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서이는 그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민도하와 노아리 일행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노아리는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착용해서 얼굴을 빈틈없이 가린 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민도하의 한쪽 팔에는 팔걸이 보조기가 걸려 있었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해 보였다.그런 상태에서도 다치지 않은 손으로는 노아리를 감싸듯 보호하고 있었다.시선을 느낀 건지 민도하가 강서이 쪽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눈이 아주 잠깐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보는 눈은 이상할 만큼 무심했다.강서이는 아무런 동요 없이 눈을 돌리고 일행과 함께 다른 출구로 빠져나갔다.다음 날 아침 일찍, 강서이는 항만 재개발 프로젝트 현장으로 향했다. 안전점검단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뜻밖에도 배준석까지 현장에 나와 있었다.강서이가 먼저 인사할 틈도 없이 배준석이 먼저 다가와서 물었다.“어디 다쳤어요? 많이 심한 건 아니죠? 안색도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잠시 강서이를 살피더니 덧붙였다. “살도 많이 빠졌어요.”고작 보름 남짓 못 봤을 뿐인데, 배준석은 세심하게 강서이의 변화를 알아차렸다.“G시에서 조금 다쳤어요.” 강서이가 설명했다.배준석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많이 다친 건가요?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괜찮아요. 거의 회복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배준석은 그제야 안도했다. “괜찮다니 다행입니다.”두 사람이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안전점검단이 도착했다.급히 맞으러 나갔던 강서이는 선두에 선 책임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노장훈이었다.하지만 곧 표정을 정돈하고 노장훈을 비롯한 점검단과 차례로 악수했다.노장훈은 업무 책임자답게 무난한 태도를 보였다. 강서이의 뺨에 남은 상처를 보고는 한마디 물었다. “강 대표, 다친 거야?”“거의 다 나았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관님.”강서이는 예의상 답했다.업무 중인 만큼 노장훈도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안전점검은 순조로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까다롭게 흘러갔다.
“튼튼한 버섯.”강서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나는?”아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예쁜 버섯.”“그런데 넌 왜 튼튼한 버섯이야?” 강서이가 물었다.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야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니까.”강서이의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시고 떫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서 마음이 아렸다.강서이는 손을 뻗어 아이의 옷자락을 살며시 건드렸다.아이가 거부할까 봐 조심스러웠다.아이는 움찔하긴 했지만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강서이는 더 다가가지 않고 물었다. “그럼 내가 너보다 더 튼튼한 버섯이 되어도 될까? 내가 널 지켜 줄 수 있게.”아이는 한참 강서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니는 더 튼튼하고 예쁜 버섯 해.”윤성미가 찾아왔을 때, 아이는 강서이의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윤성미는 꽤 놀란 눈치로 강서이에게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자신은 처음 아이의 신뢰를 얻는 데 거의 일 년이나 걸렸다고 하면서.강서이의 설명을 들은 윤성미는 감탄했다. “역시 강 대표는 방법이 있으시네요.”뒤이어 표정을 엄하게 하고 타일렀다. “의사 선생님이 푹 쉬라고 하셨잖아요. 말 좀 잘 들으세요.”강서이는 금세 얌전해졌다.김설이 그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역시 윤성미 여사님만 저희 대표님을 말릴 수 있네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으셨거든요.” “그런데 여사님 한마디에 대표님이 바로 얌전해지잖아요. 앞으로 자주 와 주세요.”강서이는 할 말을 잃었다. 윤성미와 아이가 돌아간 뒤, 김설은 기다렸다는 듯 강서이에게 소문 하나를 풀어놓았다.“대표님! 진짜 대박 소식이에요!”강서이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무슨 대박 소식이 있다고?”“진짜라니까요! 이번 건 완전 대박이에요!” 김설이 신이 나서 말을 쏟아 냈다. “민 대표님이랑 노아리 본부장이 약혼식 올리러 섬에 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강서이가 힐끗 쳐다봤다.시선이 싸늘했다.김설은 헛기침을 하고 얼른 결론부터
하지만 김설은 다른 부상자는 없다고 말했다.강서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그때 진한 피 냄새를 맡았고, 누군가 통증을 참는 듯한 낮은 신음소리도 들었다.그 소리를 떠올리면서 강서이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익숙했어.’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믿기가 어려웠다.자신이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그날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실제로 듣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강서이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고 했다.그때 서태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필요한 자료를 전부 준비했는데 빠진 게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강서이는 목록을 훑어보고 빠진 게 없는 걸 확인한 뒤 ‘OK’라고 답했다.원래라면 그대로 대화창을 닫았어야 했다. 그런데 잠깐 망설이며 한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다.메시지창에 ‘민도하’라는 이름까지 썼다가 강서이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곧바로 글자를 지우고 대화창에서 나왔다.24시간 전, 서태우는 SNS에 새 게시물을 올렸다.멀리서 민도하와 노아리의 약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사진 속 노아리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민도하가 노아리를 바라보는 눈에도 애정이 깊게 담겨 있었다.강서이는 메신저를 닫았다. 마음에 남아 있던 작은 의문도 그제야 완전히 사라졌다.‘역시 내가 너무 앞서갔어.’‘나를 구한 사람이 민도하라고 생각하다니.’혼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했다....오후에는 윤성미가 다시 강서이를 보러 왔다. 사실 윤성미 쪽이 더 안 좋아 보일 만큼 얼굴은 지쳐 있었다.이번에는 7, 8살쯤 된 여자아이 하나도 곁에 있었다.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의 시선에는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배어 있었다.윤성미를 따라다니는 동안 내내 옷자락을 손에 꼭 쥐고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강서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재빨리 윤성미 뒤로 몸을 숨겼다.윤성미는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의 아이라고 설명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했다.자선 갈라가 있던 날 윤성미가
“무슨 소리야? 내가 G시에서 밤일 하나는 제일 세기로 유명한 사람이야. 너희는 그냥 기다려.”주변에서 비웃는 웃음소리가 터졌고, 남자는 다시 강서이를 끌고 방 안으로 향했다.두 걸음도 가지 않았을 때 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바로 그때, 누군가 강서이의 몸을 옆으로 강하게 당겼다.몸의 중심이 뒤집히면서 휘청거리는 사이에 총성이 울렸다.강서이는 누군가 고통을 참는 듯 낮게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곧 진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나를 구하러 온 사람이 총에 맞았어.’ 강서이는 바로 알아챘다.“미친 새끼, 아주 죽여 줄게!” 화가 난 광식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강서이는 다시 몸이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품에 감싸고 바닥을 구르며 피했고, 둔탁한 타격음이 여러 번 이어졌다. 방망이가 강서이를 감싼 남자의 팔을 때리는 소리 같았다.그러다 뒤통수가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다. 강서이의 의식이 다시 끊겼다....강서이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속에서 눈을 떴다. 옆에서는 계속 우는 소리가 들렸다.“왜 아직도 안 일어나요? 이대로 못 깨어나는 거 아니죠? 대표님이 안 일어나면 우리 어떡해요. 흑...”“혹시 식물인간이 돼도 제가 평생 돌볼게요. 진짜로요...”머리가 더 아파오면서, 강서이는 힘을 모아 김설이 잡고 있는 손을 조금 움직였다. 자신이 깼다는 걸 알려 주려고 했다.하지만 김설은 우느라 정신이 팔려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양정원이 먼저 강서이가 눈을 뜬 걸 발견했다. “김 비서, 얼른 의사 불러요. 강 대표가 깼어요.”김설의 울음이 바로 딱 멈췄다. 급히 눈물을 닦고 강서이가 정말 깨어 있는 걸 확인하자, 얼른 호출 버튼을 눌렀다.병실이 한동안 분주해졌고, 의사가 들어와 강서이의 상태를 확인했다.윤성미도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면서 병실로 들어왔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걱정이 가득했다. “선생님, 상태가 어떤가요?”“중등도 뇌진탕입니다. 당분간은 누워서 충분히 안정
남자는 강서이에게 달려들면서 얼굴 가까이 바짝 다가왔다.얼굴에 테이프가 감겨 있어 피부에 제대로 닿지 않자, 흥이 깨진 듯 곧 표적을 바꿔서 강서이의 목 쪽으로 얼굴을 묻었다.강서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겨움 때문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하지만 입까지 꽉 막혀 있어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도움을 청할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살면서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남자의 손은 이미 허리에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드레스까지 잡아당기려고 했다.그때 밖에서 갑자기 거친 몸싸움 소리가 터졌다.누군가 소리쳤다. “너 뭐야!”대답은 들리지 않았다.대신 비명과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지면서 점점 방 가까이 다가왔다.강서이를 덮치고 있던 남자도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큰소리로 외쳤다. “광식아! 밖에 뭐 하는 거야!”“형님, 누가 들어왔습니다!”광식이 더 설명하기도 전에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크게 얻어맞은 듯했다.남자는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강서이 위에서 바로 일어났다.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강서이는 겨우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살아난 것처럼 공기가 절실했다.하지만 두어 번 숨을 쉬기도 전에 차가운 금속 같은 것이 관자놀이에 닿았다.‘총이야.’‘이 사람들, 총까지 가지고 있어.’강서이가 상황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남자는 거칠게 강서이를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머리채를 잡은 채 문 쪽으로 데려갔다.밖의 싸움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남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 여자 구하러 온 거지? 잘 생각하고 움직여. 이 총알은 사람 봐 가면서 나가는 게 아니야.”총구로 강서이의 관자놀이를 세게 누르자, 강서이는 아파서 낮게 신음을 흘렸다.그와 동시에 밖의 움직임이 멈췄다.광식이 욕설을 내뱉었다. “몸은 좋네. 우리들을 혼자 다 상대하다니.”“손 들어!” 남자는 강서이를 인질로 삼아서 상대를 위협했다.상대가 순순히 두 손을 드는 걸 보자, 광식은 분풀이할 기회를 잡았다는 듯 옆에 있던
처음에는 강서이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으로 업무 파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차가 점점 덜컹거리기 시작하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어느새 번화한 지역을 벗어나 있었다. 강서이가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아직 멀었어요?”운전기사는 갈라 장소가 조용한 외곽 저택이라 조금 멀다고 설명했다.강서이는 더 묻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의심이 생겼다.바로 윤성미에게 위치를 보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그런데 윤성미는 오히려 운전기사가 강서이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혹시 따로 차를 불렀느냐고 물었다.그제야 강서이는 자신이 탄 차가 원래 오기로 한 차량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강서이는 곧바로 현재 위치를 윤성미에게 전송했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다른 손으로 차 문 손잡이를 잡았다.현재 속도에서 뛰어내리면 어느 정도 다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차는 산길을 따라 달리고 있어서 속도는 아주 빠르지 않았다.강서이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바로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그래도 몸이 도로에 부딪히는 충격은 컸다. 눈앞이 하얘질 만큼 온몸이 아팠다.운전기사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에서 내리는 기사의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들려 있었다.욕설을 내뱉으며 곧바로 강서이에게 다가왔다. “겁도 없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강서이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발목을 심하게 삐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단순히 조금 접질린 정도가 아니었다.발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몰려와서 다시 주저앉았다.운전기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흰자위를 잔뜩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강서이를 훑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예쁘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괜찮네.”나쁜 마음을 품은 남자는 강서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차가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놔!” 강서이가 온 힘을 다해 버텼다.하지만 건장한 남자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거의 끌려가다시피 다시 차에 실렸다.“놓으라고!”남자는 더 상대할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들어 강서이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