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도 성이남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윤 여사가 강서이를 저렇게까지 믿는 이유가 뭘까?’‘아마 강서이의 말에 넘어간 것이리라...’‘강서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속이 시커먼 사람이었어.’하지만 영상으로 진실이 드러나자 성이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CCTV에는 강서이가 카펫에 발이 걸린 데다가, 하이힐까지 신고 있어서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는 모습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구기민은 예의와 반사적인 구조 본능으로 강서이를 붙잡았을 뿐이었다.강서이가 자세를 바로잡자 두 사람은 곧바로 떨어졌다.처음부터 끝까지 선을 넘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성이남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으면서 굳게 다문 입술에는 힘이 들어갔다.윤성미만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했다.진실을 확인한 이상 더는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윤성미는 곧장 축객의 뜻을 밝혔다. “성 대표님,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더 모시기 어렵겠네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약속하신 대로 강 대표한테 직접 사과하시길 바랍니다.”성이남의 표정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약속한 이상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지켜야 했다....리셉션이 끝나 갈 무렵, 강서이도 구기민에게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갈 생각이었다.하지만 먼저 다가선 사람들이 있었다.민도하와 노아리였다.노아리는 저녁 내내 기다린 끝에 겨우 구기민과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작별 인사를 하러 온 자리였지만 일부러 대화를 조금 더 이어 갔다.구기민의 태도는 여전히 무심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정도였다.노아리는 힘이 빠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민두해를 대할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민도하는 노아리를 달래려는 듯 눈길을 건넸다.구기민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보던 강서이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만 보인다는 듯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도 고스란히 들어왔다.그 와중에 노아리는 도발하듯 강서이를 흘겨보았다.강서이도 사양하지 않
“두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서이가 건넨 약속이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윤성미가 몹시 지쳐 보이자, 강서이는 먼저 대화를 마무리하고 얼른 쉬라고 권했다.방을 나온 강서이는 밖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던 성이남과 마주쳤다.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고, 상대를 한 번 더 바라보는 것조차 싫어했다.서로를 업신여기고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다만 자리를 떠나는 강서이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가벼웠다.비서는 윤성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다른 날 다시 방문해 달라고 성이남에게 설명했다.그럼에도 성이남은 윤성미를 꼭 만나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난처해진 비서는 안으로 들어가 윤성미에게 상황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2분 뒤, 성이남은 마침내 윤성미를 만났다.“성 대표님, 먼저 사과할게요. SH테크 인수 합병을 맡기고 싶은 분을 이미 정했어요. 괜히 성 대표님 시간을 빼앗고 싶지는 않네요.”성이남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 강서이가 가벼운 걸음으로 나가던 모습을 떠올리자 곧 사정을 짐작했다.눈빛을 가라앉힌 성이남은 그래도 윤성미에게 경고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혹시 마음에 두신 분이 강서이 대표입니까?”윤성미는 부인하지 않았다.성이남은 경멸 어린 웃음을 흘렸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강 대표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도 아니고 학력도 내세울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정말 그런 사람에게 SH테크를 맡기실 생각이십니까?”편견과 공격성이 고스란히 묻어난 말에 윤성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성 대표님은 강 대표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신 것 같네요. 두 분 사이에 무슨 오해라도 있나요?”성이남의 표정에는 드러나는 경멸 대신 차가운 비웃음이 짙어졌다. “오해는 없습니다. 저도 강 대표님과 친하지는 않습니다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 됨됨이가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윤성미는 허리에 쿠션을 받치고 뒤로 기대 앉았다. 성이남을 바라보는 눈길이 한층 싸늘해졌다
지금 성이남이 보기에, 강서이는 능력으로 노아리를 이길 수 없으니 저런 ‘비열한 수단’을 써서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그리고 계산이 빠르고 수법까지 ‘더러운 강서이’를 ‘순진한 아리 선배’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상황만 허락했다면, 성이남은 곧장 구기민에게 다가가서 강서이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었다.성이남은 속에서 치미는 거부감을 눌러 삼킨 채 윤성미의 비서를 찾아 방문 목적을 밝혔다.SH테크 인수합병 건을 윤성미와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비서는 미안한 기색으로 윤성미가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있어서 지금은 면담이 어렵다고 전했다.“괜찮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성이남은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이번에 G시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SH테크 인수합병 건을 따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는 것.SH테크는 G시에 기반을 둔 반도체 기업으로, 윤성미는 SH테크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었다.SH테크는 최근 2년간 영승반도체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졌고,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윤성미는 인수 합병을 통해 조직을 재편하고, SH테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고 했다.아직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다.성이남도 아버지의 인맥을 동원한 끝에 어렵게 알아낸 소식이었다.그러니 다른 경쟁자들이 뛰어들기 전에 윤성미를 설득해 성세그룹이 SH테크 인수합병에 참여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성이남은 SH테크를 다시 일으켜 영승반도체와 맞설 자신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아리 선배도 나를 한 번쯤 더 봐 주지 않을까?’그 생각에 이르자 어째서인지 강서이가 비꼬듯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성이남의 옷차림이 민도하와 무척 닮았고, 성이남은 민도하를 따라 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다.성이남의 눈이 매섭게 가라앉았다.‘내가 왜 강서이 같은 여자를 떠올리는 거지?’...구기민이 소개하려던 사람이 아내일 줄은 강서이도 몰랐다.구기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윤성미가 웃으며 말했다. “소개는 안 해 줘도 돼. 우리 이미 알아.
‘나한테 경고하는 건가?’강서이가 의미를 확인하려 했지만, 민도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선을 거두었다.팔짱을 끼고 바짝 붙어 있는 노아리에게 고개를 돌린 민도하는 냉담하던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 “하이힐 신고 오래 서 있으면 힘들잖아. 어디 가서 좀 앉자.”“그래.”두 사람은 다정하게 붙어 자리를 떠났다.강서이는 자신이 신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학생 때부터 한지수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하이힐은 세상에서 손꼽히는 고문 도구라고.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어른다운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로, 강서이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하이힐을 억지로 신었다.첫해에는 발에 난 상처가 나을 틈이 없었다.구급함에 가장 많이 쌓아 둔 것도 온갖 종류의 진통 패치였다.발목을 삐거나 살갗이 까지는 일은 흔했다.가장 심했을 때는 발가락뼈가 부러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구두가 맞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그 상태로 하루 종일 버티며 민도하의 사업 현장 실사를 따라다녔다.결국 통증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서야 골절 사실을 알았다.의사는 발가락이 부러진 것도 모를 만큼 무심하냐며 강서이를 나무랐다.한지수는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강서이를 혼냈고, 여자친구 하나 살필 줄 모른다며 민도하까지 욕했다.직접 민도하를 찾아가 따지겠다는 한지수를 강서이가 간신히 말렸다.당시 민도하는 중요한 사업 두 건을 동시에 검토하느라 비행기를 사무실처럼 삼고 다닐 정도였다.강서이는 자신의 일까지 더해서 민도하가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민도하는 지금까지도 하이힐을 신은 강서이가 발가락이 부러진 상태로 버텼다는 사실을 모른다.접대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위출혈까지 일으켰던 일도 마찬가지였다.강서이는 그 관계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내어 주기만 했고, 무언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주는 마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강서이가 민도하를 사랑했던 방식처럼.지금까지의 일은 그 믿음이
바로 다음 순간, 방 안에 선명한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서이는 역겹다는 듯 남자의 몸에서 거칠게 빠져나왔다.몸부림치다가 발끝이 민도하의 급소를 건드린 모양이었다.민도하는 낮게 신음하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꽤 고통스러워 보였다.그래도 강서이는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먼저 함부로 손을 댄 쪽은 민도하였으니까.“이제 정신 좀 들어? 눈 똑바로 뜨고 내가 누군지 잘 봐!”강서이는 불쾌한 표정으로 휴지를 뽑아 입술을 닦으며 쏘아붙였다. “사람까지 헷갈릴 정도면, 네가 노아리를 정말 사랑하는 건지 의심스럽네.”오늘 강서이는 노아리와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술에 취한 민도하가 강서이를 노아리로 착각한 탓에 소파로 끌어당겨 입을 맞춘 듯했다.전에도 술을 마신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제력을 잃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민도하를 이토록 흔들 수 있는 사람은 노아리뿐이었다.강서이는 생각할수록 재수가 없었다. 곧이어 겨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던 민도하를 다시 걷어차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당장 이 방에서 나가!”“안 나가면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야!”민도하도 일이 커지는 건 꺼렸는지 강서이와 말다툼하지 않았다.두 번이나 걷어차인 것도 그대로 감수했다.방을 나서기 전에는 양심이 찔린 건지, 일을 덮으려는 건지 강서이에게 짧게 사과했다.강서이가 보기에는, 그가 자신을 노아리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내가 이 일을 떠벌려 노아리가 오해할까 봐 겁이 난 것이겠지.’‘연인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니까.’아쉽게도 강서이는 민도하가 누군가를 달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야 강서이는 휴게실을 나섰다. 걸음을 서두르느라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성이남을 보지 못했다.성이남은 노아리 대신 민도하를 찾으러 온 길이었다.성이남은 저녁 내내 기다린 끝에 겨우 혼자 있는 노아리와 마주쳤다.곧장 다가가서 노아리에게 말을 걸었다.두 사람이 잠시 대화를 나눈 뒤에야
윤성미는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성이남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어서 곧바로 물러섰다. “그럼 다음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윤성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성이남이 윤성미가 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윤성미는 망설임 없이 강서이에게 곧장 걸어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성이남의 입가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다.“강 대표님, 아까 정말 고마웠어요.” 윤성미는 강서이의 손을 잡고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별일도 아닌데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강서이도 윤성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데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윤성미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생리할 때마다 이래요. 원래 몸이 찬 편이라서요.”강서이도 예전에는 비슷한 증상이 있었지만, 꾸준히 몸을 관리한 뒤 많이 나아졌다.그 말을 듣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도 예전에는 몸이 많이 찼어요.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한약을 먹고 꽤 좋아졌거든요. 필요하시면 그때 받은 한약 처방을 알려 드릴게요.”“오래된 증상이라 이제는 익숙해요. 약도 여러 번 먹어 봤는데 별 효과가 없어서 더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 그래도 마음 써 줘서 정말 고마워요.” 윤성미는 강서이가 갈수록 마음에 들었다.“전에 제 남편이 강 대표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그 사람이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여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계속 궁금했는데, 오늘 만나 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정말 야무지고 센스 있는 분이네요.”윤성미는 강서이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손을 놓지 않은 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여러 사람이 윤성미에게 인사를 하러 와서 술잔을 권했다.강서이는 윤성미가 생리 중이라는 걸 떠올렸다. 술을 마시면 몸이 더 힘들 수 있어서 강서이가 대신 잔을 받아 마셨다.처음에는 윤성미도 만류했지만, 강서이는 자신이 술이 센 편이고 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