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늘, 일본 총리는 암살당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 세계가 사랑한 일본 최초의 여총리 츠바시 유키. 생중계 중 벌어진 잔혹한 암살, 그녀가 피로 쓴 유언은 단 하나였다. “나를 복원해줘.” 인사동 지하실에서 발견된 20년 전의 비밀. 가문에 의해 성별을 살해당하고 화려한 꼭두각시가 된 청년 아키라. 팩트를 쫓는 기자와 심장을 쫓는 작가 앞에 나타난 0.1그램의 진실. “당신들이 알던 여신은 가짜다. 하지만 그 안의 비명은 진짜였다.” 가면 뒤에 숨겨진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국가적 사기극이 시작된다.
View More2026년 2월, 도쿄 부도칸.
만 이천 명의 열기가 돔 경기장의 천장을 무너뜨릴 듯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장기와 츠바시 유키의 사진을 흔들며 광기에 가까운 환호를 내질렀다. 전후 일본 역사상 이런 지지를 받은 정치인은 없었다. "츠바시! 츠바시! 츠바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연호 소리 속에 츠바시 유키는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조명은 그녀를 위해 설계된 듯 완벽하게 쏟아졌고, 그녀가 입은 백색 실크 정장은 눈부신 반사광을 내뿜으며 그녀를 여신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정장 안쪽에서, 츠바시는 질식하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네 겹의 압박 붕대. 남자의 골격을 지우기 위해 2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감아온 그 빳빳한 면직물이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를 옥죄었다. 그녀는 입가에 경련이 일지 않도록 우아한 미소를 유지하며 생각했다. 아키라. 네가 죽어야 유키가 산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가디언즈가 주입했던 그 지독한 세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그 명령에 거역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츠바시는 단상 위에 놓인 화려한 금박 원고를 밀어냈다. 가디언즈가 설계한 ‘거짓된 평화’와 ‘군사 대국화’의 서막이 담긴 연설문이었다. 대신 그녀는 정장 안쪽 포켓에서 낡고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21년 전, 인사동의 그 눅눅한 지하실에서 민호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이 적힌 메모였다. 그녀가 입을 떼려는 찰나, VIP석 중앙에 앉은 야마구치와 눈이 마주쳤다.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창조하고 조종해온 창조주. 그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야마구치는 무심한 손짓으로 곁에 선 비서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 그것은 ‘집행’의 신호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츠바시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오늘 저는, 츠바시 가문이 21년간 쌓아 올린 이 견고한 성벽을 허물려 합니다. 그 성벽 뒤에는 여러분이 알아야 할 추악한 진실과, 단 한 번도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한 남자의 비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탕—! 천장을 깨뜨리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이 경기장을 갈랐다. 1초의 정적. 그리고 이어지는 아비규환. 츠바시의 하얀 왼쪽 가슴 부위가 순식간에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충격에 밀려 몸이 뒤로 젖혀졌지만, 그녀는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단상을 부여잡았다. 단상을 쥔 그녀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총리님!" "저격이다! 대피해!" 경호원들이 무대로 뛰어 올라왔으나 츠바시는 그들을 손짓으로 제지했다. 그녀는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수억 명의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멱살을 잡듯 집요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약지에 끼워진, 권력의 상징인 화려한 보석이 아닌, 투박하고 낡은 은 실반지 하나가 카메라 플래시를 받아 빛났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복원입니다." 츠바시는 천천히 무릎을 꺾었다.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그녀는 평생 자신을 억눌러온 압박 붕대가 피에 젖어 툭, 하고 풀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민호 씨... 이제야 숨이 쉬어져요.' 암전. 전 세계의 TV 화면은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어둠 속으로 잠겼다. 일본 최고의 태양이 가장 찬란한 순간에 떨어진, 완벽한 몰락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인사동. 오래된 한옥 작업실.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긴급 속보에 민호의 손이 멈췄다. 조각칼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떨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작업대 위에 놓인, 21년 전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치운 적 없는 조각난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파편 위로 노을빛이 사선으로 내리쬐었다. 뒷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글자, 櫻(사쿠라). 민호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가 21년 동안 준비해온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음을. "결국... 피었구나. 가장 아프고, 가장 눈부시게." 민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구석에 놓인 무거운 오동나무 궤짝을 끌어당겼다. 그 궤짝 위에는 낡은 만년필로 쓰인 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취인: 서윤, 진우] 그는 궤짝을 어루만지며 벽에 걸린 아키라와의 옛 사진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아키라. 너를 다시 불러내야겠어. 이번엔 죽은 총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쿠라로." 민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거울 파편 위로 번졌다. 한 시대의 비극이 끝나고, 그 비극을 파헤칠 두 청춘의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1] 펜이 없는 아침: 살과 피의 증명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서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더 이상 시스템이 강제하는 보랏빛 새벽도, 존재가 지워져 가던 흑백의 정적도 아니었다.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열린 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옅은 흙내음과 누군가 굽고 있는 토스트의 고소한 향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서윤은 침대 위로 자신의 두 손을 들어 올렸다. 1년 전, 사물을 통과할 정도로 투명해졌던 그 손등 위에는 이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미세한 솜털과, 어제 요리를 하다 기름이 튀어 생긴 작은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살아있구나.”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꽉 맞잡아 보았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단단한 뼈의 질감과 뜨거운 혈액의 박동. 기록자로서 세상을 재작성하던 황금빛 권능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수첩은 이제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펜을 들지 않는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문장을 쥐어짜지도, 타인의 불행을 교정하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지불하지도 않는다. 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녀가 기록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의지로 행복해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2] 세 명의 방랑자: 기록되지 않은 행복대전 시내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자, 거기! 넘어졌다고 울지 마! 무릎에 묻은 흙은 훈장 같은 거야!”아이들의 함성 사이로 익숙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체육 교사가 된 진우였다. 그는 이제 강철 팔을 휘두르며 적을 파괴하는 대신, 축구공을 몰고 달리는 아이들의 뒤를 쫓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땀방울이 맺힌 그의 얼굴에는 기계적인 냉정함 대신, 인간적인 활기와 적당한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
[1] 백지의 폭풍: 서사적 종말세상은 더 이상 흑백조차 아니었다.신질서(New Order)의 수장 세라프가 보관소의 핵을 강탈해 가동시킨 순간, 베를린의 하늘부터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닌 **초기화(Format)**였다. 마천루의 질감이 사라져 단순한 선이 되었고, 그 선마저 이내 하얀 여백 속으로 증발했다. 사람들의 기억은 머릿속에서 하얀 연기처럼 피어올라 공중으로 흩어졌다.“보십시오, 기록자여! 이것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정답입니다!”세라프의 목소리가 여백의 공간에 메아리쳤다.“고통도, 오타도, 슬픈 과거도 없는 완전한 백지! 이 위에 우리는 다시 완벽한 낙원을 설계할 것입니다. 당신이 망쳐놓은 이 불완전한 서사를 내가 직접 지워주겠다는 말입니다!”보관소의 중앙, 서윤은 이제 자신의 형태조차 유지하기 힘든 투명한 유령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발밑까지 하얀 공백이 잠식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두 번째 펜을 든 아이, 연우가 있었다. 아이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윤이 건네준 나무 만년필을 결코 놓지 않았다.“연우야, 무서워하지 마.”서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연우의 영혼에 직접 공명했다.“세라프가 말하는 정답은 죽음과 같아.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건 소설이 아니야. 우리는 설령 얼룩이 지고 찢어질지언정, 우리만의 문장을 이어가야 해.”[2] 더블 내러티브: 투명한 진홍빛의 합창연우가 만년필을 고쳐 쥐었다. 아이의 작은 손 위로 서윤의 투명한 손이 겹쳐졌다. 스승과 제자, 과거의 기록자와 미래의 관찰자가 하나의 의지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연우가 허공을 향해 첫 획을 그었다. 아이의 순수한 생명력에 서윤의 노련한 서사적 통찰이 덧씌워지자, 본 적 없는 찬란한 **‘투명한 진홍빛 잉크’**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지워져 가던 세계
[1] 유령이 된 기록자: 읽히지 않는 본문세상은 이제 서윤을 거부하고 있었다.베를린 지하의 ‘기억의 보관소’. 그 차가운 금속 벽면 사이를 걷는 서윤의 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니,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가 지면과 마찰할 만큼의 질량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서윤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투명한 손가락 너머로 보관소의 회색 천장이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그녀는 이제 문장이 아니라, 종이 뒷면에 희미하게 번진 잉크 자국, 혹은 읽는 이의 눈에만 가끔 맺히는 ‘워터마크(Watermark)’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아.”서윤은 바닥에 떨어진 나무 만년필을 주우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매끄러운 펜대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바닥의 먼지 속으로 가라앉았다. 소리도, 색도 사라진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촉각’마저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서윤은 허공을 휘저으며 무너져 내렸다. 자신이 이 세계의 주인공도, 기록자도 아닌, 그저 소설의 배경 속에 흐릿하게 찍힌 오류값처럼 느껴졌다.“서윤 씨... 여기예요. 아버님이 남긴 마지막 설계도가 이거였어요. 기록자가 소멸할 때, 그 서사를 받아낼 수 있는 유일한 그릇. 하지만 연우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를 깨우려면... 당신의 마지막 ‘존재 확률’을 전부 주입해야 합니다. 그건 정말로 당신이 사라진다는 뜻이에요!”민호는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서윤은 민호의 곁에 서서 그의 어깨를 만지려 했지만, 그녀의 손은 민호의 몸을 무력하게 통과할 뿐이었다.[3] 잉크 없는 방패: 진우의 보루콰아앙—!보관소의 외벽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비명을 질렀다. 신질서(New Order)의 무장 대원들이 ‘화이트 아웃’의 소거 광선을 쏘며 진입해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 보관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인류의 마지막 기억마저 말살하려 했다.
[1] 정적의 장막: 소리 없는 무성 영화세상은 이제 지독하게 고요했다.어제까지만 해도 베를린의 거리를 채우던 사람들의 웅성거림, 요새의 엔진이 내뱉던 낮은 저음의 진동, 심지어는 자신의 구두 굽이 보도블록에 부딪히며 내던 경쾌한 소리조차 서윤의 세계에서 누락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서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손뼉을 쳐보는 것이었다. 두 손바닥이 맞물리는 감각은 분명했으나, 고막을 울려야 할 파열음은 어디선가 증발해 버린 듯 들리지 않았다.“...민호 씨? 진우 씨?”서윤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공기를 타고 흐르는 파동이 아니라, 이제 기록자의 의식 속에서만 맴도는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렸다.요새의 함교로 나섰을 때, 민호와 진우는 무언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호는 단말기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듯했고, 진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윤의 눈에 비친 그 광경은 기이할 정도로 평화롭고 정갈한 **‘흑백의 무성 영화’**였다.민호는 단말기에 글자를 적어 서윤에게 보여주었다.[서윤 씨, 황금 잉크를 쓸 때마다 당신의 영혼 질량(Soul Mass)이 서사적 출력물로 변환되어 방출되고 있어요. 존재의 확률이 0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을 넘기기도 전에, 당신의 본문은 'Null'값이 되어 이 세계에서 영구 소거될 거예요.]민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패널을 적셨다. 그는 과학자로서 이 절망적인 수식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기록자가 세상을 재작성하며 쏟아부은 잉크는 사실 그녀 자신의 생명력이었다. 세상을 선명하게 만들수록 기록자 자신은 투명해진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서윤을 옥죄고 있었다.[제발... 더 이상 펜을 들지 마세요. 기록이 멈춰야 당신이 살 수 있습니다.]민호의 절규가 섞인 문장을 읽으며 서윤은 힘없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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