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밀어붙여!"스티브가 탱커 역할을 하며 앞으로 전진했다.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기둥을 향해 달렸다.바닥은 썩은 살점과 뻘로 뒤덮여 있어 발이 푹푹 빠졌다.쿠르릉-!그때, 발밑이 요동쳤다.진흙탕 속에서 놈의 뿌리들이 솟구쳤다.가시가 돋친 굵은 뿌리들이 스티브와 리 웨이의 발목을 휘감았다."젠장!"스티브가 신음했다.뿌리에 돋친 가시가 S급 갑옷을 뚫고 들어왔다. 게다가 뿌리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갑옷을 부식시키고 있었다."이게 어디서 앙탈이야."나는 레비아탄을 조종해 스티브를 잡고 있는 뿌리를 낚아챘다.우드득!그대로 잡아 뜯어버렸다.녹색 수액이 튀었다."남의 다리 만지지 마라. 성추행이다.""고맙다."스티브가 식은땀을 흘리며 풀려났다.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이놈은 사냥을 하는 포식자다.[저 꽃봉오리야.]레비아탄이 놈의 약점을 스캔했다.[형님. 기둥이랑 놈은 하나로 연결돼 있어. 저 꽃봉오리 안쪽에 핵(Core)이 있어. 저걸 터뜨리면 기둥도 무너져.]문제는 저 꽃봉오리가 50미터 높이에 있다는 것.그리고 놈이 수십 개의 덩굴로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는 것."길을 열어야겠네."나는 빙검을 뽑아 들었다."저 꽃봉오리입니다. 제가 올라갈 테니, 밑에서 시선 좀 끌어주십쇼."내 말에 S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한테 맡겨."스티브가 방패를 두드리며 전의를 불태웠다."가자!!"스티브가 고함치며 정면으로 돌진했다.탱커의 도발.정원사의 덩굴들이 일제히 스티브를 향해 쇄도했다.쾅! 쾅! 쾅!스티브는 물러서지 않았다.방패 하나로 수십 톤의 덩굴 공격을 받아내며 버텼다. 발이 땅속에 박힐 정도로 무거운 충격이었지만, 그는 버텨냈다."하압!"그 틈을 타 리 웨이가 측면을 파고들었다.청룡언월도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비기(秘技): 청룡참(靑龍斬)!]거대한 용의 형상을 한 검기가 놈의 옆구리를 휩쓸었다.두꺼운 줄기들이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크에에엑
다음날 아침."우욱..."레비아탄의 콕핏 안에서도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투명한 얼음 돔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 이상 내가 알던 푸른 태평양이 아니었다.붉은 비와 독기에 오염된 바다는 마치 펄펄 끓는 토마토수프 혹은 거인의 고름처럼 걸쭉하고 탁하게 변해 있었다.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는 괴수들의 부패한 사체, 그리고 그 사체를 파먹으려 달려드는 기괴한 융합체들.지옥도가 따로 없었다."냄새 실화냐? 비위 상해서 못 해먹겠네."나는 코를 막으며 조종간을 잡았다.레비아탄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얼음 돔, 일명 '우산'을 유지한 채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쿵! 콰직!"오른쪽! 온다!"스티브의 외침이 들렸다.바다 밑에서 튀어 오른 융합체 한 마리가 돔을 향해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녀석의 몸이 얼음 벽에 부딪혀 터지면서 붉은 산성액을 흩뿌렸다.치이익-!얼음 벽에 금이 가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막아요!"스티브가 돔 안쪽에서 방패를 들어 충격 지점을 받쳤다.동시에 리 웨이가 언월도를 휘둘렀다."핫!"그의 검기가 돔 밖으로 뻗어 나가, 달라붙으려던 또 다른 괴수들의 팔다리를 썰어버렸다.얼음 돔은 물리적인 공격은 막지만, 아군의 마력 투사체는 통과되도록 설정해 뒀다. 일방적인 딜교환이 가능한 구조."수리할게요!"소피아가 지팡이를 들어 금 간 얼음 벽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그녀의 빛이 닿자 녹아내리던 얼음이 다시 단단하게 응결되었다."팀워크 좋네."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꽉 잡아요! 과속 방지턱 넘습니다!"쿠당탕!레비아탄이 수면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괴수의 사체를 밟고 도약했다.돔 안의 S급들이 중심을 잡느라 비틀거렸다."이봐! 운전 좀 살살 해!"스티브가 투덜거렸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멈추면 저 썩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그때였다.철썩- 철썩!바다 색깔과 똑같은 붉은색을 띤 젤리 같은 것들이 돔 표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하
피비린내와 쇠 냄새로 가득했던 격납고 안에, 자극적이고 구수한 탄수화물의 향기가 퍼져나갔다."킁킁... 이게 무슨...""오, 갓..."구석에 처박혀 죽상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코를 벌름거리며 일어났다.지옥 같은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폭력적인 MSG의 향기."다 됐습니다. 줄 서요! S급도 예외 없습니다!"내 호령에 좀비 같던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섰다.나는 국자로 걸쭉해진 죽을 퍼서 식판에 담아주었다.[전시 특식: 김치 잡탕죽]비주얼은 개밥 같았지만, 맛은 보장한다. 내가 하숙집에서 야식으로 수없이 끓여본 레시피니까."감사합니다..."한 어린 병사가 죽을 받아 들고 한 입 먹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엄마... 엄마가 해준 밥 같아...""맛있다... 진짜 맛있어..."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와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얼어붙었던 몸이 녹고, 공포로 굳어있던 위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놀랍군."스티브가 죽을 한 숟갈 뜨며 감탄했다."온갖 잡동사니를 넣었는데... 맛이 조화로워. 마치 전장에서 돌아와 먹는 어머니의 스튜 같아.""그냥 라면 스프 맛입니다."나는 피식 웃으며 리 웨이를 봤다.그는 말도 없이 세 그릇째 비우고 있었다."훌륭해. 사천요리의 매운맛과 광동요리의 풍부함이 섞여 있어.""꿈보다 해몽이 좋네요."소피아는 뜨거운지 호호 불어가며 야무지게 먹었다.다들 배가 고팠던 거다. 영웅이고 나발이고,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다.'이제 좀 살 것 같네.'나도 구석에 앉아 죽을 퍼먹었다.뱃속이 따뜻해지니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이성은 돌아왔다. 이제 생존을 넘어, 반격을 생각할 때다.지잉-때마침 스마트워치가 진동했다.[형님. 식사 끝났어? 분석 다 됐어.]레비아탄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이 붉은 비,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야. 특정 좌표에서 쏘아 올리고 있어.]지도상의 한 점.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100km 떨
깊은 밤.투두둑... 투두둑...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빗소리였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건 비가 아니라 독극물이니까.내가 만든 거대한 [프로즌 돔(Frozen Dome)] 위로 붉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반투명한 얼음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핏빛이었다."추워... 너무 추워...""살려주세요... 다리가... 내 다리가..."격납고 안은 거대한 난민 캠프, 아니 시체 안치소와 다를 바 없었다.돔으로 비는 막았지만, 이미 피폭된 병사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기온은 영하에 가깝게 떨어졌고, 습기 찬 공기에서는 쇠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했다."젠장, 이대론 다 죽어."스티브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그는 자신의 두꺼운 망토를 벗어 어린 병사에게 덮어주고 있었다."정신 차려! 잠들면 죽는다! 눈 뜨고 있어!"하지만 병사들의 눈은 이미 죽어 있었다.고립.외부와의 통신은 끊겼고, 식량 창고는 저쪽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버렸다.구조대가 올 거라는 희망도 없다. 전 세계가 이 꼴일 테니까."우린 끝났어... 여기서 얼어 죽거나, 밖에서 녹아 죽거나..."구석에 처박혀 있던 한 병사가 머리를 감싸 쥐고 중얼거렸다.그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S급 헌터들조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리 웨이는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고, 소피아는 마력이 고갈되어 탈진 직전이었다.'분위기 개판이네.'나는 레비아탄의 발등에 앉아 그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나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돔을 유지하느라 내 마력도 실시간으로 빨려 나가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진짜 다 죽는다.괴물한테 죽는 게 아니라, 배고픔과 공포에 굶어 죽는다."아, 시끄러워."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죽는 소리 좀 그만합시다. 배 안 고파요?"내 뜬금없는 소리에 병사들이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밥이나 먹고 합시다."나
격납고 입구를 지키던 미군 전차가 포를 쏘았다.포탄을 맞은 언데드 상어가 산산조각 났다.하지만 터진 살점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니, 다시 뭉쳐서 더 기괴한 모습으로 재생했다."물리 공격 면역인가?"리 웨이가 언월도를 들고 뛰쳐나갔다.그가 검기를 날려 괴물들을 썰어버렸지만, 놈들은 잘린 단면에서 독가스를 뿜어내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허억... 허억..."리 웨이가 뒷걸음질 쳤다.베도 베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놈들의 몸에서 나오는 붉은 가스를 마시자, S급인 그조차 현기증을 느꼈다.[형님. 이거 답 없어.]레비아탄이 냉정하게 진단했다.[저건 생명체가 아니야. 그냥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지. 핵을 부수지 않는 이상 무한 리필이야.]기지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었다.언데드 군단이 붉은 비와 함께 격납고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이대로면 전멸이다.나는 레비아탄의 출력을 올렸다."물리 치료가 안 되면, 환경을 바꿔야지."쿠우웅-!레비아탄이 격납고의 거대한 철문을 어깨로 들이받고 밖으로 나갔다.쏟아지는 붉은 비.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 괴물들."다들 비키십쇼! 얼어 죽기 싫으면!"나는 외부 스피커로 고함쳤다.스티브와 리 웨이가 내 의도를 눈치채고 병사들을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레비아탄. 할 수 있겠냐?"[빡센데. 범위가 너무 넓어. 내 회로 다 탈지도 몰라.]"타면 고쳐줄게. 최고급으로."[콜! 가자 형님!]우우우웅-!!!레비아탄의 심장(뇌정)이 비명을 질렀다.내 단전의 빙정도 한계까지 진동했다.이번엔 찌르는 창이 아니다. 덮어버리는 지붕이다.[빙정 출력 개방: 대기 동결]레비아탄이 양팔을 하늘로 뻗었다.기체를 중심으로 투명하고 강력한 냉기 파동이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파아아앗-!하늘을 향해 역류하는 냉기의 폭풍.떨어지던 붉은 빗방울들이 냉기 파동과 충돌했다.타다다닥-!액체였던 독비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붉은 우박]이 되었다.독성은 얼음 안에 갇혔고, 흘러내리던
아비규환이었다.방금 전까지 부대찌개 파티를 벌이며 웃고 떠들던 갑판 위는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하늘에서 쏟아지는 붉은 비.그것은 빗물이 아니었다. 닿는 모든 것을 녹이고 오염시키는 맹독성 산성액이자, 생체 바이러스 덩어리였다."안으로! 다들 안으로 뛰어!"스티브가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그는 방패를 우산처럼 펼쳐, 쓰러진 병사들을 덮어주며 벙커 쪽으로 달렸다. S급의 육체조차 붉은 비에 닿자 치이익- 하며 하얀 연기를 피어 올렸다."정화! 정화가 안 돼요!"소피아가 울먹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그녀가 펼친 황금빛 [성역]이 병사들을 감쌌지만, 붉은 비는 성스러운 빛마저 침식하고 있었다. 보호막 표면에 닿은 빗방울들이 곰팡이처럼 번지더니 결계를 깨트렸다."젠장, 다 비켜!"나는 레비아탄의 콕핏으로 뛰어들었다.해치를 닫자마자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적나라한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경고: 외부 장갑 부식 진행 중.][대기 중 미확인 바이러스 농도 90% 초과.]"일단 구멍부터 막아!"나는 레비아탄을 조종해 갑판 위의 에어락(기밀문) 쪽으로 움직였다.아직 대피하지 못한 병사들이 에어락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쿵!레비아탄이 거대한 몸으로 비를 막아서며 그늘을 만들어주었다."빨리 들어가! 문 닫아!!"외부 스피커로 고함치자, 병사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에어락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마지막 병사가 들어가고,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순간.촤아아아-붉은 비가 레비아탄의 등 위로 쏟아졌다.두꺼운 초합금 장갑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에 버터를 올린 것처럼.[앗! 따거! 형님! 나 어제 왁스 칠했는데! 도색 다 벗겨지잖아!]"엄살 피우지 마. 안 죽어."나는 주변을 둘러봤다.끔찍했다.비가 닿은 아스팔트 바닥, 철골 구조물 위로 붉은색 이끼 같은 유기물들이 순식간에 자라나고 있었다.마치 기지 전체가 살아있는 짐승의 내장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