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야말로 레비아탄의 기체를 타기 전, 우스갯소리로 '빙신(氷神)'이라 부르던 그 시절의 능력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다들 엄살 부리지 마십시오. SSS급 던전이라 몬스터가 쏟아질 텐데, 몸 좀 가볍게 풀고 광물이나 몇 통 짊어지고 나오면 끝나는 간단한 출장입니다.""러시아 정부가 알아채기 전에 얼른 털고 복귀해야 하니까 다들 채비하십시오."내가 정복 제복의 빳빳하게 얼어붙은 옷깃을 세우는 찰나였다.삐이이이이이-!수송기 적재함 내부에 적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교차하며 비명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조종석 마이크를 타고 기장의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 준위님! 시베리아 극점 부근 고도 8,000피트 상공 진입했습니다! 현재 외부 온도는 영하 60도! 던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폭풍 때문에 계기판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강하해야 합니다!]"문 열어라."내 명령과 함께 수송기 뒤쪽의 거대한 유압식 해치가 거친 파열음을 내며 아래로 덜컹거리며 벌어졌다.쿠과과과과과광-!!!!해치가 열리자마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말 그대로 사람의 살점과 뼈마디를 통째로 얼려 죽일 기세로 몰아치는 무자비한 시베리아의 눈보라였다.초속 30미터의 칼바람이 수송기 내부의 희박한 열기를 단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렸다."오, 맙소사! 텍사스 토네이도 속으로 뛰어드는 기분이야!"강철 같은 탱커 스티브마저 온몸을 뒤덮은 최첨단 방한 슈트 내부로 스며드는 혹한에 이빨을 딱딱 부딪혔다.류지 영감 역시 칼날을 감싸 쥔 손가락 끝에 기혈을 강하게 불어넣으며 체온을 유지하려 애쓰는 기색이었다.하지만 가벼운 정복 차림에 넥타이만 풀어헤친 나에게는, 이 매서운 혹한이 오히려 한숨 돌릴 수 있는 기분 좋은 온도였다.청옥 팔찌의 제어 아래 단단하게 숨죽이고 있던 단전의 빙정이 시베리아의 혹한을 아늑하게 흡수하며, 미세하게 소모되던 마력을 완벽하게 보충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갑시다."나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해치 끝의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2026년 8월 하순. 월요일 오전 10시. 대한민국 부산 남포동, 하숙집 거실]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부대 격납고가 아닌 남포동 하숙집이었다.레비아탄이 저 꼴이니, 맨몸으로 그 흉악한 시베리아 SSS급 영구 동토 던전 최하층까지 기어 들어가 광석을 캐 와야 한다는 소리인데... 내가 누구인가.세상에서 손해 보는 장사를 가장 혐오하는 하태수이다.내 밥상 물가를 지키기 위한 노동이라지만, 이십 대 초반의 꽃다운 영웅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곡괭이를 메고 광부 노릇을 하는 건 영 폼이 나지 않았다.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합법적이고 아주 강력한 글로벌 짐꾼들을 즉석에서 섭외하는 것.덜컥-.내가 하숙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거실은 이미 국적 불명의 요란한 소음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헤이, 미스터 성배! 이게 바로 한국 빈티지의 정수란 말이야! 내 패션이 훨씬 더 판타스틱하다고!"스티브가 소파 위에서 형광 노란색 바람막이를 펄럭이며 잔뜩 거드름을 피웠다.어디서 사기를 당한 게 분명한 80년대 고고장 스타일의 나일론 바람막이를 걸치고 레트로 선글라스까지 낀 꼴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에헤이, 스티브 형씨. 패션은 동묘가 다가 아니지. 우리 세탁소 스타일이 진짜 로컬 힙스터인 거 모르나! 이 주름 하나 없는 빳빳한 면바지를 보소!"성배 아저씨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지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서로 자기가 진정한 한국의 패셔니스타라고 소리를 높이는 꼴이 아침부터 눈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다.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류지 영감이 양손 가득 따끈한 봉투를 들고 들어섰다.봉투 틈새로 달콤한 씨앗호떡과 고소한 땅콩빵 냄새가 거실 전체에 진동했다."시장에 갔더니 제법 요기할 만한 것들을 팔더군."류지 영감이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식탁 위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안방에서 대기하던 희선이와 히나 역시 빛의 속도로 튀어 나왔다."와! 류지 할배 최고! 진짜 잘 무께요!""고마워요, 할아버지!"두 비글 여중생은 호떡 봉투를 잽싸게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머리, 넋이 나간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열정'으로 번들거리는 내 얼굴. 광기에 먹혔던 그녀의 이성이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서야 황급히 돌아온 모양이었다."......꺄악! 준, 준위님?! 제, 제가 무슨 짓을...!"수지는 비명을 지르며 덥석 잡고 있던 내 멱살을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용수철처럼 뒤로 물러나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리를 90도로 꺾었다."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만...!"석고대죄하는 수지의 사과를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천천히 풀려난 멱살을 정리했다. 얼굴에 맺힌 축축한 감각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손을 뻗어 얼굴을 닦으려다 문득, 내 사과를 기다리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엎드려 있는 수지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가운자락을 끌어당겼다."......준위님?"당황한 수지가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그녀의 가운 가슴팍에 내 얼굴을 냅다 문질렀다. 슥슥, 팍팍."끄, 꺄아악! 준, 준위님! 뭐 하시는...!"수지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가운에 실시간으로 내 얼굴을 범벅으로 만들었던 그녀의 '열정'을 깨끗하게 닦아냈다.어느정도 얼굴이 닦인 것을 느낀 나는 수지를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지의 가운 가슴팍에는 내 얼굴 형상 그대로 시커먼 기름때와 침 자국이 아름다운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다.대충 내용은 알겠다. 헌데..."공중에 띄워서 돌린다는 이론은 참 훌륭한데. 그럼 그 빌어먹을 황제의 마석을 공중에 잡아둘 어마어마한 척력은 뭐로 만들 건데요. 전자석이라도 박아 넣을 겁니까."내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철수가 혀를 끌쯧 찼다."당연히 일반적인 자석으로는 택도 없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 기적의 초전도체 물질이 필요해.""초전도체? 그런 게 지구상에 존재하긴 해?""그러니까 아까 그 시베리아 던전을 보여
[2026년 8월 하순. 월요일 아침. 대한민국 부산, 해안 방위사령부 아크 부대 지하 7층 랩실]징글징글한 월요일의 아침 해가 밝았다.어젯밤 평상에 누워 수박 화채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완벽했던 내 휴일은, 태평양 너머에서 날아온 불쾌한 기운과 신수지 소장의 다급한 전화 한 통으로 미세하게 금이 가버린 상태였다.물론 일요일 저녁이라는 직장인의 신성한 안식을 지키기 위해 통화 종료 버튼을 자비 없이 눌러버리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나는 목을 옥죄는 정복 넥타이를 대충 느슨하게 풀어헤친 채 아크 부대의 가장 깊숙한 지하 7층 통제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두꺼운 티타늄 방폭문 앞에 서서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을 차례로 통과하자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랩실의 문이 양옆으로 갈라졌다.푸쉬이이익-.문이 열리자마자 에어컨의 차갑고 건조한 바람과 함께 폐부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금속을 깎아낼 때 나는 매캐한 오존 냄새와 엔진 오일 냄새, 그리고 인간의 신경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고농축 에너지 드링크의 단내가 뒤섞인 환장할 악취였다."우욱. 여긴 올 때마다 공기가 썩어 문드러져 있네."나는 코를 틀어막으며 랩실 내부로 들어섰다.대낮처럼 환하게 켜진 수십 개의 백색 조명 아래, 랩실 바닥은 그야말로 세기말의 폐허를 방불케 했다.구겨진 핫식스와 몬스터 캔이 문자 원래 모습대로 무덤처럼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뜯어진 컵라면 용기들이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그리고 그 쓰레기 산의 한가운데.홀로그램 도면이 어지럽게 띄워진 메인 콘솔 앞에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는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하 준위님... 오셨습니까..."하얀 연구원 가운에 시커먼 기름때를 칠갑한 신수지 소장이 초점 잃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부스스하게 뜬 까치집 머리.마치 좀비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기괴한 몰골이었다.그 옆에 선 수석 메카닉 윤철수 역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눈의 실핏줄이 다
Z급 파일럿의 생존 본능이 10,000퍼센트 가동되며 내 다리가 바닥을 찼다.나는 화장실 문짝을 박차고 마당을 향해 빛의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어데 도망가노, 이 자식아! 다 니 생각해서 침 놔주겠다는데 어른 성의를 무시하나! 거기 안 서나!”다행히 최 여사님이 가장 아끼는 드라마 방송 시간이 다가왔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한 방 찔렸다면 턱을 뚫고 들어간 침에 뇌까지 깜짝 놀라 두개골이 확 벌어졌을지도 모른다.“어휴, 진짜 두 번 다시 물놀이 따라가나 봐라.”나는 절레절레 도리질을 치고 입을 삐죽거리며 평상 위를 뒹굴거렸다.일요일 저녁 9시.직장인들에게는 주말의 끝자락을 알리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시간.하숙집의 널찍한 거실에서는 최 여사님과 할머니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주말 연속극의 클라이맥스를 보며 훌쩍이고 계셨다.랩실에서 밤을 새우다 기어 들어온 윤철수는 씻지도 않고 제 방에 틀어박혀 시체처럼 곯아떨어졌고, 워터파크에서 체력을 쏙 빼고 온 희선이와 히나 역시 방 안에서 쥐죽은 듯 조용했다."오빠. 여기 시원한 수박 화채 드세요."그때 마루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하루가 커다란 유리 볼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방금 샤워를 마친 듯 물기 어린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샴푸 향기가 훅 끼쳐왔다.하루는 평상 구석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아 유리 볼에서 얼음이 동동 뜬 화채를 작은 그릇에 소복하게 덜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어, 고마워. 너도 어제 피곤했을 텐데 좀 쉬지.""전 하나도 안 피곤했어요. 튜브 부느라 오빠가 고생을 다 하셨죠, 뭐."하루가 풋 하고 웃으며 내 턱관절을 놀리는 듯한 장난스러운 시선을 보냈다.나는 헛기침을 하며 이쑤시개로 수박 한 조각을 찍어 입에 쏙 집어넣었다.아삭하게 씹히는 달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밤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고요한 마당.선풍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연속극의 대사.
[2026년 8월 하순. 시각 불명.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심연의 밑바닥]빛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수심 1만 미터의 캄캄한 해저.수만 기압의 끔찍한 수압이 짓누르고 있는 심연의 진흙탕 위에는 한때 바다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던 거대한 제국의 흉악한 잔해가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바로 판탈라사 제국의 제1 군단장 에레보스의 부서진 분신체 조각들.심연의 군주들마저 궤멸당하고, 남은 잔챙이 해귀들만이 목적지를 잃고 심해를 부유하는 고요한 폐허 속에서, 에레보스의 잔해에 남아있던 미세한 심연의 마력이 명멸을 반복하며 사그라들고 있었다.그때였다.우르르르릉-!!!!절대적인 정적이 지배하던 해저 산맥의 한가운데서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지진이나 해저 화산의 폭발 같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공간 자체가 물리적인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는 끔찍한 파열음.에레보스의 잔해가 나뒹구는 진흙탕 바로 위쪽의 바닷물이 시퍼렇게 갈라지며 거대한 차원의 틈새가 아가리를 벌렸다.그리고 그 찢어진 차원의 균열 너머에서 칠흑보다 더 짙고 끈적이는 무형의 그림자 하나가 해저 바닥을 향해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그것은 특정한 짐승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마치 수압 자체를 집어삼키는 듯한 거대한 어둠의 해일.그림자가 해저 바닥에 닿는 순간 주변을 배회하던 심해의 포식자들과 잔챙이 괴수들이 본능적인 공포에 짓눌려 형체도 없이 으스러지며 핏물로 터져 나갔다.황제의 부활을 준비하던 군단장들이 모조리 도륙당하고 심연의 본성이 박살 난 지금.제국의 가장 깊고 은밀한 그림자 속에 웅크려 있던, 황제의 옥좌만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던 진정한 재앙의 파편이 마침내 눈을 뜬 것이다.즈즈즈즉-! 콰직-!무형의 그림자가 진흙탕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여 에레보스의 조각난 시체 위로 덮쳐들었다.그림자의 표면에서 수백 개의 날카로운 가시 같은 촉수들이 솟아나오더니 에레보스의 잔해를 사정없이 꿰뚫어 흡수하기 시작했다.에레보스의 육신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심연의 지식과, 그가