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보, 보셨습니까! 군부대의 방어 라인이 완전히 붕괴됐습니다!"최무진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신경질적으로 웃었다."이그니스의 군단이 시내로 쏟아져 들어갔으니, 그 건방진 흑기사 놈도 제 식구들 지키려다 괴물 떼거리 속에서 산 채로 뜯어 먹힐 겁니다!""그래야지요. 그래야만 합니다."윤대호 역시 창백한 얼굴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맞장구를 쳤다."부산이 잿더미가 되고 나면, 언론을 움직여 모든 책임을 아크 부대와 하태수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호 물자를 들고 내려와 통제권을 쥐는 겁니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에서 끔찍한 안도감과 탐욕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수백만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냈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역겨운 자기 합리화였다.하지만 그들의 얄팍한 안도감은 채 1분을 넘기지 못했다.콰아아아아아-!!!!장갑차의 좁은 창문 너머로, 칠흑 같던 붉은 안개가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찢어지는 광경이 두 사람의 망막에 맺혔다.단순한 돌풍이 아니었다.시뻘건 독기 속에서, 짙은 보랏빛 뇌전을 두른 거대한 강철의 형상이 음속의 궤적을 그리며 그들의 머리 위로 직공해 들어오고 있었다."저, 저건...!"최무진의 두 눈이 공포로 찢어질 듯 커졌다.비명을 지를 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콰아아아아아앙-!!!!!!!!!고막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거대한 흑기사의 쇳덩어리 발바닥이 달리고 있던 지휘 장갑차의 전면부를 그대로 내리찍어 짓밟아버렸다.수십 톤의 방탄 장갑을 두른 특수 차량이, 마치 텅 빈 알루미늄 캔처럼 끔찍한 쇳소리를 내며 찌그러졌다.타이어가 터져 나가고, 아스팔트 바닥이 수십 미터나 파이면서 장갑차의 뒷부분이 허공으로 처참하게 들려 올려졌다."크아아아아악-!""살, 살려...! 내 다리!"에어백이 터지고 콕핏이 찌그러지며, 내부에 타고 있던 최무진과 윤대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레비아탄의 착지 충격파가 반경 백 미터의 붉은 안개와 빗방울을 완
[2026년 5월 말. 심야. 부산 남포동 골목길]절대영도의 결계 밖으로 걸음을 내디디자, 끈적하고 기분 나쁜 온기가 전신을 휘감았고 차갑게 쏟아져야 할 장맛비는 붉은 안개와 뒤섞여 녹슨 쇳물처럼 미지근하게 변해 있었다.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유황 냄새.키릭, 키리리릭.어둠이 깔린 골목길 저편에서 아스팔트를 긁는 날카로운 발톱 소리들이 메아리쳤다.시야를 가리는 붉은 안개 속에서, 도심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기형 해수 수십 마리가 번들거리는 안광을 빛내며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빗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비켜라. 벌레 새끼들이랑 놀아줄 시간 없다."내 으름장에 대답하듯, 가장 덩치가 큰 놈 하나가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며 튀어 올랐다.그 순간.지지직-. 지이이익-!먹통이 되어있던 내 손목의 스마트워치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튀어나왔다.위성 통신이나 암호화된 디지털망이 아니었다.전파 방해를 무식하게 뚫고 들어오는, 아주 투박하고 거친 구식 아날로그 저주파 신호였다.[하 준위. 내 목소리 들리나. 여기는 아크 부대 벙커다.]스피커의 잡음 사이로 사령관의 다급하고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동시에 내게 덤벼들던 해수 새끼의 대가리가, 허공에서 터져 나온 짙은 보랏빛 뇌전에 직격당해 숯덩이로 변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나는 팔목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잘 들립니다. 위성망이 다 죽었는데 아날로그를 쓰실 줄은 몰랐네요."[붉은 안개가 도심을 덮자마자 통신이 다 날아갔다. 윤철수 연구원이 방해 전파의 패턴을 역산해서, 간신히 저주파 라인 하나만 살려놓은 거다.]사령관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본론만 말하지. 방벽이 뚫린 게 아니다. 놈들이 안에서 문을 열었다.]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조금 전 내가 하숙집 마당에서 추론했던 것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동력실 마석 원자로의 강제 셧다운. 해운대 길드 본사 서버에 심어져 있던 백도어 프로그
심해의 괴물 새끼들은 뇌가 없다.그저 피 냄새를 쫓아 본능적으로 밀려드는 짐승일 뿐이다.그런데 그 짐승 새끼들이 부산의 외곽 방어막을 물리적으로 부수지 않았다.동력실의 마석 원자로 제어 코드가 아주 깔끔하고 정확하게 '오프(Off)' 처리되었다.방벽이 내려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붉은 안개가 도심의 전파를 차단했고, 기형 해수들이 썰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괴물들은 메인 서버를 해킹하지 못한다.괴물들은 방어막 스위치를 곱게 끄고 들어올 만큼 예의 바르지 않다.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문을 안에서 열어준 새끼들이 있다.'가장 경계가 닿아있는 곳.낙동강 하구 방어선의 제어 코드를 공유하고 있던, 해운대 길드의 양복쟁이 새끼들.추론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머릿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이성의 퓨즈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태수야! 우짜노! 저 뻘건 거, 우리 마당까지 들어오는데!"여사님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붉은 안개의 끄머리가 어느새 하숙집의 녹슨 대문을 넘어, 빗물이 고인 마당의 시멘트 바닥을 부식시키며 거실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안개 너머로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흉측한 짐승들의 윤곽이 어른거렸다."전부 거실 한가운데로 모이십쇼. 창문 꽉 닫고."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서며 마당의 처마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태, 태수야! 너 혼자 어딜 가려고!""금방 청소하고 오겠습니다."나는 내 왼쪽 손목을 감싸고 있던, 낡고 칙칙한 가죽 스트랩을 거칠게 풀어 던졌다.그 안에 숨겨져 있던 은은하고도 투명한 푸른빛.남포동 암시장에서 주워 온 S급 아티팩트, 마력 제어용 '청옥 팔찌'가 초여름의 밤비 속에서 서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단전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EX급 빙정의 코어를 서서히 열어젖혔다.레비아탄의 무한 동력이 없는 맨몸 상태.비축해 둔 배터리 에너지를 깎아 먹어야 하는 제약이 따르지만, 내 식
투둑, 투두둑.창문을 때리는 굵은 빗소리에 얕은 잠에서 깼다.초여름을 재촉하는 거친 장맛비가 며칠째 부산의 밤거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습관적으로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새벽 1시 15분.아직 이모님이 새벽 시장에 나가기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 여유가 있는 시각.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누우려던 찰나였다.위이이잉-.웅... 툭.내 신경을 거스르는 아주 미세한 위화감이 귓바퀴를 파고들었다.부산 시민들이라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느끼는 백그라운드 소음.남포동 앞바다에서부터 영도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수십 미터 높이의 해안 방파제 실드 발생기에서 들려오던 거대한 저주파 구동음.그 육중한 엔진의 진동 소리가, 마치 누군가 전원 플러그를 냅다 뽑아버린 것처럼 일순간 뚝 끊어진 것이다.정전인가.아니, 그럴 리가 없다.해안 방위선의 동력실은 삼천 그룹이 설계한 독립된 마석 원자로 세 기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설령 진도 8의 지진이 일어나 도심의 전기가 다 끊어져도, 그 방어막의 동력만큼은 절대 꺼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애써 무시하려던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기어올랐다.애에에에엥-!!!!우우우우웅-!!!!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구동음이 멎은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부산 도심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1급 비상 공습 사이렌이 칠흑 같은 밤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나는 반사적으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낡은 군용 외투를 걸쳐 입었다."태, 태수야! 퍼뜩 온나! 짐 챙기라!"거실로 뛰쳐나가자, 이미 하숙집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최 여사님이 사색이 된 얼굴로 비상 생존 배낭에 식수와 통조림을 쓸어 담고 있었다.하루와 미혜 누나 역시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와 덜덜 떨며 겉옷을 챙겨 입었고, 성배 아저씨는 1층 세탁소에서 무쇠 다리미를 쥔 채 뛰어 올라왔다."아지매요! 방벽이 터졌답니더! 밖에서 난리가 났어예!"성배 아저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의 구석.검게 타들어 가는 융단 위로, 시뻘건 불씨를 품은 기괴한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버러지 같은 필멸자들의 요란한 투정 소리가, 심연의 밑바닥까지 진동하는구나.]고막을 거치지 않고 뇌수를 직접 태워버릴 듯한, 지독하게 오만하고 끔찍한 사념의 목소리.아지랑이가 뭉쳐지며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불기둥의 형상이었다.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 대신 맹렬하게 타오르는 흑적색의 화염만이 일렁이는 기괴한 악마의 그림자.판탈라사 제국 제2 군단장, 염마(炎魔).그의 아주 작은 파편이 대리인으로서 이 견고한 빌딩의 심장부로 스며들어 온 것이다."헉, 허억... 심, 심해의 괴물이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최무진이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뒷걸음질 치다 소파 위로 나자빠졌다.윤대호 역시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S급 헌터 수십 명을 부리며 영웅 행세를 하던 길드의 수장들이었지만, 진짜 재앙의 파편 앞에서는 그저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처럼 비참하게 떨 뿐이었다.[떨지 마라. 너희 같은 구더기들의 고기에는 흥미가 없으니.]불꽃의 형상이 일렁이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 발걸음이 닿은 바닥의 대리석이 순식간에 시뻘건 용암처럼 녹아내렸다.[내 목적은 단 하나. 남쪽 바다에서 우리의 수확을 방해하는 그 오만한 쇳덩어리. 그 애송이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그림자가 내뱉은 쇳덩어리라는 단어.최무진과 윤대호의 떨리던 동공에 일순간 이채가 돌았다.공포에 짓눌려 있던 그들의 탐욕스러운 뇌 회로가,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의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그, 그 미친 흑기사를... 죽여버리겠다고?"최무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더듬거렸다.[그렇다. 하지만 그 애송이는 군벌들의 두꺼운 방벽 뒤에 웅크리고 있지. 내가 직접 남쪽 바다를 휩쓸기 위해서는, 그 거추장스러운 인간들의 성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화염의 그림자가 두 양복쟁이를 향해 시
[금요일 새벽. 서울 화이트 타이거 길드 본사 최상층 밀실]쨍그랑-!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크리스탈 글라스가 두꺼운 마호가니 벽면에 처박혀 산산조각 났다.호박색 위스키가 핏자국처럼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값비싼 페르시안 융단을 축축하게 적셨다."개새끼가 감히 나를! 우리를 상대로 그딴 미친 깡패 짓을 벌여?!"화이트 타이거의 실질적 지배자, 최무진 이사가 핏발 선 눈으로 씩씩거렸다.명품 슈트의 넥타이는 진작에 쥐어뜯겨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깔끔하게 빗어 넘겼던 포마드 머리칼은 땀에 젖어 흉하게 헝클어져 있었다.밀실의 가죽 소파 맞은편에는 또 다른 중년 사내가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낙동강 방어선을 독점하고 있는 영남권 최대 군벌, 해운대 길드의 윤대호 회장이었다.대한민국의 한강과 낙동강, 내륙의 가장 거대한 꿀단지를 빨아먹으며 국가 예산과 여론을 쥐락펴락하던 두 거두.하지만 지금 이 최고층 밀실에 감도는 공기는 참담한 패배감과 숨 막히는 분노뿐이었다."진정하십시오, 최 이사."윤대호가 테이블 위의 시가에 불을 붙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빈 깡통이 요란한 법입니다. 우연히 고대 유물 하나 주워서 무력이 조금 비대해졌을 뿐, 근본 없는 부산 뒷골목 양아치입니다.""그 근본 없는 양아치 새끼한테 한강 제방이 뚫렸을 때 무릎을 꿇고 수백억을 뜯긴 게 바로 접니다!"최무진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악을 썼다.단순히 돈을 뜯긴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그날 이후, 언론과 여론의 흐름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시민들의 찬사와 천문학적인 방위비 예산은 모조리 부산의 해안 방위사령부, 그 미친 흑기사가 소속된 '아크 부대'로 쏠려 들어가고 있었다.안전한 내륙 강줄기에서 잔챙이들이나 주워 먹으며 영웅 행세를 하던 대형 길드들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드는 중이었다."삼천 그룹의 늙은 너구리 회장이 그놈의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최무진이 새 잔에 위스키를 거칠게 따라 부으며 이를 갈았다."거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