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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가능한 한 빨리

Author: Noona Auror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15:35:20

엘리노어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곁에 있는 아치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엘리노어는 아치가 제안한 계약 결혼을 수락했다. 하지만 오늘 당장 자신의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꼭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합니까, 사장님?” 엘리노어가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아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젖은 재킷을 벗은 그는 이제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치는 타협 따위는 모른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엘리노어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불끈 쥐었다. 아치가 제안한 결혼에 대해 아버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막 아버지 생각을 하던 차에, 가방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자 화면에 아버지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엘리노어는 선뜻 전화를 받지 못했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던 아버지가 왜 연락을 했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줄리안이 파혼건에 대해 벌써 고자질을 한 모양이었다.

“중요한 전화면 받아요.”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특유의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엘리노어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아치를 바라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핸드폰을 귀에 대자마자 엘리노어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어디냐, 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줄리안이 파혼을 하겠다는 게야?! 너는 정말 쓸모없는 자식이다, 엘!”

엘리노어는 한쪽 손으로 허벅지 위에 놓인 치맛자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역시나 줄리안의 말을 듣고 자신을 꾸짖으려고 전화한 것이 맞았다.

그런데 왜 자신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까? 바람을 피운 건 줄리안인데!

엘리노어는 깊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담담하게 응수했다.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금방 도착해요.”

전화는 그대로 끊겨 버렸다.

엘리노어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에 떠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렇지, 용건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먼저 연락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매번 똑같은 아버지의 태도에 자신이 여전히 상처받는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용할 가치가 없어지면 냉대하고 무관심해지는 그 태도에.

아치가 엘리노어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서린 쓸쓸함을 놓치지 않았다.

아치의 표정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무심했다. 그는 다시 엘리노어의 집을 향해 운전에 집중했다.

아치의 차가 마침내 엘리노어의 집 앞마당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바깥에 서자마자 아치는 엘리노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왜 이러십니까?” 내밀어진 손을 보며 엘리노어가 물었다.

“우린 이제 연인입니다. 연인다운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하죠.” 아치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거절을 허용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왜 새삼스럽게 물어봤을까?

엘리노어는 아치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맞잡아 오는 아치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반말하는 습관을 들여요. 안 그러면 우리 비밀이 들통날 테니까.” 아치가 강한 어조로 주의를 주었다.

엘리노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 다다르자, 엘리노어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 재크슨 몽고메리, 그리고 새어머니 사만다와 의붓동생 아이리스에게 닿았다.

엘리노어는 재크슨의 차가운 눈빛을 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재크슨의 호통이 거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래, 딴놈이 생겨서 줄리안하고 끝낸 거냐?!”

엘리노어는 흠칫 놀랐다.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커졌다.

“줄리안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엘리노어가 아버지의 억지 추궁에 반문했다.

“아니다.” 재크슨이 단호하게 받아쳤다. “하지만 이 근본도 모르는 놈을 끌고 온 걸 보니, 줄리안이 왜 파혼하자고 했는지 아주 명백해지는구나!”

엘리노어는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버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을 모함할 수 있단 말인가.

“파혼하자고 한 건 제가 아니라 줄리안이에요.” 엘리노어가 자신을 변호했다.

“네 탓이 아니라면, 그럼 지금 이 남자를 집까지 데리고 온 건 무슨 이유냐, 엘리노어?” 사만다가 거들고 나섰다. 그녀는 의붓딸 옆에 서 있는 아치를 흘끔거렸다.

단순한 검은 셔츠에 슬랙스 차림이었지만, 아치의 훤칠하고 듬직한 체구는 숨겨지지 않았다.

“이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 온 건, 당신들이 나누는 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재크슨은 아치의 버릇없는 말투에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데 감히 여길 들어와서 참견이냐? 게다가….”

재크슨은 아치와 엘리노어가 꽉 잡고 있는 손으로 시선이 닿자 말을 멈췄다. “왜 계속 엘리노어의 손을 잡고 있는 거냐?”

아치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 서며 온화하면서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옛날부터 엘리노어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방금 약혼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노어에게 구혼하여 조속히 결혼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재크슨, 사만다, 그리고 아이리스 세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아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네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어?!” 재크슨의 목소리가 번쩍 올라갔다. “너 따위가 뭔데 감히 엘리노어와 결혼하겠다는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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