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7화

Author: 낙화
구태윤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본가에서 온 전화야.”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노부인께서 방금 쓰러지셨어요!”

구태윤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다.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정루아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이 거짓말쟁이!”

“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계신대.”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가야 해.”

정루아는 고개를 돌렸다.

“난 안 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정루아.”

그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더해졌다.

“아직 우린 이혼 안 했어. 가봐야 해.”

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정루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태윤은 그대로 시동을 걸고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복도, 응급실 앞에는 구씨 본가의 집사가 서 있었다.

“도련님, 오셨군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정원에서 산책하시다 갑자기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2화

    구태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분명 윌리엄 박사와 머리를 맞대고 짜 둔 수술 일정이었다. 그런데 자기 멋대로 계획을 뒤엎었다.그가 낮은 목소리로 추궁했다.“누가 당신을 매수한 거지?”윌리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예리한 직감이었다.그렇다고 발설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결국 딱 잘라 말했다.“지금 당장 수술실 들어가 봐야 합니다. 다른 문의는 수술 끝나고 하시죠.”전화가 뚝 끊겼다.구태윤은 칠흑 같은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바로 한민혁을 호출했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한민혁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물었다.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요 며칠 누가 윌리엄에게 접근했는지 알아봐.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한민혁이 대답했다.“네!”속으로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즉시 실행에 옮겼다.구태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수술실 앞 복도.정루아는 벤치에서 초조한 눈으로 수술실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구태윤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루아야,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정루아는 척추를 꼿꼿이 세우며 그를 힐긋 쳐다보았다.“무슨 소리야?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내가 윌리엄한테 준 돈이 얼만데. 그 양반이 내 뒤통수를 칠 리가 없거든.”구태윤의 짙은 눈동자에 의심이 서렸다.“말해봐, 누가 너를 도와줬지?”혼란스러운 건 정루아도 매한가지였다.순간, 허도준이 했던 말이 뇌리에 번뜩 스쳐 지나갔다.‘설마 진짜 도준이가? 하지만 어떻게...?’구태윤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수술을 앞당기게 하다니.정루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쌀쌀맞게 내뱉었다.“나도 몰라.”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당연했다.더 이상 구태윤의 협박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었고, 외할머니도 무사히 수술을 마쳤으니 타협할 리 만무했다.게다가, 소송을 취하할 생각 따위 애초에 없었다.구태윤은 입을 다물고 그녀의 곁에 앉아 틈틈이 휴대폰으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1화

    정루아는 창밖의 시커먼 밤하늘을 멍하니 응시했다. 마치 자신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어 올라오지 못하는 기분이었다.“나도 모르겠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질척거릴까? 내가 자길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녕 눈에 안 보이나?”허도준이 코웃음을 쳤다.“그냥 집착일 뿐이야. 한때는 사랑하다가 왜 마음이 떠났는지, 그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잖아. 늘 네가 떼쓰고 억지 부린다고 혼자 착각하는 꼴이라니,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정루아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봐야 아무 소용 없어. 너까지 이혼 소송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결국 도루묵이 돼버렸네. 정말 미안하다, 도준아.”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내 허도준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직 소송 취하하지 마. 딱 이틀만 기다려줘.”정루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내가 어떻게든 방법 찾아볼게.”잔잔하던 심장박동이 다시금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정루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너... 지금 진심이야?”배성 그룹 1인자, 배진욱조차 쉽사리 구하지 못했던 의사를 허도준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하지만 자세한 설명 따위는 생략했다.“일단은 알아보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연락할게.”“그래.”정루아가 대답했다.이미 벼랑 끝까지 몰릴 대로 몰린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 있겠는가.다른 길 따윈 없었다. 그러니 매달려 보는 수밖에.허도준이 급히 전화를 끊었다.정루아는 한참 동안 창가에 서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며칠 밤낮을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이제 외할머니가 곧 수술받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간이침대에 웅크려 누운 그녀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다가와 곁에 앉더니 그녀의 어깨 위에 외투를 덮어주었다.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체향에 역겨움이 밀려왔다.번뜩 눈을 뜨자, 구태윤이 침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0화

    안경 렌즈 너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앞을 가로막고 악을 쓰는 모녀를 바라보던 배진욱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안 갈 테니까 진정해요.”결국, 그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루아 씨, 미안해. 내 능력으로는 의사 데려오는 게 한계가 있네.”배진욱의 목소리에는 짙은 죄책감이 묻어났다.정루아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던 마지막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버렸다.그녀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애써 냉정을 되찾고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내가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배진욱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전화가 뚝 끊겼다.그는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가늘게 떨리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자, 이유 모를 초조함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정루아는 병원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분명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인데도 온몸이 시려 왔다. 마치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그때, 묵직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체취에 눈을 질끈 감았다.귓가로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루아야, 생각은 끝났어?”정루아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눈빛은 소름 끼칠 정도로 낯설었다.“구태윤, 너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앞으로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구태윤은 집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난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해.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거.”“...하.”정루아는 냉소를 흘렸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비참함이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망설일 시간 따위 없었다. 외할머니의 남은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결국 갈라진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그래, 소송 취하할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단한 가슴팍에 안겼다.다부진 팔뚝이 빈틈없이 에워쌌고, 수컷의 향기가 숨 막힐 듯 옥죄어 왔다.정루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서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구태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9화

    정루아는 입술을 겨우 달싹였다.“지금 진욱 씨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배진욱은 그녀에게 무언가 끔찍한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이내 차분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달랬다.“일단 진정해. 무슨 일인데? 차근차근 얘기해 봐.”정루아는 몇 번이고 깊은숨을 몰아쉬며 감정을 추스른 뒤, 송문애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일을 털어놓았다.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배진욱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방법 찾아볼게.”정루아의 눈동자에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어렸다.“응, 부탁할게.”오죽 급했으면 그를 떠올렸을까.배진욱은 은혜를 갚겠다고 누누이 말했었다. 그땐 흘려듣고 대충 넘겼지만 지금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가장 중요한 건 외할머니의 안위였으니까.응급 수술과 긴급 처치가 끝난 뒤, 송문애의 상태는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정루아는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병실로 돌아왔다.외할머니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침대 곁에 조용히 앉아 거친 손을 꼭 감싸 쥐고는, 이마를 손바닥 위에 갖다 대었다.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삼켰다.투박한 손은 여전히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하지만 평소처럼 다정하게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지도,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지도 않았다.왈칵 치밀어 오르는 설움에 정루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배진욱은 즉시 유명한 전문의를 수소문해 연락을 취했고, 전용기를 띄워 이곳으로 모셔 왔다.비밀리에 진행된 일이 아니었기에 배씨 가문 사람들도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그들은 배진욱이 명의를 초청한 이유가 당연히 수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하지만 웬 유부녀의 외할머니를 치료하려는 걸 줄이야.배다인이 가장 먼저 나서서 반대했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공항에서 바로 전문의를 픽업해 본가로 데려오게 했다.“아빠가 누워 지낸 게 몇 년인데,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모셔 왔으면 아빠 치료부터 먼저 해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8화

    “할머니!”찢어질 듯한 정루아의 비명에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그녀가 급히 송문애를 부축했다. 중심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해 둘 다 바닥에 고꾸라질 뻔한 찰나, 구태윤이 잽싸게 붙잡아주었다.그의 얼굴 역시 순식간에 굳어졌다.“일단 외할머니부터 병원에 모셔.”그리고 곧바로 송문애를 번쩍 안아 들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내 차에 올라타더니 풀 액셀을 밟고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가는 내내 정루아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외할머니의 손을 꼭 맞잡은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다 문득 고개를 홱 돌려 구태윤을 노려보며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추궁했다.“당신이 할머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핸들을 쥔 구태윤의 손등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험악하게 굳어진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자신을 향해 그런 끔찍한 의심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정루아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외할머니가 왜 갑자기 쓰러진단 말인가.극한의 혼란과 공포 속에서 그녀가 원망할 대상은 지금 눈앞의 이 남자밖에 없었다.하지만 묵묵부답하는 그를 향해 더 이상 쏘아붙이진 않았다.지금 따져봤자 무의미하니까.그저 간절히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외할머니가 제발 무사하길 바란다고.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송문애는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마침내 나온 검사 결과는 청천벽력 같았다. 병명은 뇌종양이었다.종양의 위치가 워낙 위험한 부위라 이미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수술 위험성은 상상을 초월했다.자칫하다가는 수술대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다리가 풀린 정루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구태윤이 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뚝을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그가 의사를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전 세계적으로 가장 실력 있는 뇌종양 전문가를 모셔 온다면 생존 확률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57화

    이른 아침.방문을 나선 정루아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그런 손녀를 본 송문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루아야, 얼굴이 왜 그래? 잠을 설쳤어?”정루아는 다가가 외할머니를 와락 껴안고는 어리광 부리듯 콧소리를 냈다.“밤새 악몽을 꿨거든요.”구태윤에게 온밤 시달렸으니, 악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그럼 눈이라도 좀 더 붙여.”“싫어요.”정루아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할머니 오늘 가시잖아요. 공항까지 배웅해 드릴 거예요.”송문애가 말했다.“그럼 할머니가 아침상 차려줄게.”정루아는 마다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씻고 나온 그녀는 화장으로 피곤한 얼굴을 감쪽같이 가렸다.잠시 후, 송문애가 가스레인지 앞에 손을 짚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할머니, 나 예뻐요?”목소리를 듣고서야 송문애는 고개를 돌려 손녀를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었다.“그럼! 예쁘고말고.”정루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가 송문애에게 찰싹 달라붙어 한껏 어리광을 부렸다.송문애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이내 넌지시 말했다.“자, 이제 밥 먹자.”“네.”아침상이 식탁 위에 오르자, 정루아는 한 숟가락 크게 떠먹으며 남다른 만족감을 드러냈다.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아쉬움도 감출 수 없었다.외할머니가 이대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송문애는 그런 손녀를 인자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마치 평생을 봐도 모자란다는 듯, 눈에 담고 또 담으려는 것처럼.열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루아는 외할머니댁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가 유독 살갑지 못했던 탓이다.그러다 정시연을 입양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억울하게 모함당할 때마다 서러움에 북받친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로 외할머니 집을 찾곤 했다.기가 막히는 건 그다음이었다.그녀가 외할머니 집에서 열흘이 넘도록 머문 뒤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