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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뱉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그 날카로운 눈매를 크게 휘어 웃었다.
그 모습은 여전히 강아지 같았다.
“나는 진짜 보고 싶었는데.”
그 말에 몸이 바짝 굳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애초에 우리가 이렇게 살갑게 인사를 할 사이가 맞나?’ 였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건지 자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를 보며 웃는 저 얼굴은 진짜인가?
“왜, 나보니까 엿같아?”
“… 그런 거….”
“나는 너 보니까, 진짜 좋은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확실했다.
“진심인데.”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와 장기를 뒤흔들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 진짜로….”
“그, 그만.”
“…… 율아.”
“아, 알았으니까. 그, 그만….”
“언제는 내 목소리가 좋다며.”
그래.
사실 지금도 듣기엔 좋다.
하지만 아직은 듣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
뒤늦게 나타난 영웅이 덕분에 상황은 어찌저찌 수습됐지만,
여전히 속은 뒤틀리고 머리를 어지러웠으며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누나!”
영웅이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집 앞이었다. 두 눈에는 못마땅한 표정을 한 도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을 보며 애써 외면한 채 방으로 들어와 한참을 심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벗은 웃옷에서 종이가 떨어졌다. 종이를 확인하자 알 수 없는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숫자가 춤을 추듯 일렁거렸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사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다.
그렇지 않은가?
시간도 오래 지났고, 마지막에 싸우기는 했지만 내게는 덧없이 소중한 첫 친구였다. 당연히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와, 밥 먹어.”
혼자만의 굴에 들어가기 직전, 나의 정신을 깨운 것은 도진이의 목소리였다. 멍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나서자, 요즘 요리하는 취미가 생긴 도진이는 깔끔하게 플레이팅한 음식을 보며 만족하고 있었다.
저 덩치로 저 표정으로 분홍색 앞치마를 매고 손수 음식을 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을 텐데.
지금은 그저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어때?”
“뭐… 건강한 맛.”
“그럼 됐어.”
그것을 끝으로 흔한 대화 하나 없이 숟가락을 몇 번 움직였더니 힘이 풀려 숟가락을 놓쳤다.
‘챙’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떨어진 숟가락을 가지런히 두었다. 도무지 입맛이 없어 음식을 넘길 수 없었다. 자꾸 홍시혁의 얼굴이 아른거려 두통이 뇌를 괴롭혔다.
“홍시혁 때문에?”
“이래서 영웅이가 싫다니까.”
“내가 캐물은 거야.”
“그렇다고 다 말하는 그 점이 싫은 거야.”
그 말에 다시 입을 꾹 닫고 식사를 하는 듯하더니, 다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빈말이라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괜찮지 않았다.
괜히 손가락을 괴롭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더 먹으라는 말을 애써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누나, 제발 더 먹어.”
그러니까, 정말이지 너무 괴롭다.
"도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니까. 아빠라고 불러. 아빠.""왜에! 엄마도 그렇게 부르잖아.""안돼, 엄마랑 달라. 너는 아빠라고 불러야 해.""치사해! 아빠아아! 엄마 나빠아!"아직 정신이 멍해 품에 안겨 오는 작은 너를 어찌 해주지도 못하고 본능적으로 등을 토닥이자, 나를 찌릿하고 쳐다보는 눈길에 그대로 행동이 멈춰버렸다. 결국 너는 작은 너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문을 닫고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이마에 손을 올려 한없이 익숙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의 상태를 살폈다."아."분명 꿈일 텐데….차가운 손길에 이마의 열이 식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급하게 그 손을 잡자, 그 행동이 의아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는 시선에 그 손을 당겨 끌어안았다.그래, 이제야 안도했다.너의 향, 너의 온기 그 무엇 하나 다를 것 없이 내가 아는 너였다."응? 얘가 왜 이러지? 왜 그래? 아직도 아파?"그 말에 대답도 못 하고 그 어리둥절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그 손을 강하게 잡기도 했다. 그제야 안도감에 눈물이 뚝뚝 떨어뜨리자, 너는 기겁하며 놀라 제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뭐야~! 왜 울어? 이상하다? 열은 많이 내린 거 같은데….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응, 그건 꿈이야.""무슨 꿈을 꿨는데 우는 거야? 울지 마! 밖에 애도 있는데!""…… 네가 없어지는 꿈.""나는 이렇게 네 곁에 있는데?""응…."울컥했다.조금 강하게 끌어안고 한참 동안 숨을 고르자, 그런 나를 영 이상한
윤시준이 눈을 반짝이며 입꼬리를 올렸다."어? 방금 메시지… 우리 홍시의 얼굴을 거절한 여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까? 하긴… 이 녀석 얼굴 밖에 없죠?""야, 윤시준 그게 무슨 소리냐?""어, 그리고 또 왔어요. ‘지금 첫사랑을 생각하면 어떠신가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뭐, 어때요?""그걸 왜 굳이 제게? 자정의 요정도 대답 좀 하시죠?""아니 뭐~ 지금 반짝이들이 내가 눈에 들어오겠어요?"정말이지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홍시혁이 혀를 강하게 차면서도 눈은 이미 생각에 잠겼다.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윤시준은 알 수 있었다."그냥, 뭐 보고 싶죠. 잘 지내는지… 행복한지. 제가 노래하는 거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신곡도 좋으니까~""아하하, 은근슬쩍 영업까지 하네? 오, 메시지들이 폭주하기 시작했어요. 홍시혁 나를 사랑해 줘… 부터… 여러분, 후회할지도 몰라요. 이 녀석 겉만 멀쩡한 남자인 건 알죠?""너만 하겠냐?""아, 노래 추천해 주세요도 있네요. 자, 홍시혁 씨. 온 김에 하나 해주세요.""아, 이번 앨범 수록곡 3번 트랙에 'Arrivederci'라는 노래가 있는데… 제가 가장 애정하는 노래고 작곡도 했다고요~? 한번 들어… 오, 역시 PD님, 센스 넘치신다니까? 지금 흘러나오는 이 노래입니다.""그럼 노래 듣고 다시 만나요."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부스 안에서 윤시준은 한창 놀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괜찮냐는 눈빛을 하며 내게 생수를 건넸다. 그리고 곧 손짓하는 화면을 바라보자, 한창 검색어 순위가 나의 이름과 윤시준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것을
그날 이후로 나와 함께 멈춘 집은 네가 만들어 준 노래만… 너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변함없는 네 목소리가 겨우 나를 움직이게 했다.벌써 몇 번이나 영웅이가 왔다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얼핏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아아, 아버지. 혹시 저 벌을 받는 걸까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요? 어째서… 왜… 은율이를 지켜주지 않았어요? 우리 이제 막 행복한 참이었는데….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한 게 아닌데. 그냥 입장만 다를 뿐이지, 평범하게 사랑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이렇게 벌을 주는 거지? 심장이 푹푹 찢기는 고통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려도 이 압박감은 해방되지 않았다. '멈춘다'라는 개념이 없는 듯 눈물은 그저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이제는 닦는 것조차 지쳐서 할 수가 없었다."나, 아파. 너무 아파."빨리 돌아와 줘. 너는 언제나 내가 아픈 것을 싫어했잖아."보고 싶단 말이야."몇 번이나 소리쳤지만 금방이라도 달려 올 것 같은 너는 오지 않았다. 고요한 집에는 너의 목소리만 울렸고 그 소리만이 나의 귀에 꽂혀 주위의 소음을 차단했다.'나는 평생, 네 곁에 있을 거야. 이제 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있을 거야.'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새삼 그렇다는 거지.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어. 난 분명 참으려고 했는데… 네가 터뜨린 거야. 책임져! 이도진!' '어떻게 책임질까? 말해 봐.' '으음… 일단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제법 뻔뻔해진 모습
평소 나의 사진은 시도 때도 없이 찍으면서 본인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폰에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조금 짜증 나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질색하는 표정을 하길래 그 녀석이 찍어 줄 때는 잘 있으면서 내가 찍으려고 하니 거부한다고 툴툴거리자, 그제야 어설프게 포즈를 취해 보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내게 어리광이 너무 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렸지만, 이러한 행세를 보면 그만둘 수가 없었다.'음, 도진아. 역시 사진은 홍시혁이 더 잘 찍는 거 같아.'장난스러운 말에 조금 울컥해 동영상으로 사진 찍는 영상을 한참이나 보고 있는 나를 빤히 보더니 왜 그렇게 귀엽냐고 나를 끌어안는 모습에 괜히 동생 취급하는 듯해 울컥했지만 그래도 즐거웠고 행복했다.이런, 사소하고 평범한 날들이 꿈같을 정도로…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고 감기 직전까지 서로의 시야에 있으며 타인의 시선은 단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간 함께 행복하지 못한 시간 그 이상으로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빠르게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왜 진작에 나는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한 건지 정말이지 과거의 이도진은 한심하고 멍청했다.그랬기에 나는 과거 나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크… 멋지다. 멋져.'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너무나도 반짝이는 눈으로 헤벌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를 보면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은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이도진 씨, 집중하세요.' '집중하고 있어.' '아니. 나 말고 영화… 지금이 하이라이트라니까?!'
그 전화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율이가 아니었다. 나도 나지만 이도진도 역시 제대로 사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깔끔하고 반듯하던 그 얼굴은 생기가 없고 푸석푸석하면서 몰골이었다. 율이가 좋아하던 그 멀끔한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가라앉은 듯했던 마음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율이의 피를 뒤집어쓰고 살아남은 이 가증스러운 남자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동시에 이 모습을 보며 아파할 율이가 생각나 울컥했다."너, 그런 꼴로 있다고 속상해할 율이 생각 안 해!?"한참의 침묵에 겨우 뱉은 말은 더 큰 화를 만들어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뱉고 말았다."차라리!!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좋았을걸!!!"한껏 기세 좋게 뱉은 것 치고는 마음이 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 입술이 찢길 정도로 힘을 주어 깨물었다. 그리고 이도진도 평소처럼 나의 말을 맞받아치지 않고 허탈하게 웃으며 동조했다."… 그러게."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이도진은 내게 익숙한 USB를 던지고 그대로 나가버렸다.***집으로 돌아오자 홍지혁이 엉망이 된 집 안을 익숙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밥을 차려 놓고 억지로 입안에 넣어주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그대로 뱉었지만,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도 없었고 화내지 않았다."얼음에 미끄러진 트럭이 갑자기 덮친 거래."알고 있다. 아마 분명 먼저 발견했을 네가 먼저 이도진을 구했겠지. 이게 '참 너답다'고 생각한 나도 반쯤은 미쳐 있는
"꺄아아악-!!!"그런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언젠가 느껴 본 고통이 다시 몸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당황함과 놀란 표정을 한 네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때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유, 율아! 정신 차려!"차가워진 몸에는 온전히 너의 온기가 느껴져 아픈데도 기분은 좋았다. 너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은데 감지 않으려는 눈도 점점 무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아아, 나는 죽는 건가? 결국 너를 포기하지 못하고 손에 쥔 벌을 받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 벌을 내가 받아서. 정말 진심이야. 나는 늘 네가 아픈 것은 싫으니까,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나으니까. 잠시나마 너를 독차지할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기뻤어. 나는 괜찮아. 나만큼 과분하고 행복한 사랑을 받은 여자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마.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죽는 것보다 싫어.***<홍시혁>사실 다시 만난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게 잠시 흔들렸던 너는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때가 나의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좋아서, 그대로 미련이 넘쳐서 놓지 못한 쪽은 나였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는 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네게 집중하고 싶었다.이도진에게 조금 달라진 듯한 행동도 사실은 너의 어리광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기회'이지 않을까 하고 혼자 자위한 꼴이다. 그래도 나는 네가 행복하면 미련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말로 마지막에 봤을 때 너는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