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제 3화 계획에 없던 사람숨이 찼다.이겸은 사내를 바닥에 짓누른 채로, 자신의 팔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석 달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뒤늦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어깨의 오래된 상처가 욱신거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뻐근했다.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이겸은 그 사실을 몸으로 먼저 실감했다.—"다친 데는."짧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며칠— 아니, 석 달을 거의 쓰지 않은 목이었다.서리가 고개를 저었다. 촛대를 쥔 손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였다. 겁에 질려 주저앉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손이었다.이겸은 그 손을 잠깐 눈에 담았다.'무가의 여식답군.'그 이상의 생각을 더 이어가진 않았다. 지금은 다른 것들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바닥에 짓눌린 사내가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무언가를 삼키려는 움직임이었다. 이겸은 반사적으로 사내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벌렸다. 손끝에 작고 단단한 것이 걸렸다. 간발의 차이였다."이자를 묶어라." 이겸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말을 채 끝내기 전에, 방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시비들의 비명,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 하나."주군!"백우였다. 이겸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다른 이들 앞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달려 들어왔다.이겸은 그 순간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 했다.—"혼백이…… 정말 돌아오신 겁니까." 백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연기였다. 다만 그 떨림 안에 아주 작은 진심도 섞여 있다는 걸, 이겸은 알고 있었다."모르겠다." 이겸은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대답했다. 정말로 방금 의식을 되찾은 사람처럼, 눈가를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정신이…… 흐릿하다. 여기가 어디인지도."혼란을 연기하되, 지나치게 어눌하게 굴지는 않았다. 정말로 깨어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혼란은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동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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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2화 눈을 감은 사람서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마당에 나와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얼떨떨했다.감씨는 마차에서 내리는 서리를 부축하면서도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늙은 집사와 몇 안 되는 하인들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연택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소문이 저택까지 앞질러 도착해 있는 모양이었다."아기씨." 감씨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영안공을 고르신 거예요? 그, 아직 눈도 못 뜨신다는……""응."서리는 짧게 답하며 겉옷을 벗었다. 감씨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어째서요. 태자 전하도 계셨는데.""나라를 위해 싸운 분을 병들었다는 이유로 외면할 순 없잖아." 서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감씨가 알아야 할 이유의 전부도 아니었다.감씨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서리의 손을 오래 붙잡았다가 놓았다. 그 손길에서 걱정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안도 같은 것이 함께 느껴졌다.서리는 그날 밤 홀로 방에 앉아, 태자를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을 동시에 곱씹었다. 둘 다 진짜였다.—혼인 문서는 사흘 뒤 도착했다.왕실에서 보낸 관원이 두꺼운 문서 뭉치를 내려놓고 형식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서리는 조용히 앉아 첫 장부터 넘겨보았다.전생의 서리였다면 이런 문서는 훑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헌을 믿었으니까. 혼인 조건이 무엇이든, 결국 사랑이 전부를 지켜줄 거라 믿었던 스무 살이었다.지금은 아니었다."이 조항." 서리가 문서의 한 대목을 손끝으로 짚었다. "서가의 토지 관리권이 혼인 후에도 제 명의로 유지된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 집행은 누가 합니까?"관원이 잠시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답했다."혼인하신 뒤에는 아기씨께서 지정하시는 자가 집행하게 됩니다.""그럼 여기, 가신들의 인사권도 마찬가지겠군요.""그러합니다."서리는 그 조항 옆에 작게 표시를 해두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할 것들이었다. 문서와 사람의 말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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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1화 두 번째 연택례문서에는 이미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후사를 두지 못한 죄. 왕실의 신망을 잃은 죄. 그리고 서리가 끝내 알지 못한 한 여인의 죽음과 얽힌 의혹이, 다른 죄목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었다.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서리는 그 줄 위에 눈길을 잠깐 두었다가, 옮겼다. 지금 와서 캐물어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붓을 들었다. 서, 리. 이름 두 글자를 적는 데 걸린 시간은 짧았지만, 붓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까지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낯설었다."이것으로 끝이오."왕의 명을 받든 내관이 문서를 말아 거두었다. 그 손짓 하나로, 서리는 더는 왕후가 아니었다.왕후의 인장도, 궁에 머물 자격도 함께 거두어졌다. 내관은 이미 다음 할 일을 생각하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서리에게 남은 것은 폐후라는 두 글자와, 오늘 안으로 궁을 나서라는 명뿐이었다.정전 밖으로 나오자 늦가을 바람이 뺨을 스쳤다. 서리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십 년이었다. 이 계단을 처음 올랐을 때는 붉은 비단신이었는데, 지금은 무명옷 자락이 발끝에 닿고 있었다.왕후의 자리도, 이헌의 마음도, 되찾고 싶었던 서가의 이름도, 결국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계단 아래에는 가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왕후가 타던 것이 아니라, 장식을 모두 걷어낸 소박한 것이었다. 폐출된 여인을 조용히 실어 보내기에 딱 맞는 격이었다. 가마 곁에 선 자들 중 누구도 서리 쪽을 보지 않았다.서리는 가마에 오르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본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리 없었다.—행선지는 도성 밖, 서가의 옛 별저였다. 부친과 오라비들이 죽은 뒤 오래 주인을 잃었던 집이었다. 지붕이 내려앉지 않도록, 대문이 썩지 않도록, 하인 몇이 최소한으로만 손을 대며 지켜온 곳.왕실은 체면치레로 시종과 호위 몇을 함께 붙여주었다. 서리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서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리를 지켜보기 위해 붙은 사람들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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