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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Author: 낙화
구태윤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본가에서 온 전화야.”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노부인께서 방금 쓰러지셨어요!”

구태윤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다.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정루아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이 거짓말쟁이!”

“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계신대.”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가야 해.”

정루아는 고개를 돌렸다.

“난 안 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정루아.”

그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더해졌다.

“아직 우린 이혼 안 했어. 가봐야 해.”

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정루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태윤은 그대로 시동을 걸고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복도, 응급실 앞에는 구씨 본가의 집사가 서 있었다.

“도련님, 오셨군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정원에서 산책하시다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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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24화

    장옥경은 저택 밖으로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어느새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런 짓만 안 벌였어도 태윤이가 어머님을 해외로 보낼 일은 없었어요. 연세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이렇게 미련을 못 버리세요?”박정란은 콧방귀를 뀌며 쏘아붙였다.“그럼 그냥 손 털고 앉아서, 정루아 그 년이 구씨 가문을 풍비박산 내는 꼴을 구경만 하라고? 저런 화근을 계속 남겨두면, 나중엔 우리 집안이 아주 쫄딱 망하고 말 거다!”“하지만 끝까지 이혼 안 하겠다고 버티는 건 태윤이에요.”장옥경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정루아는 이미 소장까지 접수했는데, 태윤이가 이혼 안 하겠대요. 뭐 별 수 있나요?”박정란이 코웃음을 쳤다.“저년이 무슨 수작을 부려서 태윤이를 홀려놨나 보지.”장옥경은 할 말을 잃었다.다만 중요한 얘기는 아직 꺼내지도 못했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어머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지금 태윤이는 구명 그룹 대표예요. 저한테 남은 자식이라곤 태윤이 하나뿐이고, 어머님께도 손주는 걔밖에 없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입에 담지도 마세요.”박정란은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어머님도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장옥경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뭔데 그래?”박정란이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장옥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나라고 정루아가 구씨 가문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죠. 태윤이랑 정시연을 이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태윤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할 테고, 정루아도 자연스럽게 이 집을 나가게 되겠죠.”“안 돼!”박정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딱 잘라 거절했다.“너 미쳤니? 시동생이랑 형수가 눈이 맞다니, 집안을 아주 그냥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할 작정이야? 이게 대체 무슨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야? 당장 그만둬, 난 절대 반대야!”“그럼 어머님께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으세요?”장옥경의 목소리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23화

    별장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도우미들의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장옥경의 손에 앨범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정시연과 구하준의 모습은 거실에 보이지 않았다.안으로 들어선 정루아의 미간이 그제야 살짝 펴졌다.장옥경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태윤이랑 얘기는 다 끝났니?”“네.”정루아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고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하지만 뜻밖에도 장옥경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이리 와, 여기 앉으렴.”정루아는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자리를 옮겨 앉았다.“이것 좀 봐. 예전의 승태야.”장옥경이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태윤이보다 딱 한 살 많은데, 둘이 정말 많이 닮지 않았어?”사진 속에는 풋풋하고 소년미가 물씬 풍기는 두 청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남자는 다름 아닌 구승태였다.그 옆에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카메라를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구승태와 어깨동무를 한 구태윤이 보였다.두 사람은 이목구비도, 키도 쏙 빼닮았다.“승태는 성격이 유순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통솔력이 있었어. 그래서 구명 그룹을 이끌 후계자로 키웠고, 실제로도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지...”장옥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사진을 바라보던 정루아는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러웠다.장옥경이 한숨을 내쉬었다.“하필 결혼하고 나서 이런 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 눈이 썩었지, 골라도 어떻게 저런 여자를 골라. 정시연이 애만 안 가졌어도 이 결혼은 끝까지 반대했을 거야. 아쉽게도 아이는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다행히 결혼하고 나서는 승태가 가정에 충실했고, 정시연도 얌전히 잘 지냈어. 그런데 어쩌다 이런 비극이 생겨 가지고...”정루아는 시선을 거두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사모님, 지나간 일들은 다 잊으세요. 괜히 떠올려봤자 본인만 속상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22화

    장옥경은 집 안으로 들어섰고, 정원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구태윤의 날카로운 얼굴에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정루아의 추궁에도 담담하게 물을 뿐이었다.“어디까지 알게 된 거지?”정루아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이 판국에 또 나를 떠보겠다? 미래 마을 사람들까지 매수했더라? 당신 형수를 위해서라면 정말 못 하는 짓이 없네.”맑고 투명한 눈동자에는 조롱이 가득했다.“내가 전에도 말했지? 그 여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차라리 이혼하자고. 당신들 허락해준다니까? 굳이 숨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잖아.”구태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방금 네 입으로도 그랬잖아. 그 사람은 내 형수라고.”칠흑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고, 목소리는 한층 가라앉았다.“루아야, 형네 부부 사이좋은 거 뻔히 알잖아. 형이 너한테도 잘해줬고. 근데 네가 지금 형수님을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형 입장이 뭐가 되냐?”“속이 제일 시커먼 사람은 바로 당신이거든?”정루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금슬이 그렇게 좋다는 걸 알면서 형수한테 흑심을 품은 건 당신이잖아. 정작 잘못은 혼자 다 하고 있으면서. 난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 대체 뭐가 문제인데?”“정루아!”구태윤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랑 형수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글쎄,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더라도 마음은 모르지. 당신이 무슨 생각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결백을 증명하려고 심장을 꺼내 보여주기라도 할 거야?”정루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조소 섞인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곧이어 시선은 어깨를 향했다. 당시 그녀를 구하려다 다친 부위였다.문득 머릿속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며 대신 총을 막아주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지진 때 일어났던 일에 관해 입단속만 시키지 않았더라도,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뻔했다.막상 툭 까놓고 나니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그렇다면 애초에 자신과 결혼했던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단지 정시연에게 다가가기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21화

    앞에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인상, 구태윤과 묘하게 닮은 눈매,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생기가 가득했다.정루아는 품에 안고 있던 꽃을 내려놓고 묵념한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오빠, 저 왔어요.”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그중에서도 유독 끈질긴 눈길이 하나 있었다.장옥경이 정루아의 손을 꼭 붙잡았다.울먹이는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루아야, 오늘 그냥 가지 말고 집에 와서 밥 먹어.”정루아는 눈을 내리깔았을 뿐,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한참 동안 산소에 머물던 그들은 이윽고 발걸음을 돌렸다.기사가 대기하고 있었고, 장옥경은 정루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곧바로 차에 올랐다.구태윤이 따라 타려 하자 그녀가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루아랑 할 말 있으니까 넌 뒤에 차 타.”차량은 총 두 대 준비되어 있었고, 정시연은 이미 두 번째 차에 올라탄 뒤였다.구태윤의 잘생긴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칠흑 같은 눈동자가 정루아를 향했다. 그녀가 도착한 이후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정작 당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공기 취급했다.구태윤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젖히며 싸늘하게 말했다.“제가 못 들을 내용일라도 있습니까?”장옥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여자들끼리 하는 얘기까지 네가 들으시겠다?”구태윤이 대답했다.“네.”장옥경은 할 말을 잃었다.이미 차에 올라탄 마당이라, 운전기사는 곧장 시동을 걸고 본가로 향했다.정루아는 옆에 앉은 장옥경을 바라보며 물었다.“하준이는 왜 안 데리고 왔어요?”“아직 너무 어려.”대답은 구태윤이 했다.“조금 더 크면 그때 알려줄 거야.”정루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장옥경이 구태윤을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다.“거 봐, 루아도 너랑 말 섞기 싫어하잖니. 대체 왜 꾸역꾸역 올라탄 거야? 무시당해도 싸.”“엄마, 전에 저랑 약속하신 거 잊었어요?”구태윤이 나지막이 내뱉었다.장옥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20화

    김철웅의 표정이 한층 가라앉았다.“미래 마을에 사람을 보내서 당시 지진을 겪었던 주민들을 수소문해 봤거든요. 처음엔 다들 입을 닫고 모른 척하더군요. 심지어 루아 씨를 기억조차 못 한다고 잡아떼기도 했어요. 하지만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약간의 손을 좀 썼더니, 어떤 사내 입에서 결국 진실이 튀어나왔어요.”“지진이 났을 때 학생들이 전부 미래 초등학교 안에 있었고, 그자가 바로 학교 경비였다지 뭡니까. 다들 살겠다고 밖으로 도망치는데 루아 씨만 혼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답니다. 몇 번이나 불렀지만 돌아보지도 않았대요. 그렇게 폐허를 뚫고 잠시 뒤에 어떤 사내아이를 업고 나왔다더군요. 그런데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네요. 다행히 그쯤에 지진이 멈추고 구조하러 뛰어 들어온 사람들 덕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정루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서류를 꽉 움켜쥔 채 물었다.“혹시 내가 그때 구한 사람이 구태윤이 맞다고 하던가요?”김철웅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억은 딱 거기까지라더군요. 대신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더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경비더러 이 일에 대해선 절대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지 뭡니까. 그리고 이를 지시한 사람이 바로 구태윤이었어요.”정루아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단숨에 구겨버렸다.구태윤이 그 사실을 은폐하게 시켰다니?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설마 정시연의 거짓말에 장단이라도 맞춰 주겠다는 건가?입만 열면 그를 구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에 세뇌라도 당했나?심지어 정시연을 감싸기 위해 직접 나서서 입막음까지 했다.정루아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올랐다.분명 그녀가 구태윤을 구했는데 말이다.하지만 결국은 정시연의 편을 들어주었다.최근에 보여준 살신성의는 생각할수록 가소롭기만 했다.이제는 그가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어차피 구태윤의 마음이 정시연에게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기꺼이 그 뜻을 이뤄줄 참이었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9화

    “멋진데?”허도준이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이제 정시연 쪽은 신경 쓸 필요 없겠어. 그럼 남은 건 이혼 문제 하나뿐인가?”“응.”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이혼만 해결하면 정말로 완벽한 자유야.”허도준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읊조렸다.“그 자유, 내가 찾아주도록 도와줄게.”정루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화면을 확인하자 김철웅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루아 씨, 정시연 부모님 신원에 대해 단서가 좀 잡혔습니다. 직접 만나서 말씀드릴까요?]그와 동시에 또 다른 낯선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더 도착했다.[허도준 조심해. 겉보기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니니까.]정루아는 나중에 온 메시지를 지워버린 뒤, 김철웅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곧이어 허도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알았어, 나도 이만 가려고.”허도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병원 뒷마당을 빠져나왔고, 허도준은 차를 몰고 먼저 떠났다.그 사이에 정루아는 김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철웅은 때마침 근처에 차를 대고 기다리던 참이었다.정루아는 그쪽으로 걸어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김철웅이 자료 한 부를 건네며 말했다.“루아 씨, 일단 이거부터 살펴보시죠.”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물고 혹시라도 다가오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경계했다.정루아는 곧바로 서류를 펼쳐 내용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정시연의 어머니 이름은 주한나, 아버지는 소형민이었다.서류 봉투에는 주한나와 임혜숙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도 들어 있었다.풋풋한 두 여성이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아주 다정해 보였다.주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성에서 자랐고, 소형민과 소꿉친구였다.유치원부터 같은 학교에 다니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나중에는 함께 해외로 떠났다.자료는 단출했다.사진 한 장으로 주한나와 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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