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화

Author: 적매화
소한이 손에 든 약재 함을 내려다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임학은 불안한 듯 재촉했다.

“금일 전하께서 궐에 들라는 전교를 내린 적 없는 줄로 아네만, 혹 김단을 마중간 것이오?”

임학은 소한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였고 눈빛만 봐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임학이 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제정신이오? 전에 김단이 좋다고 매달릴 땐 미동도 하지 않던 인간이, 원이의 정혼자가 된 지금 다시 김단에게 흔들리는 게 정상이오? 내 누이들을 불장난에 끌어들일 생각 마시게! 그땐 우리의 우정도 끝날 테니.”

소한은 조롱 어린 시선으로 임학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내가 보기엔 자네야말로 첫째 누이를 신경을 쓰는 것 같군.”

사실 소한의 말처럼 누구보다 김단을 신경 쓰는 것은 임학이었다.

자기 마음을 정확히 꿰뚫는 소한의 말에 임학은 목구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고고한 척하지 마시오. 3년 전 그날, 그 자리에 자네도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저 아이는 날 원망하기도 하지만, 자네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소한이 서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마차 안에 있던 수정과는 건드리지도 않더군.”

수정과는 고사하고 난로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만약 큰 마님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소한의 마차에도 올라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소한을 보자마자 예를 갖춰 인사하며 거리를 뒀다.

전처럼 만나서 좋다며 인사하지도 않았고 그를 연모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리던 소한은 마음이 어지러웠다.

누구보다 소한에게 다정했던 누이가, 소한을 연모하던 누이가 더는 그에게 미련 없이 돌아섰다는 말에 임학도 큰 충격을 받았다.

누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딴사람이 되자, 임학도 상당히 놀랐다. 그녀의 발에 가득 자리 잡은 흉터들이 떠오른 그는 자기도 모르게 세답방 궁인에게 화가 났다.

공주자가의 명이라 할지언정, 김단은 진산군의 여식이었다.

임학은 불편한 기색을 띠며 소한을 흘겨보았다.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치료 약을 가지고 왔소?”

소한이 사용하는 치료약은 약왕곡이 조제한 것으로 효과가 매우 탁월했다.

“없소.”

소한은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다친 다리에는 이 약주가 유용할 것이오.”

“고맙소.”

약병을 덥석 쥔 임학은 곧장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돌아온 그는 대뜸 소한의 멱살을 잡았다.

“선 넘지 말게!”

입꼬리를 살짝 올린 소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임학을 마주 보았다.

‘알아서 하겠소.’

소한의 눈빛을 알아차린 임학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네 말 대로 내 자네를 통제할 순 없을지언정, 내 누이를 통제할 순 있네.’

차갑게 그의 손을 쳐낸 소한은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몸종에게 약재 함을 전달했다.

“큰 마님께 드리거라.”

말을 마친 소한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종사관이었던 정암이 진산군 관저 밖에서 소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이리 빨리 나오신 겁니까?”

소한은 말없이 품에서 약병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임원 낭자에게 전하거라.”

“네.”

정암은 궁금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아씨께서 다치셨습니까? 장군님께서 직접 전해주시지 않으시고요?”

소한이 정암을 싸늘하게 쳐다보자, 정암은 알겠다는 듯 더는 묻지 않았다.

임원에게 주는 약이 아님을 눈치챈 것이다.

정암은 곧장 진산군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숙희는 의원에게 받아온 치료 약을 조심스레 김단에게 발라주었다.

연신 눈물을 훔치며 약을 바르는 숙희 때문에 김단은 살짝 당황했다.

“그만 울 거라. 누가 보면 내가 널 괴롭히는 줄 알겠구나.”

그녀의 말에 눈물을 닦은 숙희가 목이 멘 듯 말했다.

“아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임학의 몸종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던 김단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숙희가 이내 억울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도련님께서도 너무하십니다. 아씨께서 이리도 고생하셨는데,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으신데, 어찌하여 둘째 아씨의 편만 드시는 겁니까? 쇤네가 억울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또다시 눈물을 쏟아내는 숙희 때문에 김단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들으시고 널 잡아다가 문초라도 하면 어쩌려고?”

“쇤네가 아씨의 별당에 온 이상, 이젠 아씨의 사람입니다. 도련님께서 쇤네 같은 것에 신경 쓰실 리 없습니다.”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은 숙희가 말을 이었다.

“도련님을 좋은 분이라 여긴 쇤네가 멍청이입니다!”

김단은 자기 일인 양 흥분하여 말하는 숙희가 마냥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진정으로 자기를 걱정하여 하는 소리 인지, 아니면 등 뒤에 칼을 꽂기 위해 신뢰를 얻으려 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가장 친밀하고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배반당한 그녀는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이 자신을 위해 말을 해주는 것이 믿음직스러울 리 없었다.

사람의 진심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먼일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이 세상에서 조모님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눈물범벅이 된 숙희를 말없이 쳐다보던 그녀는 결국 시선을 돌려버렸다.

반쯤 열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연못의 돌다리 위로 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한 명은 임학의 몸종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우람진 체격의 사내였다.

걸음걸이를 보아 낯익었지만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숙희도 슬며시 밖을 바라보았고 이내 놀란 듯 말했다.

“저분, 정암 종사관 나리 아니세요?”

“정암 종사관?”

그제야 5년 전부터 소한이 데리고 다니던 가장 믿음직스러운 수하가 떠올랐다.

‘저 사내가 어찌 여기에?’

김단은 자기도 모르고 싸늘하고 고고하던 소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에 미세한 전율이 돌았다.

“여기까지 온 연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거라.”

“네.”

숙희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몇 마디 대화를 한 뒤, 정암은 숙희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을 김단이 지켜보았다.

창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그녀와 정암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고 정암은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숙희는 손에 두 병의 약병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아씨, 장군님께서 치료 약을 주셨답니다. 이것은 도련님께서 주신 약주입니다. 둘 다 군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이 막역한 사이이니, 오라버니의 손에 이 약이 있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 하나 내게 이것을 주는 연유가 무엇이냔 말인가? 내가 걱정되어서 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속죄를 덜기 위함인가?’

‘특히 오라버니는… 당근과 채찍을 주는 것도 아니고…’

“네가 가지거라.”

김단은 두 사람의 약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차가운 얼굴로 단호하게 말하는 김단 때문에 숙희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2화

    차갑디찬 절망이 지하의 한기 같은 물결로 삽시에 김단의 온몸과 골수까지 밀려들어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눈앞의 괴이한 무늬로 가득 새겨진 석주는 임종의 마지막 탄식 같은 둔탁한 울림과 함께 끝내 제자리로 내려앉아 틈새 하나 허락하지 않은 채 모든 희망을 무정히 짓부수었다.바로 그 순간, 김단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소한을 어찌한단 말인가.석주가 움직이지 않으니 보장은 열리지 않는다. 자옥정초를 얻지 못한다면, 소한의 몸에 도는 독을 무엇으로 풀겠는가.시선이 문득 곁에 선 다섯번째 도령의 허리춤에 매단 장검으로 떨어졌다.차갑게 번뜩이는 금속의 빛이, 광기처럼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서는 오히려 유일한 활로로 보였다.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힘이 치밀어 올라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은 듯 곧장 달려들었다.“단이! 무엇을 하는 것이오!”다섯번째 도령이 놀라 막아서려 했으나, 김단은 이미 장검을 뽑아 들어 잰걸음으로 몇 보 물러섰다.거친 검자루를 쥔 손가락에 냉기가 파고들었다. 그 차디찬 감촉이 오히려 기이한 각성을 데려왔다.망설임 한 치도 없이, 번득이는 칼날을 상처가 남아 있는 왼손목으로 거칠게 내리그었다.“칙—!”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죽음처럼 고요한 밀실에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베지 못했다.최지습의 팔이 그녀의 손목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이제 그 잔혹한 상처가 그의 단단한 팔뚝 위를 가로질렀다. 살결이 뒤집히고 뼈가 드러났으며, 어둑한 피가 거세게 솟구쳐 팔을 타고 굽이치며 흘렀다. 떨어지는 방울마다 먼지 깔린 바닥에 번져들어 작은 웅덩이 같은 어두운 자국을 잇달아 만들었다.김단의 동작이 허공에서 굳어 붙었다. 보이지 않는 서릿발이 순식간에 덮친 듯했다.방금 선혈을 머금은 장검이 손을 떠나 쾅 하고 차가운 석지에 떨어져,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울림을 길게 토했다.모든 몸짓과 모든 광기는 그 눈부신 선혈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백도령!”누군가 놀라 외쳤다.정신을 차리자마자, 김단은 비틀거리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1화

    “여기… 틀림없이 혈인 자리오.” 여섯번째 도령이 낮게 말했다.모두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나아가 가져온 돈혈 통을 들어 그 구멍을 겨누고 기울였다. 되직한 암붉은 액이 바닥 모를 검은 구멍으로 콸콸 흘러들며 둔탁한 울림을 냈다.한 통, 두 통, 세 통, 네 통… 돈혈이 끊임없이 부어지는데도 석주는 잠든 거대한 짐승처럼 미동도 없이 꿈쩍하지 않았다. 공기에는 비릿한 누린내가 점점 짙어져 속을 뒤집히게 했다. 사람들의 가슴도 통마다 비워질수록 서서히 가라앉았다.이제 마지막 한 통만 남자 눌린 기운이 극에 달했다.“어찌 하오? 이 마지막 통뿐이오. 내가 지금 나가 더 구해 올까 하오?” 일곱번째 도령이 물었다.최지습이 미간을 잠시 어둡게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늦을수도 있다. 네가 돌아올 즈음이면 아래의 피가 이미 굳어 버렸을 수도 있다.”이 말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당장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때 두번째 도령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더 부으시오! 그래도 아니면 우리 손을 베어 인혈을 더하자는 것이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괴물을 열어야 하오!”조금 전 영아의 백골로 가득했던 밀실이 이미 모두의 가슴에 불을 붙여 놓았던 것이다. 다른 호랑이군도 잇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죽기를 각오한 결연함을 얼굴에 띠었다.마지막 돈혈 한 통이 들어 올려져 다시 구멍으로 쏟아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흘렀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역시 안 되는 것인가.김단은 미간을 바짝 좁히며 생각했다. 혹 이 금역 보장의 전설이 애초에 허망한 거짓이었던가.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요망서의 복수 계책이었던가.바로 그때였다. 우르르르르—!지심 깊은 데서 솟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돌연 울렸다. 거대한 석주가 격렬히 떨리며 더디게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발아래 땅도 함께 요동쳤고, 천정에서 잔돌과 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별안간 터져 나온 이 동요는 마치 지룡이 몸을 뒤집듯 사나워서, 모두의 기혈을 뒤흔들고 간담을 서늘케 했다.됐다!그들은 성공했다!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90화

    최지습의 손에 들린 횃불이 흔들리자, 그 불빛은 마치 탐조등처럼 숨겨져 있던 방 안을 비추었다!그 창백한 빛이 비춘 방안의 풍경은…겹겹이 쌓인 하얀 뼈들이었다!모두 어린아이의, 가늘고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뼈들이었다!모두 뒤틀리고 웅크린 자세로 뒤죽박죽 쌓여 있었다. 어떤 것은 심지어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그 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김단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목씨 가문 이 개자식들! 모두 능지처참당해야 해!”“하늘이 노할 놈들! 이게 사람의 짓이냐?!”호랑이 군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억눌렸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했다!비록 그들이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룬 광경을 익히 보아왔지만, 이토록 많은, 어린 시신들은 처음 보았다!이들은 갓 태어난, 심지어 세상에 나와 눈을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갓난아기들이었다!그들은 어미의 품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젖 한 모금의 달콤함도 맛보지 못한 채, 잔인하게 이 지옥으로 끌려와 거짓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김단의 몸은 차가운 바람 속 낙엽처럼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그때, 따뜻하고 힘 있는 커다란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최지습이었다.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그녀의 영혼 깊은 곳의 서늘함을 잠시나마 잊게 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급히 고개를 숙여 소매로 얼굴의 눈물을 마구 닦아냈다.목소리는 쉰 듯 먹먹했고, 억누른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 “일단… 할 일부터 하시죠! 나중에… 목설하에게… 저들을… 잘 안장해달라 부탁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단호하게 두 번째 돌문을 향해 걸어갔다!겉으로는 결연해 보였지만, 사실은 이 가슴 아픈 광경을 외면하려는 것에 불과했다!둘째 도령이 먼저 나무통 안의 돼지 피를 모두 돌 제단 위에 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89화

    하지만 김단의 눈빛은 비정상적으로 단호했다.그녀는 차가운 돌문을 보며 깊이 숨을 들이쉬고 끝내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어찌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소한의 몸은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그녀는 반드시 가야만 했다!옆에 있던 최지습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들 마시오. 내가 있고, 호랑이 군 병사들이 있으니, 절대 단이 낭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오.”그의 말이 끝나자, 호랑이 군 중 둘째 도령이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저희는 돌궐의 적진도 뚫고 나왔습니다. 이까짓 금지 구역이 그 돌궐 놈들보다 더 강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다섯째 도령도 웃으며 거들었다. “목씨 가문의 지하옥에서도 탈출했습니다. 이렇게 조그마한 금지 구역 정도는,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그들의 태도는 정말 오만했지만, 김단은 다섯째 도령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다.옆에 있던 여덟째 도령도 손에 든 큰 나무통을 들어 보였다. “이렇게나 만반의 준비를 해오지 않았습니까? 충분한 양의 돼지 피와 소 피를 가져왔으니, 절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셋째 도령이 적절한 때에 입을 열었다. “목씨 가문도 줄곧 보물을 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밤 저희가 대신 찾아줄 테니, 훗날 형제들에게 넉넉한 보상을 내리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재력가로 소문난 목씨 가문이라면 조금의 성의라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몇 대에 걸쳐 먹고 살 정도의 양이었다.호랑이 군들이 떠들고 웃으며, 현장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이윽고 둥근 달이 하늘 한가운데로 올라왔다. 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최지습과 호랑이 군들의 호위 속에서 다시 금지 구역에 발을 디뎠다.뒤에서는 목몽설의 걱정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언니, 조심하세요!”김단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문빗장의 장치를 누르자, 밀실로 통하는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88화

    우문호는 소한이 이 질문을 할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표정에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오히려 오해라도 받은 듯 솔직함을 적절히 드러냈다.그는 침착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침상 위 허약한 모습의 소한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장군에게 숨김없이 말해드리자면, 난 오래전부터 조선에서 장군이 전장에서 떨쳐온 명성을 존경해왔고, 장군의 담력과 지략에 감탄하고 있었소! 이번에 장군을 구한 것은, 첫째, 내 마음속 깊은 존경심을 채우고자 하는 사심 때문이오.”그는 고개를 들어 의도적인 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둘째, 장군이 쾌차한 후 당국에 머물러 나를 위해 힘써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오! 장군의 재능이면 분명 다시 불멸의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오!”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며 소한은 간신히 겉으로만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허약했다. “둘째 황자님의 말씀… 소인이… 모두 이해했습니다.” 그는 순간 말을 멈췄다. 마치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듯, 숨소리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다만 지금은… 소인의… 몸이… 정말 좋지 않아…”그는 지친 듯 눈을 감았다. 그의 미간에는 짙은 피로와 고통이 가득했다.우문호는 곧바로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소 장군은 그저 마음 편히 요양에 전념하시지요! 모든 일은 건강이 우선이오.”말을 하면서 그는 방을 둘러보았다. “장군은 이 저택에 온 귀한 손님이니,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택의 하인들에게 말씀하시오. 어떤 걱정도 할 필요 없소.”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소한의 창백한 얼굴을 훑어보며 말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귀하고 희귀한 약재라도, 장군의 몸에 도움이 된다면, 내 반드시 찾아내리다!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오!”이 말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권력과 은혜를 과시하는 것이었다.소한은 복잡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 감사드립니다.”그제야 우문호는 만족스럽다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387화

    그는 돌연 말을 멈추어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 소한을 숨 막히게 할 정도로 압박했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고 느리게, 마치 차가운 조각칼처럼 소한의 텅 빈 기억 속에 깊이 새겨 넣었다.“내 짐작건대, 소 장군이 꿈에 본 그 여인은, 김단일 것이오. 그 여인은 당신의 죽마고우이자, 어릴 적부터 당신과 함께 자랐을 테니…”“하지만 동시에…” 우문호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독이 묻은 얼음 송곳처럼 잔인하게 꽂혔다. “그 여인은 당신 소씨 집안을 멸문시킨 원수요!”“멸문… 원수라니?!” 소한이 눈을 번쩍 뜨였고, 이내 동공이 수축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들은 듯, 창백했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사실이오!” 우문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강고한 권위가 담겨 있었다. “소씨 집안은 대대로 충신이자 열사인 가문이오! 바로 그 간사한 마음을 품은 김단의 계략과 모함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조선 임금의 노여움을 사 집안이 몰살당하게 된 것이오!”그는 충격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소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잔인한 연민을 담아 말했다.“내 생각에, 소 장군이 그 여인을 볼 때마다 심장이 칼로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오. 소씨 집안 일흔일곱 명의 억울한 영혼들이 매 순간 장군에게 그 핏빛 원한을 상기시키고 있을 테니 말이오!”소한은 순간 매우 혼란스러웠다.꿈속의 여인의 형상도 우문호의 말을 따라 점점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일가족이 몰살…피의 원한…즉, 그는 조선의 장군이며 자신이 가장 믿었던 죽마고우에게 배신당해 이런 꼴이 되었다는 말인가?그런데 그는 왜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어떤 장군이고, 무슨 집안인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그저…“김단…”그는 그 두 글자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러자 심장이 순간 욱신거렸다.마치 날카로운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소 장군! 당신은 이제 소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요. 잘 살아남아 소씨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