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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작가: 이터니티
벨뷰 하버를 떠난 지 5년 뒤, 나는 웨스트브리지 대학교의 의료 로봇공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나의 하루는 실험과 논문, 그리고 성공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일의 연속이었다. 연구 일정은 살인적이었지만, 그 모든 노력과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라일리는 어느새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부 해안에 남은 마야는 가끔 고향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내게 다시 돌아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웨스트브리지에서는 실험이 늦어져 저녁 식사를 놓치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 주었다.

라일리는 연구실 문 앞에 먹을 것을 두고 가면서 내가 로봇과 보내는 시간이 자기와 보내는 시간보다 많다고 투덜거렸고, 지도교수는 비서의 귀띔을 받지 않고도 내 생일을 기억해 주었다.

그 무엇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음에는 부모님이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오고 비싼 선물들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진심 어린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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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천 마일 너머에서   10장

    의료 대리인 지정 및 신탁 계약이 효력을 발휘한 지 3년이 지난 뒤, 아빠가 폐색전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케어 매니저는 가장 먼저 소피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 비상 연락망이었던 나는 새벽 두 시, 담당 주치의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았다.나는 즉시 필요한 검사들에 동의하고 아빠의 복용 약물 이력을 확인한 뒤, 엄마와 가문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빠의 상태가 안정되자마자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뉴저지로 날아갔다.아빠가 깨어났을 때, 나는 병실 밖에서 재활 치료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아빠는 한참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꺼낸 첫마디는 내가 너무 늦게 나타났다는 불평이 아니었다."소피아는 전화 안 받았지?""케어 매니저가 계속 연락을 시도할 거예요."아빠가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몇 년은 더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애쓸 필요 없다."소피아는 퇴원하는 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병실에 나타난 그녀는 겨우 20분 정도 머물다가, 최근 돈이 부족하다며 아빠에게 다른 콘도의 계약금을 내달라고 졸라댔다.아빠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경호원들에게 소피아를 밖으로 데려가라고 조용히 지시했을 뿐이었다.소피아 뒤로 문이 닫히자, 아빠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를 돌보는 게 자기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하더구나."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나 역시 그 말을 너무나도 지겹도록 들어왔으니까.아빠 역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긁히듯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우리가 어렸을 때 너한테도 그런 말을 했던가?""네.""매년?""매년이요."아빠는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엄마가 아빠를 데리러 병원에 찾아왔다. 그날만큼은 두 사람 모두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않았다. 병실에 나란히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떠나기 직전, 문가에 이르러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에밀리아, 난 네가 워낙 뭐든 혼자서 척척 잘 해

  • 3천 마일 너머에서   9장

    내가 박사 학위를 마친 해, 아빠는 회전근개 수술을 받았다.수술 자체는 간단했지만, 아빠는 2주 동안 운전도, 혼자 샤워하는 것도, 오른쪽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소피아는 아빠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술 전날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해변가 별장이 있는 이비자 섬으로 날아가 버렸다.엄마는 마야를 통해 뉴저지로 돌아와 달라는 말을 전해왔다.나는 가지 않았다.대신 병원 퇴원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연락해 정식 자격을 갖춘 가정 간호사와 사후 진료를 위한 의료 교통편을 주선했다. 진료비는 아빠의 보험과 개인 계좌로 처리되었고, 진료 일정은 주치의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했다.아빠는 합병증 없이 무사히 회복했다.아빠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고맙다.]나는 그 틈을 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수술 부위가 뜨거워지면 간호사에게 연락하세요. 참지 마시고요.]몇 달 뒤, 엄마는 출장으로 시카고에 머무르던 중 망막 열상이 생겨 24시간 이내에 레이저 치료를 받아야 했다.소피아는 밤 비행기를 타기에는 너무 피곤하다며, 엄마에게 호텔 직원에게 동행을 부탁하라고 말했다.대신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나는 웨스트브리지 대학교 협력 병원을 통해 안과 전문의를 찾아냈고, 응급실 입구에서 엄마를 맞이해 줄 전문 환자 동행인을 고용했다. 시술이 끝난 뒤에는 의사에게서 회복 지침을 전달받았고, 통화를 끊기 전에 모든 항목을 꼼꼼히 확인했다.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소피아가 어디 있는지 묻지 않는 거니?""소피아가 어디에 있든 엄마의 치료 계획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화나지 않니?""그건 두 사람 사이의 문제죠."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아마 그때서야 깨달았을지도 몰랐다. 내가 더 이상 소피아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소피아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를 선택해 줄 날을 기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저 누군가가 아프기에 의사에게 데려다주어야 했고, 그래서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 3천 마일 너머에서   8장

    벨뷰 하버를 떠난 지 5년 뒤, 나는 웨스트브리지 대학교의 의료 로봇공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나의 하루는 실험과 논문, 그리고 성공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일의 연속이었다. 연구 일정은 살인적이었지만, 그 모든 노력과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라일리는 어느새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부 해안에 남은 마야는 가끔 고향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내게 다시 돌아오라는 말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웨스트브리지에서는 실험이 늦어져 저녁 식사를 놓치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 주었다. 라일리는 연구실 문 앞에 먹을 것을 두고 가면서 내가 로봇과 보내는 시간이 자기와 보내는 시간보다 많다고 투덜거렸고, 지도교수는 비서의 귀띔을 받지 않고도 내 생일을 기억해 주었다. 그 무엇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음에는 부모님이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오고 비싼 선물들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진심 어린 사과를 대신하려는 그 어떤 사치품도 고스란히 돌려보냈고, 그들의 요구와 끈질긴 비난 역시 모조리 무시해 버렸다.그리고 2년이 지나자 연락은 뜸해졌다. 내 경계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소피아가 가업에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다시 한번 주시할 가치가 있는 딸이 생긴 것이었다.엄마는 소피아를 델루카 호텔의 브랜드 팀에 앉혔다.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소피아는 비공개 인수합병 만찬 자리에서 영상을 찍었다. 카메라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인수 제안서와 상대 기업의 대표들을 무심코 스쳐 지나갔고, 그 영상은 그대로 온라인에 업로드되었다.삭제되기 전에 경쟁사가 그 문서에 적힌 금액을 포착했고, 그 다음 날 곧바로 입찰가를 높여버렸다. 6개월 동안 공들인 협상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보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오랜 단골 고객 두 곳마저 등을 돌리고 떠났다.하지만 소피아는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주위의 시선에 오히려 기분 나빠했다."영상에 문서가 찍힌 건 일부러 그

  • 3천 마일 너머에서   7장

    웨스트브리지 대학교에서의 첫날, 나는 두 시간에 걸쳐 기숙사 방의 책상을 조립했다.마지막 나사를 꽉 조이고 나자, 룸메이트인 라일리가 문가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말했다."저녁 먹으러 갈 건데, 아직 안 끝났으면 대충 치워두고 일단 같이 가자."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나를 기다려 준 거야?""당연하지. 첫날부터 룸메이트를 두고 가는 건 정말 별로인 짓이니까."나머지 두 명의 룸메이트도 복도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네 장의 식권 카드를 들고 있었는데, 그 어느 것 하나 빠진 것 없이 온전히 챙겨져 있었다.순간, 나는 대답을 잇지 못했다.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은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상대를 챙기고, 이번 차례가 누구인지 따져가며 계산하지도 않는 법이었다.우리가 로비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학생 지원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가족들이 긴급한 사안이라며 학교 측으로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었다.나는 혹시 누군가 병원에 입원했거나 다치기라도 한 것인지 물었다.아니었다.부모님은 그저 나와 통화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연락을 취해온 것이었다.그들은 내 기숙사와 학장실, 그리고 캠퍼스 보안실까지 전화를 걸어 모레티 가문의 이름을 들먹이며 누군가 내게 메시지를 전해주도록 압박을 가했다. 내가 그토록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그것은 그들이 내게 닿기 위해 평생 동안 쏟아부었던 그 어떤 노력보다도 거창한 수고였다.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섯 번째 메시지가 울린 뒤, 나는 호숫가로 걸어가 그들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아빠가 거의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에밀리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졸업이며 독립이며, 캘리포니아로 날아간 것까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결정을 멋대로 내릴 수는 없어.""말씀드렸는데요.""언제?""합격 통지서도 두 분께 다 보냈고, 졸업식 초대장도 자택과 사무실로 다 보냈잖아요."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엄마가 전화를 넘겨받으며 불쾌하다는 듯 목소

  • 3천 마일 너머에서   6장

    매년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면, ‘라 세라타’는 모레티 가문을 위해 식당 안쪽의 가장 아늑한 프라이빗 다이닝룸을 통째로 비워두곤 했다.지난 10년 동안 그곳에 늘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나였다. 엄마가 마실 스파클링 워터는 딱 마시기 좋은 상온으로 준비해 두고, 주방에는 신신당부해 아빠의 음식에는 평소보다 소금을 적게 넣도록 했으며, 소피아의 식단에서는 유제품이 들어간 소스를 모조리 빼놓았다.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하면 불꽃이 튀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소피아가 약속 시간에 늦을 때마다 첫 번째 코스 요리가 나오는 시간을 늦춰달라며 매번 애를 썼다.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시킨 적은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내가 보여주는 세심한 배려를 식당에서 당연히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쯤으로 여기고 있었다.그렇기에 엄마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쫙 펼쳐져 있어야 할 메뉴판들이 여전히 뜯지도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고 자리 세팅마저 휑한 것을 보자 걸음을 뚝 멈춰 섰다.아빠와 소피아는 반대쪽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아빠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에밀리아는 어디 갔어? 왜 아직 주문도 안 한 거야?”엄마가 핸드백을 내려놓았다.“일어나 보니까 걔 짐이 싹 다 사라져 있더라고. 당연히 당신 집으로 부쳐버린 줄 알았지.”“난 본 적 없는데.”소피아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그냥 우리끼리 주문하면 안 돼? 친구들 만나서 내 차 시승해 보기로 했단 말이야.”부모님이 웨이터를 불렀다.첫 번째 코스 요리로 엄마가 절대 입에도 대지 않는 굴이 나왔고, 아빠의 훈제 고기는 짤 정도로 간이 강했으며, 소피아의 파스타는 진한 크림소스에 푹 젖어 있었다.소피아가 접시를 홱 밀어내며 짜증을 냈다.“나 유제품 알레르기 있는 거 몰라! 두 사람 다 이걸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어?”엄마는 그 접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애꿎은 내 빈자리로 화살을 돌렸다.“에밀리아가 늘 주방일을 처리했어. 오

  • 3천 마일 너머에서   5장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모레티 가문과 델루카 가문의 비즈니스 인맥들이 엄마의 플래그십 호텔인 아우렐리아에 모여 연례 만찬을 가졌다.크리스털 돔 아래에는 항만 이사들과 호텔 투자자들, 그리고 두 가문과 수십 년 동안 함께 일해 온 변호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빅터 모레티와 셀레스트 델루카가 이혼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지만, 작은딸을 두고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두 사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소피아가 런던에서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낼지, 아니면 아빠의 물류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소피아는 미술을 사랑해. 그런 애를 무슨 항만 사무실 같은 데 처박아 둘 수는 없다고." 엄마가 말했다.아빠는 콧방귀를 뀌었다."갈라쇼에 쓸 꽃 고르는 법을 6주 동안이나 배우는 건 이력서 한 줄도 안 돼. 녀석에게는 실질적인 사업 경험이 필요해." "당신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계약자들을 협박하는 법이라도 배우란 소리야?""호텔을 집어삼키려고 음모를 꾸미면서 고객들에게 미소 짓는 것보다는 낫지."주변 테이블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엄마가 샴페인 잔을 너무 세게 내려놓는 바람에 잔이 덜거덕거렸고, 아빠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는 동시에 호텔 지배인이 황급히 다가왔다. 하지만 지배인은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대신, 늘 그랬듯 내 쪽을 바라보았다."모레티 아가씨, 혹시…""저는 못 해요."내가 차분하게 말하자 지배인이 눈을 깜빡였다.부모님은 이혼하기 전부터 나를 두 사람 사이에 밀어 넣곤 했다. 나는 눈치가 빨랐고, 목소리를 어떻게 낮춰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그 분노를 나에게 쏟아부을 때조차 나는 결코 상황을 더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다.2년 전, 연례 인계 만찬에서 나는 엄마를 진정시키려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아빠 편을 든다고 비난했고, 그래서 엄마를 달래기 위해 내가 입장을 바꾸자 아빠는 내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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