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현판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 13화: 금융치료가 최고시다 2

Share

13화: 금융치료가 최고시다 2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1 17:22:34

​오후 5시.

하숙집 골목이 꽉 막혔다.

전자제품 대리점 트럭 세 대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이게 다 머꼬! 이사 오나!"

"김 씨! 나와 봐라! 태수네 집에 난리 났다!"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나왔다.

트럭 짐칸에서 내려지는 물건들의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자, 여기 놓으시면 됩니다! 조심조심!"

​내가 인부들을 지휘했다.

첫 번째 타자, 최신형 대용량 김치냉장고.

​"아니, 이기 뭐꼬! 태수 니 로또 됐나!"

​최 여사님이 국자를 들고 뛰쳐나오셨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냉장고를 어루만지셨다.

​"이모, 저번에 냉장고 소리 시끄럽다고 발로 차셨잖아요. 이제 발 아프게 차지 말고 이거 쓰세요. 김치 100포기도 들어간대요."

"야, 야가 미쳤나! 돈이 썩어 나나! 이걸 우째 받노!"

​최 여사님은 내 등짝을 때리려다 말고, 울컥한 듯 눈시울을 붉히셨다.

항상 "돈 아껴라", "적금 들어라" 잔소리하시던 분이지만, 낡은 냉장고가 내심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할머니 거."

​거실 한쪽에 설치된 최고급 전신 안마 의자.

할머니는 안마 의자에 앉아보시더니 아이처럼 웃으셨다.

​"아이고, 시원하다... 우리 태수가 최고네. 내 뼈마디가 녹는다, 녹아."

"오래 사셔야죠, 할매. 나 장가가는 것도 보셔야지."

​다음은 세탁소였다.

성배 아저씨는 가게 앞에 새로 달린 LED 간판을 보며 넋을 놓고 계셨다.

​[성배 세탁소]

​밤에도 환하게 빛나는 새 간판. 그리고 가게 안에는 최신형 스팀 다리미 세트가 들어와 있었다.

​"아저씨, 눈 침침하신데 이제 밤에도 작업 편하게 하세요."

"태수야... 니 진짜... 고맙다. 내 살다 살다 이런 호강을 다 누리네."

​아저씨가 눈물을 훔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옆에 있던 희선이는 내가 사준 최신형 게이밍 노트북을 끌어안고 방방 뛰고 있었다.

"와! 햄! 대박! 내 이거 진짜 갖고 싶었다! 롤 돌아가는 속도 봐라! 미쳤다!"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다가 걸리면 뺏는다. 알았나?"

"충성! 하태수 상병님 충성! 평생 충성!"

그 옆에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히나에게도 똑같은 최신형 노트북 상자를 하나 더 툭 던져주었다.

"와아! 오빠 최고! 나도 이제 학교 과제나 인강 들을 때 눈 안 침침하겠다!"

"니들도 맨날 컴 한 대 가지고 싸우지 말고 각자 한 대씩 붙잡고 해라. 대신 히나 너도 학점 안 나오면 압수다."

"치이, 장학금 타오면 용돈 더 줄 거면서!"

히나가 해맑게 웃으며 노트북을 소중하게 안아 들자, 두 비글 자매의 시끄러운 열기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대청마루 모서리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반짝이던 하루에게 다가갔다.

내가 주머니에서 꺼내 슥 내민 것은 최고급 사양의 최신형 태블릿 PC였다.

"하루 너는 워낙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맨날 낡은 요리책이나 잡지 뒤적거리지 말고, 이걸로 전 세계 맛있는 레시피 가득 찾아서 편하게 배우라고 사 왔어."

하루의 하얀 뺨이 순식간에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달아오르며, 태블릿 PC를 양손으로 소중하게 꼭 쥐었다.

"이렇게 좋은 걸...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이걸로 맛있는 요리 더 많이 배워서, 태수씨한테 시집... 아니. 여사님 밥상 차릴 때 도와드릴게요."

뭔가 어마어마한 말을 들을 뻔 한거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트럭 짐칸에서 내려진 묵직하고 거대한 박스 하나.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서 밤새 코딩과 수험 공부에 피를 말리던 윤철수를 위해 특별 주문한 최신형 인체공학 의자였다.

그냥 의자가 아니라, 무려 공부하다가 잠이 올 때 엉덩이에 '전기 충격 기능'을 때려 박아 단숨에 잠을 깨워준다는 희대의 명물 장비였다.

이 의자에 짱 박혀서 공부한 덕에 S대 합격한 인간만 한 트럭에,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까지 여럿 프리패스로 합격시켰다는 전설의 의자이기도 했다.

"야, 윤철수. 맨날 공부하다 졸려서 대가리 박았다고 징징대지 말고 여기 앉아서 열공해라. 이 의자로 S대랑 공무원 시험 여럿 합격했다니까, 니 대가리도 이 전기 충격기가 확실하게 심폐소생술 해줄 거다."

마침 퇴근하고 하숙집 마당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던 철수가 그 흉포한 위용의 설명서를 보더니 뇌정지가 온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하태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새끼...! 친구 잠 깨우겠다고 의자에 전기 충격기를 달아와?! 압도적 감사...! 내가 니 성의를 생각해서 꼭 합격한다!"

마당의 소란스러운 열기를 뒤로한 채,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별다방이었다.

미혜 누나는 가게 마감 중이었다.

​"누나."

"어? 태수야."

​나는 등 뒤에 숨겨뒀던 작은 상자를 건넸다.

비싼 명품은 아니지만, 누나가 평소에 예쁘다고 했던 빈티지 턴테이블이었다.

​"가게 오디오 고장 나서 자꾸 끊긴다고 했잖아요. 이걸로 바꿔요."

"어머... 이거 구하기 힘든 건데. 태수 니가 이걸 어떻게..."

​미혜 누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턴테이블을 소중하게 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진짜로. 오늘 가게 선곡은 이걸로 해야겠다."

​누나가 LP판을 올리자, 따뜻한 재즈 선율이 카페를 채웠다.

​그날 밤.

하숙집 마당 평상에서 작은 잔치가 열렸다.

배달 음식의 향연. 족발, 보쌈, 치킨, 피자... 상다리가 부러질 듯했다.

​"자자, 건배! 태수 덕분에 우리가 호강한다!"

"건배!"

​차가운 겨울밤이었지만, 평상 위는 훈훈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맛있는 음식 냄새, 그리고 따뜻한 온기.

이것이 내가 목숨 걸고 지켜낸 나의 세계였다.

​[형님. 나도 한 입만.]

​손목에서 레비아탄이 족발 사진을 보며 침을 흘렸다(물론 데이터상으로).

​[저 껍질 부분... 콜라겐 성분 분석 결과 쫄깃함 수치가 99.9%인데. 무슨 맛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무심코 방벽 너머의 바다를 바라봤다.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Z급의 감각은 느끼고 있었다.

쿠우웅...

귀로는 들리지 않는, 피부로만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내가 얼려버린 구역보다 훨씬 더 깊고 먼 곳.

[포인트 니모(Point Nemo)].

그 심연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고: 심해 초고심도(Ultra-Deep) 파장 감지.]

스마트워치에 아주 짧게 경고 문구가 떴다가 사라졌다.

레비아탄도 눈치챈 걸까. 녀석의 도트 눈이 잠시 붉게 깜빡였다.

"......"

나는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이 평화를 즐겨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내가 잡은 군주는 고작 '정찰병'에 불과했다는 것을.

"태수야! 뭐 하노! 고기 식는다!"

최 여사님이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아, 예! 먹어요!"

나는 불길한 예감을 씹어 삼키며, 족발 쌈을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저 깊은 바닷속 놈들이 언제 기어 올라올지 모르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은 금융 치료의 달콤함을 즐길 때니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61화: 신살자의 유산 2

    뇌전의 군주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두 힘이 합쳐지면 [무한 동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놈은 그걸 이용해 지구를 정복하려 했던 것이다.​"하지만 놈은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벽을 만났소. 바로 주지헌과 그의 아내였지. 그 두 사람은 SSS급 듀오였으니까."​리 웨이가 말을 이었다.​"'천상의 징벌'까지 동원해 심각한 타격을 받은 그놈은 궁지에 몰려, 품고 있던 빙결의 핵을 꺼내 강제로 폭주시켰소. 자폭에 가까운 에너지가 터져 나오려 했지. 그때 주지헌이 결단을 내렸소."​"......희생(Sacrifice)인가요."​"그렇소. 아내를 매개체로 삼고, 자신의 생명력까지 모두 쏟아부어 금기의 기술을 발동 가능케 했던 것... 바로 그것이 [신살창(神殺槍) - 브류나크]."​신살창.이그니스가 말했던 그 무기.​"그 창이 뇌전의 군주의 머리를 꿰뚫었소. 군주는 쓰러졌고, 그 여파로 주지헌 부부도..."​리 웨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잔을 비웠다.​"하지만 문제가 남았소. 뇌전은 잡았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빙결의 핵]은 파괴되지 않았던 거요. 그대로 두면 남은 에너지가 폭발해 부산을 얼려버릴 상황이었지.""그래서요? 어떻게 됐습니까?"​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주지헌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선택을 했소. 당시 폐허 속에... 기적적으로 숨이 붙어있던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지. 고아로 보이는 소년이었소."​"......!"​"그는 그 아이의 단전에 빙결의 핵을 봉인했소. 아이의 향후 각성자로서 생체 시간을 동결시켜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동시에, 핵의 폭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지.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오."​역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10년 전, 내가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내가 능력을 쓰지 못하는 '빙신'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유.그게 다 봉인 때문이었다.​주지헌.그는 나를 살린 은인이자, 나에게 이 가혹한 짐을 지운 장본인이었다.​"알려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60화: 신살자의 유산 1

    ​전투가 끝난 바다는 고요했다.이그니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시커멓게 타버린 구름만이 남아 있었고, 펄펄 끓던 바닷물은 이제 식어서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후우..."​나는 레비아탄의 조종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긴장이 풀리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빙정과 뇌정을 동시에 돌려 '영구 동토'를 만드는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혈관에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를 원액으로 주사한 기분이랄까.​[형님. 나 얼굴 흘러내린다. 성형 좀 해야겠는데.]​레비아탄이 울상인 목소리로 말했다.외부 카메라로 기체 상태를 확인해보니 가관이었다.이그니스의 태양 불꽃에 노출되었던 장갑판이 촛농처럼 녹아내려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멋지던 흑기사의 폼은 어디 가고, 다 녹은 초콜릿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야, 멋있는데 왜. 빈티지하고 좋네. 역전의 용사 같잖아."[놀리지 마. 나 지금 심각해.]​레비아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히 외관 때문만은 아니었다.​"아까 그 빨간 놈(이그니스)이 한 말... 진짜일까?"​-'신살창을 든 그 인간 놈에게 목이 따이더니, 껍데기만 남아서 노예가 되었느냐?'-​이그니스의 조소.그것은 레비아탄, 아니 '뇌전의 군주'의 잃어버린 기억을 건드린 모양이었다.​"나 진짜 걔한테 죽어서 노예 된 거야? 기억이 안 나는데... 기분이 더러워. 왠지 내가 대장이었던 것 같은데... 억울해.""노예는 무슨."분명 뇌전의 군주는 '천상의 징벌'에 의해 제압되었다고 알고 있었다.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계기판을 톡톡 두드렸다.​"대장이면 뭐 하냐? 다 지난 일이다. 넌 지금 내 파트너고, 오늘 밥값 제대로 했다. 그거면 된 거야."[......]"그리고 생각해 봐. 네가 그때 안 죽고 계속 괴수로 남았으면, 지금쯤 나한테 얼려져서 횟감이 됐을걸? 차라리 지금이 낫지."[...그건 그렇네.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59화: 진정한 주인 2

    얼음으로 불을 끈다? 안 된다. 화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물을 부어봤자 증발할 뿐이다.그렇다면.​'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이 탈 수 없게 만들면?'​연소의 3요소. 연료, 산소, 그리고 발화점.놈의 불꽃은 마력을 연료로 쓴다.그렇다면 그 마력 자체를 [동결]시켜버리면 된다.​"레비. 네 심장, 나한테 다 줘."​"뭐? 미쳤어? 그러다 형님 몸 터져!""안 터져. 내가 누구냐. 하숙집 가장이다."​나는 크게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 콕핏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내 뱃속의 빙정, 그리고 레비아탄의 뇌정.두 개의 엔진을 하나로 합친다. [직렬연결].​"간다."​우우우웅-!!!​레비아탄의 심장에서 뽑아낸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그 에너지를 그대로 방출하지 않고, 내 단전의 빙정으로 쑤셔 넣었다.​[초전도 냉각 (Superconducting Cooling)]​전기와 냉기가 융합하며,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에너지가 탄생했다.​레비아탄의 기체 색깔이 변했다.보라색 아우라가 사라지고, [창백한 백색(Pale White)]이 기체를 감쌌다.죽음의 색이자, 절대적인 정지의 색.​[심해의 권능: 영구 동토 (Permafrost)]​"꺼져라."​나는 이그니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닿는 공간의 시간마저 얼려버리는 절대영도의 파동.​콰아앙-!​백색 파동이 붉은 태양 불꽃과 충돌했다.​치이이익-​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이그니스의 프로미넌스가, 타오르던 형상 그대로 '얼어붙은 불꽃'이 되어 바스러졌다.열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한 냉기가 들어찼다.​"호오?"​이그니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그의 불꽃이 먹히지 않은 건 처음인 듯했다.​"잡았다."​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비아탄을 가속했다.백색으로 빛나는 주먹이 이그니스에 꽂혔다.​콰직!!​"크윽!"​이그니스가 뒤로 밀려났다.그의 붉은 갑주에 금이 가고, 입가에서 푸른 피가 흘러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58화: 진정한 주인 1

    ​"끝난 게 아니야."​류지가 검을 고쳐 쥐며 낮게 읊조렸다.그의 말대로였다.쌍둥이 군주는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되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지만, 저 멀리 솟아있는 [테라포밍 기둥]은 여전히 건재했다.아니, 오히려 더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우우웅-!​기둥 표면의 붉은 살점이 맥박 치듯 꿈틀거렸다.마치 거대한 알처럼.​[형님. 에너지 수치가... 측정 불가야. 저 안에 있는 거, 단순한 마석이 아니야. 생명체야.]​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떨렸다.Z급 기체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고밀도 에너지.​쩍-!​기둥의 외벽이 갈라졌다.용암이 흘러내리듯 붉은 빛이 새어 나오더니, 기둥 전체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자욱한 수증기와 붉은 안개.그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거대한 괴수? 아니었다.산맥만 한 덩치를 예상했던 내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저벅. 저벅.​안개를 헤치고 나온 것은, 고작 2미터 남짓한 인간형의 존재였다.전신을 감싼 붉은색 판금 갑주. 투구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안광.등 뒤에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망토가 날개처럼 일렁이고 있었다.​[식별 코드: 제2 군단장][염마(Flame Demon) - 이그니스 (Ignis)]​"작네?"​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작다고 얕보지 마라. 기운이... 압축되어 있다."​류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그때, 놈이 입을 열었다.​"시끄럽군."​정확한 발음. 인간의 언어였다.레비아탄의 통역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뇌리에 꽂히는 목소리.​"내 정원지기들(쌍둥이)을 부순 게 네놈들인가? 장난감치고는 제법이구나."​놈이 죽은 쌍둥이 군주의 얼음 조각상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마치 부서진 장난감을 보는 아이처럼, 슬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말을 해? 이거 장르가 바뀌는데?"​내가 당황하는 사이, 류지가 먼저 움직였다.​"요물이 혀를 놀리는군!"​팟-!​류지가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상대가 인간형이라면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57화: 춤추는 칼날, 노래하는 뇌전 2

    놈의 머리가 빙하 바닥에 처박혔다.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용암 튀고, 얼음 조각 튀고, 난리도 아니었다.​"어때요, 아저씨. 제가 좀 더 빠르죠?"​내가 스피커로 류지를 도발했다.류지가 쳇, 하고 혀를 차려는 순간.​쿠르릉!​처박혀 있던 파이로와, 등껍질이 깨진 옵시디언이 동시에 울부짖었다.놈들의 눈빛이 변했다.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두 마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동료애? 아니, 융합이었다.​철컥- 치이익!​옵시디언이 몸을 웅크려 방어 태세를 취하자, 파이로가 그 위에 올라탔다.검은 장갑차 위에 붉은 포탑이 올라간 형상.파이로의 용암이 흘러내려 옵시디언의 깨진 등껍질을 메우고, 더 단단하고 뜨거운 [용암 전차]가 되었다.​"키에에에엑!!"​놈들이 동시에 포효했다.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내가 만든 빙하 필드가 급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발 디딜 곳이 사라지고 있었다.​"이런 젠장. 합체 로봇은 내 로망인데. 감히 괴수 따위가?"​빙하가 쩍쩍 갈라지며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류지가 밟고 있던 얼음 조각도 녹아내렸다.​"발판이 사라진다. 네놈의 얼음, 이게 한계냐?"​류지가 허공을 밟으며(경공술) 내 쪽으로 튀어왔다.​"그럴 리가요. 리필해 드립니다."​쾅!​레비아탄이 발을 구르자, 녹아내리던 빙하가 다시 두껍게 얼어붙었다.하지만 놈들의 열기가 워낙 강해서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합체하니까 단단하고 뜨겁군. 내 검으로 껍질은 깔 수 있지만, 그 안의 심장까지 닿으려면 틈이 부족해."​류지가 냉정하게 분석했다.옵시디언의 방어력에 파이로의 열기 장막까지 더해지니, 접근해서 베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그럼 이렇게 하죠."​나는 레비아탄의 오른팔을 변형시켰다.손이 사라지고, 거대한 드릴 형태의 파츠가 회전하기 시작했다.​"아저씨가 껍질 좀 까주세요. 길만 터주면 제가 뚫어버립니다.""호오. 나보고 조연을 하라?"​류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56화: 춤추는 칼날, 노래하는 뇌전 1

    [남중국해 빙하 필드]​쿠구구구-!!​내가 만든 거대한 얼음 대륙 위에서, 3km짜리 괴물 두 마리가 동시에 포효했다.그 소리에 빙하가 쩌적 갈라지고, 주변의 바닷물이 튀어 올랐다.보통 헌터라면 오줌을 지리고 도망갔을 광경이지만, 내 옆에 있는 아저씨는 달랐다.​"흥. 덩치만 컸지 굼뜨군."​카미키 류지.낡은 도복을 입은 이 중년의 검객은, 3km짜리 괴수를 보고도 '굼뜨다'고 평가했다.SS급의 패기인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더러운 건가.​"갑니다, 아저씨! 내기 잊지 마요!""짖지 마라, 애송이. 내 칼이 더 빠르다."​팟-!​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지의 모습이 사라졌다.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내 Z급 동체 시력으로도 잔상만 겨우 보일 정도의 초고속 이동.그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 검은 도마뱀 [옵시디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키에에엑!"​옵시디언이 반응했다.놈이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 끝에 달린 거대한 흑요석 철퇴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스치기만 해도 항공모함이 두 동강 날 위력.​하지만 류지는 피하지 않았다.그저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한 걸음 더 내디뎠을 뿐.​발도(拔刀).​챙-!​맑은 금속음이 전장을 울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투욱.​옵시디언의 거대한 꼬리 끝부분, 집채만 한 철퇴가 깔끔하게 잘려 얼음 바닥으로 떨어졌다.절단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웠다.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는 흑요석 비늘을, 마치 두부 자르듯 베어버린 것이다.​"와... 미쳤네."​레비아탄 콕핏 안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저게 사람인가? 기계인 나보다 더 기계 같다.마력 포격도 아니고, 그냥 쇠붙이 하나로 저런 절단력을 낸다고?​"크르르...!"​꼬리가 잘린 옵시디언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웅크렸다.그러더니 팽이처럼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등껍질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전기톱처럼 돌아갔다.​[죽음의 팽이 (Death Spinner)]​빙하를 갈아버리며 류지를 향해 돌진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