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그는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일개 공돌이이자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다.하지만 자신의 친구이자 유일한 희망인 태수가 블랙홀 너머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지독한 죄책감.그리고 태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같은 당부, 식구들 밥상을 지키라는 그 한마디가 그의 심장에 말뚝처럼 박혀 이 미친 전투를 강행하게 만들고 있었다."우리 태수는 절대 안 죽어. 그 미친 인간이 얼마나 돈독이 올랐는데 빈손으로 죽겠냐고! 빨리 퇴근해서 돌아오라고, 이 망할 놈아!"윤철수가 악을 쓰며 발칸포의 방향을 틀어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거대한 마수의 대가리를 박살 내버렸다.하지만 그런 인간들의 피나는 노력과 투지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삐이이이이익-!!!!아크 부대의 전역에 고막을 찢는 비상경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경고! 기지 메인 에너지 실드 잔량 10퍼센트 미만! 방어막 붕괴가 임박했습니다!]메인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기계음은 전장에서 피 흘리는 모든 이들의 심장에 차가운 사형 선고를 내리꽂았다.마수들이 내뿜는 붉은 산성 독기가 아크 부대의 방어막을 녹여버리며 점차 내륙을 향해 그 기분 나쁜 촉수를 뻗어가고 있었다.독기의 안개는 이미 아크 부대를 넘어 남포동의 도심 시가지, 태수의 하숙집이 위치한 반경 1킬로미터 앞까지 소름 끼치게 밀려들어 온 상태였다.같은 시각, 남포동 하숙집의 지하 벙커 대피소.정부의 긴급 대피 명령에 따라 인근 주민들은 모두 북쪽의 안전지대로 피난을 떠났지만, 하숙집 식구들은 끝까지 대피를 거부한 채 이곳 지하 벙커에 남아있었다.집을 지키고 식탁을 지키는 것이 가장의 귀환을 믿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머리 위로 지반이 흔들리고 포탄이 터지는 끔찍한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좁고 습한 공간.어두운 조명 아래, 미혜가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종이컵에 따라 식구들에게 묵묵히 건네고 있었다."어머님. 조금만 드시고 기운 차
하지만 기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현실의 전황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최전방에서 방패막이 역할을 하던 구형 저거노트 두 대가 거대한 집게발에 콕핏이 관통당하며 끔찍한 파열음을 토해냈다.그 틈을 타 공중으로 도약한 해귀 떼가 공중에서 화력 지원을 하던 최신형 블랙맘바 세 대의 스러스터를 물어뜯어 버렸다.연쇄 폭발음과 함께 시퍼런 불꽃이 튀어 오르며 조종사들의 비명이 통신망을 타고 흐르다 뚝 끊겼다.그 끔찍한 죽음의 메아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크 부대의 성벽 위쪽에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백색의 십자가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주여... 이 가엾은 영혼들에게 꺾이지 않는 가호를 내리소서...!"유럽 연합에서 파견된 글로벌 S급 랭커이자 수호 성녀, 소피아 아르젠토였다.그녀의 순백색 사제복은 이미 시커먼 핏물과 흙먼지로 엉망진창이 된 지 오래였다.소피아는 양손에 은빛 십자가를 꽉 쥔 채, 자신의 한계치를 쥐어짜 내어 아군 진영에 광역 힐인 가호의 세례를 쏟아붓고 있었다.그녀의 입술에서 새빨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단 한 사람, 자신의 구원자인 태수가 무사히 귀환하기만을 바라는 맹목적인 기도만이 가득했다."성녀님! 무리하지 마시오! 뒤로 물러서시오!"소피아의 곁에서 거대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진형을 호위하던 중국의 무신 리 웨이가 고함을 질렀다.리 웨이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붉은색 기혈룡들은 이미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싸운 탓에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 만큼 투명하게 흐려져 있었다."하아앗...!! 비룡승운(飛龍乘雲)!"리 웨이가 마지막 남은 기(氣)를 끌어올려 언월도를 지면에서부터 맹렬하게 쳐올렸다.성벽을 기어오르던 십여 마리의 해귀들이 거대한 풍압에 휩쓸려 허공으로 띄워 올려졌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낡은 도복 자락을 휘날리며 허공으로 솟아오른 자가 있었다.일본의 검성, 카미키 류지였다.챙-!!!!칼을 뽑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극한의 무음 쾌검.은빛 선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수십
[대한민국 부산, 해안 방위사령부 아크 부대 외곽 방어선]투명한 빗방울 대신 시커먼 마수의 피와 짓이겨진 살점이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끔찍한 전장.판탈라사 제국의 1군단장 에레보스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열어젖힌 차원의 구멍 속으로, 흑기사 레비아탄이 빨려 들어간 지 정확히 3일째 되는 날이었다.에레보스의 텔레파시 사념파가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끊어지며 놈의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었다.하지만 그것은 인류에게 구원이 아닌 더 끔찍한 재앙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절대적인 지휘관을 잃어버린 수십만 마리의 심해 괴수들, 이른바 해귀(海鬼) 떼가 통제를 벗어난 채 맹렬한 본능과 살육의 광기에 휩싸여 육지를 향해 미친 듯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놈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군단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흉이 소속된 심장부였다.대한민국 부산의 아크 부대와 남포동 외곽 방어선을 향해 전 세계의 바다에서 몰려든 괴수들이 산처럼 쌓여가고 있었다.콰아아아아아앙-!!!!고막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부산항 방파제 쪽에 구축되어 있던 콘크리트 바리케이드가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수들의 파도에 맥없이 휩쓸려 무너져 내렸다.거북이의 등껍질에 수십 개의 날카로운 집게발이 달린 흉악한 해귀들이 무너진 잔해를 밟고 아크 부대의 외벽을 향해 쓰나미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전방위 사격 개시! 한 놈도 성벽 위로 살려 보내지 마라!"통신망을 찢는 지휘관의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성벽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수십 대의 메카닉 병기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대 괴수 기동 병기, 육중한 덩치의 저거노트 수십 기가 두꺼운 떡장갑을 앞세워 거대한 강철의 방벽을 구축했다.그리고 그 뒤를 받치며 하늘로 도약한 것은, 구형의 단점을 보완하여 기동성과 화력을 극대화한 최신 보급형 기체 블랙맘바 수십 기였다.투두두두두두두두-!!!! 콰아아아앙-!!!!블랙맘바 기체들의 양팔에 장착된 개틀링 포와 플라즈마 캐논이 불을 뿜으며 쇄도하는 해귀 떼의 대가리를 무자비하게 박살 냈다.하지만 압도적인
위이이이잉-! 텅-!하지만 레비아탄의 가슴팍에 위치한 동력로에서 맥빠진 기계음이 울리더니 이내 시동이 툭 꺼져버렸다.[에러! 에러! 차원 도약을 위한 동력이 턱없이 부족해! 아까 파일벙커 남발하고, 코어에 뇌전 때려 박느라 잉여 마력이 바닥났단 말이야!]"미치겠네. 여기서 뼈를 묻을 순 없잖아. 내 하숙집 밥상에 한우 투뿔이 기다리고 있는데!"하늘에서 쏟아지는 바위들의 크기가 점차 거대해지고 공간의 압박이 기체의 장갑판을 끔찍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이대로 몇 분만 더 지체했다가는 막대한 부를 짊어진 채 차원의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압사당할 판이었다.나는 덜덜 떨리는 조종간을 부여잡고 핏발 선 눈으로 콕핏 내부의 계기판을 미친 듯이 훑어내렸다.그리고 내 시선이 레비아탄의 우측 어깨 뒤편, 방금 전 터져나갈 듯이 꽉꽉 채워 넣은 전술 화물칸의 마력 잔량 게이지에 멈추어 섰다."......"내 입술 사이로 아주 기가 막히고도 무식한 해법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야지."나는 기체를 조작해 레비아탄의 왼손을 전술 화물칸의 해치로 스윽 밀어 넣었다.[혀, 형님? 뭐 하려고? 갑자기 왜 주운 걸 다시 꺼내!]레비아탄의 당황한 물음을 무시한 채, 나는 방금 주워 담았던 황제의 마석 파편들 중 가장 큼직하고 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 놈을 하나 끄집어냈다."비상 동력로 수동 개방해."나는 콕핏 하단의 물리적인 토글스위치를 걷어차듯 올려버렸다.철컹-!레비아탄의 명치 부근을 덮고 있던 외부 장갑판이 열리며, 예비 전력을 생산하는 보조 동력로의 둥근 삽입구가 기계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나는 레비아탄의 왼손에 들린 그 거대하고 붉은 황제의 마석 파편을, 보조 동력로의 아가리를 향해 망설임 없이 가져다 댔다.[미, 미친-!!!! 형님! 그거 가공도 안 된 날것의 원석이잖아! 저런 초고밀도 마력 덩어리를 동력로에 냅다 쑤셔 박으면 엔진이 못 버티고 터져버린다고!!]레비아탄이 기절할 듯한 비명을 지르며 핏빛 경고창을 모
그 말인즉슨, 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만 주워가도 내가 아크 부대의 사령관을 고용해서 내 개인 운전기사로 부려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이거면 평생 우리 식구들 한우 투뿔만 먹이는 게 아니라, 아예 소를 방목할 목장을 대륙별로 하나씩 사고도 남겠네."적진의 한가운데, 멸망해가는 제국의 심장부에서 피어나는 도굴꾼의 극한 희열.나는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찢어질 듯 비틀어 올리며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야. 당장 주워 담아! 뭐하니? 얼른 움직여! 화물칸 터질 때까지 쑤셔 넣어!"[크하하하! 예스, 보스! 오늘 아주 등골이 휘도록 주워보자고!]레비아탄의 거대한 기체가 무너진 코어의 잔해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흑기사의 육중한 두 손이 바닥에 깔린 황제의 마석 파편들을 거칠게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겨울철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주워 담듯, 아무런 경건함이나 망설임조차 없는 지독하게 뻔뻔한 손놀림이었다.챙그랑-! 촤라라락-!!!!레비아탄의 양손 가득 움켜쥔 거대한 마석 파편들이 기체의 우측 어깨 뒤편에 전개된 전술 화물칸 안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영롱한 붉은빛의 보석들이 금속 재질의 화물칸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그 경쾌하고도 묵직한 소리.그것은 내게 있어서 세상 그 어떤 교향곡보다도 아름다운 자본주의의 찬가였다."그래. 이 맛에 야근 뛰고 목숨 거는 거지. 저기 구석에 굴러간 거 큰 놈 하나 더 주워라."나는 조종간을 섬세하게 조작하며 바닥의 먼지 하나 남기지 않을 기세로 꼼꼼하게 파밍에 열을 올렸다.에레보스가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황제의 부활 제단이, 단숨에 Z급 파일럿의 불법 채굴장으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그런데 화물칸이 기분 좋은 무게감으로 거의 가득 차갈 무렵이었다.우르르르르릉-!!!! 쿠구구구궁-!!!!갑자기 발밑의 척박한 대지가 기괴한 비명을 토해내며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요새 내부의 지진이 아니었다.판탈라사 제국의 본성이라는 이 기괴한 아공간 전체가 마치 거대한 지우개로 지워지는
브류나크의 창끝에서 터져 나온 10,000퍼센트의 뇌전과 절대영도의 폭풍이 거대한 제국의 에너지 코어 정중앙을 완벽하게 꿰뚫었다.고막을 찢고 시공간의 물리적 축을 붕괴시키는 우주적 스케일의 굉음이 판탈라사 제국의 본성 전체를 무자비하게 뒤흔들었다.코어 내부에 수만 년 동안 억눌려 있던 수천 개 행성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임계점을 돌파하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순백의 섬광이 요새의 심장부에서부터 미친 듯이 팽창하며 모든 물질의 형태를 지워버리기 시작했다.레비아탄의 콕핏 내부 파노라마 모니터가 그 압도적인 빛의 해일을 견디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새카맣게 암전되어 버렸다."어이쿠! 씨부럴!"나는 반쯤 열려 있던 캐노피를 황급히 닫아걸고 조종 시트에 몸을 바짝 웅크렸다.기체의 외부 장갑판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대한 마력의 후폭풍에 흑기사의 20미터 프레임이 종잇장처럼 요동쳤다.투명한 배양 캡슐 안에서 그 모든 파멸의 광경을 지켜보던 제1 군단장 에레보스.놈의 붉은 눈깔들이 극한의 절망과 인지 부조화로 인해 찢어질 듯 기괴하게 팽창했다.[아아... 안 돼... 위대한 제국의 대계가... 황제 폐하의 영광이...!!]에레보스의 처절한 텔레파시가 부서져 내리는 요새의 공동 안을 공허하게 맴돌았다.수많은 행성을 짓밟고 피바다로 만들며 착취해 온 우주적 스케일의 제단이었다.자신의 목숨과 영혼마저 땔감으로 바쳐가며 지켜내려 했던 그 웅장하고 거대한 천년의 염원.그 모든 것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빛나는 영웅의 숭고한 희생도 아니고, 세상을 지키겠다는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도 아니었다.고작 지구라는 변방 행성에서 날아온 일개 필멸자의 저녁 밥상 메뉴와 식자재 물가 타령이라는, 그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이유 하나에 완벽하게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이다.[어찌 이런 일이... 고작 그깟 벌레들의 식탁 따위가... 우리 심연의 무게를 짓누른단 말이냐...!!]그것은 패배의 고통보다도 뼈저린, 존재의 이유 자체를 부정당하는 끔찍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