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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거스름돈은 없습니다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3 23:36:38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해담은 평소처럼 9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셔터를 올리고 문턱을 쓸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정리한 공구도 자리에 있었다. 작업대에 앉아 장부를 펴고 날짜를 적었다.

아침 손님은 없었다. 해담은 기계에 남은 쇳가루를 털어 통에 모았다. 문밖에서 탁씨정육의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 입구에서는 두레슈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해담은 작업대에 놓인 열쇠 꾸러미를 풀어 한 번씩 훑었다. 아빠가 가게에 들렀다 간 뒤로 열쇠 몇 개가 다른 고리에 끼워져 있었다. 고리를 풀고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오늘은 안 만지려나 했는데.”

봉숙자가 미용실 문을 열며 말했다.

“열쇠가 섞여 있잖아요.”

“어제는 안 섞였고?”

“오늘 보니까 섞였어요.”

“그럼 어제는 마음도 괜찮았나 보네.”

해담은 고개를 들었다. 봉숙자는 가게 앞에 서서 해담을 보고 있었다. 보라색 브릿지가 햇빛 아래서 더 선명했다.

“원장님은 아침부터 할 일이 없으세요?”

“있지. 손님 기다리는 일.”

“저도 손님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럼 둘이 사이좋게 기다리자.”

봉숙자가 미용실로 들어갔다. 해담은 열쇠 고리를 다시 묶었다. 걸린 열쇠가 서로 부딪히며 짤랑 소리를 냈다.

오전이 지나도록 손님은 2명 왔다. 한 사람은 낡은 자물쇠를 가져와 열쇠가 뻑뻑하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현관 열쇠를 하나 더 만들었다. 해담은 원본과 복사한 열쇠를 대어 확인하고 값을 받았다.

“잘 안 맞으면 가져오세요.”

“사장님이 깎으셨는데 안 맞겠어요?”

“문에 넣어 봐야 알아요.”

손님은 웃으며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해담은 손님이 나간 뒤 장부에 거래를 적었다.

점심이 조금 지나자 셔터 밖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고, 여자는 손에 든 가방을 고쳐 쥐었다.

“열쇠가 없어진 건가요?”

“열쇠는 있는데 문이 안 열려요. 도어록 번호를 잊어버렸습니다.”

남자가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현관문 사진이 떠 있었다.

“집에 들어가 봐야 확인할 수 있어요. 가까운 데인가요?”

“골목 뒤 빌라예요.”

“출장비는 낮에 3만 원이고, 부품이 들어가면 따로 말씀드릴게요.”

“네. 괜찮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돌아봤다.

“번호를 바꾼 건 당신이잖아.”

남자가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기억날 줄 알았지.”

“뭘로 했는데?”

“결혼기념일 숫자로 했는데.”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휴대전화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 숫자가 왜 기억이 안 나요?”

“긴장해서 그런가 봐.”

“문 앞에서 긴장한 지 20분 됐어요.”

해담은 작업대에서 공구 가방을 꺼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싸우는 건 문 열고 하세요. 앞에서 이웃들 다 들으니까.”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네. 죄송합니다.”

“가시죠.”

해담은 공구 가방을 들고 먼저 나섰다. 부부는 뒤따라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빌라 현관 앞에서 남자가 도어록을 가리켰다. 해담은 손잡이와 번호판을 확인하고 도어록 옆면을 살폈다.

“번호를 여러 번 누르셨어요?”

“두 번 눌렀습니다.”

“잠금 표시가 들어와 있네요. 잠시만요.”

해담은 공구를 꺼내 잠금 장치를 확인했다. 손잡이를 움직여 보고, 도어록 안쪽의 상태를 살폈다. 남자는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렸다. 여자는 남자의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여보.”

“응.”

“기념일 날짜가 아니라 오늘 날짜를 누른 거 아니야?”

남자는 잠깐 화면을 보았다.

“그런가?”

“당신이 정한 번호라며.”

“내가 정했는데, 날짜가 헷갈렸나 봐.”

여자는 휴대전화를 남자 손에 돌려줬다. 해담은 도어록을 열고 문을 밀었다.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열렸습니다. 안쪽에서 번호를 바꾸실 거면, 둘 다 기억할 수 있는 걸로 하세요.”

“네.”

“서로 한 사람만 아는 숫자는 피하시고요.”

여자가 남자를 봤다. 남자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출장비는 3만 원입니다.”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해담은 금액을 확인하고 영수증을 건넸다. 여자는 문 안쪽에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사장님, 다음부터는 제가 번호를 정할게요.”

“그러세요. 두 사람이 모두 아는 번호로요.”

남자가 작게 웃었다. 여자는 이번에는 그를 노려보지 않았다.

해담은 공구 가방을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봉숙자가 미용실 앞에서 빗을 들고 서 있었다.

“문은 열었어?”

“네.”

“부부싸움도?”

“그건 두 분이 알아서 하겠죠.”

“현관보다 어려운 문이네.”

“원장님은 머리나 하세요.”

“하고 있잖아. 귀는 손님 기다리는 중이고.”

해담은 공구 가방을 작업대 밑에 넣었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 손끝에 쇳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 물로 씻었지만 손톱 밑에 검은 가루가 끼었다.

그 뒤로 손님이 한 명 더 왔다. 자동차 열쇠의 고리가 빠졌다고 해서 고리를 새것으로 바꿨다. 해담은 부품값을 설명하고 장부에 적었다. 손님은 열쇠를 받아 가며 다음 주에도 들르겠다고 했다.

“필요하면 오세요.”

해담은 손님을 보내고 작업대의 공구를 정리했다. 오후가 되자 골목의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탁씨정육 안에서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들렸고, 두레슈퍼 평상에는 엄분이가 앉아 있었다. 깜이는 엄분이 발치에 웅크리고 있었다.

해담은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살폈다. 오늘은 아무것도 기울지 않았다. 그래도 한쪽에 걸린 열쇠를 손끝으로 바로 했다.

「괜히 만졌네.」

해담은 손을 거두고 장부를 펼쳤다. 오늘 거래를 빠짐없이 적었다. 빈칸을 확인하고 책을 덮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해담은 가게 앞을 쓸었다. 탁 사장이 정육점 문을 열고 나와 앞치마를 털었다.

“구 사장.”

“네.”

“오늘 무슨 날이라던데, 고기라도 사 가.”

해담은 빗자루를 세웠다.

“무슨 날인데요?”

“나도 정확히는 몰라. 사람들이 뭘 주고받는다더라.”

“사장님은 왜 저한테 고기를 사 가래요?”

“혼자 먹으면 남잖아.”

“제가 혼자 먹는다는 건 어떻게 아세요?”

“혼자 사는 사람은 반찬통이 작더라.”

“그건 어머니가 반찬을 가져다줘서 그래요.”

탁 사장은 더 묻지 않았다. 정육점 안으로 들어가 고기 한 팩을 들고 나왔다.

“이거 가져가.”

“돈 낼게요.”

“오늘은 그냥 가져가.”

“정가로 팔아야죠.”

“정가로 살 사람이 있으면 그때 팔고. 지금은 내가 주는 거야.”

“그럼 안 받을게요.”

탁 사장은 고기 팩을 다시 들고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문밖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구 사장.”

“네.”

“받을 마음 없으면 처음부터 물어보질 말지.”

“뭘요?”

“고기라도 사 가라니까 왜 이유를 따져.”

“사장님이 이유 없이 주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탁 사장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해담은 빗자루로 가게 앞을 마저 쓸었다.

해가 다 지기 전에 구판길에게 전화가 왔다. 해담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왜요?”

“가게 문 열었냐?”

“열었죠.”

“오늘도 늦게 닫겠네.”

“원래 8시 30분까지예요.”

“그럼 잘 닫아.”

“오늘은 왜 전화했어요?”

“물고기 손질해 놨다. 엄마가 가져가래.”

“아빠가 하셨다면서요.”

“했지.”

“엄마가 가져가래요?”

“내가 가져다주면 네가 안 받을 것 같아서.”

해담은 전화선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

“그럼 내일 주세요.”

“오늘 가져다줄까?”

“됐어요. 저녁에 가게 닫고 집에 올라갈 거예요.”

“그러면 문 앞에 둘까?”

“놓고 가지 마세요. 깜이가 가져가면 어떡해요.”

“깜이는 물고기를 안 가져간다.”

“아빠가 아세요?”

“내가 안다.”

판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해담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계산대 위를 정리했다. 장부를 서랍에 넣고 작업대에 남은 쇳가루를 쓸었다.

8시가 가까워지자 해담은 셔터를 반쯤 내렸다. 마지막 손님이 오면 바로 열 수 있도록 문을 잠그지는 않았다. 열쇠 블랭크 판에 걸린 열쇠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계산대의 지폐를 정리했다.

시계가 8시 20분을 가리켰다.

문밖에서 열쇠 꾸러미 소리가 났다. 해담은 고개를 들었다. 서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흰 가운 안에는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늘 보던 놋쇠 열쇠가 들려 있었다.

“8시 20분입니다.”

“시계 안 봐도 알아요.”

“그렇습니까?”

“이제는요.”

해담은 작업대 앞에 앉았다. 서후가 열쇠를 내려놓았다. 해담은 원본을 손으로 돌려 가며 살폈다. 손때가 묻은 손잡이에는 잔흠집이 있었고, 날은 여러 번 깎인 듯 닳아 있었다.

“오늘은 또 어디가 필요해요?”

“같은 곳입니다.”

“복사한 열쇠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봐요.”

서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담은 벽에서 맞는 블랭크를 골랐다. 기계에 원본과 블랭크를 물리고 전원을 켰다.

위잉 소리가 가게 안에 퍼졌다. 해담은 손잡이를 천천히 움직였다. 원본의 홈을 따라 새 열쇠가 깎였다. 쇳가루가 작업대 위에 떨어졌다.

서후는 계산대 앞에서 기다렸다. 해담은 기계를 멈추고 복사한 열쇠를 꺼냈다. 줄로 날을 다듬은 뒤 원본과 나란히 놓았다. 홈의 깊이를 확인하고 새 열쇠를 건넸다.

서후가 열쇠를 받았다. 해담도 손을 놓았다. 손끝이 스쳤다.

해담의 손가락이 멈췄다. 서후의 손은 차가웠다.

「차갑네.」

해담은 손을 작업대 아래로 내렸다. 서후는 새 열쇠를 손바닥에 놓고 날을 살폈다. 해담은 계산대 서랍을 열었다.

“3,000원입니다.”

서후는 새 1,000원짜리 지폐 세 장을 계산대 위에 나란히 놓았다. 지폐의 모서리가 맞춰져 있었다. 해담은 돈을 받아 서랍에 넣고 영수증을 뽑았다.

“늘 딱 맞게 내시네요.”

“복사값이 3,000원입니다.”

“거스름돈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해담은 영수증을 건넸다. 서후는 영수증을 반으로 정확히 접어 지갑에 넣었다. 해담은 작업대에 놓인 원본 열쇠를 가리켰다.

“이 열쇠는 오래됐네요.”

“네.”

“손잡이도 많이 닳았고.”

“오래 썼습니다.”

“복사한 것만 계속 가지고 다니면 안 돼요?”

“원본이 필요합니다.”

해담은 더 묻지 않았다. 서후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벽에는 열쇠 블랭크가 종류별로 걸려 있었다. 작업대 아래에는 공구 가방이 들어가 있었고, 계산대에는 장부가 덮여 있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계셨습니까?”

“8시 30분까지예요.”

“곧 닫으시겠네요.”

“네.”

“제가 마지막 손님입니까?”

“오늘은요.”

“다행입니다.”

“뭐가요?”

“복사할 수 있어서요.”

해담은 계산대 위의 영수증 더미를 정리했다. 서후는 문 쪽으로 한 걸음 옮기다가 멈췄다. 해담은 서랍을 닫고 손바닥을 작업대 위에 올렸다.

하루 종일 삼키고 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약사님은 7년 동안 왜 한 번도 안 왔어요? 열쇠집에.”

서후는 해담을 바라봤다.

“열쇠를 안 잃어버려서요.”

◎

서후는 늘봄약국 계산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후는 방금 복사한 열쇠를 유리병에 넣었다. 병 안의 놋쇠 열쇠가 13개가 됐다. 이제 13개였다. 서후는 뚜껑을 닫았다.

염금옥이 병을 들어 흔들었다. 열쇠들이 부딪혀 짤랑 소리를 냈다.

“이거 다 차면 어쩌시게요?”

서후는 유리병을 받아 서랍 안에 놓았다.

“큰 병 사겠습니다.”

그는 서랍을 닫았다.

(1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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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6화. 간판 상담

    “저 간판, 내가 손으로 쓴 거다.”아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해담은 사진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진 속 간판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지금 구씨열쇠에 걸린 간판도 그랬다. 글자 획이 조금 굵고, ‘열’의 마지막 획은 오른쪽으로 짧게 올라가 있었다.“아빠가 직접 쓴 거예요?”“가게 열 때 급하게 썼다. 간판집에 맡길 돈도 아꼈고.”“그 글씨가 지금 간판까지 온 거네요.”“그렇지.”구판길은 사진을 해담에게 돌려줬다. 사진 모서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담은 아래를 받쳤다. 간판 아래에 선 아빠는 지금보다 얼굴이 덜 탔고, 앞치마도 새것처럼 보였다.“아빠는 저때도 무뚝뚝했어요?”“사진에 말투가 나오냐?”“안 나오니까 물어보는 거죠.”“그때도 지금도 똑같다.”봉숙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똑똑히 봤어. 구 사장님은 가게 열 때도 말이 별로 없었어.”“봉 원장님이 그때부터 골목에 계셨어요?”“내가 미용실을 하기 전에도 이 골목에 살았지. 모르는 게 없어.”“저 사진은 아빠가 몇 살 때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아빠한테 물어.”“사진 속 아빠가 대답을 안 하시잖아요.”구판길이 해담을 보았다.“가게 문 열던 때니까 지금보다 젊었지.”“그건 저도 알아요.”“그럼 됐다.”사진을 다시 장부 옆에 놓은 뒤에도 해담은 간판 글씨를 몇 번 더 봤다. 아빠 손글씨가 원래부터 간판에 새겨진 줄 알았다. 글씨를 본떠 간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해담은 계산대 안쪽에서 사진을 펼쳐 놓았다. 사진 속 간판과 유리문 밖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글자와 현재 간판의 글자 모양은 일치했다. 검은 칠이 벗겨진 모서리와 오른쪽 아래에 붙은 작은 글씨만 달랐다.해담은 사진을 접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10월 25일 오전,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모양이 맞는 열쇠를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5화. 금고 개봉 행사

    “다이얼은 제가 돌릴게요. 손대지 마세요.”해담은 옛 솔매우체국 안쪽에 놓인 금고 앞에 섰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가을 장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모여들어 금고 주위에 둥글게 섰다. 문밖에서는 상인들이 장터 물건을 소개하는 소리와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봉숙자가 금고 옆에서 손바닥을 내저었다.“다들 조금만 뒤로 물러서요. 해담이가 돌릴 자리가 있어야지.”“저 정도면 넉넉한데.”탁종팔이 말했다. 봉 원장이 탁 사장을 돌아봤다.“사장님은 더 물러서세요. 나중에 금고 열리면 제일 먼저 안에 들어가실 것 같으니까.”“내가 왜 들어가.”“사진에 젊은 모습이 있으면 가져가실 수도 있잖아요.”“사진은 안 가져가.”탁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도 금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구판길은 사람들 뒤에 서서 금고를 바라봤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조끼를 걸쳤고, 손에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아빠를 보았다.“아빠,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문 열리면 잘 안 보일 수도 있어요.”“여기서도 보인다.”“다들 보러 왔는데 아빠만 안 보이면 안 되잖아요.”구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 있던 진서후가 해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담 씨.”“서후 씨. 오셨어요?”“네. 아버지는 퇴원하셨습니다.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다행이에요.”“오늘 장터에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점이 그대로 보였다. 서후는 약국에서 입던 흰 가운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해담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금고로 몸을 돌렸다.“그럼 잘 열어야겠네요.”“해담 씨가 여시면 됩니다.”“그 말은 부담되는데요.”“제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해담은 다이얼을 내려다봤다.「말이 늘 정확해.」금고는 무릎 높이보다 조금 큰 철제 금고였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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