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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作者: 송언희
게다가 그녀가 갈 때 선물을 사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언니의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빈손으로 가면 두고두고 언니한테 불평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고은영은 백화점이 가까워지자 언니를 다그쳤다.

“많이 안 사. 빨리 사이즈나 말해줘. 샀다가 작아서 못 입으면 환불하기 더 귀찮아.”

“은영아!”

“빨리!”

고은영의 태도는 단호했다.

고은지는 어쩔 수 없이 사이즈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안지영이 말했다.

“언니도 강성 인근에 사시는데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못 보지않아?”

“가정도 있는데 내가 자꾸 가면 부담될까 봐.”

언니 고은지를 통해 고은영은 느낀 바가 있었다. 결혼은 두 가족의 결합이지 남녀가 사랑한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태웅이 배준우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 거부감부터 들었던 것이다.

지금 배준우가 성격도 고약하고 같이 일하기 힘들지만 어차피 직장상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와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야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안지영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언니 만나러 가는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안지영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 친구가 불쌍했다.

유일하게 그녀를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언니는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친언니니까 언니가 입장 곤란해지는 건 싫어.”

언니는 어렸을 적 고은영의 정신적 지주였다. 맛있는 거 생기면 항상 동생 먼저 챙기고 운 좋게 새 옷이 생겨도 먼저 동생에게 주었다.

지금도 언니 집에 놀러 가면 어떻게든 맛있는 거 차려준다고 난리를 떠니 시어머니가 고깝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고은영은 같이 가주겠다는 안지영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들어갔다. 안지영과 쇼핑하면 대부분 그녀가 계산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안지영에게는 신세를 많이 져서 자꾸 부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안지영이 그녀에게 카드를 건넸다.

“안 따라갈 테니까 계산할 때 이 카드 써!”

“아니야. 나 돈 있어.”

“돈 있어? 난 왜 몰랐지?”

안지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난번에 네가 소개한 벽화 작업이 완공되고 500만원이나 벌었어!”

“잘했네. 나중에도 좋은 기회 생기면 또 소개해 줄게.”

“그래.”

고은영도 이런 대형 이벤트가 좋았다. 면적이 너무 작은 미션을 받으면 그만큼 보수도 적었다.

안지영은 돈이 있다는 그녀의 말에 카드를 도로 넣었다.

고은영은 조카한테 줄 옷 세 벌과 요즘 애들이 좋아할만한 간식을 한가득 구매했다.

그리고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한 시간 넘게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드디어 언니네 집에 도착했다.

고은지는 그녀가 온다는 얘기에 일찌감치 버스정류장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고은영은 유행 지난 청바지를 입고 있는 언니를 보자 가슴이 아팠다.

“은영아, 왔어?”

고은영은 씁쓸함을 뒤로하고 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은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동생에게 다가와서 어깨를 감싸안았다.

작은 소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고은영에게 인사했다.

“이모, 오셨어요?”

고은영은 자세를 숙이고 조희주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희주 오늘 학교 안 갔어?”

고은지가 쇼핑백을 건네 받으며 대신 대답했다.

“오늘은 감기기운이 있어서 학교 쉬게 했어.”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 평소보다 많이 빨간 것이 보였다.

이마를 만져보니 뜨거웠다.

“많이 힘들어?”

조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괴로워요.”

“그럼 집에서 쉬지 왜 밖에 나왔어?”

“이모가 보고 싶어서요.”

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고은영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세 사람은 긴 골목을 지나 마당이 있는 주택에 들어섰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집에서 맛있는 닭백숙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고은지는 쇼핑백을 내려놓고 바로 주방으로 갔다. 고은영도 다급히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

“반찬 너무 많이 하지 마. 나 얼마 못 먹어.”

사실은 입맛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서 밥도 안 먹고 간다면 언니가 서운해할 것 같았다.

고은영은 능수능란하게 집안일을 해내는 언니를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고은지가 말했다.

“오랜만에 왔는데 밥이라도 잘 먹여서 보내야지.”

고은영은 그런 언니가 고마웠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니는 그녀에게 조희주랑 놀고 있으라고 부탁했다. 아까부터 열감이 있었던 조희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들었다.

고은영은 아이를 침대에 눕힌 뒤, 언니를 도와주러 주방으로 갔다.

“넌 하지 마. 그러다가 옷에 기름 튕길라.”

“괜찮아. 오늘은 회사 쉬는 날이라 돌아가서 씻으면 돼.”

말을 마친 그녀는 야채를 가져와서 씻었다.

고은지는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고은지의 남편 조용수와 시어머니 진여옥도 집으로 돌아왔다. 고은영을 본 조용수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제 왔어?”

“네, 형부.”

진여옥은 주방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사돈 처녀 오니까 밥상이 달라지네. 우리 거의 한달 동안 고기를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고은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진여옥의 됨됨이를 알기에 고은영은 먼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사돈 어르신.”

진여옥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출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따가 많이 먹어.”

고은영은 입가의 미소를 유지했다.

강성 본토 사람들은 이상한 우월감이 있었는데 특히나 지방 사람들을 가소롭게 생각했다.

조용수네는 집이 그렇게 잘사는 것도 아닌데도 그들 자매를 대할 때면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사돈 어르신 때문에 입맛이 사라진 고은영은 결국 얼마 먹지도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진여옥은 식탁에 앉자마자 닭다리 하나를 조희주의 그릇에 챙기고 남은 닭다리를 조용수에게 주었다.

고은지는 언짢았지만 불만 없이 고은영에게 다른 반찬을 챙겨주었다.

“언니도 먹어!”

고은영은 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고은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요리할 때 간 보느라 많이 먹어서 배불러. 넌 밖에서 집밥도 안 해먹을 텐데 너나 많이 먹어.”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지만 고은영은 언니를 위해서 먹는 시늉이라도 했다.

한편, 오피스텔로 돌아온 배준우는 곧장 옷방으로 직행했다.

옷을 벗어 장롱에 넣으려던 그는 문을 열자마자 떨어진 물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콘돔?’

평소에 그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고은영뿐이었다.

배준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사를 마친 뒤, 진여옥과 조용수는 고스톱 친다면서 외출했다.

변변한 직장도 없으면서 참 한가롭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고은영은 밖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어디야?”

남자가 물었다.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벌렁거렸다.

“지금 언니네 와있어요.”

무슨 이유인지 배준우의 전화를 받을 때면 본능적으로 긴장되면서 말투도 딱딱하게 나갔다.

“주소 좀 보내줘.”

“네?”

고은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고은영은 주소를 보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문자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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