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0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7 23:00:53

​창밖을 가득 채우던 폭우가 잦아들고, 펜트하우스의 커튼 틈새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현은 소파 위에서 눈을 떴다.

​전날 밤, 7일 차의 키스 이후 어색함과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실에서, 도현은 소율에게 침실을 내어주고 자신은 거실 소파에 누웠었다.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입술 끝에 남아있는 소율의 감촉, 촉촉하던 숨결, 그리고 그녀가 흘린 눈물의 서늘함이 잔상처럼 뇌리에 번갈아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계약서 4번 조항은 오늘부로 파기야, 한소율.'

​자신이 내뱉은 그 한마디는 결코 순간의 기분에 휩싸인 헛소리가 아니었다. 차도현이라는 남자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이성의 통제력을 내려놓고 본능에 이끌려 건넨 진심이었다.

​도현은 몸을 일으켜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한소율…."

​침실 문을 나직하게 부르며 다가갔다. 하지만 살짝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보이는 침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현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14일간의 계약 연애   13화

    소율의 눈빛에는 회장을 속이려는 '연기자'의 긴장감이 없었다. 대신 그 눈동자 안에는 지독할 정도로 깊고 오래된 애정과 이해,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남자를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며 가슴속에 묵혀둔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 회장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파문이 일었다.회장은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 온 인물이었다. 지금 소율이 내뱉는 말들은 외워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상대를 오랫동안 깊은 애정으로 관찰하고 품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된 울림이었다.​이 회장은 묵직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도현이 너보다 네 속을 더 잘 아는 아이를 곁에 두었구나."​이 회장의 목소리에서 서슬 푸른 경계심이 거두어졌다.​"좋다. 네가 말했던 정략혼 거절의 명분, 받아들이마. 한 대리라고 했나. 앞으로 도현이를 잘 보살펴 주거라."​식사 자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계약의 가장 큰 목표였던 '회장님의 정략혼 압박 퇴치'가 완벽하게 달성된 것이다.​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밤하늘을 수놓은 도심의 불빛 사이로 도현의 세단이 조용히 달렸다.​차 안에는 밀도 높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운전석의 도현은 계속해서 룸미러와 옆시선을 통해 조수석의 소율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은 방금 전 한옥에서 있었던 소율의 말들로 인해 거센 지진이 일어난 듯 요동치고 있었다.​"한 대리…."​도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회장님 앞에서 했던 대답 말입니다."​소율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도현을 향했다.​"네, 팀장님. 회장님께서 의심하실까 봐 제가 조금 과하게 덧붙였습니다. 혹시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과하게 덧붙였다?"​도현이 차를 도로변 갓길에 세우고 시동을 껐다.​차 안이 완벽한 정적 속에 휩싸였다. 도현은 몸을 틀어 소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짙은 충격과 의구심,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뜨거운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내가

  • 14일간의 계약 연애   12화

    ​차에서 내린 도현은 시동을 끄고 조수석 문을 열어 소율을 맞이했다. 오늘 소율은 차분한 네이비톤의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지난 주말 도현과 함께 고른 과감한 스타일과는 달리, 어르신과의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격식 있고 단정한 차림새였다.​"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회장님이 무슨 무리한 질문을 하든 내가 다 커버할 테니까."​도현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소율의 손을 잡으려 했다.​스윽-​그러나 소율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고쳐 메는 척하며 도현의 손길을 피했다. 도현의 손이 공중에서 허무하게 멈췄다."……"​8일 차 아침의 메모 사건 이후, 소율은 도현과 철저히 업무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현의 가슴속에 씁쓸한 불꽃이 일었지만, 곧이어 본가 대문을 향해 나아갔다.​"들어가지."​대청마루를 지나 안내받은 프라이빗한 한식 연회장.방 안쪽 상석에는 태성그룹의 실권자, 이혜민 회장이 좌정하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했고, 오랫동안 대기업을 이끌어온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방 안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앉거라."​이 회장의 낮고 엄숙한 음성이 떨어졌다.도현과 소율은 나란히 맞은편 방석에 앉았다. 소율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븄다.​"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기획본부 TF팀 한소율 대리입니다."​이 회장의 예리한 시선이 소율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샅샅이 훑었다. 마치 신규 사업 기안서를 검토하는 심사위원의 눈빛이었다.​"한소율이라…. 도현이 곁에서 3년 동안 일했다고 들었다."​"네, 그렇습니다."​"도현이가 여자라고는 일밖에 모르는 위인인 줄 알았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제 부하직원과 연애질을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나. 그것도 하필 내가 정략혼 맞선을 추진하려던 딱… 그 시점에 말이다."​이 회장의 비꼬는 어조 속에 뼈가 들어있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단 1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슬 푸른 경고였다.​도현이 상체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회장님, 그건…"​"네가 말하지 마라, 도

  • 14일간의 계약 연애   11화

    사실 소율 역시 속으로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어제 도현이 건넨 키스와 "계약서 4번 조항은 오늘부로 파기야"라는 선언은 소율의 심장을 뒤흔들다 못해 가루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렬했다.​하지만 소율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채찍질을 가했다.​'속지 마, 한소율. 저 사람은 지금 자기 소유욕과 질투심에 혼란스러워하는 것뿐이야. 내가 짝사랑해 온 3년 동안 눈길 한번 안 주던 사람이, 가짜 연애 며칠 만에 진심이 될 리가 없잖아.'​도현이 자신에게 품은 이상 열증은 단순한 착각이자 독점욕일 뿐이라고, 이것에 섣불리 마음을 내어주었다간 계약이 끝나는 14일 차에 자신이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고. 소율은 제 심장에 억지로 얼음물을 부어가며 도현을 향해 차가운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도현은 한참 동안 소율을 내려다보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좋습니다. 한 대리가 그렇게 정의한다면… 알겠습니다."​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팀장실로 걸어 들어갔다.​​점심시간 후, 도현은 팀장실 안에서 일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모니터에 띄워진 매출 수치들이 까만 점으로만 보였다. 유리창 너머로 다른 직원들과 서류를 주고받으며 덤덤하게 일하는 소율의 모습만이 그의 온 신경을 강탈하고 있었다.​"후…."​도현은 펜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자신은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갈망해 본 적이 없었다. 태성그룹 오너가의 후계자로서, 모든 것은 계산되고 계획된 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감정 따위는 불확실한 변수에 불과했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미덕이라 믿어왔다.​그런데 그 통제선이, 한소율이라는 작은 부하직원 한 명에 의해 완벽하게 붕괴해버렸다.​키스를 한 것은 순간의 분풀이가 아니었다.그녀의 입술을 삼켰을 때 느꼈던 해방감과 벅차오름은 도현의 평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감정의 폭발이었다.​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해프닝'이라며 단칼에 잘라냈다.​"내가 미쳐가는 게… 맞군."​도현이 나직하게 자조했다. 소율이 차갑게 굴면 굴

  • 14일간의 계약 연애   10화

    ​창밖을 가득 채우던 폭우가 잦아들고, 펜트하우스의 커튼 틈새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도현은 소파 위에서 눈을 떴다.​전날 밤, 7일 차의 키스 이후 어색함과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실에서, 도현은 소율에게 침실을 내어주고 자신은 거실 소파에 누웠었다.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입술 끝에 남아있는 소율의 감촉, 촉촉하던 숨결, 그리고 그녀가 흘린 눈물의 서늘함이 잔상처럼 뇌리에 번갈아 피어올랐기 때문이다.​'계약서 4번 조항은 오늘부로 파기야, 한소율.'​자신이 내뱉은 그 한마디는 결코 순간의 기분에 휩싸인 헛소리가 아니었다. 차도현이라는 남자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이성의 통제력을 내려놓고 본능에 이끌려 건넨 진심이었다.​도현은 몸을 일으켜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한소율…."​침실 문을 나직하게 부르며 다가갔다. 하지만 살짝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보이는 침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도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식탁 위에는 도현의 셔츠가 정갈하게 접혀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에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팀장님. 세탁된 옷이 다 말라 먼저 출근합니다. 셔츠는 깔끔하게 세탁해 두었습니다. 어제 일은 폭우와 분위기로 인한 비즈니스상의 해프닝으로 묻겠습니다. 회사에서 뵙겠습니다.]​'해프닝.'​도현은 메모지에 적힌 그 세 글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턱관절이 경련하듯 강하게 굳어졌다. 전날 밤, 두 사람의 모든 이성을 짓밟고 터져 나왔던 그 뜨겁고 열렬했던 키스를, 한소율은 단 한 줄의 메모와 함께 '해프닝'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고 도망쳐버린 것이었다.​도현의 가슴 밑바닥에서 실소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허탈함이 솟구쳤다.​"해프닝이라…."​도현의 손 안에서 메모지가 구겨졌다. 그 차가운 선 긋기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베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은 이 기나긴 가짜 연애의 반환점에서 비로소 진짜 감정을 자각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철저하게 선 밖으로 자신

  • 14일간의 계약 연애   9화

    ​"그래. 연기도 아니고, 회장님을 속이기 위한 연출도 아니야."​도현이 한 걸음 더 밀착했다. 이제는 소율의 가슴과 도현의 가슴 사이에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분풀이? 그래, 분풀이라고 치자. 내가 왜 저딴 남궁혁 같은 놈 하나 때문에 내 이성을 잃고, 업무에 집중도 못 하고, 지독한 불쾌감에 시달려야 하는지… 나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도현의 커다란 손이 소율의 턱을 낚아채듯 감싸 쥐었다. 소율이 놀라 눈을 크게 뜬 순간, 도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내가 미쳐가고 있다면, 그 원인은 전적으로 너한테 있어, 한소율."​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현의 입술이 소율의 붉은 입술 위로 거침없이 내리덮였다.​"읍…!"​소율의 짧은 비명이 도현의 입 안으로 그대로 삼켜졌다.​그것은 폭류와도 같은 입맞춤이었다. 삼켜버릴 듯 깊고, 자비 없는 거친 충돌이었다. 도현은 소율의 턱을 그러쥔 손에 힘을 주어 고개를 고정시키고, 단숨에 그녀의 치열을 가르고 혀를 밀어 넣었다.​소율은 밀려드는 도현의 압도적인 체온과 강렬한 감촉에 뇌리가 하얗게 탈색되는 느낌을 받았다. 소율의 손이 도현의 어깨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도현은 소율의 가녀린 허리를 단단한 팔로 감아올려 제 몸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소율의 발꿈치가 붕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밀착이었다.​"하읏… 읏…."​소율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도현의 거친 호흡과 얽혀 들었다.​도현의 입술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와 질투로 점철된 거친 공격이었으나, 소율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안 가득 퍼져나가자 도현의 입맞춤은 순식간에 열렬하고 지독한 탐닉으로 변해갔다.​도현은 소율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천천히 핥아 올리고, 깊숙하게 혀를 섞으며 소율의 숨결 하나하나까지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읏… 도현… 씨…."​소율의 밀어내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도현의 단단한 어깨에 얹힌 소율의 손가락이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이내 그의 젖은 와이셔츠

  • 14일간의 계약 연애   8화

    ​도현의 손가락이 소율의 뺨으로 올라왔다. 그의 서늘한 손끝이 소율의 턱선을 따라 내려가, 헐렁한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소율의 쇄골 라인을 살포시 스쳤다.​소율은 몸을 스르르 떨며 숨을 삼켰다. 도현의 손길이 닿은 피부마다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이건 선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나더러 이성을 잃으라고 부추기는 겁니다, 한소율 대리."​도현의 눈동자에 위험하고 지독한 소유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회식 자리에서의 질투, 남 대리를 향하던 소율의 환한 웃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지금 제 눈앞에서 자신의 옷을 입고 떨고 있는 이 여자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본능적인 욕망.​도현은 마침내 제 가슴속을 괴롭히던 감정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것은 비즈니스도, 계약도, 회장님을 속이기 위한 연기도 아니었다.그는 한소율이라는 여자를, 지독하게 가지 오고 싶어 하고 있었다.​도현의 얼굴이 소율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거침없이 내려앉기 시작했다.​소율을 벽으로 몰아세운 도현의 시선은 소율의 발그스레해진 뺨을 지나, 떨리고 있는 붉은 입술 위에 찰거머리처럼 얽혀 있었다. 도현의 허벅지와 소율의 슬림한 다리가 헐렁한 셔츠 자락 너머로 아슬아슬하게 밀착해 있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옅은 향수 향이 소율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소율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3년이었다. 이 남자를 바라보며 혼자 마음을 졸이고, 혼자 눈물을 삼키고,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냉철한 눈동자에 자신이 비춰지길 꿈꿔왔던 시간.​하지만 지금 도현의 눈빛에 깃든 것은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다정한 애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 모를 소유욕과 통제력을 잃은 자의 오기, 그리고 남궁혁 대리를 향했던 소유격 질투의 파편에 불과했다.​'아니야. 속으면 안 돼, 한소율.'​소율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서러운 통증이 솟구쳤다.​이 남자는 자신을 사랑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놓은 '계약'이라는 틀 안에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