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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적매화
그날 밤, 김단은 새벽녘까지 잠에 들 수 없었다.

방 안의 난로가 뜨겁게 타올라서일 수도 있고, 3년 동안 추위에 떨며 비가 새는 음침한 오두막과는 달리 너무 포근한 잠자리 때문일 수도 있었으며, 마른 이불이 너무 따뜻해서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황홀하게 느껴질 만큼,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남은 생은 세답방에서 보내게 될 줄 알았으나 다행히 그곳을 벗어났다.

이튿날 아침, 눈 부신 햇살이 방 안을 비췄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임씨 부인이 새로 준비해 준 옷은 그녀의 몸에 알맞지 않았지만 상처는 가려줄 순 있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안채로 향했다.

아침 기도를 하시는 조모님을 기다리기 위해 안채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인기척을 느낀 큰 마님은 문밖으로 나와 그녀를 마주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돌아왔느냐?”

짧디짧은 말이었으나 무한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김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안채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으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

“조모님, 그간 기체일향하시나이까?”

“어서 할미에게 오거라.”

큰 마님은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팔을 들었다.

김단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갔다.

큰 마님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많이 여위었구나.”

짤막한 한마디의 말에 묵혀뒀던 설움이 밀려 온 김단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몸종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3년 전 진산댁의 모두가 친딸에게 관심을 쏟던 순간에, 한켠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던 김단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큰 마님이었다. 김단은 언제고 당신의 손녀이라며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세답방에서 고초를 겪을 때, 중전마마께 간청을 올리려한 것도 큰 마님뿐이었다. 하지만 중전을 뵙기도 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공주가 그녀를 궐 밖으로 내쫓는 바람에 세답방에서 바로 빼내지 못했다.

진산군댁 큰 마님의 무모한 성정을 나무라 하는 나인에게 달려든 김단은 결국 그날 상궁에게 끌려가 호되게 매를 맞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자기 행동을 후회한 적 없었다.

그 후로는 아무도 그녀 앞에서 큰 마님을 욕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었다. 이 할미가 곁에 있는 한,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동일한 말을 임씨 부인에게 들었을 땐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큰 마님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조모님의 얼굴에 깊이 자리 잡은 주름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무병장수하셔요, 소녀 곁에 있어 주셔요.”

“그러자꾸나.”

얼마 뒤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온 임씨 모녀는 김단과 함께 있는 큰 마님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친밀하게 있는 모습을 본 임씨 부인은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님, 단이도 무사히 돌아왔는데 소씨 가문과의 혼담도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단은 부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돌아온 것과 소씨 가문과의 혼사가 같이 언급되는 연유는 궁금했다.

큰 마님은 김단의 손을 살짝 잡으며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

“얘야, 이 할미에게 말해보거라. 아직도 그 댁 도령에게 마음이 있더냐?”

깜짝 놀란 김단의 시선이 자연스레 임원에게 향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임원은 긴장된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부인 또한 긴장된 얼굴로 임원의 손을 꼭 잡고 몸을 반쯤 기울였다.

마치 김단이 자기 딸의 자리를 빼앗을까 봐 불안한 사람 같았다.

임원의 손을 잡고 있는 부인의 모습에 김단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소한과 혼인을 할 여인은 임원이다. 그녀가 한때 연모했던 사내를 큰 마님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이리 물어보는 것은, 그녀가 아직도 소한을 연모한다고 말하면 큰 마님은 임원 대신 그녀를 소한의 곁에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임씨 모녀는 그녀의 입에서 소한을 연모한다는 답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김단은 큰 마님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소녀, 더는 장군님을 연모하지 않습니다.”

“철없던 시절 일입니다.”

“소씨 가문의 적자와 임씨 가문의 적녀 사이의 혼담에 어찌 저 같은 것이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소녀는 김씨 성을 가졌습니다.”

성을 바꾼 것은 큰 마님에게도 알렸다.

큰 마님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김단도 나쁘지 않구나.”

성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의 손녀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때 임학과 소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김단이 돌아온 뒤로 임학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큰 마님과 그녀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밖에서 들은 임학은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밤사이 강녕하셨습니까?”

임학은 김단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족보가 바뀐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네 마음대로 성을 바꾼 것이냐?”

임학은 김단의 생부가 김씨 성을 가진 것을 알고 있지만, 진산군댁에서 십여 년을 자라온 귀한 누이가 갑자기 성을 바꾼 것에 화가 났다.

임씨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임학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 무슨 말버릇이오!”

임학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큰 마님의 안색을 살폈다.

큰 마님이 심기 불편한 얼굴을 본 임학은 화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김단의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싸늘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진산군댁 사람들의 본색을 알아차린 것처럼 매서웠다.

“3년 전 쇤네가 세답방에 들어간 다음 날, 진산군께서 친히 주상전하를 알현하여 쇤네가 김씨 성을 가졌다고 알렸사온데, 이것이 족보를 바꾼 게 아니면 뭣이란 말입니까? 혹 진산군께서 주상전하께 거짓을 고하셨단 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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