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By:  Jino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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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쪽 변두리 «느티나무 동물병원» 문에는 『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가 붙어 있었다. 어느 밤, 등딱지가 갈라진 바위거북을 안은 헌터가 뛰어들고, 피를 만진 순간 원장 임도경의 머릿속에 흐릿한 그림이 뜬다. 아픈 자리가 짙게 보인다. 치료는 그림이 해 주지 않는다. 손과 도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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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등딱지에 금이 간 바위거북
복동이가 입을 다물자 임도경의 손가락 끝에 작은 앞니가 닿았다.“조금만 더 보자. 다 끝났어.”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빈 뒤 복동이의 턱을 받쳤다. 입술을 살짝 들어 올리고, 진료등 아래에서 잇몸을 살폈다. 아홉 살 치와와는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붓지는 않았어요. 딱딱한 간식은 당분간 주지 마세요.”“우리 복동이가 그걸 제일 좋아하는데.”표말순 할머니가 세탁물 봉지를 발치에 놓고 복동이의 등을 쓸었다. 복동이는 도경의 손에서는 몸을 빼더니 할머니 품으로는 곧장 파고들었다.도경은 진료대 가장자리에 붙은 털을 닦았다. 벽시계는 저녁 6시 50분을 가리켰다. 문 닫을 때까지 10분이 남아 있었다.밖에서는 비가 내렸다. 병원 앞 느티나무 가지 끝에서 떨어진 물이 유리문을 두드렸다. 건너편 분식집 불빛이 젖은 보도에 길게 번져 있었다.채보라가 계산대에서 진료비를 받았다.“복동아, 다음엔 입 좀 크게 벌리자.”복동이는 할머니 팔 안에서 고개를 돌렸다. 보라가 내민 손가락에는 코도 대지 않았다.“오늘은 삐쳤네.”할머니가 웃으며 세탁물 봉지를 들었다. 도경은 문을 열어 주고 우산이 제대로 펴질 때까지 기다렸다.문 바깥쪽에 붙인 안내문의 아래 모서리가 들려 있었다.『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빗물이 종이와 유리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도경은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젖은 종이가 잠깐 붙었다가 다시 떠올랐다.“테이프 새로 붙여야겠네요.”보라가 어깨에 퇴근 가방을 걸며 말했다.“내일 하죠.”도경은 문을 닫으려 했다.그때 보도 끝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회색 후드를 쓴 남자였다. 품에 안은 담요가 무거운지 몇 걸음마다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할머니가 우산을 옆으로 비켰다. 남자는 고개를 숙일 여유도 없이 문 앞으로 뛰어들었다.“선생님.”젖은 운동화가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도경이 문을 붙잡았다.“우리 애 좀 봐 주세요.”담요 밑으로 짧고 굵은 다리가 나와 있었다. 발끝에는 검은 발톱이 붙어 있었다. 남자의 팔을 따라 떨어지는 물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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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밥을 안 먹는 불여우
돌멩이가 담요를 긁다가 앞발을 문 쪽으로 뻗었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아 물그릇을 옆으로 옮겼다. 거북의 발끝이 그릇을 지나 바닥을 짚었다. 등딱지를 받친 고정대는 기울지 않았고, 거즈에도 새로 번진 피가 없었다.“이제 나가고 싶어?”돌멩이는 목을 길게 뺐다. 도경이 등딱지 가장자리에 손을 대자 앞발을 멈췄다.손끝에 흐린 그림이 떠올랐다. 처음처럼 뜨겁고 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느낌만으로 집에 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도경은 손을 떼고 청진기를 댔다. 숨을 들은 뒤 고정대 아래를 살폈다. 아침에 확인한 사진도 다시 펼쳤다.처치실 밖에서는 보라가 바닥을 닦고 있었다. 유리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직 덜 마른 자리에 걸렸다.“돌돌이 보호자 오셨어요.”“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도경은 마른 거즈로 갈아 붙이고 입원 칸을 열었다. 돌멩이는 기다렸다는 듯 앞발을 내놓았다. 몸을 받쳐 주자 뒷발도 천천히 따라왔다.탁인호가 문 앞에서 멈췄다.“아, 진짜요? 걸어도 돼요?”“짧게는요. 고정대 건드리지 않게 봐 주세요.”인호가 무릎을 꿇었다. 회색 후드의 소매 끝은 말라 있었고, 손에는 돌멩이가 먹던 사료 봉지가 들려 있었다.돌멩이가 코를 봉지 쪽으로 가져갔다.“밥도 찾네. 우리 돌멩이.”인호가 봉지를 내려놓고 거북의 턱 밑을 쓸었다. 도경은 퇴원 안내를 적으며 벽에 걸린 날짜판을 보았다. 3월 18일, 수요일이었다.“금요일에 다시 볼게요. 그 전에 피가 배어나오거나 숨이 달라지면 바로 연락하시고요.”“네, 선생님.”인호는 대답하고도 돌아서지 않았다. 대기실 쪽을 한 번 보고, 손등으로 바지 무릎을 문질렀다.“그런데 저랑 같이 온 사람이 있어요.”도경의 펜이 멈췄다.대기실에서 작은 불빛이 흔들렸다.■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가 의자 끝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고양이 크기의 여우가 웅크리고 있었다.붉은 갈색 털 사이로 귀 끝이 드러났다. 꼬리는 배를 감쌌고, 그 끝에서 작은 불씨가 깜박였다. 여자가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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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가시가 빠지는 가시두더지
탱자의 꼬리 끝에서 길어진 불씨가 유리문에 잠깐 비쳤다.도경은 문을 닫고 손잡이에 묻은 털을 떼었다. 계산대에는 가영이 놓고 간 볼펜 뚜껑이 있었다. 보라가 뚜껑을 집어 분실물 바구니에 넣었다.“다음 주에 오신댔죠?”“전화부터 하라고 했어요.”보라는 바구니를 계산대 안쪽으로 밀었다. 도경은 진료실로 돌아가 식은 쇠 받침을 치웠다.■3월 20일(금), 진료대 위에 하얀 가시 하나가 놓였다.끝이 부러진 가시는 아니었다. 뿌리 쪽까지 길게 빠져 있었고, 손끝으로 건드리자 마른 소리가 났다.“아침에 집 안을 닦는데 이게 나왔어요.”50대쯤 된 남자가 작은 통을 열었다. 손등은 거칠었고, 오른쪽 손가락 두 개는 조금 굽은 채로 펴지지 않았다.통 안에는 가시두더지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몸집은 손바닥 둘을 나란히 댄 정도였다. 한 마리는 짙은 갈색 가시를 세우고 통 가장자리를 킁킁거렸다. 옆에 웅크린 두더지는 등이 희끗했고, 가시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넓었다.도경은 남색 진료복 소매를 올렸다.“언제부터 빠졌어요?”“사흘쯤 됐어요. 처음엔 몇 개라 털갈이 같은 건가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됐네요.”남자가 작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모아 온 가시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어디서 다친 적은 없고요?”“집에서만 지내요. 저도 이제 굴에는 안 들어가고.”도경은 통을 돌려 아픈 두더지를 가까이 두었다. 건강한 쪽이 몸을 붙이자 아픈 쪽도 조금 움직였다. 걸음은 느렸지만 다리를 끌지는 않았다.보라가 진료대에 수건을 깔았다.“둘이 잠깐 떨어져 있어야겠네요.”건강한 두더지를 옮기려던 남자의 손이 멈췄다.“같이 있으면 안 됩니까? 떨어뜨려 놓으면 계속 찾아요.”“바로 옆에 둘게요. 만지는 동안만요.”보라가 작은 바구니를 가져와 수건을 깔았다. 건강한 두더지는 바구니 벽을 짚더니 진료대 쪽으로 코를 내밀었다.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가시가 비어 있는 옆구리에 손을 대자 두더지가 배를 낮췄다.손이 닿은 곳 가까이 흐린 그림이 떠올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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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숨을 헐떡이는 번개다람쥐
도경은 걸린 종이 모서리를 손끝으로 밀어 넣었다.서랍이 닫히자 손잡이 아래에 얇은 종이 끝만 남았다. 다시 열어 반듯하게 넣으려다가, 진료실에서 보라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원장님, 다음 보호자분 오셨어요.”도경은 남색 진료복 소매를 내리고 진료대로 돌아갔다.■3월 24일(화), 작은 이동장 안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는 짧게 끊겼다. 그 사이로 빠른 숨소리가 이어졌다.이동장을 든 남자가 계산대 앞에서 멈췄다. 작업복 무릎에 마른 흙이 붙어 있었고, 목에는 접은 수건을 걸고 있었다.“몬스터도 봐 주셨다고 해서 왔는데요.”도경은 유리문 쪽을 보았다. 안내문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어떤 아이예요?”“번개다람쥐요. 아침부터 숨을 이렇게 쉽니다.”남자가 이동장을 조금 들었다.손바닥만 한 다람쥐가 구석에 엎드려 있었다. 앞발을 벌리고 턱을 든 채, 배까지 크게 움직이며 숨을 쉬었다. 꼬리는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도경은 이동장을 받지 않고 진료실 문부터 열었다.“이쪽으로 놓아 주세요. 문은 제가 열게요.”보라가 진료대 위의 금속 쟁반을 옆으로 치웠다. 마른 수건을 넓게 깔고, 작은 산소 상자를 가까이 가져왔다.남자는 이동장을 내려놓자마자 잠금쇠를 풀었다.“꺼내도 될까요?”“잠깐만요. 지금은 잡는 것도 힘들 수 있어요.”도경은 문을 조금만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다람쥐의 앞발 위쪽에 작은 등록 고리가 있었다. 몸을 건드리지 않고도 가슴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보였다.“언제부터 이랬습니까?”“어젯밤엔 먹이를 남겼어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 움직이질 않아서요.”“떨어지거나 다른 몬스터한테 부딪힌 적은요?”“어제 굴에는 저만 들어갔어요. 얘는 집에 있었습니다.”남자는 이동장 손잡이를 쥔 채 말을 이었다.“동생이 돌봐요. 고등학생인데 헌터가 되겠다고, 요즘은 제 장비보다 얘 먹이를 더 챙깁니다.”도경은 다람쥐의 입가와 코를 살폈다. 콧물은 보이지 않았다. 입을 벌렸다 닫을 때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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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다리를 끄는 서리늑대
도경은 신고서를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겼다.이름 아래에는 병원 주소와 시설을 적는 칸이 남아 있었다. 처치실에서 보라가 불을 줄였다. 산소 상자 안을 확인하고 나온 보라가 책상 앞에서 멈췄다.“다 쓰시게요?”“비어 있는 데만요. 모르는 건 물어보고요.”보라는 책상 위의 과자 봉지를 접어 두었다. 도경은 검사 장비 이름을 적다가 고개를 들어 유리문을 보았다. 들뜬 종이 모서리는 그대로였다.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3월 27일(금) 아침, 도경은 관리원 북부지소의 민원실 책상에 신고서를 올려놓았다.남색 진료복 위에 입은 얇은 겉옷 주머니에서 병원 도장을 꺼냈다. 차로 20분 오는 동안 서류 봉투를 조수석에 놓았다가 무릎에 올렸다가 했더니 모서리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노상필이 신고서를 한 장씩 넘겼다.“입원 시설은 일반 동물과 함께 쓰십니까?”“지금은 그렇습니다. 몬스터를 받을 때는 칸을 떨어뜨려 놓고 있어요.”“크기가 큰 개체는요?”“현재 시설에서 안전하게 볼 수 있는지만 먼저 판단하겠습니다. 어렵다면 옮기고요.”노상필은 펜으로 해당 줄에 짧게 적었다. 도경은 고무장갑 상자와 산소 상자를 어디에 두었는지까지 설명했다.서류를 다 읽은 노상필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신고했다고 모든 종을 다 보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알고 있습니다.”“진료한 내용과 다른 기관으로 보낸 이유도 기록해 두십시오. 원칙대로 남기시면 됩니다.”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상필이 확인 도장을 찍고 접수 서류와 얇은 봉투를 두 손으로 건넸다.봉투 안에는 병원 문에 붙일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동행 몬스터 진료 신고 완료 — 이계생물관리원 북부지소』도경은 글씨를 읽고 봉투를 다시 닫았다.“오늘부터 붙이면 됩니까?”“네. 잘 보이는 곳에 붙여 주세요.”도경은 서류와 봉투를 함께 챙겼다. 건물을 나와 승합차 문을 열다가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보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작았다.“원장님, 큰 애가 왔어요.”“얼마나 큰데요?”“서 있으면 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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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눈이 흐려진 쇠부엉이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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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철창에 갇혀 온 돌두꺼비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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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꼬리가 잘린 물결뱀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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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털이 빠지는 새끼 이끼곰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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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날개가 접히지 않는 유리나방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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