회수. 한빛정밀이 받아야 했지만 제때 받지 못했던 돈이었다. 물론 그 돈만으로 회사가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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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대표님은 차서은 씨가 궁금합니다

다음 날 오전. 태강그룹 부회장실.“한빛정밀이 신규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라고요?”강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박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비핵심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기관과 협의하고 있습니다.”“얼마나?”“최대 60억 원 규모입니다. 아직 심사 단계입니다.”태준은 서류를 내려놓았다.“차서은 씨가 진행한 겁니까?”“그렇습니다.”“…….”“그리고 동우모빌리티 미수금 42억 원은 전액 회수됐습니다.”태준의 손이 멈췄다.“전액?”“네.”“…….”“채권단에서도 한빛정밀의 정상화 가능성을 다시 평가하고 있습니다.”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한빛정밀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가져올 수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협상력이 생겼다. 채권단이 기다려 주기 시작했다. 회사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차서은이 있었다.태준은 짜증스럽게 펜을 내려놓았다.“한빛정밀 인수 제안 가격은 어떻게 됐습니까?”“기존 조건으로는 협상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그럼 가격을 올리면 되잖습니까.”준혁은 잠시 망설였다.“부회장님.”“뭡니까?”“사실 저희도 인수 후 추가 투자비를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태준의 눈썹이 움직였다.“무슨 뜻입니까?”“차서은 씨가 지난 회의에서 지적한 운전자본 문제 말입니다.”“…….”“실무진이 재검토한 결과, 기존 인수 계획에 반영된 금액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태준의 얼굴이 굳었다.“얼마나 부족한데요?”“보수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수십억 원 이상 추가 자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정확한 규모는 실사 후 확정해야 합니다만, 차서은 씨의 지적은 타당했습니다.”태준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또였다. 또 차서은이었다. 자신이 틀렸다고 비웃었던 여자가. 자신의 실무진이 놓친 위험을 먼저 발견했다. 태준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그 사람.”준혁이 고개를 들었다.“네?”“원래 이렇게 일을 잘했습니까?”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은 씁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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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류태오라는 남자

이틀 후. 한빛정밀 본사.서은은 낯선 방문객의 명함을 받았다. 아르덴캐피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눈썹이 올라갔다.“아르덴캐피탈에서요?”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이사님께서 직접 방문하셨습니다.”서은은 잠시 생각했다. 아르덴캐피탈. 해외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업계에서 꽤 유명한 회사였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과 경영권 투자 분야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 그런 회사 대표가 자신을 찾아왔다고?“대표님께 보고드렸나요?”“네. 오 대표님께서도 참석하신다고 합니다.”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회의실로 안내해 주세요.”잠시 후. 회의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 단정하지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지 않은 네이비색 정장.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안녕하세요.”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류태오입니다.”서은은 그의 손을 잡았다.“차서은입니다.”“알고 있습니다.”“……네?”태오가 웃었다.“만나 보고 싶었거든요.”서은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남자였다. 첫 만남부터 지나치게 솔직했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오명석이 자리를 권했다.“류 대표님. 직접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닙니다.”태오가 자리에 앉았다.“제가 더 궁금해서 왔습니다.”“무엇이 말입니까?”태오는 서은을 바라보았다.“차서은 씨가 만든 정상화안이요.”서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자료를 보셨습니까?”“일부만요.”“그럼 어떤 부분이 궁금하신가요?”태오는 미소 지었다.“전부요.”“…….”“특히 한빛정밀이 정상화된 이후의 기업 가치가 궁금합니다.”서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그럼 설명드리겠습니다.”***한 시간 후. 태오는 팔짱을 낀 채 서은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처음과 달랐다. 장난스러운 미소는 사라졌고, 눈빛은 날카로워져 있었다.“잠깐.”그가 손을 들었다.“차서은 씨.”“네.”“이 시나리오에서는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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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차서은 씨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서은은 웃었다.“아직 회사 이름도 없는데요?”“그럼 지금 정하면 되죠.”“…….”“차서은 씨 이름으로.”태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본인 이름으로 시작하는 회사. 멋있잖아요.”서은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말했다.'당신이 돈 벌 필요는 없잖습니까.'그런데 이 남자는.'본인 이름으로 시작하는 회사. 멋있잖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서은은 천천히 웃었다.“생각해 보겠습니다.”태오도 웃었다.“기대하겠습니다.”회의가 끝난 뒤. 태오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도경 본부장이 다가왔다.“대표님.”“응.”“한빛정밀 투자 검토 진행할까요?”“진행해.”“알겠습니다.”도경은 태블릿에 메모했다.“그런데 대표님.”“왜?”“차서은 씨에게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태오가 웃었다.“티 나?”“조금요.”“그렇구나.”그는 건물 입구를 돌아보았다.“재미있는 사람이잖아.”“실력 때문입니까?”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실력도.”“…….”“근데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게 있어.”“뭡니까?”“자기 능력을 과장하지 않더라.”태오는 웃었다.“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위험한 건 위험하다고 말하고.”“…….”“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이 제일 믿을 만해.”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태오는 다시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그리고.”“네?”“강태준이 왜 저 사람을 놓쳤는지도 궁금하고.”도경은 잠시 침묵했다.“대표님.”“응?”“괜히 태강그룹과 엮이는 건 아닐까요?”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투자하는 사람이 경쟁사 눈치까지 봐야 해?”“그런 뜻은 아닙니다만…….”“걱정 마.”태오는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웃었다.“나는 강태준이 버린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강태준이 못 알아본 사람을 보고 있으니까.”***같은 시각. 태강그룹 부회장실.“아르덴캐피탈이 한빛정밀 투자 검토에 착수했다고 합니다.”강태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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