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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모녀의 다정한 오후

Author: 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07:00:20

요즘 주연의 휴대전화에는 유난히 ‘엄마’라는 이름이 자주 떴다.

본가에 다녀온 이후, 주연과 어머니 고미혜 여사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각별해졌다.

마치 지난 2년 동안 훌쩍 지나쳐버린 시간이라도 보상받으려는 듯, 두 사람은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자주 얼굴을 마주했다.

미국에 있는 2년 동안에도 고미혜와 연락을 완전히 끊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연이 먼저 거리를 두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집이 그리웠고—

집이 그리워지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도망치듯 떠나왔다는 사실까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게 안부만 주고받았다.

재혁이 바쁘게 회사를 돌보는 낮 시간,

주연은 주로 엄마와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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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6화. 아버지의 잘못된 사랑

    며칠 전. 이경환은 중요한 손님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서울의 유명 한정식집을 찾았다. 지인과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그는 복도 끝에서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의 아들 민성이었다. 이경환의 걸음이 멈췄다. 민성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 여자와 함께였다. 아들이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야 낯설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평소 거만하고 냉소적이기만 하던 아들이었다. 세상을 비뚤어진 채 살아오며 여자에게 마음을 담아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라곤 생판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민성은 평생 처음 보는 눈빛으로, 한 여자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듯 룸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을 다루듯, 지극히 소중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이경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평소의 민성이 아니었다. 수많은 여자를 만나면서도 단 한 번도 저런 눈으로 여자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누구지? 박지민은 아니었다. 민성이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랫동안 사채업을 하며 수많은 사람의 뒷조사와 정보 분석을 손쉽게 주물러 온 이창수였다. 여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여자 하나 알아봐.” 그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한정식집을 나서며 사람을 시켜 확인해 둔 사진이었다. “어디까지 알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5화. 다시 떠나야 한다는 말

    조금 전까지 환하던 표정도 미세하게 굳었다.고미혜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아직 공부 남았잖아.”“……응.”“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주연은 포크를 내려놓았다.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사실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다만—일부러 마음 한쪽에 밀어두고 있었을 뿐이었다.“내년에는…….”주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남은 공부는 끝내고 싶어요.”고미혜는 놀라지 않았다.주연이 건축가라는 꿈을 얼마나 오래 품어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다 주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재혁 씨한테 아직 말 못 했어요.”“학교 얘기를?”“응.”주연은 시선을 내렸다.“말해야 하는데…….”손가락이 물잔을 천천히 만지작거렸다.“재혁 씨 얼굴 보면 말 못 하겠어요.”“…….”주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다시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요.”고미혜는 아무 말 없이 딸을 바라봤다.“주연아.”“그리고 나도 싫어요.”주연이 고개를 들었다.“이제는 나도 재혁 씨랑 떨어져 있기 싫어.”그 말에는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그런데 공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고미혜는 천천히 딸의 손을 잡았다.“그럼 포기하지 마.”주연이 엄마를 바라봤다.“엄마…….”“결혼했다고 네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하지만 재혁 씨가…….”“그건 네가 먼저 결정할 일이 아니야.”주연이 눈을 깜빡였다.고미혜가 부드럽게 말했다.“재혁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재혁이한테 물어봐야지.”“…….”“네가 혼자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4화. 모녀의 다정한 오후

    요즘 주연의 휴대전화에는 유난히 ‘엄마’라는 이름이 자주 떴다. 본가에 다녀온 이후, 주연과 어머니 고미혜 여사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각별해졌다. 마치 지난 2년 동안 훌쩍 지나쳐버린 시간이라도 보상받으려는 듯, 두 사람은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자주 얼굴을 마주했다. 미국에 있는 2년 동안에도 고미혜와 연락을 완전히 끊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연이 먼저 거리를 두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집이 그리웠고— 집이 그리워지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도망치듯 떠나왔다는 사실까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게 안부만 주고받았다. 재혁이 바쁘게 회사를 돌보는 낮 시간, 주연은 주로 엄마와 함께 백화점을 찾았다. 텅 비어 있던 재혁의 아파트를 진짜 온기가 감도는 ‘신혼집’으로 채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식기부터 아기자기한 소품, 침구류까지 고미혜 여사의 세심한 조언을 받아가며 하나둘씩 장만했고, 그 과정에서 서툴기만 하던 살림 노하우도 엄마로부터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었다. “주연아, 이건 어때?” 고미혜가 흰색 접시를 들어 보였다. 주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쁘긴 한데 너무 얌전하지 않아요?” “매일 쓰는 건 이런 게 제일 안 질려.” “그래요?” “응. 화려한 건 몇 번 쓰면 손이 잘 안 가.” 주연은 진지한 얼굴로 접시를 바라봤다. “그럼 이걸로 할까?” “네가 마음에 들어야지. 엄마 집 아니고 네 집인데.” “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3화.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가끔 힘들기도 하고요.”민성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지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진지하면서도 맑은 눈빛으로 민성을 바라보았다."우리, 부모님들이 짜놓은 맞선 자리라는 무거운 꼬리표는 떼어버려요. 대신 편하게 고민도 나누고, 가끔 힘들 때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로 지내는 건 어때요? 난 그 쪽이 꽤 괜찮은 사람 같아서요."지민의 당차고도 시원시원한 제안에 민성은 잠시 놀란 듯 하다가, 이내 툭 터지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가식 없는 그녀의 성격이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민성은 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을 지우며, 조용히 선을 긋기로 마음먹었다. 지민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자신의 마음은 온통 다른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친구라…… 나야 고맙죠. 박지민 씨처럼 멋진 사람이 친구로 남겠다고 하면 나야 땡큐죠."그러다 민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지민 씨.”“네?”“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지민의 손이 잠시 멈췄다.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이미 예상했던 말이었다.그날 레스토랑에서 그의 눈을 봤으니까.“그분이죠?”“그날 레스토랑에서 봤던 여자분.”민성이 잠시 지민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네.”“많이 좋아하나 봐요.”민성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많이요.”그 대답이 너무 빨라 지민의 가슴 한쪽이 묘하게 움직였다.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그래요? 어떤 분인데요?"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2화. 우연한 재회

    이창수 회장의 주도로 마지못해 나갔던 맞선 자리 이후, 박지민의 마음속에는 묘한 바람이 불어와 있었다. 처음엔 집안의 강요와 정략적인 만남이라 여겨 가볍게 넘기려 했지만,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이민성이라는 남자의 묵직한 존재감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단순한 거래나 조건으로 얽히기에는, 그가 가진 솔직하고도 거친 매력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아버지의 빚.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어차피 결혼이라는 것이 반드시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 역시 언젠가는 부모가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경환 같은 아버지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남자라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오만할 거라고 짐작했다.하지만 민성은 의외로 편했다.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다.무엇보다—그날 레스토랑에서 다른 여자를 바라보던 민성의 눈빛이 기억에 남았다.한 사람만을 좇던 시선.자신이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은 얼굴.그 여자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그래서 지민은 오히려 궁금해졌다.이민성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이번에는 이경환과의 거래 때문이 아니었다.적어도 한 번쯤은—아무런 조건 없이 그 사람 자체를 알아보고 싶었다.지민은 고민 끝에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인위적인 자리보다는 가장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방법. 조사를 통해 민성이 꾸준히 다니는 단골 피트니스 센터를 알아낸 지민은 곧바로 그곳에 회원 등록을 마쳤다.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81화. 너도 이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혜와 통화를 마친 뒤에도 재혁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이번 주말에는 주연이 데리고 가세요.지혜에게서 주말에 주연이 데려 가라는 연락을 받은 직후부터, 재혁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틀 뒤면 온전히 주연과 함께 눈을 뜨고 잠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 주말까지 남은 이틀이라는 시간은 어찌나 더디게 흘러갈지, 시계 바늘을 빠르게 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재혁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이틀을 기다리는 게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재혁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고작 이틀인데…….”어린 시절 보육원에 버려진 뒤부터 그는 ‘가족’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고 살았다.기대하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다시 가족이 생기고 있었다.주연이 생겼고,자신을 사위가 아닌 아들로 받아준 이창수가 있었다.그리고 고미혜도 있었다.재혁은 휴대전화를 들어 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두 번쯤 울렸을 때 민성이 받았다.“왜?”첫마디부터 평소의 민성이었다.재혁이 피식 웃었다.“살아 있나 해서.”“갑자기?”“그날 내 사무실에서 뛰쳐나가더니 연락도 없잖아.”잠시 침묵이 흘렀다.재혁이 물었다.“지혜 씨 만났어?”민성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다 낮게 말했다.“어.”그 한마디에 재혁의 눈빛이 달라졌다.“오늘 시간 돼?”“왜?”“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자.”늦은밤.두 사람은 예전부터 자주 찾던 바에서 만났다.민성이 먼저 와 있었다.재혁이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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