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배준석이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성이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배준석은 운전하면서 통화를 받았다.성이남이 물었다. [형, 어디쯤 오셨어요?]배준석이 대답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가. 너희끼리 놀아.”[아니, 모처럼 K시에 오셨다고, 다들 형 보려고 기다리고 있잖아요.]배준석은 다음에 보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성이남이 계속 자리에 남아 있던 것도 원래는 배준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배준석이 일이 생겨 못 온다니 갑자기 흥이 식어버렸다. 성이남은 친구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인사했다.기사에게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성이남은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문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차량이 눈앞을 지나갔다.성이남은 곧바로 걸음을 멈추면서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 찼다.‘저거 준석 형 차 아닌가?’‘여기까지 와 놓고 일이 생겨 못 온다고 했다고?’더 놀라운 건 배준석의 차 안에 여자가 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친구들 모임까지 포기하게 만든 여자라면 배준석에게 꽤 중요한 사람일 게 분명했다.차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여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만 어딘가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강서이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확신할 수는 없었다.성이남은 곧 자기 착각이라고 결론 내렸다. 배준석이 강서이에게 마음이 갈 리 없었다.배씨 집안은 평범한 집안이 아니었다. 배준석의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조건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서로 비슷한 기반을 가진 집안끼리 만나 시너지를 내거나, 확실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여야 했다.아니면 최소한 집안과 능력 모두 부족함이 없이 맞아야 했다.성이남이 보기에 강서이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배씨 집안이 원하는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그러니 두 사람이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됐다.배준석의 눈이 그렇게 낮을 리도 없었다.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한 성이남은 배준석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떠보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석은 전화도 받지 않고 아예 끊어 버렸다....차 안.강서
반면 맞은편의 한지수는 완전히 물을 만난 고기였다.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가는 솜씨가 끝도 없이 나왔다.“나 전 남친한테 너무 크게 데여서 이제 연애가 무서워.”“나 진짜 오래 연애 안 했거든. 이렇게 설레는 것도 처음이야.”“너랑 말하면 왜 이렇게 긴장되지? 이거 근육이야? 와, 장난 아니다.”“손 진짜 크다. 목울대 움직이는 것도 신기해. 만져 봐도 돼?”“나 술 진짜 약해.”“조금만 고개 숙여서 말해 주면 안 돼? 음악이 너무 커서 잘 안 들려.”한지수 옆에 앉은 야성적인 인상의 남자는 이미 완전히 넘어간 눈치였다.나중에는 강서이 옆의 연하남 타입의 남자에게까지 한마디 했다. “동생, 뭐 해? 누나 좀 챙겨 줘야지.”“누나, 한잔해요.” 남자는 눈치 빠르게 강서이에게 잔을 내밀었다.강서이는 상대도 일하러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분위기를 맞춰 주며 잔을 들었다.그런데 남자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갔다. 강서이의 팔을 자연스럽게 걸더니 그대로 러브샷을 했다.위층.성이남은 친구 생일을 축하하러 와 있었다.룸 안은 남녀가 뒤섞여서 시끌벅적했다.여자 한 명이 성이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지만, 성이남은 전혀 여지를 주지 않고 잘라 냈다.친구가 웃으며 여자를 말렸다. “포기해. 얘 마음에 둔 사람 있어. 그 사람 때문에 철벽 치고 사는 중이야.”여자는 꽤 아쉬운 기색이었다. 성이남 정도의 조건을 가진 남자를 낚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삶은 경제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성이남은 룸이 너무 시끄러워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었다.2층 난간에 기댄 채 손에 든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조명이 호박빛 술 위에서 부서졌다.잔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성이남은 잔을 내리고 아래층의 한 부스에 시선을 고정했다.조금 뒤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강서이 저 여자는 여전히 막장이네.’성이남은 시선을 거뒀다. 더 보고 있는 것조차 불쾌했다.한지수는 노는 걸 좋아해도 선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강서이가 이런 분위
그 말을 듣자 강서이의 머릿속에는 여러 대답이 스쳐 갔다.잘 살라든가, 오래오래 함께하라는 등.조금 독하게 말하자면, 둘이 평생 붙어 살면서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말라든가.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축복을 하든 저주를 하든, 한때 진심을 다했던 자기 자신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그래서 침묵을 택했다.강서이가 떠난 뒤 민도하는 말없이 케이크를 먹었다.반쯤 먹고 나서야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케이크가 네 축하라고 생각할게.”남은 케이크도 버리지 않고 잘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었다.그런 뒤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강서이 대표가 아마 며칠 안에 연락을 드릴 겁니다.”...민도하와 짧게 마주친 일은 강서이의 마음을 조금 흔들어 놓았다.다만 그 흔들림도 오래가지는 않았다.호텔을 나서 차가운 바람을 맞자 남아 있던 감정마저 금세 흩어졌다.예전에는 오기로 길고 깊은 바닥을 버텼다.그 뒤에는 그 시간을 견디며 쌓은 능력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인생은 길다. 강서이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이 많이 있다.그래서 그날 밤 바로 양정원에게 연락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양정원이 머물고 있는 고향을 향해서 비행기를 탔다.양정원도 강서이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지 꽤 놀란 기색이었다.강서이는 아침 식사까지 챙겨 왔다. 음식을 건넬 때 일부러 왼쪽으로 건네는 모습을 양정원은 주의 깊게 바라봤다.조금 의아한 표정이었다.강서이가 바로 설명했다. “전에 뵐 때 왼손을 주로 쓰시는 걸 봤어요.”“강 대표님은 정말 세심하시네요.” 양정원은 강서이의 관찰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모두가 빠르게만 움직이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세심함은 보기 드문 장점이었다.강서이는 세심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노력도 많이 했고 전문성도 확실했다.양정원은 예전에 함께 일하며 그 점들을 직접 확인했다.그때부터 강서이가 비서 업무만 하기에는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이후에 직접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차단을 안 했네?’‘뭐지?’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민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왜?]대답이 너무 빨라 오히려 강서이가 당황할 정도였다.그래도 금세 정신을 가다듬고 답장을 보냈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민도하의 답이 돌아왔다. [내 방식 알잖아. 부탁하려면 대가가 있어야지. 나 자선사업가 아니야.]강서이는 속으로 민도하를 수만 번쯤 난도질하면서 짧게 답했다. [조건 말해.]엉뚱한 요구라도 꺼내는 날에는 바로 캡처해서 노아리에게 보내 버릴 생각이었다.[나 케이크 먹고 싶어.]‘그게 조건이라고?’‘별일이네.’강서이가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이라도 한 듯 민도하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엔 네가 직접 만든 걸로. 지난번처럼 사 온 걸로 속이지 말고.]강서이가 말문이 막혔다.‘그걸 정말 구분해 냈다고?’이번에는 같은 수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강서이는 민도하에게 주소를 묻고, 케이크를 다 만들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민도하는 곧바로 위치를 보내왔다.확인해 보니 지난번과 같은 호텔이었다. 객실 번호까지 그대로였다.아마 노아리가 알면 신경 쓸 테니 일부러 호텔에서 만나려는 모양이었다.강서이는 간단한 케이크 하나를 만들었다.직접 만들라고만 했지, 정성을 쏟아 작품처럼 만들라고 한 건 아니었다.모양만 그럴듯하면 됐다.강서이는 퇴근한 뒤에야 호텔로 갔지만, 민도하는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문을 두드리자마자 문이 열렸다.민도하는 막 샤워를 끝낸 듯 목욕가운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느슨하게 벌어진 옷깃 사이로 단단한 가슴 근육이 언뜻 드러났다.강서이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비키면서 케이크를 내밀었다.민도하는 받지 않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확인해 봐야지. 이번에도 날 속였는지.”요구도 많았다.강서이가 잔뜩 경계하자 민도하가 가볍게 웃었다. “왜 그렇게 긴장해?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그 말만 남기고 안으로 돌아간 민도하는 수건을 집어 젖은 머리를 닦았다.강서이도 굳이 실랑이하
이예수는 화가 난 듯 매니큐어 병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남씨 집안 사람들은 전부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아!”노아리는 기분이 상해 이예수와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뒤 민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이사랑한테서 먼저 연락이 와 있었다.집에 돌아간 뒤 그날 함께 있던 두 사람을 찾아봤느냐는 내용이었다.노아리는 머리가 멎은 듯했다.‘내가 그 일을 어떻게 잊고 있었지?’노아리는 그날 밤 바로 사람을 시켜 이사랑이 말한 두 사람을 찾았지만 한 명만 알아낼 수 있었다.다음 날 곧바로 상대를 만나러 갔다.상대는 말을 더듬고 시선을 피하면서, 처음에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노아리는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쓰고 몇 가지 수단까지 동원한 끝에 입을 열게 했다.“사실 그날 밤에는 저희가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습니다.”노아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뜻이야?”상대가 설명했다. “그날 저희가 약을 써서 그 여자가 정신을 잃게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여자를 방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그만 어떤 남자에게 들켰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를 아는 것 같았고, 저희한테서 바로 데려갔어요.”노아리는 곧바로 캐물었다. “그 남자가 누군지는 알아?”“전에는 몰랐는데 어제 뉴스에서 봤습니다.”상대는 서둘러 전날 봤다는 기사를 찾아 노아리에게 내밀었다. “이 남자입니다. 이 사람이 저희한테서 그 여자를 데려갔어요.”사진 속 인물을 확인한 노아리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그래서 그랬구나.’그동안 풀리지 않던 여러 의문이 한꺼번에 설명되는 듯했다.카페에서 나온 노아리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다.노아리는 이사랑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밤 강서이는 남유환이 데려갔어.]이사랑은 그 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왜? 하필 왜 남유환이야?]이사랑은 남유환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매번 냉정하게 거절당했다.그런데 강서이는 달랐다.위험에 처하자 남유환이 직접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 주기까지 했다.노아리 역시 그
변수린은 강서이를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는 오히려 자신의 아들이 강서이에게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축하연은 B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렸다.원래 강서이의 자리는 협력사 관계자들과 같은 테이블에 배정되어 있었지만, 변수린이 강하게 요구해서 자신의 옆자리로 바꾸었다.그런 배치는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강서이의 신분과 남씨 집안과의 관계를 추측했다.눈치가 빠른 사람은 변수린의 의도를 한눈에 알아보았다.변수린이 강서이를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남유환은 테이블로 돌아왔다가, 서태우 옆의 두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도하랑 아리는?”“아리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도하가 데리고 먼저 갔어. 너한테 말해 달라고 하더라.” 서태우가 두 사람의 대변인처럼 소식을 전했다.남유환은 짧게 알겠다고 한 뒤 더 묻지 않았다.옆에 있던 손규원이 웃으며 말했다. “민 대표님께서는 노아리 본부장님을 정말 귀하게 여기시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그 말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남유환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둘이 원래 사이가 좋잖아요. 곧 약혼도 하고요.”그러다 서태우에게 물었다. “약혼까지 얼마나 남았지?”서태우가 답했다. “한 달.”남유환은 날짜를 듣고 말했다. “꽤 오래 남았네.”“이 정도면 엄청 빠른 거야.” 서태우가 설명했다. “도하 정도 집안이면 약혼 준비 절차가 복잡하잖아. 아리를 빨리 공식적인 약혼자로 알리려고 불필요한 절차를 많이 줄였어.”그래도 남유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너무 멀었어.”가능하다면 두 사람이 내일이라도 당장 약혼했으면 싶었다.서태우는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왜 도하보다 더 안달이야?”남유환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그때 변수린이 남유환을 향해 손짓했다. “유환아, 이리 와서 앉아.”변수린이 일부러 남겨 둔 자리는 강서이의 바로 옆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