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후 3시 25분.
김민철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도윤과 서희의 화려한 약혼식이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동안, 민철은 수아가 보낸 그 한 통의 문자—[살려 주세요]—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민철은 즉시 정보망을 총동원해 수아의 핸드폰 발신 위치를 추적했고, 그 결과가 청담동 정민수 소유의 빌딩 내부에서 멈춰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민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민철입니다.” “실장님, 요청하신 이수아 씨의 마지막 위치 확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민철은 복도를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입니까?” “마지막으로 확인된 휴대전화 위치는 정민수 대표 소유의 빌딩입니다.” “정확합니까?” “네. 다만 현재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어 실시간 위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태하그룹 본사.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차태하 회장은 집무실에서 김민철이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었다.평소라면 아들 도윤이 먼저 검토했을 서류들이었다.차태하는 서류 몇 장을 넘기다가 안경을 벗었다.“김 실장.”“네, 회장님.”“도윤이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나?”“……네.”차태하의 미간이 좁혀졌다.“벌써 일주일째군.”민철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김 실장이 죄송할 일은 아니지.”차태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도윤이 처음 출근하지 않았던 날, 비서실장 민철은 회장인 차태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윤의 상태를 보고했었다.수아가 사라진 뒤 도윤이 한 달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했고, 최근에는 술에 의지하고 있다는 보고였다.서른다섯이 될 때까지 태하의 완벽한 후계자로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사적인 감정으로 회사의 공적인 업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던 아들이었다.평생 자신에게 걱정을 끼친 적이 거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했고, 유학 생활도 스스로 해냈다.태하그룹에 입사한 뒤에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남들이 후계자라는 이유로 쉽게 자리를 얻었다고 말할 때도 도윤은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했다.어려운 사업을 맡아 끝까지 해결했고, 실패한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성과를 만들어냈다.그 과정에서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차태하에게 도윤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아들이었다.아니, 믿을 수 있는 후계자였다.이
수아가 사라진 지 거의 한 달.태하그룹 본사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차도윤 전무가 출근하지 않았다.그것도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전무님 아직 안 오셨습니까?”비서실 직원의 질문에 김민철은 시계를 바라봤다.오전 9시 20분.도윤은 언제나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다.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에도 정해진 시간에 집무실에 나타나는 사람이었다.몸이 좋지 않아도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민철은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다시 걸었다.이번에도 받지 않았다.민철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곧바로 유진에게 연락했다.“집사님, 전무님 집에 계십니까?”전화기 너머로 유진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네…….”“아직 주무십니까?”“김 실장님.”유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한 번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민철의 심장이 내려앉았다.“무슨 일입니까?”“전무님이…… 어젯밤부터 서재에서 나오지 않으세요.”민철은 급히 펜트하우스로 향했다.현관에서 그를 맞이한 유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김 실장님…….”“전무님은요?”“서재에 계세요.”그때 태수도 다가왔다.
수아가 사라진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차도윤은 여전히 매일 아르고스의 보고를 받았다.그러나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태하그룹 본사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이상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요즘 전무님 왜 저러셔?”비서실 직원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러게.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예민하지 않으셨는데.”“한동안 정말 많이 부드러워지셨잖아.”여전히 업무에는 엄격했지만, 불필요하게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았다.직원들의 개인 사정에도 귀를 기울였고, 때로는 웃는 모습도 보였다.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예전의 차갑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돌아갔다.아니, 이전보다 더 예민해졌다.회의에서 작은 실수가 나오면 표정이 굳었고, 보고가 늦어지면 이유부터 물었다.직원들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도윤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도윤이 만질 때마다 수줍어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몸을 적시며 자신의 목을 꼭 끌어안던 수아의 부드럽고 따뜻한 품.그 온기가 그리워, 도윤은 해외 출장 일정이 잡힐 때마다 하루라도 일찍 끝내기 위해 함께 간 임원진과 비서실 직원들의 원망 어린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었다.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타 뜬눈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수아의 품에 안겼던 그 모든 순간들은, 그에게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구원이었다.그가 그렇게 가혹할 만큼 완벽한 태하의 후계자로 버텨왔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젠가 그 모든 족쇄를 끊어내고, 수아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 평범한 아침을 맞이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그 소박한 행복을 그녀에게 안겨주기 위해서였다.그런데 이제는&hel
본가에서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온 도윤의 집착은 이제 한서희를 향해 곧고 예리하게 겨누어졌다. 설마 뒤에서 한서희가 손을 쓴 것 아닐까. 수아가 사라진 지 이 삼 주가 넘어가도록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되자, 도윤의 머릿속에는 온통 서희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찼다. “한서희 씨의 최근 행적을 확인해 주세요.” 도윤의 지시에 민철이 고개를 들었다. “전무님, 서희 씨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수아가 사라지기 전후로 접촉한 일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현성그룹 쪽에서 움직인 정황도요.” 민철에게 서희의 움직임을 조사하라고 지시하고도 도윤은 직접 서희를 만났다. "도윤 씨…… 저를 이렇게 갑자기 부르다니, 무슨 일이 있어요?" 도윤은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서희의 얼굴을 낱낱이 훑었다. "네 짓거리였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수아가 사라졌어. 네가 정민수에게 정보를 흘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뒤에서 손을 써서 그 여자를 쫓아낸 거냐고." 서희는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터뜨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윤 씨!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그 여자가 사라진 건 저도 몰랐다고요!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서희의 눈물 젖은 얼굴을 한참 동안 노려보던 도윤은, 그녀 역시 이 일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혐오스럽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서희 역시 수아를 향한 도윤의 이토록 깊은 집착과 광기를 마주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지만, 도윤에게는 이제 그런 서희의 감정 따위를 돌봐줄 여유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며칠 뒤 조사 결과가 올라왔다. 한서희와 현성그룹 관계자들이 수아의 실종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도윤은 보고서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덮었다. “……아무것도 없군.” 민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아니고, 서희도 아니고.” 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 수아가 스스로 떠난 건가?” 그 질문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도윤은 수아가 스스로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녀는 정말 자신을 잊으려는 것일까.아니면 누군가 떠나도록 만든 것일까.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이명희.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본가의 서재.“수아, 어디로 보내셨습니까?”이명희의 표정이 굳어졌다.“뭐?”“수아 말입니다. 어디에 숨기셨어요?”“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도윤은 한 걸음 다가갔다.“어머니가 수아를 싫어하셨다는 거 압니다. 제 곁에서 떼어놓고 싶어 하셨다는 것도요.”“그래서?”“수아가 사라졌습니다.”“그래서..?”이명희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이명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그러다 차갑게 물었다.“그 여자가 스스로 떠난 거 아니니?”도윤의 턱이 굳어졌다.“어머니가 관여하신 겁니까?”“차도윤!”이명희가 목소리를 높였다.“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그럼 아니라고 말씀하세요.”“나는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몰라!”도윤은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수아야…….”차도윤은 화장대 거울 앞에 서 있었다.붉은 립스틱으로 적힌 두 글자.안녕.며칠이 지났지만 그 글씨는 그대로였다.도윤은 누구에게도 지우지 말라고 했다. 수아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이었다. 그것마저 사라지면 정말 그녀가 이 집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왜 이렇게 떠난 거야?”대답은 없었다.도윤은 눈을 감았다.처음에는 화가 났다. 자신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보다 두려움이 커졌다.수아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몸이 아파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참는 여자였다.그런 수아가 혼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괜찮아.”도윤은 스스로에게 말했다.“일주일이면 찾을 수 있어. 늦어도 이주일이면…….”도윤의 믿음은 확고했다. 태하그룹의 막강한 자본과 아르고스의 정보망이면 작은 단서 하나만 있어도 수아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그리고 전국의 공항과 항만의 출입국 기록까지 샅샅이 뒤졌다.도윤은 휴대전화를 꺼냈다.“김 실장, 박 실장과 지금 바로 회의 잡으세요.”태하그룹 본사.도윤의 집무실에는 김민철과 아르고스의 박정훈 실장이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펜트하우스 주변의 지도와 CCTV 확인 결과, 수아가 집을 나간 시간대의 동선이 정리되어 있었다.화면 속 수아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도윤의 시선이 멈췄다.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