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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Author: 낙화
정루아는 물을 한 잔 떠오다가 돌아오는 길에 장옥경의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님, 하실 말씀이 뭔데요?”

장옥경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루아야, 나가서 과일 좀 준비해 오거라.”

즉, 자리를 비우라는 소리였다.

이혼에 관한 이야기일 게 뻔했다.

하지만 정루아는 자리를 뜨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받아쳤다.

“저랑 구태윤 일이라면 아예 꺼내지도 마세요. 이미 외할머니한테 다 말씀드렸고, 할머니도 제 이혼 찬성하셨으니까요.”

장옥경이 흠칫 놀랐다. 이내 의아한 눈빛으로 송문애를 바라보았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다.

함께 보낸 세월이 얼만데, 이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디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

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루아 외할머니 되는 사람이에요. 우리 아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무조건 내 손녀 편에서 지지할 겁니다.”

장옥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아들의 경고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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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4화

    정루아는 물을 한 잔 떠오다가 돌아오는 길에 장옥경의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님, 하실 말씀이 뭔데요?”장옥경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루아야, 나가서 과일 좀 준비해 오거라.”즉, 자리를 비우라는 소리였다.이혼에 관한 이야기일 게 뻔했다.하지만 정루아는 자리를 뜨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받아쳤다.“저랑 구태윤 일이라면 아예 꺼내지도 마세요. 이미 외할머니한테 다 말씀드렸고, 할머니도 제 이혼 찬성하셨으니까요.”장옥경이 흠칫 놀랐다. 이내 의아한 눈빛으로 송문애를 바라보았다.연세가 있으신 어르신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다.함께 보낸 세월이 얼만데, 이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디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난 루아 외할머니 되는 사람이에요. 우리 아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무조건 내 손녀 편에서 지지할 겁니다.”장옥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렇지만 아들의 경고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돈어른, 솔직히 말씀드려 저도 그 얘기하러 왔어요. 두 사람 갈라서는 건 아무리 봐도 너무 아까워요. 애초에 같이 있으려고 얼마나 생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이혼이라니, 그동안 공들인 게 다 도로 아미타불 되지 않겠어요?”송문애가 담담히 받아쳤다.“당시는 서로 사랑해서 그만큼 애를 썼던 거고, 지금은 마음이 식었으니 헤어지는 거겠죠.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게 뭐 있습니까. 세상일이라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지,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장옥경은 할 말이 없었다.정루아는 처음엔 온몸이 팽팽하게 굳어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말을 듣자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온전히 제 편이 되어준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정루아는 즉시 화제를 돌렸다.“어머님,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됐어.”장옥경은 고개를 내저었다.“하준이가 집에 있어서 나도 얼른 들어가 봐야 해.”요즘 들어 함께 지내는 동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3화

    송문애가 거절하자 정석주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그럼 조심히 가십시오.”단지 거실에 서서 인사만 건넸을 뿐, 딱히 배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정루아는 송문애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차에 타자, 송문애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외할머니를 지켜보던 정루아는 왠지 눈가의 주름이 한층 더 깊어진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할머니...”“루아야, 너랑 무관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송문애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냥 잊어버려. 괜히 나서서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정루아는 운전대를 꽉 쥐었다. 이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엄마가 귀걸이 받아내려는 이유 아세요? 자기가 데려온 양녀 주려는 거예요.”송문애가 그녀를 돌아보았다.“그 아이, 아직도 정씨 가문에 있어?”“네.”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송문애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딸 노릇도 엉망으로 하더니, 엄마로서도 자격 미달이구나.”어르신의 평가는 늘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었다.정루아는 입을 다물었다.외할머니를 모시고 식사하러 갔지만, 입맛이 없는지 통 먹질 않았다.송문애는 손녀의 닦달에 못 이겨 조금이나마 숟가락을 들었다.식사를 마치고는 곧장 풍림재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정루아는 객실 문을 잘 닫아준 뒤, 곧장 서재로 향했다.오늘 회사를 빠진 탓에 정호는 불만 가득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오고 있었다.그녀는 서재에서 우선 몇 편의 콘텐츠를 녹음해 전송했다.거실로 다시 나왔을 때는 이미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그리고 객실 앞에 다가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할머니?”“응.”안에서 송문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정루아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사파이어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내 다가가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할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송문애는 상자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사실 난 사파이어 같은 거 별로야. 비취를 훨씬 좋아하지. 그런데 영감탱이는 평생 나한테 이 보석 한 쌍만 딱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2화

    순간, 임혜숙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머니가 정곡을 찌를 줄은 몰랐다는 듯,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에요. 전...”“혜숙아, 넌 내가 낳은 딸인데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것 같아?”송문애의 목소리가 한층 차갑게 얼어붙었다.“넌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동정하면서 엄마인 나를 원망했고, 기어이 그 여자와 가까워졌지. 하지만 넌 잊었구나. 내가 아니었으면 너란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다는 걸.”“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나았다고요!”임혜숙이 얼떨결에 내뱉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정루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어떻게 친어머니의 가슴에 저런 대못을 박을 수 있단 말인가.“외할머니는 엄마를 낳아준 분이에요. 엄마 눈엔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외할아버지 아픔만 보여요? 정작 외할머니 마음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차디찬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 졌을지, 이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외할머니의 심정이 어떨지 헤아려보긴 했냐고요!”정루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어떻게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죠?”신랄한 비난을 쏟아내는 딸을 보자 임혜숙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이내 욱하는 마음에 비아냥거렸다.“너는 뭐 다른 줄 알아? 명색이 내가 네 엄마인데, 자식이 돼서 엄마한테 이따위로 굴어?”정루아는 씁쓸하게 웃었다.“날 진짜 사랑해 주고 아껴 주는 엄마가 있었으면, 나도 이런 상처 따위 안 줬을 거예요.”“너...!”임혜숙은 말문이 막혔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날 친딸로 생각했다면 애초에 소시연을 집에 들여놓지 말았어야죠.”정루아가 딱 잘라 말했다.“그러니까 가식 그만 떨어요.”임혜숙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정루아에게 뭐라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정루아는 송문애를 바라보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지난 일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1화

    임혜숙은 정루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외할머니도 진작 알고 계셨어야 할 일이야.”정루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이제와서 굳이 들춰내서 엄마한테 좋을 게 뭔데요? 엄마는 외할머니 자식도 아니에요?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어떻게 외할머니한테 이럴 수가 있지?연세도 많으신데, 지나간 일은 그냥 묻어두면 어디가 덧나나?하지만 임혜숙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동안 가슴속에만 품고 살았어. 이제야 겨우 말할 기회가 생겼는데, 왜 못 하게 해?”“하...”정루아가 쏘아붙이려는 찰나, 송문애가 그녀의 팔을 슬쩍 끌어당겼다.“루아야, 걱정 마.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온갖 풍파를 다 겪었는데 뭐 그리 유난이니. 나 괜찮다.”“하지만...”정루아는 다시 설득해보려 했다.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을까?그녀는 임혜숙이 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외할머니가 상간녀라니, 개소리였다.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괜히 마음을 쓰시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송문애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쟤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저러는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정루아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는 끼어들 수 없었다.2층, 방 안.임혜숙은 문을 닫은 뒤, 곧장 송문애의 앞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주은영은 저희 아빠랑 만나는 분이셨어요.”시작부터 폭탄선언이었지만, 송문애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임혜숙은 말을 이어갔다.“당시 정략결혼에 묶이기 싫었던 아빠는 은영 이모랑 야반도주하기로 했어요.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 사파이어 귀걸이를 징표로 주려고 했죠. 그런데 집안사람들이 알아채고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아빠를 협박해서 못하게 막았어요. 심지어 은영 이모까지 억지로 시집을 보내버렸죠.”그러다 문득 감정이 북받치는지 서글픈 기색이 역력했다.“넌 주은영이란 사람은 어떻게 알았니?”송문애가 물었다.임혜숙은 흠칫하더니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원래 어머니 귀걸이가 아니라는 게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0화

    정루아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임혜숙은 친정엄마를 대할 때는 한없이 차갑고 거리를 두면서도, 정시연을 위해서라면 싫은 소리도 참아 가며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대체 왜 저토록 정시연을 챙긴단 말인가.정루아는 숨을 깊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전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힘들게 구해서 외할머니 드린 귀걸이인데,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가져가요? 절대 안 돼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너 지금 참견이 심하다?”정루아는 송문애를 돌아보며 말했다.“할머니, 그 귀걸이 엄마한테 주지 마세요. 엄마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정시연 주려고 이러는 거라고요.”“정루아!”임혜숙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정루아를 막아서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그녀는 곧바로 송문애의 눈치를 살폈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모녀가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던 송문애의 눈가에 슬픔이 묻어났다.이내 정루아에게 나직이 말했다.“루아야, 그만 가자.”“네.”정루아는 내심 안도했다.외할머니가 마음이 약해져 임혜숙에게 귀걸이를 넘겨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그녀는 송문애의 팔짱을 끼고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임혜숙은 이를 악물더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그 귀걸이 원래 어머니 것도 아닌...”“그만 좀 하세요!”정루아가 고개를 돌려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외할머니 연세가 몇인데, 아직도 해서는 안 될 말조차 구분을 못 하는 건가?정시연과 그 집안을 위해서라면 임혜숙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송문애는 눈을 지그시 감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임혜숙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쏘아붙였다.“정루아, 나 지금 우리 엄마랑 얘기하는 중이잖아. 네가 뭔데 자꾸 끼어들어서 말을 끊어?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니?”“하...”정루아는 코웃음을 쳤다.“날 키워준 사람이 엄마인데, 제가 버릇이 없으면 그게 누구 탓이겠어요?”“너 정말...!”임혜숙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이때, 송문애가 정루아의 손을 찰싹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49화

    딸이 열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둘의 사이는 무척 각별했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임혜숙은 점점 담을 쌓기 시작했다.시간이 흐르며 송문애는 그저 딸이 사춘기를 맞아 반항하는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로 자신과 거리를 더욱 멀리하고, 심지어 연고도 없는 타지로 시집을 가 버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딸은 애초에 자신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결혼 생활 수십 년 동안 안부 전화 한 통 걸어오는 법이 없었고, 친정 문턱을 넘는 일은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다.그랬던 딸이 이번에 먼저 연락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문득 임혜숙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하지만 저택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감도는 낯선 거리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던 기대는 차갑게 식어버렸다.갑작스러운 연락 뒤에는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터였다.그렇기에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도, 효녀 시늉하는 딸의 연극에 맞춰 줄 마음도 사라졌다.“어머니, 서운하게 진짜 왜 그러세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전 정말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에요.”송문애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점점 옅어졌다.“알았어. 그럼 점심은 먹고 갈게.”임혜숙은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어찌 됐든 머물다 가겠다고 하니 다행이었다.이내 물었다.“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주방에 바로 준비하라고 할게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루아가 기가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임혜숙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명색이 딸이라는 사람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조차 몰라 대놓고 물어보았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했다.송문애가 대답했다.“아무거나 다 괜찮다. 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어.”임혜숙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을 짓누르던 찜찜함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정루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송문애와 임혜숙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웠다.자신이 외할머니를 대할 때의 살가움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대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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