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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물의 진짜 주인

Author: 복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17:05:49

“강신혁, 우리 이혼해요.”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남자 앞에서 이서하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히는 듯했다. 마치 깨진 유리 조각을 삼킨 것처럼 목 안이 따끔거렸다.

맞은편에서 강신혁이 소고기를 썰던 은색 포크가 도자기 접시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는 격한 분노 대신 심드렁한 시선만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가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꺼낸 것처럼.

“또 왜 이래? 어젯밤엔 화가 나서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나를 피곤하게 해야겠어?”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물잔을 들어 올렸다. 말투는 말을 안 듣는 반려동물을 달래기라도 하듯 부드러웠다.

“서하야, 아직 화가 안 풀린 건 알아. 그래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나랑 이혼하면 너 혼자 어떻게 살려고? 지금도 일상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진심이에요. 며칠 뒤에 이혼 서류를 당신 사무실로 보낼게요.”

이서하는 무릎 위에 놓인 긴 치마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진심이라는 걸 그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강신혁은 냅킨을 집어 입가를 느긋하게 닦았다. 미간에 차가운 주름이 잡혔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어젯밤 그깟 일 때문이야? 태호 쪽 애들이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나영이도 좋은 마음으로 널 타이르려던 거잖아. 네 성격 좀 봐. 툭하면 표정 굳히고 이혼하자고 하고. 그러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널 내 모임에 데리고 다니겠어? 넌 그 사람들이랑 어떻게 어울릴 건데?”

그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손가락이 긴 커다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녀를 응시했다.

“나랑 이혼하면 어디로 갈 건데? 나 말고 누가 널 먹여 살려 주겠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그녀를 위한 충고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장 여린 곳을 파고들었다.

이서하는 허벅지 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따끔거릴 정도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 눈에는 내가 당신 친구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짓밟히고 모욕당한 것도, 그래서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그저 투정으로만 보이나요?”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차갑게 시선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투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죠.”

어차피 비자가 나오는 날이면 곧장 떠날 생각이었다. 그가 믿든 믿지 않든, 이제는 아무 상관 없었다.

강신혁은 그저 그녀가 심술을 부리다 속마음을 들킨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그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 청담동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프라이빗 쇼핑몰로 향했다.

화려하고 환한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강신혁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사람에게 불러 세워졌다. 그룹에 매우 중요한 해외 파트너였다.

“너 혼자 둘러보고 있어.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내 계정에 달아 놓고. 좀 이따 데리러 올게.”

강신혁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던졌을 뿐,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상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서하는 홀로 화려한 조명 아래 늘어선 명품 매장 앞에 서 있었다. 우아하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명문가 아가씨들과 부인들을 바라보자, 지난 6년 동안 좀처럼 외출하지 않으며 마음 깊이 눌러 왔던 열등감이 저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뻣뻣한 걸음으로 천천히 사람이 적은 쪽을 향해 걸었다.

최고급 맞춤 드레스를 파는 매장 앞을 지나던 순간, 반투명한 유리 쇼윈도 안에서 귀에 익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쇼윈도 안에서는 권나영이 물빛 도는 하늘색 튜브톱 드레스를 입고 전신 거울 앞에서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옆쪽 가죽 소파에는 김태호가 앉아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태호야, 나 이 브랜드 드레스 고등학생 때부터 진짜 좋아했거든. 그땐 너무 비싸서…….”

권나영은 치맛자락의 자수를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눈빛에는 나긋한 애교가 어려 있었다.

“그때 신혁이가 처음 돈 벌면 이 드레스 사 주겠다고 약속했었어. 그런데 나중에는…….”

김태호가 호탕하게 손을 내저었다.

“마음에 들면 전부 사 버려! 신혁이가 오늘 나오기 전에 특별히 당부했어.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거면 시즌 상품이든 맞춤 제작이든 전부 자기 개인 계정에 달아 놓으라고! 나한테 널 데려가라고 한 것도 마음껏 고르게 해 주려는 거야!”

권나영은 수줍게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

“신혁 오빠도 참…….”

툭.

이서하의 품에 안겨 있던 가방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가방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둔탁하게 부딪혔다.

꼬박 6년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명절이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강신혁은 이 브랜드의 한정판 맞춤 드레스를 이서하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그것이 강신혁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묵묵히 응원하고, 모델로서 빛나던 시절의 자신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옷장에 걸어 두었고, 그 마음에 감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잔인한 진실이 주먹처럼 그녀를 강타하며 산산이 부서뜨렸다.

그 드레스들은 애초에 그녀를 위해 고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 다른 여자에게 했던 약속의 흔적이었고, 그녀에게는 그저 덤으로, 손 가는 대로 던져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얼마나 초라한 일인가.

바로 그때, 묵직하고 차분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강신혁이 중년의 서양인 파트너와 함께 복도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서하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신혁 오빠! 이거 예뻐요?”

권나영은 복도에 선 강신혁을 발견하자마자 하늘색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의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본 해외 파트너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칭찬했다.

“강 대표님, 이분이 바로 사모님이시군요? 기품 있고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두 분이 아주 잘 어울리세요!”

그 말을 들은 권나영의 얼굴에 딱 알맞은 수줍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몸을 살짝 기울여 강신혁의 어깨에 기대더니, 눈을 내리깐 채 부인하지 않았다.

곁에 서 있던 강신혁은 고개를 돌려 팔짱을 낀 권나영을 힐끗 보고, 다시 파트너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훤칠한 몸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그는…… 그 역시 입을 열어 부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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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혁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이서하의 손목을 와락 붙잡았다.“너는 나영이 좀 본받으면 안 돼? 네가 나영이를 밀쳐서 다쳤잖아. 그런데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 어딜 가겠다는 거야?”“놔.”“먼저 나영이한테 사과해.”그는 고집스럽게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마치 이서하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눈앞의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나영이가 다쳤는데 사과 한마디도 못 하겠어? 네 꼴을 좀 봐! 나영이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거야? 왜 맨날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데?”이서하는 문득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남자를 바라보았다.6년 전, 그녀는 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 뒤로는 그날의 사고를 입에 올리지 않고, 몸에 남은 흉터를 내세워 그에게 무언가를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그가 이 결혼을 부담스럽게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심지어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좋은 점을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바로 지금, 그녀는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그저 자신 혼자만의 일방적인 바람이었다는 것을.다른 여자를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강신혁을 바라보던 이서하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끝내 접었다.“강신혁.”그녀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강신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가 계속 변명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하지만 이서하는 그저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후회해.”강신혁은 순간 멈칫했다.“뭐?”“널 구한 걸 후회해.”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예전에는 네 목숨을 구하다가 다쳤어도, 몸에 이런 흉터가 남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난 한 번도 이 흉터로 널 붙잡아 두려 한 적 없어. 네가 내게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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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하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권나영은 자연스럽게 ‘강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였고, 강신혁마저 입을 열어 부인하지 않았다.이서하의 입가에 자조적인 냉소가 번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반걸음 물러난 뒤, 역겨운 광경에서 멀어지려 몸을 돌렸다.“서하야? 서하 맞니?”그때, 등 뒤에서 놀라움과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카리스마가 넘치는 중년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쁨이 가득했다.최 감독이었다.과거 이서하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녀를 정상급 패션쇼 무대에 세워 준 사람이 바로 최 감독이었다. 이서하가 가장 빛나던 시절에도 그녀의 재능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세상에, 정말 너구나!”최 감독은 이서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렸다.“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잖아! 그 사고 이후로…… 너, 괜찮았어?”오랜만에 받는 따뜻한 걱정이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밀려들었다.이서하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사고 이후, 한때 자랑스러워했던 그녀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멈춰 버렸다. 흉터와 다리를 저는 후유증은 그녀가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고, 그녀는 좁은 세상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과거의 모든 사람과 조금씩 연락을 끊었다.익숙한 사람들을 더는 만나지 않으면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오늘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은 결코 몸에 남은 상처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이서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허리를 폈다.“감독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다시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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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이서하는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 넘게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부 강신혁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녀는 말없이 화면을 껐다.오늘은 선생님을 만나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의논하기로 했다. 더는 강신혁 때문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카페 구석자리에서 선생님은 서류 목록을 그녀 앞으로 밀어 놓았다.“이건 쇼 연출 과정에 필요한 서류 목록이야. 다음 달 안으로 전부 제출하면 비자가 나오는 대로 언제든 출국할 수 있어.”“감사합니다, 선생님.”이서하는 서류 목록을 재빨리 가방에 넣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카페를 나선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강신혁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검은색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차갑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이서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가방을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자신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됐다. 그가 알게 된다면 돌아올 것은 뻔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태도뿐일 테니까.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것은 강신혁이었다. 그는 화를 억누른 채 일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여기서 뭐 해? 어젯밤엔 왜 집에 안 들어왔어? 전화도 안 받고. 아직도 화난 거야?”어젯밤 친구들이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내버려 둔 사람이 자신이 아니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말투였다.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반걸음 다가서며 내려다보았다.“서하야, 너무 철없이 굴지 마. 다들 장난이 좀 심했을 뿐이야. 그런데 네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내고 나가 버리면 나영이가 얼마나 난처하겠어? 예전엔 이렇게 철이 없지 않았잖아.”또 철이 없다고 한다.이서하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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