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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22:28:44

 ​도현의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일어났던 그 아슬아슬한 사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이질적이고 팽팽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계약서 조항… 지키기가 생각보다 어렵군요."

 ​그 나직하고 서늘한 음성이 소율의 귀에 닿았던 순간, 도현은 이내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듯 허리를 감싸 쥐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정돈했다.

 ​"오늘은 이쯤 하죠. 사진은 내가 선별해서 커플 계정에 올리겠습니다. 늦었으니 택시를 불러주죠."

 ​그것이 4일 차 밤의 전부였다. 도현은 지극히 이성적인 정적이 자신의 이성을 집어삼키는 것이 두려운 사람처럼 빠르게 소율을 집 밖으로 배웅했다. 택시에 올라탄 소율은 창밖에 멍하니 서 있는 도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빛은 낯선 열기에서 다시 단단한 얼음 벽으로 돌아가 있었다.

 ​

계약 5일 차, 화요일.

 ​오전 출근길부터 도현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평소에도 냉철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팀장이었지만, 오늘은 지독할 정도로 사무적이고 차가웠다.

 ​"한 대리, 3분기 해외 사업 전략 기안서 폰트 크기랑 줄 간격이 안 맞습니다. 기본 양식 재확인하고 다시 올리세요."

 ​"팀장님, 그 양식은 지난주 이사회 보고용으로 승인받은 표준 서식입니다만."

 ​"내가 새로 가이드라인을 내렸을 텐데요. 내 지시대로 재작업하세요."

 ​사무실 안의 다른 팀원들도 얼어붙을 만큼 도현의 지적은 매서웠다. 소율은 가슴속에서 서운함과 황당함이 불쑥 솟구쳤지만, 곧바로 도현의 의도를 파악했다.

 ​'선 긋기.'

 ​도현은 전날 밤 자신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정한 '감정 과입 금지'라는 4번 조항을 지키기 위해, 역으로 소율에게 철저하게 사무적인 차가움으로 벽을 치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소율은 서류를 거두어들였다. 3년 동안 그를 짝사랑하면서 터득한 단단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차도현이 원하는 게 완벽한 부하직원과 이성적인 비즈니스 관계라면, 그것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이 소율의 방식이었다.

 ​소율은 서류를 쥐고 곧은 자세로 도현을 직시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지시사항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적하신 부분 즉시 수정해서 10분 내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소율의 맑은 눈동자와 단호한 어조. 도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리고 팀장님."

 ​소율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약서 조항대로 선은 확실히 지킵니다. 어제 일은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니, 팀장님께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업무에 과도한 칼을 대실 필요는 없습니다."

 ​도현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소율은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 뒤 망설임 없이 팀장실을 나갔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평정심을 유지한 채 타자를 치는 소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현은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원하던 바였다. 소율이 선을 지키고 공사 구분을 확실히 해주는 것. 하지만 왜 그녀가 직접 그 선을 긋고 나서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거센 불쾌감과 서운함이 솟구치는지 도현 스스로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

 ​계약 6일 차, 수요일 저녁.

 ​TF팀의 상반기 프로젝트 성과를 달성한 기념으로 부서 회식이 열렸다. 장소는 사옥 근처의 북적이는 고깃집이었다.

 ​"자자,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차 팀장님 배려로 오늘 회식비 한도 없으니까 마음껏 먹읍시다!"

 ​팀원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술잔이 오갔다. 도현은 테이블 상석에 앉아 고요히 물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소율은 맞은편 아래쪽에 앉아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 소율의 옆자리에 앉은 인물은 옆 팀에서 이번 TF로 차출되어 온 남궁혁 대리였다. 소율과 입사 동기이자 밝고 싹싹한 성격으로 사내에서 평판이 좋은 남성이었다.

 ​"소율아, 이거 고기 잘 익었다. 너 요즘 야근 많아서 살 빠진 것 같던데 많이 먹어라."

 ​남 대리가 자연스럽게 소율의 접시에 잘 구워진 고기를 놓아주며 웃었다.

 ​"고마워, 혁이 너도 많이 먹어. 이번 프로젝트 데이터 정리하느라 고생 많았잖아."

 ​소율이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소율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피어나는 그 무해하고 다정한 웃음.

 ​그 순간, 상석에서 물잔을 들이키던 도현의 시선이 멈췄다.

 ​도현은 쥐고 있던 물잔을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 잔의 얇은 유리 벽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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