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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Author: 낙화
이른 아침.

방문을 나선 정루아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그런 손녀를 본 송문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루아야, 얼굴이 왜 그래? 잠을 설쳤어?”

정루아는 다가가 외할머니를 와락 껴안고는 어리광 부리듯 콧소리를 냈다.

“밤새 악몽을 꿨거든요.”

구태윤에게 온밤 시달렸으니, 악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럼 눈이라도 좀 더 붙여.”

“싫어요.”

정루아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할머니 오늘 가시잖아요. 공항까지 배웅해 드릴 거예요.”

송문애가 말했다.

“그럼 할머니가 아침상 차려줄게.”

정루아는 마다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

씻고 나온 그녀는 화장으로 피곤한 얼굴을 감쪽같이 가렸다.

잠시 후, 송문애가 가스레인지 앞에 손을 짚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할머니, 나 예뻐요?”

목소리를 듣고서야 송문애는 고개를 돌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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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8화

    “할머니!”찢어질 듯한 정루아의 비명에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그녀가 급히 송문애를 부축했다. 중심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해 둘 다 바닥에 고꾸라질 뻔한 찰나, 구태윤이 잽싸게 붙잡아주었다.그의 얼굴 역시 순식간에 굳어졌다.“일단 외할머니부터 병원에 모셔.”그리고 곧바로 송문애를 번쩍 안아 들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내 차에 올라타더니 풀 액셀을 밟고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가는 내내 정루아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외할머니의 손을 꼭 맞잡은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다 문득 고개를 홱 돌려 구태윤을 노려보며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추궁했다.“당신이 할머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핸들을 쥔 구태윤의 손등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험악하게 굳어진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자신을 향해 그런 끔찍한 의심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정루아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외할머니가 왜 갑자기 쓰러진단 말인가.극한의 혼란과 공포 속에서 그녀가 원망할 대상은 지금 눈앞의 이 남자밖에 없었다.하지만 묵묵부답하는 그를 향해 더 이상 쏘아붙이진 않았다.지금 따져봤자 무의미하니까.그저 간절히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외할머니가 제발 무사하길 바란다고.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송문애는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마침내 나온 검사 결과는 청천벽력 같았다. 병명은 뇌종양이었다.종양의 위치가 워낙 위험한 부위라 이미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수술 위험성은 상상을 초월했다.자칫하다가는 수술대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다리가 풀린 정루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구태윤이 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뚝을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그가 의사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전 세계적으로 가장 실력 있는 뇌종양 전문가를 모셔 온다면 생존 확률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7화

    이른 아침.방문을 나선 정루아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그런 손녀를 본 송문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루아야, 얼굴이 왜 그래? 잠을 설쳤어?”정루아는 다가가 외할머니를 와락 껴안고는 어리광 부리듯 콧소리를 냈다.“밤새 악몽을 꿨거든요.”구태윤에게 온밤 시달렸으니, 악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그럼 눈이라도 좀 더 붙여.”“싫어요.”정루아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할머니 오늘 가시잖아요. 공항까지 배웅해 드릴 거예요.”송문애가 말했다.“그럼 할머니가 아침상 차려줄게.”정루아는 마다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씻고 나온 그녀는 화장으로 피곤한 얼굴을 감쪽같이 가렸다.잠시 후, 송문애가 가스레인지 앞에 손을 짚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할머니, 나 예뻐요?”목소리를 듣고서야 송문애는 고개를 돌려 손녀를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었다.“그럼! 예쁘고말고.”정루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가 송문애에게 찰싹 달라붙어 한껏 어리광을 부렸다.송문애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이내 넌지시 말했다.“자, 이제 밥 먹자.”“네.”아침상이 식탁 위에 오르자, 정루아는 한 숟가락 크게 떠먹으며 남다른 만족감을 드러냈다.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아쉬움도 감출 수 없었다.외할머니가 이대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송문애는 그런 손녀를 인자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마치 평생을 봐도 모자란다는 듯, 눈에 담고 또 담으려는 것처럼.열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루아는 외할머니댁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가 유독 살갑지 못했던 탓이다.그러다 정시연을 입양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억울하게 모함당할 때마다 서러움에 북받친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로 외할머니 집을 찾곤 했다.기가 막히는 건 그다음이었다.그녀가 외할머니 집에서 열흘이 넘도록 머문 뒤에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6화

    정루아는 말문이 막혔다.외할머니는 벌써 몇 걸음은 앞서 나갔다.구태윤과 아직 이혼 도장도 찍기 전이지 않은가.게다가 연애 같은 건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추호도 없었다.한 번의 결혼 생활에 기를 다 빨린 터라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감정을 쏟아부을 여력조차 사치인데, 새로운 시작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났다.집으로 돌아와 외할머니와 함께 TV를 좀 보다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한밤중,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요란한 벨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비몽사몽 한 정루아는 발신자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루아야.”수화기 너머로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에는 끈질긴 집착과 애절함이 묻어났다.정루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미친놈.”짤막한 욕설과 함께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잠시 후, 전화가 다시 울려 퍼졌다.단잠을 방해받아 짜증이 치솟은 정루아는 아예 수신 거부를 해버렸다.청야 라운지.어두컴컴한 룸 안,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들이 나뒹굴었다.장유성은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는 구태윤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했다.이내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태윤아,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집에 들어가지?”구태윤은 화면만 응시했다.“연결이 되지 않아...”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귓가를 맴돌자, 천천히 눈을 감았다.도드라진 목젖이 위아래로 꿀렁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 비친 그의 낯빛은 한층 더 짙은 그늘에 휩싸여 있었다.집에 가자고?그에게 이제 돌아갈 ‘집’ 따위는 없었다.구태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유성은 이러다간 정말 사달이 나겠다 싶어 조심스레 말렸다.“태윤아, 이미 마실 만큼 마셨잖아.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자.”“혹시...”구태윤은 그를 바라보며 느릿한 말투로 물었다.“내가 허도준처럼 위경련이 생길 때까지 마시면, 루아가 나를 보러 와줄까?”장유성은 묵묵부답했다.‘어림없지. 솔직히 말해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5화

    “할머니, 저 돈 있어요.”정루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할머니가 그냥 가지고 계시다 쓰셔야죠.”“너 이혼하고 나면 돈 쓸데가 어디 한두 군데인 줄 아니? 주머니라도 두둑해야 든든한 법이다. 토 달지 말고 받아.”송문애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계속 안 받겠다고 고집 피울래? 그럼 내가 멀리서 혼자 늙어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 그 돈이 어디로 새 나갈지 난 책임 못 진다.”“아니, 진짜..!”정루아는 발만 동동 굴렀다.“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송문애는 웃음을 터뜨렸다.“어차피 다 내 손녀 줄 생각이었어. 루아야, 사양하지 말고 그냥 받아. 일찌감치 네 이름으로 해놔야 할머니도 시름이 놓이지.”결국 정루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낳아준 부모라는 사람들은 입양 딸을 감싼답시고 그녀의 카드를 정지시켜 버렸다.결국 돈 한 푼 얻어내기 위해서 온갖 비참한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하지만 외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오직 지금 손녀의 처지만 걱정하며 전 재산을 내어주려 했다.정루아의 마음이 훈훈해졌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서러움이 조금씩 녹아내렸다.비로소 수긍하는 정루아를 보자, 송문애는 큰 짐이라도 덜어낸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그 덕분인지 저녁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음식을 비웠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단지 내 산책로로 나섰다.그런데 우연히 배진욱과 마주쳤다.그는 하얀 사모예드 한 마리를 끌고 공원을 산책하는 참이었다.심플한 반팔에 편안한 바지는 한층 더 캐주얼한 분위기를 풍겼다.“루아 씨, 이분은 누구셔?”정루아는 웃으며 소개를 이어갔다.“우리 외할머니야.”“할머니, 이쪽은 제 친구 배진욱이에요.”“어르신, 안녕하십니까.”배진욱은 자세를 곧추세우며 한결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나?”배진욱이 머뭇거렸다. 귀국한 뒤로 어른들이 나이를 물을 때면 대개 짝을 소개해 주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그의 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4화

    정루아는 물을 한 잔 떠오다가 돌아오는 길에 장옥경의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님, 하실 말씀이 뭔데요?”장옥경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루아야, 나가서 과일 좀 준비해 오거라.”즉, 자리를 비우라는 소리였다.이혼에 관한 이야기일 게 뻔했다.하지만 정루아는 자리를 뜨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받아쳤다.“저랑 구태윤 일이라면 아예 꺼내지도 마세요. 이미 외할머니한테 다 말씀드렸고, 할머니도 제 이혼 찬성하셨으니까요.”장옥경이 흠칫 놀랐다. 이내 의아한 눈빛으로 송문애를 바라보았다.연세가 있으신 어르신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다.함께 보낸 세월이 얼만데, 이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디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난 루아 외할머니 되는 사람이에요. 우리 아이가 무슨 결정을 하든 무조건 내 손녀 편에서 지지할 겁니다.”장옥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렇지만 아들의 경고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돈어른, 솔직히 말씀드려 저도 그 얘기하러 왔어요. 두 사람 갈라서는 건 아무리 봐도 너무 아까워요. 애초에 같이 있으려고 얼마나 생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이혼이라니, 그동안 공들인 게 다 도로 아미타불 되지 않겠어요?”송문애가 담담히 받아쳤다.“당시는 서로 사랑해서 그만큼 애를 썼던 거고, 지금은 마음이 식었으니 헤어지는 거겠죠.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게 뭐 있습니까. 세상일이라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지,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장옥경은 할 말이 없었다.정루아는 처음엔 온몸이 팽팽하게 굳어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말을 듣자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온전히 제 편이 되어준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정루아는 즉시 화제를 돌렸다.“어머님,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됐어.”장옥경은 고개를 내저었다.“하준이가 집에 있어서 나도 얼른 들어가 봐야 해.”요즘 들어 함께 지내는 동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3화

    송문애가 거절하자 정석주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그럼 조심히 가십시오.”단지 거실에 서서 인사만 건넸을 뿐, 딱히 배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정루아는 송문애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차에 타자, 송문애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외할머니를 지켜보던 정루아는 왠지 눈가의 주름이 한층 더 깊어진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할머니...”“루아야, 너랑 무관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송문애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냥 잊어버려. 괜히 나서서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정루아는 운전대를 꽉 쥐었다. 이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엄마가 귀걸이 받아내려는 이유 아세요? 자기가 데려온 양녀 주려는 거예요.”송문애가 그녀를 돌아보았다.“그 아이, 아직도 정씨 가문에 있어?”“네.”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송문애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딸 노릇도 엉망으로 하더니, 엄마로서도 자격 미달이구나.”어르신의 평가는 늘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었다.정루아는 입을 다물었다.외할머니를 모시고 식사하러 갔지만, 입맛이 없는지 통 먹질 않았다.송문애는 손녀의 닦달에 못 이겨 조금이나마 숟가락을 들었다.식사를 마치고는 곧장 풍림재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정루아는 객실 문을 잘 닫아준 뒤, 곧장 서재로 향했다.오늘 회사를 빠진 탓에 정호는 불만 가득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오고 있었다.그녀는 서재에서 우선 몇 편의 콘텐츠를 녹음해 전송했다.거실로 다시 나왔을 때는 이미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그리고 객실 앞에 다가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할머니?”“응.”안에서 송문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정루아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사파이어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내 다가가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할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송문애는 상자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사실 난 사파이어 같은 거 별로야. 비취를 훨씬 좋아하지. 그런데 영감탱이는 평생 나한테 이 보석 한 쌍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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